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4화(24/675)
제 24화
“크억! 형님, 저, 더 이상은…….”
털썩.
“엄살은.”
나무 기둥을 세 개째 나르던 박정필이 결국 바닥에 퍼지고 말았다.
엄살이라고 하긴 했지만, 솔직히 혼자서 저 두꺼운 걸 세 개나 옮겼으면 나름 대단한 수준이다.
뭐, 애초에 녀석에게 맡겼던 건 반농담이었으니 상관은 없었다. 본격적으로 나무를 옮겨줄 사람은 따로 있었으니까.
“그냥 옮기기만 하면 되나?”
“응. 저기 쌍둥이 좀 돕고 있어. 일 끝나면 바로 대련 시작할 테니까.”
“알겠다.”
강한철이 나무 기둥 하나를 붙잡더니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나무를 나르기 시작했다.
세운이 베어 낸 나무의 수는 대충 보아도 수십 개. 경악스러운 양이지만, 강한철이라면 나르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
실제로, 그는 양팔에 나무를 한 개씩 끼고 한 번에 두 개의 나무를 옮기고 있었다.
“와아, 한철 오빠 진짜 세다!”
“이게 다 몇 개야? 이거면 목책 보수가 아니라 증축도 가능하겠는데?”
덩달아 쌍둥이도 재료가 많아지자 벌써부터 뭘 어떻게 만들 건지 의논하며 신이 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세운은 뒤랑달을 납검한 후 캠프 안으로 발을 옮겼다.
박정필의 보고를 들으며, 다음으로 갈 곳을 미리 생각해 두었다.
“크윽!”
“파, 팔에 감각이 없어요! 이거 설마, 아니죠? 제발…….”
“으아악!”
쌍둥이가 만들어 둔 치료 병동.
병동이라 해 봤자, 바닥에 풀을 부드럽게 깔아두고 나무와 나뭇잎을 꼬아 만든 지붕으로 햇빛을 막은 게 전부였지만 말이다.
세운의 도움 없이 세 번의 웨이브를 견디며, 생각 이상으로 많은 부상자가 발생해 있었다.
그런데도 중상자나 사상자가 없는 건.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이분만 치료하고 금방 봐 드릴게요!”
다급하게 환자들 사이를 오가고 있는 저 여성 덕분이었다.
이전에 짧게나마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기에 세운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전에도 가장 앞장서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지.’
치료라고 해 봤자 이곳에 누군가를 치료해 줄 만한 도구 따위는 없었다.
그런 상황임에도 그녀의 손에 닿은 사람들은 신음을 멈추고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저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첫 번째는 치료와 관련된 고유 능력의 개방이나.
두 번째는.
‘성좌의 선택을 받는 거지.’
-성좌, ‘피투성이 사자’가 낮게 그르렁거리며 플레이어 ‘이하늘’의 주변에 흩뿌려진 피를 핥습니다.
피투성이 사자.
서열 5위의 마왕, 마르바스였다.
지옥의 대의장이라 불리는 마르바스는 몸이 썩어나갈 정도의 질병을 유발함과 동시에, 반대로 질병이나 상처를 치료해 주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 증거로 그녀가 성좌의 힘을 빌려 손을 내미는 곳마다 사람들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가고 있었다.
‘아직은 미숙해 보이지만, 곧 능력의 본질을 자각하게 되겠지.’
아직은 성좌의 힘을 거의 못 다루고 있는 듯했지만, 익숙해진다면 치료만 아니라 전투에도 큰 힘을 발휘할 게 분명했다.
대표적으로 적의 상처가 더욱 벌어지게 하거나 출혈을 악화시키는 등. 마르바스의 힘은 마왕 중에서도 잔혹한 힘을 자랑한다.
아직은 도움이 필요해 보이지만 말이다.
“역할을 분담하지.”
“……당신은?”
“나는 외상이 심한 사람을 위주로 치료할 테니까, 너는 열이나 내상이 있는 환자를 맡아. 마르바스의 힘이라면, 그게 가장 효율이 좋을 테니까.”
“그걸 어떻게……. 일단, 알겠어요.”
세운이 가까운 환자를 찾아갔다.
이전에 마몬의 창고를 열어 배운 ‘큐어 라이트’가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벼운 상처 회복이나 지혈을 위한 1 서클 마법.
지금처럼 상처가 심한 사람들을 치료하기에는 부적절했다.
그러니.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힐(Heal) ]– 백탑의 기본 치료 마법 중 하나로써 현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될 정도로 보편적이며 뛰어난 치료 마법.
새로운 마법을 사용한다.
2 서클 마법인 힐이라면, 제법 깊은 상처라도 무리 없이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우웅!
“끄윽! 으…… 으으…….”
마법이 빛을 발하자, 환자의 신음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성, 이하늘이 작게 감탄을 내뱉었다.
“실력이 더 느셨네요. 전에도 대단했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당연히 그렇게 느낄 수밖에.
힐은 2 서클 마법답게 1 서클 마법인 큐어 라이트와는 성능 자체가 달랐으니 말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치료 마법에는 흑탑의 묘리가 적용되지 않아 위력 강화 효과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체인 라이트닝과 달리, 힐은 다크 마나 서클의 영향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니, 치료 효과가 낮아지지 않는 거로 만족해야 하나?
그마저도 첫 번째 마나 서클인 ‘블루 마나 서클’ 덕분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정말 치료 효과가 낮아지거나 치료 마법 자체가 불발되었을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지나면 치료 자체는 네가 더 잘하게 될 거다.”
“제가요?”
“피투성이 사자. 네가 계약한 성좌는 그만큼 강력하니까.”
“당신처럼 치료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해서 계약한 것뿐인데…….”
“마르바스라면 점잖은 편이니까, 잘해 봐.”
-성좌, ‘피투성이 사자’가 인간에게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묘하다며 갈기를 긁적입니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지옥의 대의장에게 딱 알맞은 표현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웅-
부상자가 많았던 탓에 세운은 서클의 마나가 바닥날 때까지 힐을 사용해야만 했다.
그렇게 환자 병동을 한 바퀴 돌자, 환자들의 상태가 눈에 띄게 호전되어 있었다.
“고마워요.”
“마나 서클이 채워지면 한 바퀴 더 돌 수 있으니까, 필요하면 불러.”
“네!”
마르바스의 계약자라.
생각보다 캠프의 구성이 탄탄해지는 것 같았다.
바위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캠프를 전혀 이끌지 못했기에 큰 변화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다음은…….’
세운이 다음 장소로 발을 옮겼다. 사실,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들르고 싶었던 곳을 향해서.
‘유서아의 검, 꽤 쓸 만해 보였지.’
세운이 도착했을 때, 유서아가 휘두르던 쌍검은 예전에 포인트로 구입했던 싸구려 숏소드가 아니었다.
날카롭고 흉악한 기세를 내뿜는 상앗빛 검. 마치 유서아 전용으로 만들어진 듯한 무기였다.
‘강한철도 마찬가지고.’
맨몸 공격을 주력으로 하는 강한철이지만, 그의 손은 더 이상 맨손이 아니었다.
늑대의 가죽으로 만든 듯한 새빨간 가죽 장갑. 거기에 날카로운 뼛조각이 박혀 있어서 주먹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적의 살갗을 베는 게 가능해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발차기의 위력을 증가시켜 줄 각반까지 착용하고 있었으니.
도대체 어디서 그런 장비를 구했는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어르신.”
“오, 자네 왔나.”
금관을 쓴 병사.
서열 28위의 마왕, 베리스가 관심을 가졌던 이. 바로, 고창석이었다.
깡, 깡!
그는 지금도 쇠망치를 손에 든 채 무언가를 열심히 내려치고 있었다.
다만, 쇠를 내려치는 것하고는 소리가 달랐다.
조금 거친 소리랄까?
자세히 쳐다보니 그는 언제 구했는지 방금 사냥을 마친 레드 몽키의 뼈를 날카롭게 다듬고 있었다.
옆에 준비해 둔 기다란 나무막대기를 보아하니 뼈 창을 만들려던 모양이다.
“오오! 어떻게 된 건가? 그 검은!”
역시 대장장이랄까.
고창석은 세운의 허리춤에 꽂혀 있던 검의 변화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제련하던 도구도 손에서 놓고 다급하게 세운에게 다가와 검을 관찰하였다.
검이 뚫어질 듯한 관심에, 세운은 어쩔 수 없이 검을 들어 그에게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의 관심이 어디까지나 호기심일 뿐, 물욕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질은 같지만 머금은 힘은 아예 다른 검이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구먼! 재질이 뭐기에 이렇게 단단한 거지?”
팅-
눈으로 관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손가락으로 검을 울리며 강도까지 확인하는 그.
이대로 두면 온종일 뒤랑달만 쳐다볼 것 같았기에, 세운은 짧게 헛기침을 하며 검을 다시 허리춤에 꽂아 넣었다.
“그러다 검 뚫어지겠습니다.”
“크흠, 어디 갔나 싶었더니 그런 보검을 만들어 왔구먼.”
“사람들이 끼고 있는 장비들, 어르신이 만드신 거죠? 전부 몬스터의 소재로 만들어졌던데.”
“성좌라고 했었나? 나를 보고 있다는 그분이 이런 걸 좋아하시더구먼.”
-성좌, ‘금관을 쓴 병사’가 당신이 든 검을 내려보며 크게 감탄합니다.
금관을 쓴 병사, 베리스.
마왕답게 평범한 금속보다는 몬스터의 소재를 다루는 데 더 능숙한 듯했다.
그렇다고 해도 아다만티움이나 오리하르콘 같이 희귀한 광석이라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그래서 무슨 일인가? 그 검은 따로 날을 갈아주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일단, 이것부터 좀 봐주시겠습니까.”
세운이 소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짙은 회색의 돌.
언뜻 보기에는 바위산에 굴러다니는 평범한 돌과 다를 바 없었지만, 고창석은 바로 돌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호오, 특이한 광석이구만.”
-성좌, ‘금관을 쓴 병사’가 제법 쓸 만해 보이는 소재라며 습관처럼 금관을 매만집니다.
세운이 꺼낸 광석은 바로 개암석.
바위산에서 보스 몬스터인 ‘절벽을 오르는 원숭이’를 사냥하고 얻은 광석이었다.
본격적으로 탑이 들어가게 되면 희귀하긴 해도 이보다 좋은 광석이 많지만, 적어도 튜토리얼에서 구할 수 있는 광석 중에서는 손꼽히게 좋은 광석이기도 했다.
“이걸 이용해서 방어구 좀 만들어 주셨으면 해서요.”
“흐음, 방어구라. 그 망토로는 부족했나 보구먼.”
“좋긴 한데, 망토로 방어할 수 있는 공격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바위산에서 박쥐들을 상대할 때, 세운은 망토가 지켜주지 못하는 복부를 막기 위해 ‘리자드맨의 비늘’을 사용했었다.
물론, 비늘의 방어력은 꽤 괜찮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다.
튜토리얼이라고 해도 특정 보스 몬스터나 네임드 몬스터의 공격은 비늘 정도야 가볍게 뚫고 들어올 것이다.
공격을 얌전히 맞아줄 세운이 아니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보험을 준비할 생각이다.
“좋아. 캠프 사람들이 사용할 무기는 이미 다 만들었으니까, 바로 만들어 주지.”
“다음 웨이브 전까지 가능하시겠습니까?”
“다음 웨이브 말인가? 그렇다면 남은 시간이…….”
[ 튜토리얼 첫 번째 장 – 적응 ]-열 번째 몬스터 웨이브까지 남은 시간 22시간 03분.
과연, 마지막 웨이브.
지금까지의 웨이브는 기껏 해 봐야 한나절 정도의 시간을 주는 게 전부였는데 이번에는 무려 하루의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장인이 제대로 된 장비를 만들어 내기에는 빠듯한 시간이다.
“크흠, 평소보다는 여유가 있다만. 그리 급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네.”
튜토리얼 첫 번째 장의 마지막 웨이브.
유서아와 강한철이 생각 이상으로 강해지긴 했지만, 마지막 웨이브에 맞서기는 무리다.
물론, 세운의 머릿속에 ‘실패’라는 단어는 없었지만.
“다음 웨이브에서는 좀 거칠게 뛰어다닐 생각이거든요.”
“거기서 더 거칠게라니, 어지간히도 튼튼한 방어구를 만들어 줘야겠구먼.”
캠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어려운 전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