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6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64화(260/675)
제264화
“세운 씨!”
“형님, 왜 이렇게 늦으셨습니까!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걱정은. 세상 여유롭게 낮잠 자고 있었으면서! 근데 혈랑 오빠, 진짜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제일 빨리 끝나고 나오실 줄 알았는데, 늦으셔서 걱정했습니다.”
함선에 돌아오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길드원들이 세운을 맞이해 주었다.
세운이 나타나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환영해 주는 게, 걱정했다는 게 빈말은 아닌 모양이다.
‘하긴, 시간이 꽤 걸리긴 했지.’
단순한 전투였다면 결과가 어떻든 빨리 끝났을 텐데, 이번에는 괴인들을 속이고, 요리를 만들어 독에 중독시키는 등 다양한 일들을 벌이느라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심지어 마지막에 신파극으로 봉인식을 해제하는 순간은 찰나의 시간처럼 짧게 느껴졌지만 나와보니 해가 바뀌어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마나 스크린도 없었으니.’
세운은 여태까지 퍼밀리어로 계약한 갈매기의 시야를 이용해 보물섬에 들어간 플레이어들의 모습을 마나 스크린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세운의 마법.
세운이 보물섬에 들어가 버렸으니 마나 스크린이 보일 리가 없었다.
“그나저나 멋지네요. 안개가 끼어 있을 때는 몰랐는데.”
“주변 분위기가 한순간에 변했는데요?”
흑섬을 둘러싼 검은 안개가 전부 사라졌다.
하늘에서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오며 수면에 비쳐 반짝거리는 게, 휴양 섬을 연상시키는 듯한 모습이었다.
안개가 끼어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판이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전부 당신 덕분이라며 기분 좋게 꼬리를 흔듭니다.
분명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시련은 끝났다.
세운을 마지막으로 함선의 플레이어 모두가 시련을 마쳤으니 더 이상 이곳에 머물 필요는 없었다.
“가자.”
“네!”
“출발!”
멈춰 있던 함선의 닻이 올라가고, 돛이 활짝 펼쳐졌다.
* * *
‘흑해의 은둔자들’ 보물섬이 워낙 안쪽에 숨겨져 있었던 탓일까? 38층을 빠져나가는 데에는 생각 이상으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쌍둥이 자매가 함선 내에 편의시설을 워낙 다양한 게 만들어두었기에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38층의 끝자락에 도착하자.
“와아아…….”
“저거, 올라갈 수 있는 겁니까?”
“당연하지! 우리 배가 얼마나 튼튼한데!”
“아니, 그 문제가 아니잖아!”
거대한 폭포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폭포와 정반대다. 바다가 절벽같이 높은 곳을 향해 솟구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도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었지.’
회귀 전, 해적선에 올라탔을 때만 해도 저 신비한 모습에 많이 놀랐었다. 다만, 당시 함께 가던 해적들은 오히려 당연한 것 아니냐며 태평스럽게 저 위로 배를 몰았다.
당시의 기억 덕분에 세운은 당황하지 않고 솟구치는 폭포를 향해 배를 곧바로 몰 수 있었다.
솨아아아-!!
가까이 다가가니 저 위에서부터 물보라가 흩날려 온다.
거기에 햇빛이 비치니 무지개가 끝도 없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마침내 폭포에 배가 닿는 순간.
“꽉 잡아!”
“으아아아, 올라간다아!”
배가 직각에 가깝게 기울더니 중력을 거슬러 폭포 위로 올라간다.
당장에라도 배가 기울며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각도였는데, 벽에서 배를 끌어당기기라도 하는 듯이 안정적이다.
실제로 떨어지지 않으려 벽이나 기둥을 꽉 잡고 있던 길드원들도 기이한 중력에 신기해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와아…….”
“진짜 별 경험을 다 해 보네.”
“하긴, 이 정도면 오히려 양반이지.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들에 비하면.”
폭포는 생각 이상으로 높았다.
몇 분 동안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고, 아래의 바다가 물보라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쯤에야 함선이 앞으로 스르르 기울었다.
그러자 보이기 시작하는 39층의 바다.
“이게 뭐야?”
“나 이런 거 처음 봐…….”
“이걸 탑에 들어온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온갖 진귀한 경험을 다 해 보네.”
디아블로 길드원 모두 외벽에 딱 붙어 바다를 바라보며 감탄한다.
그럴 수밖에.
회귀 전, 해적들에게 들은 바로 이곳의 이름은 ‘만생(萬生)의 바다’.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깨끗한 수면 아래로 온갖 생물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푸우우-!
거대한 고래 한 마리가 수면 위로 올라와 시원하게 물을 내뿜는다.
날개 달린 물고기가 그 위로 날아오르고, 수면 아래에서는 가재 한 무리가 커다란 집게발을 내밀며 헤엄쳐 다닌다.
수심이 그리 얕은 것도 아닌데 바닥의 생명체들이 보일 정도라니.
단순히 깨끗한 것을 넘어, 바다가 빛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모두가 여기에 감탄하고 있을 때, 39층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 올랐다.
– 39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바다낚시
– 바다를 탐험하던 당신은 온 세상의 해수들이 헤엄치고 다니는 만생의 바다에 도착하였습니다.
– 바다에서 희귀도 A급 이상의 생물을 한 마리 이상 채집하십시오.
“바다낚시래!”
“재밌겠다!”
“이 정도면 난이도 엄청 쉬운 거 아냐?”
“보물섬이 좀 까다롭긴 했어도 이 정도면 진짜 힐링 수준인데?”
생각보다 편안하게 흘러가는 시련들.
디아블로 길드원들 대부분 난이도가 쉽다고 보고 있었지만, 세운의 생각은 달랐다.
‘이번에는 같이 하는 시련이 조금 많았지.’
소인국과 대인국부터 시작해 해적 섬을 비롯한 바다 테마의 시련들.
그곳에서 세운은 알게 모르게 길드원에게 힌트를 주고 공략법을 몸소 보여주었다.
최대한 스스로 공략법을 찾아내게 하려 했지만, 시련을 같이 행하는 이상 팔짱 끼고 뒤에서 구경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덕분에 시련을 같이 통과하는 사람들 입장으로는 다른 시련보다 편하게 느껴진 모양이다.
그런 의미로…….
‘이번 시련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볼까?’
어차피 시간이 촉박하거나 한 건 아니다. 회귀 전의 세운이 등반하던 속도에 비교하면, 지금은 무척이나 빠른 편이었으니까.
굳이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없지만, 이건 시간 낭비가 아닌 길드원에 대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좀 쉬자아!”
“허허, 낚싯대부터 하나 만들어야겠구먼.”
39층의 난이도도 모른 채로 행복한 표정으로 바닷바람을 쐬고 있는 길드원들을 바라보며 세운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39층의 시련 3일 차.
디아블로 길드원 대부분 휴식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시련에 임하고 있었다.
기본적인 장비는 고창석이 대부분 마련해 주었다.
갑판에 걸터앉아 낚시하는 이도 있었고, 투명한 수면 아래를 주시하며 작살을 던져대는 이도 있었다.
심지어 최수창과 유서아는 직접 바닷속으로 잠수하여 시련의 목표를 수색하였다.
그러나…….
“……또 B급이에요. 이번에는 정말 A급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서아 씨는 잘 찾고 계신 거예요. 대부분 최고 C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잖아요.”
“그렇지만…….”
아직까지 시련에 통과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제법 희귀해 보이는 물고기를 발견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잡아보아도 B급.
A급 이상의 해수는 생각 이상으로 희귀한 듯했다.
그래도…….
“아직 사흘밖에 안 됐잖아요? 한 명이 잡기 시작하면 다들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기준만 알아내면 다음은 쉬우니까요.”
“그렇겠죠?”
유서아를 제외한 이들은 별다른 조급함을 느끼지 못했다.
투명하고 아름다운 만생의 바다. 날씨마저 화창하기만 한 이곳에서는 일말의 조급함도 생기지 않았다.
39층의 시련 7일 차.
일주일이 다다랐지만 아직까지 A급 해수를 잡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의 눈빛에서 점차 조급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A급이 있기는 한 거야?”
“여길 대체 어떻게 통과하라는 거야? 낚시터를 좀 옮겨볼까?”
“아무래도 그래야겠다. 그냥 이 구역 자체에 희귀한 해수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아니, A급 해수를 아무도 못 잡은 건 아니었다.
다들 포기하고 있는 와중에 단 한 명.
이 구역에 A급 해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하듯이 A급 해수를 사냥하고 이가 한 명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는 디아블로 길드의 길드장.
세운이었다.
‘저기.’
쐐애액!
세운이 던진 아펠리온이 바람을 가르며 힘차게 날아간다.
하지만, 목표는 보이지 않는다.
수면 아래까지 훤히 보이는 투명한 바다라지만, 세운이 창을 던진 곳에는 그 어떠한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형님, 어디 던지시는…….”
사람들 모두 그 모습에 의아해하는 순간.
푸욱!
창이 바다의 중간에서 뚝 멈추더니 무언가 꿰뚫리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고는 창의 주위로 반투명한 무언가가 부자연스럽게 번들거리며 형체를 드러낸다.
휘릭-
세운이 창끝에 감아둔 줄을 잡아당긴다.
아펠리온의 능력인 회수 기능을 사용하면 창만 돌아오기에 일부러 매달아둔 줄이었다.
곧이어 아펠리온이 반투명한 생명체와 함께 함선의 위로 끌려왔다.
“오오, 이건 뭡니까? 물 위로 올라와도 형체가 잘 안 보이네.”
“피부가 꼭 해파리 같은데?”
“그래봤자 이 구역에 A급 물고기는 없을 텐데.”
크기도 꽤 크다.
길이가 8m에 이르는 장어처럼 생긴 물고기였는데, 반투명한 비늘이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길드원이 모두 모여든 시점에서, 세운은 그들에게 물고기의 정보를 공개하였다.
[ 투명장어 ]분류 : 물고기
희귀도 : A-
설명 : 무색무취의 투명한 모습으로 바다를 누비는 어류. 극히 일부의 몬스터가 아닌 이상 탐지가 불가능해 천적이 없다시피 하다 알려진 환상의 물고기.
“에, 에이 마이너스?”
길드원들의 추측을 깨고 A급 몬스터가 나타났다.
그것을 다시 한번 증명하듯, 세운의 앞으로 하나의 메시지가 떠 올랐다.
– A급 어류, 투명장어를 사냥하였습니다.
– 해당 어류를 등록하여 시련을 통과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이 인정한 A급 어류.
디아블로 길드원들이 일주일간 머리를 굴려 가며 갖은 시도를 거쳤음에도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몬스터가 세운이 던진 한 번의 창으로 잡혀 왔다.
이곳에 A급 해수가 존재하지 않을 거라 말하던 사람들의 입이 쏙 들어갔다.
하지만, 세운은 곧 고개를 저었다.
고작 A-급 물고기로 시련을 통과할 수는 없었다.
최소한 S급. 아니, SS급의 희귀도를 가진 해수 정도는 잡아야 랭킹권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혀, 형님! 그거 등록 안 할겁니까? 그럼 저 주십쇼! 제가 그걸로 통과하겠습니다!”
“안 돼.”
“에이, 어차피 등록 안 하면 필요 없잖습니까? 그럴 바에 제가 그냥…….”
“내가 안 된다고 했을 텐데?”
“넵…….”
박정필이 아니더라도, 다들 말만 하지 않을 뿐 그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기왕 잡은 A급 어류. 쓰지도 않을 거면서 양보도 안 하다니…….
하지만, 그중 하나.
세운의 뜻을 이해하는 이가 있었다.
“자, 다시 한번 힘내보죠. 다들 알고 있잖아요? 스스로 찾아내지 않으면 시련을 통과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거.”
“서아 씨…….”
“게다가 이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힌트가 돼요. A급 해수는 이것처럼 상식적인 선으로는 잡을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 그렇지!”
“우리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미끼를 한 번 바꿔볼까?”
“수창 오빠, 우리도 데려가 주면 안 돼? 바다에 들어가서 직접 찾아보고 싶어!”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장비부터…….”
잠시 아쉬워하던 길드원들이 유서아의 말을 시작으로 활기를 되찾았다.
역시, 그녀는 사람들을 이끌 줄 알았다.
탑을 등반하는 짧으면서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녀는 완벽한 리더로 거듭났다.
“그래도 일단 구역은 조금 옮겨볼까? 기왕 하는 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작하자고!”
“좋지!”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일단은 저기 작은 바위섬이 있는 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사람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이, 바닥에 방치된 투명장어의 비늘이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무려 A-급 희귀도를 가진 어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입을 크게 벌리며 먹이가 들어오길 기다립니다.
세운에게는 그 무엇보다 훌륭한 짬통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