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55)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59화(255/675)
제259화
흑해의 은둔자들.
한때 잠시나마 40층의 바다를. 아니, 36층에서 40층까지에 이르는 드넓은 대해를 풍미하였던 에스트롯샤의 자식들이 숨어 있는 곳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여왕이자 어머니, 주군이자 주인인 에스트롯샤를 기다리는 것.
그 집념 하나만으로 억겁의 시간을 죽은 듯이 보내왔다.
나이가 들어 죽음이 다가오고, 허기를 참지 못해 자신의 살을 갉아먹어서라도 말이다.
“건조해, 건조해, 건조해, 건조해, 건조해-!!”
“진정해라.”
“어떻게 진정할 수 있겠어! 어? 여기, 비늘이 쩍쩍 갈라진 거 안 보여?”
“대기 중의 수분함량은 적정치에 머물러 있다. 생존에는 문제없다.”
“크아아아아악!”
검은 안개에 둘러싸인 섬.
흑섬에서 가장 넓은 동굴 안에서 아귀의 모습을 한 괴인이 포효를 내질렀다.
그 소리가 어찌나 날카로운지, 소리를 내지르는 것만으로 벽에 칼로 낸 듯한 날카로운 흠집이 생겨났다.
“난 물고기라고! 어? 이 비늘 안 보여? 난 빌어먹을 물고기라고! 여기 아가미 안 보여? 난! 이런 젠장맞을! 물고기라고!”
괴인이 긴 팔을 비비 꼬더니 자신의 몸을 휘감았다.
팔에 닿은 비늘이 당장에라도 떨어나갈 듯이 들썩였다.
“물고기는 물에서 노는 법이라고! 어? 저 넓은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쳐야 하는 법이라고!”
“조금만 참아라.”
“조금만? 조금만? 조금만이 대체 언젠데? 수십, 수백 년 전에도 같은 소리를 하지 않았나?”
“기다려라. 어머니께서 돌아오시면…….”
“그놈의 빌어먹을 어머-”
챙-
괴인의 목에 날카로운 칼날이 닿았다. 아니, 그것은 그 어떤 명검보다도 날카로웠지만 칼이 아니었다.
집게발.
옆에서 죽은 듯이 숨죽이고 있던 또 다른 괴인의 집게발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주변에서 숨죽이고 있던 괴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아귀 형상의 괴인을 향했다.
거기서 한 글자만 더 내뱉으면 당장에 죽여 버리겠다는 것처럼.
“-나? 어머나, 이런 세상에. 내가 말실수를 해 버렸네? 그래, 오랜만에 진흙 목욕이나 해야겠어. 비늘 미용이라도 할 겸에 말이야.”
아귀 형상의 괴인이 집게발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이내 동굴 밖으로 도망치듯 나갔다.
그 이후, 한동안 아무런 괴인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차피 무슨 대화를 해 봤자 답은 같았다.
늘 나누던 얘기, 늘 나오던 결말.
왜 자신들에게는 동면(冬眠)이라는 능력이 없을까?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어머니가 도착할 때까지 잠에 빠져 있을 수 있었을 텐데.
속으로 그런 생각을 되뇌고 있을 때쯤.
“웅?”
구석에서 대자로 퍼질러 있던 괴인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곧이어 검은 피부에 가려 보이지 않던 눈을 크게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러지?”
“누가아! 들어왔다아!”
“어머니께서 오신 건가!”
“우웅, 아니다아. 인간? 인간. 인간이다아.”
“……인간?”
“인간이라고?”
“오랜만에 듣는걸.”
“살, 부드러워서 맛있었지.”
인간이 들어왔다.
그 소식에 잠잠하던 동굴에 소란이 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의 지시를 받고 흑섬에 숨어든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렇다 할 이변이 일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들어온 거지?”
“우웅, 날아왔다아? 새인가? 아닌데. 우웅…….”
괴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매모호한 대답이었지만, 어차피 제대로 된 대답을 들었어도 결과는 같았을 거다.
동굴에 존재하는 모든 괴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혹시나 어머니께서 보낸 인간일 지도 모른다.”
“인간인데? 어머니께서 인간 따위를 전령으로 사용하실 리가…….”
“인간 따위이기에 안 들키고 보낼 수 있으셨을지도 모르지.”
“호오, 그럴듯한데?”
“무웅, 안내해라.”
“우웅! 알겠다아!”
괴인들이 몸을 일으켰다.
이게 대체 얼마 만일까?
괴인들이 모두 딱딱하게 굳은 관절을 풀며 동굴 밖으로 움직였다.
그러다 아까 뛰쳐나가 뒤늦게 동굴에 도착한 아귀 형태의 괴인은.
“어? 다 어디 갔어? 어? 나 빼고 다 어디 갔어? 어어? 야아아아!”
동굴이 무너져라 소리를 질러대며 검은 안개 속을 방황하였다.
* * *
– 38층의 시련으로 ‘흑해의 은둔자들’을 선택하였습니다.
– 선택한 시련은 섬의 공략이 끝날 때까지 탈출하거나 포기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검은 안개 속으로 진입하자마자 시야가 밝아졌다.
그렇다고 완전히 환해지지는 않고, 적색등이 켜진 복도처럼 여전히 어두운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안개는 내부보다는 외부의 시야를 차단하기 위함이었던 모양이다.
“비행은 무리인가.”
다만, 풀린 건 시야뿐.
안개가 날개에 질척하게 달라붙는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착각이 아니라 날개가 점점 둔하고 무거워진 탓에 금방 바닥에 착지해야만 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조심해야 한다며 당신을 걱정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호기심에 잠시 연구를 멈추고 당신을 내려봅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침을 줄줄 흘리며 주번을 두리번거립니다.
‘일단은 숨어서 상황을 봐야겠다.’
레비아탄의 걱정대로, 적의 전력을 알지 못하니 일단은 숨는 게 정답이었다.
시간이 흐를 대로 흘렀기에 적의 전력은 많이 낮아져 있겠지만, 확신은 할 수 없으니까.
킬케르가식 은신술을 활용해 몸을 숨기려 안개처럼 검게 물든 바위의 그림자로 향했다.
그리고.
“카핫? 진짜 인간이잖아?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바위의 그림자에서 생명체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이 섬에 존재하는 생명체라면 분명 에스트롯샤의 수하일 터.
세운이 곧바로 검을 꺼내 들었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비록 기습처럼 나타난 건 상대였지만, 검을 먼저 휘두른 건 세운이었다.
기습처럼 휘둘린 검이 적의 목을 향했다.
카앙!
“인간치고는 힘도 제법 센 것 같은데? 케스 말이 맞는 건가?”
그러나, 세운의 검은 너무나도 쉽게 막혔다.
적이 날카롭게 세워낸 지느러미와 충돌했는데, 지느러미 주제에 강도가 어찌나 단단한지 충돌부에서 불똥이 튈 지경이었다.
‘강하다.’
한 수만에 상대의 전투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기습적인 공격에도 방향을 예측하여 들어 올린 지느러미나, 얼굴에서 드러나는 여유. 대립하고 있는 검에서 느껴지는 근력.
그 모든 게, 상대가 최소한 다른 필드의 보스 몬스터급 이상의 힘을 지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곧바로 다음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벡스, 멈춰라.”
“카핫? 아니, 오해라구? 공격을 한 건 이 인간이라구? 난 그저 막았을 뿐이라구?”
뒤쪽에서 수많은 기척이 느껴졌다.
특히, 당장 들려온 목소리는 세운이 지금까지 탑을 오르며 마주쳤던 적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강한 위세가 담겨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가오리처럼 넓은 지느러미를 가진 괴인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레비아탄의 성소에서 보았던 어인들과는 달랐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모습…….
돌연변이 같다고 해야 할까?
마치 마기로 인해 몸이 변형된 마수를 보는 듯했다.
“일단은 확인이 먼저다.”
“알겠다구~”
바위 뒤편에서 나타났던 괴인이 그림자처럼 스르르 녹아내렸다.
거리를 벌린 세운이 찬찬히 적의 세력을 둘러보았다.
가오리 형태의 괴인 말고도 바다 생물의 특성을 따와 기괴한 신체를 지닌 이들이 스무가량 존재했다.
저마다 피곤함이 가득한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어쩐지 눈빛이 밝아 보였다.
세운에게 무언가 기대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젠장…….’
저들 중에 탐지계 능력자라도 있는 것일까?
섬에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에스트롯샤가 흑해에서 물러난 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대부분 폐인에 가까울 상태라고 예상했는데…….
지금 보는 괴인들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앞에 서 있는 괴인은 탑의 랭커와 비견될 정도로 강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한 건 세운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아직까지 건재한 에스트롯샤의 수하들을 보며 당황합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당장 그곳에서 도망치라며 당신을 닦달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인상을 찌푸리며 시스템에 간섭할 방법을 탐색합니다.
이미 시련을 선택한 이상 시련을 뒤바꿀 수는 없다. 만약 도망친다고 해도 검은 안개에 둘러싸인 흑섬의 내부가 한계일 거다.
그 이상은 시스템의 제한 때문에 도망치지 못한다.
‘싸우면?’
머릿속으로 저들과의 전투를 떠올려 보았다.
질투의 권능과 탐욕의 권능, 최근에 합공에 성공하여 만들어 낸 ‘태산혈랑’ 등, 마법과 무공, 아이템 모두를 최대한 활용하여 싸운다면…….
하지만, 세운은 곧 고개를 저었다.
‘저 가오리 한 마리로도 벅차다.’
리더격으로 보이는 놈의 무력만 무려 랭커급에 달한다.
그 외에도 랭커급에는 미치지 못해도 상층의 플레이어급 무력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지닌 힘으로 녀석들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런 상황이 되니, 새삼 질투의 권능이 가진 단점이 보였다.
‘하나에게 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제약만 아니라도…….’
물론, 질투의 권능은 지금으로서도 충분히 사기적인 능력이다. 그러나,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아쉬운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푸. 확인해라.”
“킁킁, 킁.”
괴인 무리 사이에서 넓적한 코를 지닌 놈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놈은 코를 연신 벌렁거리며 세운에게 다가왔다.
점액이 뚝뚝 흘러내리는 코가 가까이 다가오는 게 영 꺼림칙했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일단은 가만히 기회를 노리는 게 우선이다.
그렇게 푸라 불린 괴인이 세운의 주변이 한 바퀴 도는 순간, 감겨 있던 놈의 눈이 크게 떠지며 콧구멍이 놀랍도록 확대되었다.
“난다! 어머니의 냄새가 나! 분명해!”
“정말인가?”
“분명해! 희미하긴 하지만, 분명해! 내가 어머니의 냄새를 잊을 리가 없잖아!”
푸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방방 뛰었다. 뒤에 서 있던 괴인들도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정말이야?”
“정말 어머니가 보낸 인간이라고?”
“하지만, 어째서?”
“서, 설마!”
“드디어 때가 된 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말부터 섬이 떠나가라 크게 떠들어대는 말까지, 세운은 그 모든 말들을 하나하나 귀담아들었다.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단서를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어머니라면, 에스트롯샤를 말하는 거겠지.’
튜토리얼 때 한 번 만난 게 끝인데 그 냄새를 맡았다니, 정말이지 말도 안 되게 뛰어난 후각이다.
아니, 애초에 후각이라고 하여도 최소한의 냄새가 남아 있어야 감지가 가능한 법일 텐데……. 푸라고 불린 괴인의 능력은 감각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아마, 여기 있는 괴인들 모두 저런 특기나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
‘게다가 ‘때’라고 한다면…….’
경우의 수는 하나뿐이다.
저들은 세운을 에스트롯샤가 보낸 사람으로 보고 있다.
아마도, 드디어 이 섬에서 탈출하여 흑해를 되찾을 때가 됐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해 주면 그만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위대한 흑해의 자식들이시여.”
세운이 고개를 숙였다.
흑해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혹시나’, 또는 ‘설마’ 하며 의심을 품던 괴인들의 표정이 눈 녹듯이 풀렸다.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그들의 리더 역시 이 순간만큼은 무표정을 유지하지 못했다.
“피와 어둠의 바다, 흑해의 여왕이신 데아 바칸델 에스트롯샤 님의 새로운 종이 그 자식들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입을 벌린 채 넋 나간 표정을 짓습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신의 행보에 고개를 내젓습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설마 자신들을 배신하는 거냐며 깜짝 놀랍니다.
숙여진 세운의 고개 위로, 괴인들이 환호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