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5)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5화(25/675)
제 25화
평소에 그토록 캠프에 무관심하던 세운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누가 먼저 부탁하지 않아도, 직접 나서서 캠프의 일을 도왔다.
꽤 오래 자리를 비웠다지만, 박정필의 훌륭한 보고 덕분에 세운은 캠프의 상황을 단숨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세운이 돌아다니기 시작하자, 캠프의 문제들이 빠르게 해결되었다.
몬스터의 사체가 정리되고, 환자들의 신음이 멈추며 캠프의 분위기가 많이 안정되었다.
그 직후.
퍽, 빠악!
“큭!”
“실력이 많이 늘었는데?”
“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군. 안 그래도 괴물 같았는데, 더 심한 괴물이 됐다.”
세운은 부러진 나무 기둥 앞에서, 강한철과 대련을 펼치고 있었다.
세운의 지도 덕분일까? 아니면 세운이 없는 사이 성좌 ‘악어를 탄 노인’과 계약해 수많은 몬스터를 상대하며 경험을 쌓은 덕분일까?
강한철의 전투 능력은 물론, 전투 스타일까지 크게 바뀌어 있었다.
전처럼 단순히 힘으로 상대를 덮치는 게 아니라, 주변의 지형과 자신의 기술을 최대한 이용한다.
그 기술은 대체로.
“태극권, 생각보다 훌륭한데? 따로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말이야.”
“몸으로 배우는 거라면 자신 있다.”
이전에 세운이 강한철을 상대할 때 보여주었던 태극권이었다.
아홉 번째 웨이브 때도 주먹질보다는 적을 잡거나 던지는 식의 공격법이 많았었지.
제대로 된 태극권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체형에 맞게 개조를 거친 듯한 모습이었다.
“잘하긴 했는데, 이래서야 네 장점을 못 살리는 꼴이야.”
“내 장점?”
“그래, 네 장점.”
타앗!
지금까지 세운과 강한철의 대련은 주로 강한철의 공격으로 이어져 왔다.
세운은 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공격을 받아낼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세운이 먼저 땅을 박차고 강한철을 향해 내달렸다.
이에 강한철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설마 세운이 먼저 달려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다.
그러나 점차 쌓이기 시작한 실전 경험 덕분인지 강한철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세운에게 반응했다.
방어? 그따위는 강한철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오로지, 공격. 세운의 공격에, 공격으로 맞선다.
이게 바로 강한철의 스타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다급하게 세운의 움직임을 살펴보았지만, 특이한 건 보이지 않았다.
세운 역시 허리를 비틀며 주먹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만, 강한철에게는 보이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진주언가권(晋州彦家拳) ]– 오대세가의 일원으로서 맨몸을 다루는 데 특화된 권법이나 특유의 강시술로 유명한 진주언가의 대표 무공.
바로, 마몬의 보물창고.
진주언가의 고유 무공이 세운의 주먹에 스며들며, 내공이 시퍼렇게 물들었다. 칼날보다는 죽어가는 사체에 더 가까워 보이는 색이었다.
강한철 역시 공격 직전에 그 변화를 알아차렸지만,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곧, 두 주먹이 허공에서 충돌하였고.
콰아앙!!
그 충격이 얼마나 강했던지, 주위로 거대한 풍압이 퍼져 나갔다.
옆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유서아가 기겁을 하며 얼굴을 가렸다.
강한철이 지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버텨 보았지만.
-내공을 통해 진주언가권의 제일 초식, 강시권(僵尸拳)이 강화됩니다.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떠엉!
“큭!”
결국, 세운의 주먹에 밀려나고 말았다.
단순히 팔심만이 아니라 전신의 힘을 쏟고 있었기 때문인지, 강한철은 몸 전체가 충격에 날아가는 경험을 겪어야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태극권이 아닌 힘과 힘의 대결에서는 세운이 압도적으로 불리했는데 이제는 힘 대 힘의 대결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뭐, 당연한 건가.’
솔직히 아직도 단순히 근력 수치만 보았을 때는 강한철에게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세운에게는 반갑자 가량의 내공이 있다. 거기에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까지 강해지니, 이런 파괴력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강권(强拳). 네 힘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이다.”
강한철의 신체 능력은 우월하다. 최고의 근력을 자랑한다는 오우거의 후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한 몬스터가 사방에 득실대는 탑에서 태극권 같은 유술은 큰 도움이 될 테지만, 그보다는 진주언가권 같은 강권이 강한철에게 더욱 잘 어울렸다.
그 때문에 세운이 선택한 무공이 바로 이것이다.
진주언가권.
강시처럼 단단한 몸으로, 강시처럼 겁 없이 적을 상대한다고 알려진 무공.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상대하는 이는 강시를 상대하는 듯한 공포로 사로잡혀 버리게 된다지.
이것 말고도 강한철에게 어울리는 권법은 얼마든지 있지만.
‘무공서를 단번에 흡수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니까.’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동시에 여러 기술을 단번에 배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방금 그 주먹은…….”
“내공을 사용한 거야. 형(形)이 완성되면, 너한테도 심법을 알려줄게.”
“……알겠다.”
이런 기술을 어떻게 알게 되었고, 단번에 자신의 힘을 뛰어넘도록 강해진 방법은 무엇인지 궁금한 게 많을 텐데도, 강한철은 그 어떤 질문도 해 오지 않았다.
그저 묵묵하게 세운의 주먹을 받으며 눈과 몸에 익힐 뿐이다.
지금 세운으로서 펼칠 수 있는 진주언가권의 초식을 모두 보여준 후.
“이제 혼자 연습해라. 또 맞고 싶으면, 아니, 또 배우고 싶으면 다시 찾아오고.”
“알겠다.”
대련 시간은 세운으로서도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무공의 지식이야 사용하는 순간 머릿속에 스며든다지만, 진주언가권 같은 강권으로 실전 경험을 쌓는 건 쉽지 않으니까.
가르쳐 준다는 명목이지만, 덕분에 세운 역시 진주언가권을 숙련할 수 있었다.
게다가, 현재까지 쌓은 능력치를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일종의 전투력 측정기랄까?
“아, 그래. 혼자 연습하기는 아무래도 힘들겠지?”
“상관없다.”
“아냐, 나무만 치는 거랑 사람을 상대하는 건 다르지.”
“다음으로 저 여자와 대련하려는 거 아니었나? 캠프에 내 상대를 할 만한 사람은 없을 텐데.”
“아냐, 한 명 있어.”
세운이 씨익 미소 지었다.
단 한 명.
그라면, 강한철의 공격을 받는 것은 못 하겠지만 피하는 건 충분히 가능할 테니까.
“정필아?”
“넵! 형님!”
이름을 부르자마자 어디선가 다급하게 뛰어오는 박정필.
다행히도 방금 강한철과 나눈 대사는 못 들었나 보다. 세운에게 뭔가 기대라도 하는 것인지, 눈을 초롱거리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지금 한가하지?”
“넵! 언제든지 형님의 부름에 응할 수 있도록, 시간 쫙 비워 놨습니다!”
“그럼 한철이랑 대련 좀 하고 있어라.”
“……넵?”
순간적으로 몸이 경직되며, 강한철의 모습을 스캔하는 녀석.
강한철이 세운에게 ‘정말 괜찮겠나? 힘 조절은 자신 없다만.’이라며 말을 걸자, 녀석의 얼굴은 하얗게 물들어 갔다.
“하, 하핫. 형님, 저 사실 캠프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맘대로 써.”
“그럼, 사양하지 않겠다.”
턱.
“으익?”
강한철의 두꺼운 손바닥이 박정필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녀석이 필사적으로 세운과 강한철을 설득해 보려 했지만, 이미 둘은 박정필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있었다.
“잘 부탁한다. 박…… 박정태.”
“이름도 기억 못 하는 거냐! 안 돼, 형니이이임!”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낄낄거리며 바닥을 구르다가 자신의 배꼽이 사라진 것을 발견합니다.
-성좌, ‘악어를 탄 노인’이 당신을 바라보고는 과연 두 마신에게 선택받은 인간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 * *
“하압!”
챙!
강한철을 상대한 후, 세운은 곧바로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서아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장점을 알고 있는 듯이, 회귀 전의 모습처럼 쌍검을 휘두르고 있는 유서아.
강한철을 상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소프트웨어.
내공은 존재하지 않지만, 움직임의 형(形)만큼은 지적할 게 거의 없을 정도였다.
다만.
“기술은 좋은데, 힘이 너무 부족해.”
“힘이요?”
“응. 약한 몬스터 여럿을 상대할 때라면 몰라도, 강한 몬스터가 하나라도 나오면 속도와 기술만으로는 타격을 입히기 힘들 거야.”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찬성한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미 빨간 가죽의 몬스터들만 해도 충분히 힘들었는데…….”
“너도 알고 있잖아. 다음 웨이브의 몬스터는 지금까지보다 더욱 강할 거라는걸.”
“…….”
유서아가 이를 악물었다.
지금 그녀에게 부족한 점은 힘과 체력.
실제로, 세운이 캠프에 막 도착했을 때도 유서아는 체력이 다 떨어져 숨을 허덕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강한철보다 미묘하게 공적치를 앞서고 있는 것도 저러한 전투 스타일 때문이겠지.
하지만, 열 번째 웨이브와는 어울리지 않은 전투 스타일이었다.
수상함을 들키지 않고 다음 웨이브를 설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세운이, 생각을 마치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캠프를 나갔다 올 때마다 내가 뭘 했는지 알아?”
“드디어 말해 주시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기 싫은 티를 내셨으면서.”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고 왔어.”
“보스 몬스터?”
“응. 웨이브 때 등장하는 일반적인 몬스터가 아닌, 그보다 더욱 강한 몬스터.”
“그럼 세운 씨가 이토록 급격하게 강해지신 이유도…….”
“응. 그것 때문이야.”
회귀에 관한 사실을 말할 수는 없으니, 세운이 말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유서아가 납득하기에는 충분했다. 지금 세운이 들고 있는 뒤랑달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생각해 봤는데, 언제까지고 이런 식으로 같은 방식의 웨이브가 진행될 것 같지는 않거든.”
“그럼, 다음 웨이브 때 세운 씨가 상대했다는 ‘보스 몬스터’ 같은 게 나올 수도 있다는 건가요?”
“예상이지만, 가능성은 높게 보고 있어.”
가능성이 아닌, 사실이다.
하지만, 세운이 그녀에게 설명할 수 있는 선은 딱 여기까지였다. 이 이상으로 아는 체를 하면 오히려 수상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너도 이걸 염두에 두고 사람들을 지휘해 줬으면 좋겠어.”
“네. 아! 그리고, 예전부터 생각했는데요.”
“뭘?”
“제가 나서고는 있지만, 저희 캠프의 실질적 리더는 세운 씨잖아요. 그러니까…….”
“아냐, 그 자리는 네가 계속해 줘.”
“하지만…….”
“큰 흐름은 책임지겠지만, 나는 앞으로도 캠프 바깥에 나가 있을 일이 많을 거야. 리더가 계속 바깥에 있으면, 캠프의 분위기가 어떨 것 같아?”
“확실히 그렇겠네요.”
“응. 그러니까, 계속 부탁해.”
“……네.”
이걸로 내가 할 말은 끝났다.
그녀도 세운의 말에 느낀 바가 있는 것인지 눈빛이 한층 더 굳건해졌다.
이에 세운 역시 든든함을 느끼며 그녀와의 대련을 계속 이어갔다.
이미 기술은 잘 잡혀 있었기에, 강한철처럼 무공을 알려주는 것보다는 부족한 점이나 강점을 알려주는 위주로 말이다.
그 이후부터는, 그녀가 혼자서 생각해야 하는 영역이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유서아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의 훈련 방식이 달라지고, 새로운 진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쌍둥이가 만들던 목책 역시 일반적인 웨이브만이 아닌 ‘보스 몬스터’를 대비한 형태가 만들어졌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웨이브가 가깝게 다가올수록 캠프의 분위기가 한층 깊어져 갔다.
[ 튜토리얼 첫 번째 장 – 적응 ]-열 번째 몬스터 웨이브까지 남은 시간 5분.
“걱정 마세요! 이번에도, 저희는 할 수 있어요!”
“이번에는 우리 형님도 와 있으니까!”
열 번째 웨이브 직전. 세운 역시 눈빛을 다잡으며 다가올 웨이브에 대비하여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던 중.
“자네, 여기 있었구만!”
누군가의 다급한 숨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