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4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44화(240/675)
제244화
“꽉 잡아.”
“우와아앗!”
블루 크리스털의 빛이 멈추자, 거인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인의 양어깨에는 디아블로 클랜원이 다섯 명씩 타고 있었는데, 너덜거리는 옷자락을 붙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만큼 거인의 움직임은 빠르고 격동적이었으니까.
그나마 속도에 남들보다 빨리 적응한 유서아가 세운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런 방법은 어떻게 생각해 내신 거예요?”
“뭐…… 그냥.”
세운이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사실, 이 방법을 떠올린 건 회귀 전의 경험 덕분이었다.
당시에 세운은 남들보다 신체 능력이 탁월하거나 특별한 능력이 있었던 게 아니라 거인의 발걸음을 피해 도망가기 힘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석궁으로 쏘아낸 로프가 거인의 몸에 걸리게 되었고, 거인에게 매달린 채로 목적지까지 매달려 가게 되었다.
‘설명하려니까 괜히 민망하네.’
당시에는 스스로 생각해도 만족할 만큼 뛰어난 전략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거인에게 대롱대롱 매달려 버티던 모습이 썩 안쓰럽게 느껴졌다.
아무튼, 덕분에 이렇게 편하게 이동할 수 있으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닐까 싶다.
그런데, 우연일까?
“으아아아악! 살려주십쇼. 형니이임!”
“저거…… 안 구해 줘도 될까요?”
“내버려 둬. 저놈이라면 떨어져도 알아서 따라올 테니까.”
결국, 버티지 못하고 거인의 어깨에서 떨어진 박정필이 간신히 걸어둔 로프에 매달린 채 대롱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회귀 전의 일을 설명하기가 더욱 꺼려졌다.
“이야, 장난 아닌데?”
“저 아래에서 도망쳤을 뻔한 거 생각하니까 진짜 아찔하네.”
거인의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큰 덩치만큼 한 발을 뻗어도 엄청난 거리를 나아갔으니까.
뒤를 보니 거인이 끊임없이 달려오고 있었다.
저 수를 보니 이번 시련은 그저 거인을 피해 숨어 있는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시간제한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뒤에서 숨어만 있던 사람들은 결국 다음 시련에 도착하지 못했으니까.
“시련에서 말한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위협’이 이거였나 보군요. 확실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긴 했습니다.”
옆에서 버티고 있던 백현이 입을 열었다.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위협.
거인을 설명하기에 썩 어울리는 지칭이었다.
하지만, 세운은 곧 그 말에서 의아함을 느꼈다.
‘이 거인들이 진짜 시련에서 말한 위협인가?’
세운이 의아함을 느끼는 이유는 거인들의 행동 때문이었다.
시련의 내용대로라면 거인이 플레이어들을 공격해 오는 게 정상인데…… 거인들은 플레이어를 안중에도 안 두고 있었다.
그저 이성이 나간 것처럼 미친 듯이 도망칠 뿐.
물론, 플레이어에게는 이 자체가 크나큰 위협이지만 그렇다고 ‘감당할 수 없는’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저 거인들은 왜 이렇게 달리고 있는 거지?’
회귀 전에는 너무 급박한 상황 탓에 생각하지 못했던 의문점이다.
다른 플레이어들 역시 마찬가지.
조금만 방심해도 저 거대한 발바닥에 깔려 죽을 판이니, 이런 내용을 궁금해하는 플레이어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의 세운 역시 거인의 어깨 위에서 차분하게 주변을 관찰할 수 있었기에 생각할 수 있는 의문점이었다.
유서아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 거인들은 왜 도망치고 있는 걸까요? 이렇게 크고 강해 보이는데.”
“도망?”
“아, 아닌가요? 도망치는 것처럼 보여서…….”
들어보니 도망가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워낙 거대하고 포스가 넘쳐 보여서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을 뿐, 눈을 까뒤집고 내달리는 모습은 영락없이 겁에 질려 도망치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에게서 도망치고 있는 거지?’
이성은 날아간 듯하지만, 신체 능력 하나는 따라올 자를 찾기 힘든 게 바로 이 거인들이다.
그런 거인을 이 정도로 겁에 질리게 하여 도망치게 만드는 존재라니……?
그런 존재가 있다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위협.’
그게 바로 시련에서 말한 위협의 정체겠지.
‘그런 게 있다면 보통 히든 피스가 아닐 텐데…….’
다만, 걱정되는 점은 있었다.
거인들을 이렇게 도망치게 할 정도면 그 위협이 뭔지는 몰라도 상당히 강력할 거라는 것.
‘확인만 하는 건 괜찮겠지.’
만약 못 이길 것 같으면 도망치면 그만이다.
상대가 아무리 강력한 적이라고 하여도 도망칠 자신 하나는 충분하다.
아니, 솔직히 35층에서 아무리 강한 몬스터가 나타난다고 하여도 못 이길 것 같지는 않았다. 현재 세운의 전투력은 이미 어지간한 고층의 플레이어 수준에 달했으니까.
“유서아, 먼저 가고 있어라.”
“네? 어디 가시려구요?”
“뒤쪽에 뭐가 있나 좀 보고 오려고.”
“그럼 저도 같이…….”
“아냐, 넌 여기서 길드를 관리해 줘야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 편하게 움직이고 있다지만, 35층의 장애물은 이게 끝이 아니다.
이대로 조금 더 나아가면 거대한 넝쿨이나 맹수가 나타날 텐데, 그때 자칫하면 장애물에 걸리거나 덮쳐져 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때는 길드에서 보법이 가장 뛰어난 유서아가 나서서 길드원을 지켜줘야만 했다.
“……알겠어요. 길드는 저한테 맡겨주세요.”
“그래.”
유서아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회귀에 대해 듣게 된 후로 어지간해서는 세운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지 않고 따라주고 있었기에 덕분에 세운은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타앗!
“으어어어어-!”
세운이 굉음과 함께 뜨거운 숨을 내뱉던 거인의 어깨에서 도약했다.
거인의 속도를 거스르고 ‘위협’이 존재하는 후열로 도달하려면 속도를 내야만 한다.
* * *
“으어어어어!”
뒤로 이동해도 보이는 건 거인뿐이다.
저 거대한 놈들이 어디서 이렇게 모여 살았는지, 정말이지 끝도 없이 나온다.
세운은 그 위를 유유히 도약하고 있었다.
타앗!
거인의 머리를 박차고 다음 거인으로.
기분 나쁠 만도 한데, 놈들은 세운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신경도 쓰지 않고 내달릴 뿐이다.
‘슬슬 간격이 너무 엉망인데.’
거인들의 달리기에 규칙성 따위는 없었다.
도약으로 거인과 거인 사이를 건너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날개를 펴고 편하게 달리기에는, 당장 어떤 적이 등장할지도 모르기에 나는 데에 마나를 낭비하기가 영 불안했다.
6서클에 다다르며 마나 총량과 마나 회복력이 상승했지만, 이카로스의 날개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마나를 소모하니까.
그래서 세운이 선택한 방법은.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허공답보(虛空踏步) ]– 허공을 밟듯이 하늘을 내달리는 기예. 허공에 가상의 계단을 밝고 올라가듯 허공을 비상할 수 있다.
퉁!
거인에게서 도약하고, 다음 거인과의 사이.
세운은 부족한 거리를 채우기 위해 날개를 펼치는 대신 허공을 밟으며 다시 한번 도약하였다.
공기를 밟는다는 이치적으로 불가능한 행동. 하지만, 6갑자에 이르는 내공은 그것을 가능케 해 주었다.
물론 아쉽게도 이 역시 내공의 소모가 큰 편이라 이대로 계속 허공을 내달리지는 못한다. 그래도 거인 사이의 거리가 넓을 때 한 번씩 사용하는 것 정도는 충분하다.
펄럭!
그다음에 날개를 펼쳐 거인 사이를 건넌다.
날개와 무공을 교차로 활용하며 마나와 내공을 교대로 사용한다.
이런 식으로 두 힘을 나눠서 사용하면 증가한 마나와 내공의 회복력에 의해 소모 속도를 어느 정도 충당하는 게 가능했다.
‘여기도 소인국이랑 지형이 비슷하네.’
허공으로 날아오르자 꽉 막혀 있던 시야가 탁 트였다.
나무나 바위 같은 장애물이 너무 커서 알지 못했는데, 높이서 보니까 지평선이 까마득한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소인국도 그렇고, 마치 어딘가의 대지를 뚝 떼서 가져놓기라도 한 듯한 모양새다.
그렇게 한창 거인들의 도주를 역행하던 중…….
“피요오오오-!”
하늘에서 날카로운 포효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활짝 펼친 날개가 20m는 족히 될 법한 거대한 독수리가 세운을 노리고 있었다.
거인국답게 야생동물의 크기도 어마어마하다.
아무래도 세운을 작은 벌레 정도로 인식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세운이 거기에 얌전히 당해 줄 리가 없었다.
– 내공을 통해 복마궁술의 제삼 초식, 마연시(魔聯矢)가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파바바밧!
세운이 재빠르게 꺼내 든 불사궁의 시위를 당겼다.
마연시 특유의 연사로 인해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열 발에 가까운 화살이 쏘아졌다.
따로 마몬의 보구를 사용한 것이 아님에도 그 위력은 대단했다.
“퓌이이이-”
불사궁의 능력 중 하나, 동결.
독수리의 날개에 닿은 화살이 한기를 내뿜으며 깃털을 얼려 나갔다.
상대의 크기가 워낙 컸기에 그리 타격이 크지 않은 공격이었지만, 세운의 마연시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일 초에 열 발에서 스무 발로.
손에 익을수록 더욱 빨라지는 그 속도에 독수리의 날개 한쪽이 완전히 얼었다.
“퓌요오오오-!”
그로 인해 균형이 깨져 놈은 못쓰게 된 날개를 접고 세운에게 수직으로 하강했다.
먹이에 대한 집요함.
놀라운 집념이었지만, 상대가 잘못되었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서걱-
잔혹한 절단음이 들려왔다.
제법 노련한 놈이라 눈앞에서 검을 휘둘러도 피할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지만, 놈은 날개 한쪽이 완전히 얼어 있기에 세운의 검을 보고도 꼼짝없이 당해 줄 수밖에 없었다.
자기보다 열 배는 더 작은 세운의 크기에 공격 역시 약하기를 바라는 모양이었지만, 검은 놈의 급소를 포악하게 찢어발겼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먹을 것이 넘쳐난다며 당신이 항상 시련을 통과하길 기원합니다.
그 이후로도 몇 가지 난관이 세운을 덮쳐왔다.
세운을 날파리로 보기라도 하는 것인지 귀찮다며 팔을 휘둘러대는 거인도 있었고, 다른 거인에 키가 더 큰 거인 때문에 도약에 난관을 겪을 때도 있었다.
그 모든 난관을 거치며 얼마나 오래 움직였을까?
“저건?”
역행하기 시작한 후, 처음으로 거인에게서 이변이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으어어어! 사아알려줘어어!”
거인이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발음이 뭉개지고 말이 길게 늘어져 알아듣기 힘든 수준이었지만, 침이나 흘리며 내달리던 지금까지의 거인들과는 달랐다.
무엇 때문인가 싶었지만, 세운의 시야는 그 거인을 향해 있지 않았다.
“미친…….”
그도 그럴 게, 그 거인의 바로 뒤편에서 유유자적 걸어오고 있는 생명체가 세운의 시야를 뺏었기 때문이다.
쿠웅! 쿠웅!
녀석이 걸을 때마다 지축이 거세게 떨려왔다. 수십, 수백의 거인이 달릴 때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도 머리를 보기 힘들 정도로 거대했다.
놈이 걸으며 생긴 풍압으로 인해 구름이 살짝 밀려나고 나서야, 구름에 가려져 있던 외눈이 보였다.
“이-리- 와아아-”
공기를 진동시키는 중저음이 종소리처럼 주변에 퍼져나갔다.
크게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니고, 그저 목소리를 내뱉었을 뿐인데 일순간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는 거인도 마찬가지였는지 달려오다 넘어져 살려달라 외치던 거인이 무릎을 펴지 못해 바닥을 나뒹굴었고.
“제에에바아아알! 살려어-”
콰직.
거인을 엄지와 검지만으로 집은 놈은 그 거체를 한입에 집어삼켰다.
‘사이클롭스.’
이성을 잃은 채로 싸움을 포기하고 도망치던 거인들과는 다른, 탑에 존재하는 진정한 거인(巨人)족 중 하나, 사이클롭스.
탑의 고층에서도 마주하기 힘든 몬스터가 겨우 35층에 존재할 줄이야.
그렇다. 시련에서 설명하던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위협은 바로 저 괴물을 향한 것이었다.
거인을 피해 나무 기둥 뒤에 숨어 시간을 지체하던 플레이어들이 시련을 통과하지 못하고 죽어 나간 이유도 저놈 때문이라.
바로 그 괴물이…….
“어어어엄청- 작다아아아-”
쿠웅!
장난감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거대한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며 세운에게 손을 뻗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