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5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58화(254/675)
제258화
38층의 시련에 복귀 기능이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디아블로 길드의 시련 공략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오, 저기 좀 쉬워 보이는데? 형님, 저기는 제가 가겠습니다!”
“그러든지.”
“오예! 어차피 복귀도 된다니까 여유롭게 쉬다 와야지!”
먼저, 박정필이 고른 곳은 황금 모래 해변.
반짝이는 모래 해변이 넓게 깔린, 휴양지를 방불케 하는 섬이었다.
녀석은 아무래도 외관만 보고 섬을 결정한 모양이었지만…….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힘겹게 입을 막으며 웃음을 참아냅니다.
세운은 느낄 수 있었다.
해변에서 꿈틀거리는 모래의 정체가 바람에 의한 것이 아닌 몬스터에 의한 것이라는 걸.
아마 샌드맨과 같은 몬스터가 존재하는 모양인데 마법을 사용할 줄 모르는 플레이어가 쉽게 공략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뭐, 알아서 하겠지.’
그래도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저곳은 제가 가도 되겠습니까? 흥미로워 보이는 몬스터가 많아 샘플을 마련해 두고 싶습니다.”
“상관은 없습니다만, 저 섬은 식물형 몬스터가 많아 소득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겁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전에 얻은 ‘커스 라플레시아’를 실험해 본 덕분에 식물형 몬스터를 일으키는 것도 가능해졌으니 말입니다.”
–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계약자의 연구 성과에 만족합니다.
박정필과 백현이 섬에 들어간 후, 최수창이 외곽을 제외하고 깊은 수심의 바다로 이루어진 ‘푸른 공허’라는 보물섬을.
강한철이 해골의 모습을 닮아 무서운 입구만 덩그러니 자리 잡은 ‘썩은 바다’라는 보물섬을 공략하는 등.
배에서 디아블로 길드원이 하나둘 사라져갔다.
“저 섬은 엄청 넓어 보이는데?”
“혼자는 어려울 것 같은데…… 같이 갈래?”
“나도 끼워줘!”
“그것보다 허락부터 맡아야지. 해적왕님, 혹시…….”
“마음대로 해.”
“감사합니다!”
해적 섬에서 합류한 플레이어들은 섬이라기에는 과하게 커 보이는 곳에 들어갔다.
그렇게 하나둘 떠나다 보니 세운과 유서아를 포함한 몇몇만 남게 되었다.
“뭔가 찾고 있으신 거예요?”
“아니. 딱히 찾는 건 없고,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 중이야.”
말 그대로다.
회귀 전의 세운이 공략했던 보물섬은 히든 피스라고 할 만한 곳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다른 보물섬에 비해서는 난이도에 비해 보상이 월등히 좋은 곳이긴 했지만, 지금의 세운이 만족할 만한 곳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뭔가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32층의 시련이었던 땅굴 미로 때와 마찬가지다.
세운에게 주어진 정보는 섬의 외관과 이름뿐.
그나마 다행인 점은 사역마로 계약한 갈매기가 활약해 준 덕분에 섬에 대해 미리 정찰할 수 있다는 것뿐이다.
“괜찮으시면 저랑 같이 가셔도…….”
“끼룩!”
“고생했어.”
방금 막 새로운 섬 하나를 정찰하고 돌아온 갈매기를 쓰다듬어 주었다.
지형이 꽤 험난한 섬이었는데, 중앙에 제법 밀도 깊은 마나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제법 괜찮은 보상이 있을 만한 곳인 것 같았다.
다만, 난이도가 높아 보여 어지간한 플레이어라면 공략이 어려울 테고, 그렇다고 세운이 직접 갈 생각은 없으니…….
“유서아, 저긴 네가 가는 게 좋겠다.”
“……네.”
유서아를 보내기로 했다.
그녀 역시 주변에서 계속 얼쩡거리고 있는 게, 보물섬을 고르지 못한 것 같았으니까.
‘딱히 마음에 드는 곳은 안 보이는데.’
벌써 수십의 보물섬을 지나쳐왔다.
괜찮아 보이는 곳도 꽤 많았지만, 성에 차는 곳은 없었다.
회귀 전의 고유 스킬이었던 여정의 지침표가 절실하게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보물섬에 들어가야 하나 싶었을 때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괜찮다면 자신이 안내해 줄 수 있다며 고개를 낮춥니다.
레비아탄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안내?’
그러고 보니, 레비아탄은 40층에 존재하는 광휘의 바다를 관리하는 성좌였다.
층이 다르다고는 해도 크게 보자면 이 바다 전체에 레비아탄의 영향이 닿았을 거다.
“아는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보상이 무엇인지, 어떤 몬스터가 존재하는지 같은 자잘한 것은 모르지만 큰 형태 정도는 알고 있다며 자부합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다만, 오랜 시간이 지난 터라 변한 게 있을 수는 있다고 말합니다.
“괜찮습니다. 가장 어려운 곳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보상을 모르는 건 당연하다. 아무리 바다를 관리하던 성좌였다고 해도 시련의 내용을 하나하나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게다가 이번 시련은 바다에 존재하는 수백, 수천의 보물섬 중 하나를 택해 공략하는 것.
그 보물섬 전체를 알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 난도가 높으면 그만큼 보상도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런 부탁을 한 것이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사실, 최근에 에스트롯샤를 통해 알아낸 게 하나 있다고 합니다.
“에스트롯샤?”
흑해의 여왕, 데아 바칸델 에스트롯샤.
레비아탄을 배신하고 바다를 넘보다 저주를 밭고 쫓겨나, 지금은 산란장에서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로 연명하고 있는 몬스터.
세운이 레비아탄을 만나러 갔다가 마주친 몬스터이기도 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38층의 구역에 에스트롯샤의 전 수하들이 훗날을 대비하여 숨어든 장소가 있다고 합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다만, 시간이 지났다고는 하나 에스트롯샤의 수하는 층에 맞지 않은 강함을 지녔다며 말하기를 꺼립니다.
에스트롯샤의 수하.
그녀는 한때 광휘의 바다를 피와 어둠으로 물들인 희대의 폭군으로 불렸다. 그런 만큼, 그녀의 수하 역시 놀라울 정도로 강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튜토리얼의 산란장에서 보았던 조무래기들과는 다르다.
자신의 힘을 소모해 낳은 진짜 자식들.
그게 바로 에스트롯샤의 수하였다.
‘확실히…… 강하겠지.’
시간이 지난 만큼 생을 다한 놈도 있을 테고, 나이를 먹어 힘이 약해진 놈도 많을 거다.
놈들이 생식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새로 태어난 개체라 해도 기존의 힘을 내지는 못할 거다.
‘가능하다.’
도박이 아니었다.
그녀가 흑해의 여왕으로 군림할 때의 수하들이었다면 몰라도, 지금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보상을 장담할 수는 없다며 당신을 걱정합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아직 힘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개체가 남아 있을 수도 있다며 당신을…….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제일 쓸모없는 게 저 인간 걱정이라며 얼른 소개나 하라며 부리를 까딱거립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그곳에는 맛있는 게 많을 것 같다며 한껏 기대를 품습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당신을 인도합니다.
레비아탄의 메시지와 함께 바다에 옅은 파란색의 안개가 한 줄로 그어졌다.
* * *
파란 안개는 세운에게 보이는 것이었기에, 직접 조타를 잡고 함선을 이끌었다.
안개의 색이 너무 옅었기에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 짐작하는 건 무리였다.
안개를 따라 얼마간 이동했을까? 세운은 주변의 해류가 미묘하게 변한 것을 느꼈다.
‘자연적으로는 찾을 수 없었겠는데.’
해류는 함선을 자연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티 나지 않게 조금씩. 조타를 잡고 바다를 내다보고 있는데도 눈치 못 챌 정도로 미묘하게.
안개가 아니었으면 세운 역시 방향을 놓칠 뻔했다.
“아, 형님. 들어주십쇼! 저 진짜 죽을 뻔했슴다! 아니, 무슨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모래가 들썩이더니 사람처럼 일어나는 게 아닙니까?”
“시끄러워.”
“흡.”
고창석 바로 다음으로 시련에 들어갔던 박정필이 돌아오자마자 세운에게 엉겨 붙었다.
역시, 세운이 처음 예상했던 대로 ‘황금 모래 해변’은 꽝이었다.
나오는 몬스터도 까다롭고, 보상으로 얻은 ‘소라고동 나팔’도 다른 아이템보다 조금 좋은 수준에서 그쳤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내가 공략할 보물섬을 찾으러.”
“오, 뭔가 알아내신 겁니까? 역시 형님이십니다아!”
“집중해야 하니까 좀 꺼져줄래?”
“에이, 형님! 제가 옆에서 말 걸어주니까 은근히 좋으시면서 뭘…….”
“강한철!”
“불렀나?”
“후미에서 하던 훈련, 얘도 데리고 해.”
“알겠다.”
“혀, 혀, 혀, 혀, 혀, 형님!”
박정필이 강한철의 손에 질질 끌려가고 나서야 주위가 한결 조용해졌다.
미묘하게 바뀌는 해류를 거슬러 안개를 따라 이동하던 중, 세운의 앞에 또 다른 이변이 나타났다.
스스스-
“어?”
“날씨가 갑자기 왜 이래?”
“와, 앞이 하나도 안 보일 지경인데?”
함선의 주위가 한순간에 짙은 안개로 뒤덮였다. 당장 배 아래의 바다조차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
그보다 문제는 그 안개 때문에 레비아탄이 만들어 준 녹색 안개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세운 씨, 이거 위험하지 않을까요? 이러다가 암초에 부딪치기라도 하면…….”
“괜찮아! 우리가 얼마나 튼튼하게 만들었는데!”
“응! ……아마 괜찮을 거야!”
“맞아! ……아마도!”
세운이 고개를 저었다.
레비아탄의 안내를 따라가다 나타난 짙은 안개는 절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목적지에 다 와 간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안개가 길을 막으면, 치우면 그만이다.
[ 파이어 필드(Fire field) ]– 적탑의 화염계 마법으로써 지정한 구역을 화염의 대지로 만들어 불꽃을 생성하거나 기온을 높인다.
화륵-
함선의 주위로 불꽃이 일었다.
파이어 필드는 그 자체로 위협적인 공격 마법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방법으로의 활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주변의 지형지물을 불 속성으로 바꾸어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이 전투 상황은 아니지만…….
스스슷-
온도를 높여 안개를 모두 증발시키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오, 안개가 걷힌다!”
“이야, 범위가 얼마나 넓은 거야? 우리 길드장, 이럴 때 보면 막무가내라니까.”
“그러니까. 어떻게든 방향을 잃을 줄 알았는데, 안개를 전부 없애 버릴 줄이야.”
다행히 안개가 사라져도 레비아탄이 만들어 준 푸른 안개는 사라지지 않았다.
마법을 조금만 멈춰도 주변의 안개가 쏟아지듯 덮쳐왔기에, 한동안 마법을 계속 유지하였다.
그러던 중.
“어? 저기 뭔가 보입니다!”
바다와 안개밖에 안 보이던 망망대해 속에서 드디어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새까만 안개에 둘러싸여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섬.
아직 간신히 시야에 잡힐 정도로 거리가 멀었는데도 불길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듯했다.
레비아탄의 안개가 똑바로 그곳을 향하고 있었기에, 세운은 저곳이 목적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곧이어 떠 오르는 섬의 이름.
[ 흑해의 은둔자들 ]흑해.
에스트롯샤가 광휘의 바다를 피와 어둠으로 만들어 냈다고 알려진 검은 바다.
그 이름과 은둔자라는 이름이 합쳐졌으니, 레비아탄이 에스트롯샤를 통해 알아낸 정보는 사실이었다.
“……정말 저곳에 가실 거예요?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
“괜찮아. 저 정도는 생각하고 왔으니까.”
“알겠어요. 그럼, 바로 배를 준비해 드릴게요.”
“됐어.”
펄럭!
세운의 등에서 흰 날개가 펼쳐졌다.
섬의 주변이 검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기에 배로 이동하는 건 오히려 위험하다.
차라리 마나를 조금 소모하더라도 빠르게 섬이 착륙하는 게 안전했다.
“유서아, 배 잘 지키고 있어.”
“네! 맡겨주세요.”
“좋아.”
과거에 탑의 규율을 무너트리고 층 하나를 지배하려 하였던 폭군의 추종자들.
과연, 얼마나 강할까?
걱정되기보다는 오히려 기대가 되었다.
저 섬이라면, 지금까지 쌓아온 기술을 마음껏 펼쳐 보여도 괜찮으리라.
푸홧!
세운의 하얀 날개가 검은 안개에 묻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