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4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52화(248/675)
제252화
“우와…… 이게 다 뭐야?”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사이에 혈랑 오빠는 여기 왕을 꺾은 거야?”
해적들이 발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디아블로 길드원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쌍둥이 자매.
마침 잘됐다 싶어 둘에게 바로 함선에 관해 얘기했다.
“함선?”
“그것도 여기 해적들이 타는 것보다 좋은 걸루?”
“……역시 어렵나?”
“어렵긴! 환영이지!”
“우와, 이제 배도 만들어 보네! 저기 제일 큰 배를 용골로 쓰자!”
“용골? 언니, 그런 것도 알아?”
“너 내 방에 있는 미니어처들 알잖아?”
“아, 맞다. 언니 그쪽 마니아였지?”
다행히 둘 다 함선 제작에 관심을 보였다.
혹시 몰라 해적 중에서 선박 건조에 지식이 있는 이들을 추려 붙여주었다.
다운이 그들의 얘기를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필요한 재료 등을 나열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은 둘에게 맡겨두면 될 것 같았다.
“……늦었군.”
“강한철, 너도 좀 도와. 무거운 게 좀 많거든.”
“알겠다.”
이미 전투가 한바탕 끝났음을 확인한 강한철이 아쉬워하긴 했지만, 곧 세운의 지시에 따라 재료를 날랐다.
강한철은 쇠로 이루어진 대포나 자재 등, 열 명은 달라붙어야 할 것들을 가뿐히 들어 올린다.
이어서 다른 이들도 도착해 선박 제조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해적왕님! 이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해적 몇 명이 낑낑거리며 웬 조각상을 들고 왔다.
금으로 만들어진 독수리 조각상이었는데, 한쪽 날개가 절반 가까이 부서져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그 모습이 썩 자연스러웠다.
부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원래부터 날개가 망가져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습.
그 때문에 세운은 혹시나 해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 부서진 믿음 ]분류 : 선수상
등급 : A
설명 : 제만 제국의 제3 사령함에 달려 있던 금빛의 선수상. 제국의 상징인 독수리의 모습은 발스타크의 배반과 함께 날개가 부러졌다.
능력 : 1. 금조의 축복 – 함선의 속도가 20% 상승한다.
2. 부러진 날개 – 함선의 선회속도가 50% 상승한다.
3. 제국의 낙인 – 받는 공격의 데미지가 20% 증가하는 대신, 공격한 상대에게 가하는 데미지가 40% 상승한다.
‘해적왕의 함선에서 떼온 건가?’
A급 선수상.
오로지 배에만 장착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써, 사용처가 드문 만큼 세운도 처음 보는 유형의 아이템이었다.
받는 데미지가 상승한다는 ‘제국의 낙인’ 효과가 거슬리긴 했지만, A급 아이템인 만큼 능력이 꽤나 훌륭했다.
‘어르신이나 쌍둥이 자매도 이런 물건을 만들긴 힘들겠지.’
당장 물리적으로 힘이 드러나는 무기나 방어구와 달리 액세서리나 지금 보는 선수상 같은 아이템은 만드는 과정이 매우 까다롭다.
특정한 힘을 가진 소재를 사용하거나 특정한 기운이나 사상을 머금는 등, 특정한 조건 속에서만 탄생하니까.
“이건 배에 달 거다. 보관해 둬.”
“넵, 알겠습니다!”
디아블로 길드의 합세 덕분일까? 벌써 선착장에 존재하던 배의 절반 이상이 분해되어 있었다.
용골만 남은 해적왕의 함선을 토대로 새로운 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사이, 뭔가 도울 게 없나 둘러보던 세운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인챈트나 해 볼까?’
인챈트는 부여 마법의 일종으로 생명체에게 강화 마법을 거는 버프와는 달리 물체에다 여러 마법을 거는 행위였다.
파이어볼 같이 공격 마법을 걸어 일회성, 또는 다회성으로 마나 소모나 영창을 외울 필요도 없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고, 강화 마법을 걸어 물체의 기능 자체를 강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세운이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회귀 전의 경험 때문이었다.
‘인챈트라면 제법 자주 사용했던 거니까.’
모험가였던 세운은 자체적인 전투 능력이 부족했던 만큼 다양한 인챈트 기능을 사용했다.
저서클이긴 하지만 자체적으로 인챈트를 걸기도 했고, 마법사들에게 공적치를 지불하고 인챈트를 받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운 자신이 6서클 마법사. 어지간한 인챈트 정도는 혼자서도 척척 할 수 있었다.
‘마나석도 여유 있고.’
어차피 여기서 가만히 쉬고 있는 건 의미가 없었다.
혼자 하는 수련이라면 길드 거주지에서 질리도록 해 놨기에, 당장 여기서 더 수련을 할 필요는 없었다.
“어르신, 전에 드렸던 정과 망치 좀 빌릴 수 있겠습니까?”
“허허, 이건 원래 자네 것 아닌가. 마음대로 쓰게. 그런데 뭘 하려고 하는 건가?”
“함선에 마법진 좀 새겨 보려고 합니다.”
“오호, 그거 관심 생기는구먼. 옆에서 좀 지켜봐도 되겠나?”
“물론이죠.”
마몬에게 받았던 선물.
피그말리온의 정과 망치를 집어 든 세운이 눈빛을 반짝거리며 이제 막 건조를 시작한 함선을 향해 다가갔다.
* * *
디아블로 길드의 함선이 한창 건조되고 있던 와중, 해적이 아닌 무리가 선착장을 향해 몰려들었다.
“여기가 그곳이야?”
“소문이 사실인가 본데? 저기 봐, 해적들이 빌빌 기고 있잖아?”
각양각색의 장비를 가진 이들. 심지어 그들 중에는 인간이 아닌 종족까지 끼어 있었다.
푸른 피부를 가지고 있거나 입 밖으로 송곳니가 툭 튀어나와 날카로운 외양을 가진 이 등등.
그 서로 다른 모습이 그들의 정체를 증명해 주고 있었다.
“꼴 좋다. 저것들 때문에 여기서 몇 달 동안이나 갇혀 있었다고!”
“근데 정말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해적왕을 플레이어가 무찔렀을 수가…….”
“바보야,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길드원을 찾았을 리가 없잖아?”
“그건 그래. 지금 보기로도, 확실히 이곳의 해적들이 할 만한 행적은 아니야.”
플레이어.
그들의 정체는 바로 36층의 시련을 끝내지 못하고 이곳에 정체되어 버린 플레이어들이었다.
해적들에게 당해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고 버티고 버티던 그들은 새로운 해적왕이 ‘디아블로 길드’를 소집한다는 말을 듣고 혹시나 해 이곳에 모여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아니면 어떡해?”
“아니라도 별수 있냐. 이대로 있어봤자 굶어 죽기밖에 더 하겠냐고.”
“그래도, 플레이어라고 해도 우리를 받아줄지는…….”
“그럼 넌 여기서 굶어 죽든가. 우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가볼 테니까.”
“안 되면 무릎이라도 꿇어야지. 아니, 머리라도 박아야지. 난 여기서 죽기 싫다고!”
36층의 시련, 해적 섬.
이곳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쉼터가 아니다.
공적치를 이용해 무언가를 사는 것도 불가능하고, 해적 섬의 특성상 자급자족 역시 불가능한 수준이다.
해적들에게는 자비도 없어 구걸조차 불가능하다.
실제로 구걸을 해 본 이가 있었지만, 해적들에게 끌려가 구타를 당하고 쫓겨났다.
그를 증명하는 것처럼, 이곳에 모여든 플레이어들 모두 얼굴이 홀쭉하게 말라 있었다.
“이 겁쟁이들! 그러니까 여기에 갇혀 있지! 나 먼저 간다!”
“해리, 같이 가! 쳇, 지도 똑같으면서…….”
해리라 불린 남자가 앞으로 나갔다.
말은 당당하게 해도 침을 꿀꺽 삼키며 나아가는 게, 꽤나 많이 긴장한 모습이다.
나름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지만, 선착장에는 해적들이 가득했기에 얼마 안 가 벽에 막히고 말았다.
“엉? 이건 뭐야? 일 안 하냐?”
“잠깐. 이놈 익숙한데? 엉, 제크! 이놈 저번에 네 쪽에서 얻어맞고 쫓겨난 놈 아니냐?”
“맞네! 어이, 왜 또 왔어? 또 얻어맞고 싶어서 왔냐?”
“하긴, 제크 네 주먹이 안마받기 딱 좋은 정도긴 하지. 크크.”
“뭐? 안마 주먹에 한 번 맞아 볼래?”
처음 36층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해리는 무척이나 당당했다. 누가 뭐래도 36층까지 등반한 플레이어였고, 해적들 따위가 자신의 앞을 막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해적들 하나하나는 약했지만, 그들은 전부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설사 어떻게든 해적단 하나를 처리한다고 하여도, 그다음에는 새로운 해적단이 적으로 나타날 뿐이었다.
게다가 해적들이 사용하는 총은 방어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그렇게 수차례의 전투 끝에, 그는 결국 해적들에게 굴복하고 말았다. 그것은 해리의 뒤에 존재하는 플레이어들 전부 마찬가지였다.
“해, 해적왕을 만나러 왔다!”
“이놈이 미쳤나? 너 따위가 해적왕님을 만나러 왔다고?”
“안 그래도 일만 하느라 손이 근질근질했는데, 오랜만에 몸이나 좀 풀자고.”
“그거 좋지!”
해적들이 짐을 놓더니 손목을 풀며 해리에게 다가왔다.
평소라면 곧바로 도망갔겠지만, 해리는 침을 꿀꺽 삼키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무기를 꺼내 들었다.
어차피 여기서 도망가면 살길은 없다.
굶어 죽든, 맞아 죽든.
둘뿐이다.
그렇게 해적들과의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
“무슨 일이지?”
“오, 오셨습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긴 저희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해적들의 뒤쪽에서 거구의 사내가 나타났다.
더워서인지 간단한 방어구조차 걸치고 있지 않았는데, 전신을 가득 채운 근육들은 그 어떤 방어구보다도 단단해 보였다.
심지어 힘은 그 이상이었다. 배의 돛대 하나를 혼자서 나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 사내를 확인한 해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호, 혹시 플레이어이십니까?”
해적 섬에서 몇 달 동안 굴러다녔기에 알 수 있었다. 저 사내가 해적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다면 남은 경우는 둘.
저 사내가 해적왕이거나, 디아블로라는 곳의 길드원이거나.
‘부, 분명 저자가 해적왕일 거야!’
굳이 맞붙지 않아도 사내의 힘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떤 플레이어가 해적왕을 무찌를 수 있을까 싶었지만, 저 사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다.”
“역시! 당신이 해적왕의 자리를 차지하신 분이로군요! 저 역시 같은 플레이어로서 영광입니다!”
“……너도 플레이어인가?”
“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도 길드원으로 받아주실 수 있으십니까?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해리가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도 사내가 고민하는 티를 내자, 맨바닥에 머리까지 박으며 부탁했다.
이에 해적들도 감히 끼어들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해적들은 플레이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지만, 사내의 눈치를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거절이든 승낙이든, 이 자리에서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리라 생각했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해리의 생각과 달랐다.
“따라와라.”
“……네?”
“해적왕은 내가 아니다. 우리 길드장이지.”
“길드장이 아니시라구요……?”
“안 따라올 건가?”
“가, 가겠습니다!”
“저도 부탁드립니다!”
“저, 저도!”
해리가 승낙받자 뒤에 숨어서 눈치를 보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해리는 콩고물이나 주워 먹으려는 이들이 영 마음에 안 들었지만, 거구의 사내 앞에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사내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돛대를 짊어지고 앞장섰다.
플레이어들이 그를 도우려 하였지만, 괜히 짐만 될 뿐이었다.
‘디아블로 길드라고 했나? 대체 무슨…….’
사내를 따라가던 해리는 주변의 풍경에 입을 닫지 못했다.
36층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나름 실력에 자신이 있었는데, 주변을 보니 그게 아닌 것이다.
대충 보아도 자신보다 두 배 이상. 심지어는 제작계로 보이는 플레이어조차 자신보다 강력해 보였다.
해적들 역시 해적왕뿐만 아니라 디아블로 길드에게도 깍듯이 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 후, 해적 섬에서도 본 적 없는 거대한 함선의 뼈대 앞에서, 사내가 멈춰 섰다.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왔다.”
“플레이어?”
“내가 들은 건 그것뿐이다. 판단은 너에게 맡기지.”
“그래.”
사내는 그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해리는 침을 꿀꺽 삼키며 배 앞에 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덩치가 크거나 근육이 많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그 위세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저 남자가 디아블로의 길드장. 해적왕을 처치하고, 해적 섬의 새로운 해적왕으로 군림한 남자라는 것을.
해리는 그것을 알아챈 즉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았다.
“뭐든 하겠습니다! 저희를 데려가 주십시오!”
“너희를 데려가면 무슨 이득이 있지?”
“이, 이득 말입니까? 그건…….”
해리가 머리를 굴려보았다.
저토록 강한 사내에게 자신이 무슨 이득을 줄 수 있을까?
여기까지 다다르며 자신이 전투력 상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출항하시려는 것 아니십니까? 나름대로 해적 섬에서 거주하며 온갖 잡일을 해 보았습니다!”
“저, 저도 잡일이라면 자신 있습니다!”
“전 다른 건 몰라도 힘 하나는 자신 있습니다! 뭐든 맡겨만 주시면…….”
해리를 선두로 플레이어들이 저마다 자신의 장점을 어필하였다.
장점이라고 해 봐야 대부분 쓸모없는 것들이었지만, 어째서일까?
“좋아. 태워주지.”
“가, 감사합니다!”
“잡일은 부가적인 요소고. 그것보다, 다들…….”
“뭐든 할 수 있습니다! 맡겨만 주시면 뭐든지!”
“노는 저을 수 있겠지?”
새로운 해적왕. 세운이 오히려 좋다는 듯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