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4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48화(244/675)
제248화
이번 휴식은 꽤 긴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게, 평소라면 정비가 끝나자마자 시련에 도전하던 세운이 조금만 더 있자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강한철이나 유서아와의 대련. 거기다가 이번에는 백현이나 최수창 같은 이들에게까지 부탁하여 대련을 뛰었다.
그러나 곧 한계가 찾아왔다.
‘너무 단조로워.’
세운이 지금 하고 있는 건 근력 운동 같은 게 아니다. 꾸준히 한다고 꾸준히 성장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대련 상대를 바꾼다고 하여도 늘 보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공격 패턴도 너무 익숙했다.
이래서야 합공(合功)을 위한 무공의 묘리를 깨닫는 것은 무리였다.
“무기는 다 만드신 겁니까?”
“허허, 그렇다네. 다행히 양이 충분해서 보급을 끝낼 수 있었다.”
“방어구는…….”
고창석이 운석으로 만들어진 무기들을 자랑했다.
네 번째 쉼터에서 얻은 운석들이 저마다 다른 무기로 재탄생되어 있었다.
이로써 세운과 강한철, 유서아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아우터에 저항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핵심 멤버가 아닌 이들은 아직 전투력이 부족하여 아우터와 대적할 일은 없어야 할 테지만.
이어서 남은 운석의 사용처를 얘기하려던 중, 백현이 끼어들어 말을 이어갔다.
“그건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여러모로 실험해 본 결과, 아우터는 운석에 닿더라도 약간의 틈만 있으면 물처럼 흘러 들어갈 수 있습니다.”
“효율이 안 좋다는 거군요.”
“네. 만들 수는 있지만, 봉인구처럼 완전히 밀폐시켜 놓지 않는 이상 방어구로서의 의미가 퇴색됩니다.”
“그렇군요.”
확실히, 그의 말이 맞다.
운석으로 만든 방어구로 아우터의 공격을 막아봤자 미량이라도 피부에 닿아 잠식돼 버리면 게임 아웃이니까.
큰 공격을 한두 번 막아내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양의 운석이 필요하다.
“그럼 남은 운석은 어쩔 생각이십니까?”
“그건 우리가 찜했어!”
“이제 우리 차례다아!”
세운의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타난 쌍둥이 자매.
운석으로 무엇을 만들려는 건지 물어보았지만, 제대로 된 답변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기대하라구!”
“엄청난 걸 만들어 둘 테니까!”
“재밌겠다!”
“가자!”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운석을 매만질 뿐이었다.
* * *
얼마 후, 더 이상 대련을 통해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한 세운이 곧바로 다음 시련으로의 도전을 말했다.
휴식이 끝남을 아쉬워할 줄 알았지만, 디아블로 길드원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제안을 받아주었다.
쌍둥이 자매 역시 제작은 나중에 틈틈이 해도 된다며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서 주었다.
‘거기라면 무공을 익히기도 괜찮겠지.’
정비 기간이 충분히 길었기에 다들 금방 시련에 도전할 준비를 끝냈다. 그사이 고창석이 새로 만들어진 장비를 통해 전투력도 한층 더 강해져 있었다.
“아, 난 당연히 하늘을 나는 섬인 줄 알았는데.”
“저두요. 네 번째 이야기는 아마 말들의 나라였죠? 말들의 나라가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했는데, 아쉽습니다.”
“길드장이 저렇게까지 뜸 들이는 거 보니까 괜히 불안하네.”
“다들 지금까지 잘해 왔지 않습니까? 여태까지의 추세로 보면 어차피 다음 쉼터 전에 마주칠 것 같으니, 이번에도 힘 내봅시다!”
“그럽시다!”
사람들의 반응에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다음 시련부터는 필드의 규모가 놀랍도록 크게 확대되는 만큼 참여 인원 역시 늘어난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지금까지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지금까지의 시련에서 플레이어들을 전부 동료로 취급해 주었지만, 앞으로의 시련에서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먼저 가겠습니다.”
세운이 선두로 시련에 나섰다.
시스템 메시지가 세운의 도전을 수락하고 시야가 어둡게 변했다.
* * *
곧이어 들려오는 출렁이는 파도 소리와 소금기 섞인 바닷바람이 피부에 와닿았다.
눈을 뜨지 않아도 이곳이 어디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해변 쪽으로 소환된 건가.’
눈을 뜨니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이 보였다.
그렇다. 이번 36층의 시련은 바로 바다. 아니, 자세하게 말하자면 섬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제주도만 한 이 섬 전체가 시련의 범위였다.
필드를 인식하자마자 시련의 정보가 눈앞에 떠 올랐다.
– 36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자금확보
– 바다를 떠돌던 당신은 모든 것을 잃은 채로 해적 섬에 도착하였습니다.
– 새로운 항해를 위해 천 개 이상의 금화를 모으십시오.
금화란 이 해적 섬에서의 화폐라고 볼 수 있었다.
섬의 해적들 모두 금화를 이용하여 거래하니, 어떤 방법으로든 금화를 습득하면 된다.
아이템을 팔아도 되고, 도박을 해도 되고, 주머니를 털어도 된다. 다만, 문제는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이, 거기. 너 뭐야?”
이곳은 해적 섬. 말 그대로 섬의 모두가 해적이기에 심성이 곱지 않다.
어떤 방법으로든 금화를 습득하면 된다고 했던 만큼, 이곳의 해적 역시 플레이어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길을 걷다가 시비가 걸렸다고 칼침을 맞을 수도 있고, 사기를 치다 걸리면 손목이나 머리가 날아갈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지금 세운의 눈앞에 다가온 해적들처럼 말이다.
“딱 보니 여기 처음 온 것 같은데. 입장료는 내야지?”
“남의 땅에 왔으면 입장료를 내는 건 상식이잖아. 크크.”
“그 검, 괜찮아 보이는데? 금화는 없어 보이고, 그 검만 내면 입장료는 퉁쳐 줄게.”
“물론 정착비는 따로 내야 하는 건 알지?”
그리 강해 보이는 해적들은 아니다. 그저 수만 믿고 껄떡거리는 잡졸. 세운이 혼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피라미처럼 단체로 몰려온 모양이다.
“어이, 말 안 들려? 사람이 말을 했으면 대답을 해야지.”
“아직 여기가 어떤 곳인지 모르나 본데, 여기는 저 멀리 제국 같은 곳처럼 경비병 따위는 없-”
서걱.
무공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깔끔하게 내지른 횡 베기에 해적 하나의 목이 잘려 나갔다.
바닥으로 떨어진 머리는 아직까지도 자신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데굴거렸고, 몸이 뒤따라 머리가 떨어진 방향을 향해 쓰러졌다.
“미, 미친! 이 새끼가!”
“죽여!”
동료의 죽음을 확인한 해적들이 검을 빼 들고 세운에게 달려왔다.
커틀러스라고 하는 짧은 도검인데, 해적들이 선호하는 무기였다.
다만,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았는지, 중간중간 날도 나가 있고 손잡이 부근에는 녹까지 슬어 있다.
그런 무기를 쥔 이들이 세운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날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석, 서걱-
해적들은 세 걸음도 떼기 전에 우수수 쓰러져갔다.
무공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거주지에서의 훈련으로 다양한 무공을 배운 세운의 움직임은 전보다 더욱 노련해져 있었다.
“히, 히익!”
동료가 전부 쓰러지고, 마지막 남은 해적이 겁에 질린 채 검을 떨어트리고 도망쳤다.
하지만, 녀석은 도망칠 수 있었다. 애초에 세운이 녀석을 이용하려고 일부러 살려둔 것이기 때문이다.
“사, 살려주십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세운이 뒷목을 붙잡자,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빌었다.
눈까지 질끈 감고 몸을 덜덜 떠는 게, 방금까지의 태도와 심각하게 대비되었다.
“안내해.”
“어디로 안내하면 되겠습니까! 어디로든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그래도 이곳 지리는 빠삭합니다!”
“해적왕이 있는 곳으로.”
“해, 해적왕 말씀이십니까?”
해적왕.
무법지대인 해적 섬에 왕이 존재할 리 없지만, 그럼에도 이 섬에서 해적왕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무력.
그 강력함이 섬의 해적 전체에게 인정받아 친히 해적왕이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단지 해적왕뿐만 아니라, 해적왕 주위에는 그에 못지않게 강력한 해적들이 우글거린다.
‘그놈들이라면 무공을 수련하기 알맞겠지.’
세운은 그들을 이용하여 거주지에서 끝내지 못한 무공의 수련을 마치고 합공(合功)을 이뤄낼 생각이다.
“아, 안 됩니다! 거긴 저 같은 잡놈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외부인을 데려갔다가는 분명 끔찍하게…….”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첫 번째 능력, ‘공포’가 깨어납니다.
감히 눈도 못 쳐다보고 싹싹 빌고 있지만, 저렇게 핑계를 대는 이유는 한 가지다. 바로, 세운보다 저 해적왕이라는 존재가 더 무섭다는 것.
그렇다면 세운에 대한 공포를 더욱 크게 새겨주면 그만이다.
“히, 히이익!”
반응은 곧바로 찾아왔다.
성흔이 빛을 발하자 녀석의 머릿속에 새겨진 세운에 대한 공포가 극도로 증폭되었다.
아마 지금쯤 녀석의 눈에는 세운이 입을 크게 벌린 맹수 정도로 보이지 않을까?
“아, 아닙니다! 안내하겠습니다! 그러니 제, 제발…….”
공포에 먹힌 녀석이 몸을 벌벌 떨더니 눈을 스스로 목을 부여잡은 채로 침을 질질 흘렸다.
이러다가는 죽지 않을까 싶을 때쯤에야 성흔의 힘을 멈추었다.
이걸로 상황은 끝났다.
“안내해.”
“아, 알겠습니다!”
* * *
보통 한 구역을 다스리는 왕이라 불리는 존재는 보통 그곳의 중앙에 있게 마련이다.
그곳이 해당 구역의 사람들을 다스리기 가장 적합하고, 외부의 공격으로부터도 가장 안전하니까.
하지만, 해적왕은 달랐다.
“이곳입니다! 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50개 이상의 해적단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해적왕을 따르는 해적단만 해도 200개가 넘어가니…….”
해적 섬의 끝.
드넓게 펼쳐진 선착장 전체에 해적왕의 동맹이 진을 치고 있었다.
수많은 해적이 그 앞에서 짐을 나르거나 술을 마시는 등, 자유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세운이 공격을 펼치는 순간, 저곳의 모두가 경비견으로 바뀌어 침입자를 물어뜯을 것이다.
‘해적왕은 저곳에 있겠네.’
수많은 해적선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배가 하나 있었다.
크기가 가장 큰 것은 물론이고, 해적선이라기보다는 군함(軍艦)이라는 말이 더 어울려 보이는 전투선이었다.
그 꼭대기에는 갈고리처럼 생긴 닻에 꿰뚫린 해골 모양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해골만 아니라면 해적보다는 해군이 더 어울려 보이는 모습.
“그러니 여기부터는 정말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 아니! 주인님께서 질 것 같아 그러는 건 아니지만 정말 위험합니다!”
세운에 대한 공포 때문일까? 세운을 부르는 녀석의 명칭이 어느새 ‘주인님’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더 볼 녀석도 아니기에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혹시 뭔가 계획이라도 있으십니까? 제가 최선을 다하여 보좌하겠습니다!”
“계획이라, 있지.”
세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녀석이 당황하며 다급하게 말리려 해 보았지만, 이미 세운은 선착장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녀석은 이도 저도 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서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를 발견한 해적들이 인상을 거하게 찌푸리며 각자 무기를 꺼내 들었다.
“엉? 넌 뭔데 그렇게 당당하게 기어들어 오는 거냐?”
“이게 미쳤나.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너 어디 해적단이야? 못 보던 얼굴인데, 교육 안 받았어?”
애초에 세운이 이곳에 찾아온 목적은 다양한 적들과의 전투를 통해 무공의 묘리를 깨우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전투를 피할 리가 없었다.
다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조무래기들은 수련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저런 놈들에게 검을 휘둘러봤자, 나무를 향해 검을 휘두르며 수련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니.
– 흑탑의 묘리에 따라 ‘인페르노’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녹탑의 묘리에 따라 ‘인페르노’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 적탑의 묘리에 따라 ‘인페르노’의 범위가 확산됩니다.
콰르르륵!
“크아아악! 뜨거, 뜨거워!”
“저런 미친!”
“공격! 공격이다! 마법사다!”
저런 놈들보다는, 얼른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춘 이를 불러내야만 한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살랑이던 선착장에 뜨거운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