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6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70화(266/675)
제270화
입수하자마자 느껴진 것은 시원한 바닷물이 아니었다.
기분 나쁜 미적지근한 온도에 점액질처럼 끈적거리는 촉감.
바닷물 자체가 검게 물들어 시야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다.
바람이 불지 않기 때문인지 바닷물에 산소량이 극도로 적어 ‘인어의 아가미’가 활성화되어 있는데도 숨쉬기가 불편했다.
예를 들자면 두꺼운 천으로 호흡기를 막은 채로 숨을 쉬는 기분이랄까?
‘괜히 죽은 바다라 불리는 게 아니었네.’
세운이라 하더라도 흑해에 뛰어든 건 처음이었다. 회귀 전에는 동승하고 있던 해적들이 바다가 검어지는 것을 보자마자 기겁을 하며 배를 돌렸으니까.
흑해로 들어간 배는 결코 살아나오지 못한다나…….
세운은 지금, 그런 바다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현재 흑해의 상태는 자신도 알지 못한다며 당신을 걱정합니다.
해류가 존재하지 않아 속도를 내기 힘들고 산소가 적어 숨을 쉬기도 힘들지만 불가능할 지경은 아니었다.
세운이 손바닥 사이에 펼쳐진 지느러미로 끈적거리는 바닷물을 밀어내며 헤엄을 시작했다.
‘주위에 딱히 기척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데.’
오 분. 십 분. 이십 분. 한 시간.
흑해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살아 있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물고기 같은 어류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해초와 같은 식물류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죽은 바다.
이 바다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죽어 있는 것 같았다.
‘일단은 성소가 될 만한 곳부터 찾아야 해.’
세운이 아공간 주머니에 고이 모셔져 있는 레비아탄의 보주를 떠올렸다.
아무리 보주라고 해도, 흑해의 아무 곳에나 심는다고 레비아탄의 성소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흑해의 중심.
그중에서도 거대한 에너지가 집결된…… 지상으로 치면 용혈(龍血)이라 불리는 지점에 보주를 두어야만 보주의 힘을 끌어낼 수 있다.
문제는 아무리 흑해를 둘러보아도 마땅한 장소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에너지는커녕 생명체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세운이 곤란해하던 중, 다행히도 보주의 주인인 레비아탄이 나서 올바른 길을 알려주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우측의 깊은 곳에서 진한 기운이 느껴진다며 혓바닥을 날름거립니다.
세운이 즉시 방향을 꺾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정말 우측으로 조금 이동하니 아래로 움푹 무너진 통로 같은 게 보였다.
그 안에서 미약하게 느껴지는 에너지.
‘여기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물의 농도가 진해짐은 물론이고, 무언가 이물질 같은 게 둥둥 떠다녔다.
생각 없이 숨을 쉬었다가는 아가미가 바로 막혀 버릴 정도.
– 청탑의 묘리에 따라 ‘윈드 커튼’의 안정성이 강화됩니다.
이전에 사막에서 모래폭풍을 막아내기 위해 사용했던 윈드 커튼을 바다에 걸맞게 수식을 바꿨다.
그러자 바람 대신 해류가 일렁이며 세운에게 들러붙는 이물질이 멀찍이 튕겨 나간다.
‘보인다.’
칠흑 같은 어둠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흑해의 심해 속에서 처음으로 검정이 아닌 색이 눈에 들어왔다.
파랑.
흑해의 최심부에서 일렁거리는 옅은 파란색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욱 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최심부.
윈드 커튼으로 눈앞의 이물질을 치우는 순간, 심해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눈앞에 벌어진 처참한 광경에 눈을 감습니다.
“무덤?”
온갖 몬스터의 시체가 파란 원색을 흘리며 썩어가고 있었다.
크기가 작은 건 뼈가 삭아 일부만 모래 위로 드러나 있고, 크기가 큰 건 아직 완전히 썩지 않아 생전의 장엄한 모습을 조금이나마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아마, 흑해의 바다가 광휘의 바다라 불렸을 때 존재했을 몬스터들.
어째서 모두가 이곳까지 흘러와 명을 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시체가 분명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주위를 둘러보며, 아마도 이곳은 본래 자신의 성소가 있었던 자리일 거라며 고개를 숙입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이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이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다 죽어갔을 거라며 슬픔을 삼킵니다.
시체들에게서 감도는 푸른빛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시체들은 미약하게나마 레비아탄의 힘을 이어받았던 몬스터들.
레비아탄이 사라지고도 성소가 있던 자리에 남아 명을 마쳤다니, 그녀가 얼마나 존중받던 성좌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선신들 중에서도 이 정도는 드물 텐데.’
잠시나마 선신과 악신의 차이에서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레비아탄의 메시지가 조금 이상했다.
평소에 비해 흐릿하다고 해야 하나?
조금 불안정한 모습.
세운의 생각이 착각이 아니었는지,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가자마자 이변이 나타났다.
– 성좌, ‘시&를 둘러* 뱀’이 성소가 존재하던 !$방향으로 ^#가면 될 거라고#$^*&@!#$–.
글자가 깨진다.
그걸 넘어 메시지가 아예 끊겨 버렸다.
상태창은 정상적으로 켜지는 것을 보니 외부에서의 간섭만 끊기는 모양이다.
‘흑해의 특성 때문인가?’
불안감이 엄습해 오긴 하지만,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무덤에서 가장 거대한 에너지가 흐르는 곳에 레비아탄의 보주만 설치하면 끝난다.
그 순간.
“흐흐, 이제 깨달았나 보네?”
쐐액!
작은 목소리가 들려옴과 함께, 앞에서 강대한 기척이 느껴졌다.
그와 함께 세운을 덮쳐오는 거대한 수압.
생각할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물을 밀쳐내며 반대편으로 몸을 던졌다.
발가락 사이에 난 지느러미 하나가 찢어지는 것으로 간신히 공격을 피해 낼 수 있었다.
‘창?’
너무 빨라 눈으로 보는 것은 무리였지만, 바로 옆에 지나간 공격으로 형태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로 이루어진 삼지창.
게다가, 그 공격에는 마법을 상징하는 마나가 아니라 신을 상징하는 신성이 깃들어 있었다.
“이 흑해는 말이야. 영겁의 시간 동안 썩고, 정체되어 있었지. 그 덕분에 시스템의 흐름마저 방해를 받아 외부에서의 간섭이나 관찰을 막아내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이 상어 비늘과 비슷한 비늘로 뒤덮여 있었고, 귀 아래로 아가미가 활짝 펼쳐져 있었다.
넓은 입에는 톱니 같은 상어 이빨이 자리 잡고, 눈은 파랗고, 하체는 돌고래의 것과 같은 꼬리로 되어 있었다.
충분히 눈에 띄는 외견이었지만, 세운이 그보다 신경 쓴 건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신성이었다.
“트리톤…….”
“그래도 네가 나한테 잘못을 저질렀다는 건 아나 보네? 바로 내 정체를 맞추는 걸 보니.”
올림포스의 성좌이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 트리톤.
바로 전 층에서 세운이 사냥했던 크라켄의 주인이었다.
‘어떻게?’
지금 트리톤의 상태는 빙의 같은 게 아니었다.
현신.
판이 마지막 순간에 세운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와 마찬가지로, 성좌의 몸으로 직접 탑에 강림한 것이다.
이는 명백한 탑의 규율 위반.
관리소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을 텐데, 아무런 메시지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관리소가 임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려웠다. 최근에 보았던 튜닝은 여전히 세운에게 꽤나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트리톤이 처음 말한 것처럼 이곳이 시스템의 흐름을 방해받고 있다는 게 정답이라는 뜻.
“흑해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뭐, 간단해. 궁금했거든. 그 이름난 레비아탄이 반역을 당해 망가진 바다가 어떻게 되었을지. 그래서 대충 멍청해 보이는 플레이어 하나 잡아서 계약했지.”
트리톤이 과거를 회상하듯 씨익 웃었다.
톱니 같은 상어 이빨이 드러나 포악한 인상이 드러났다.
“뭐, 그놈은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 너보다 훨씬 오래 걸렸긴 하지. 그래도 덕분에 이곳에 대해 알 수 있었고.”
“당장 간섭이 안 된다고 해도, 이렇게 탑의 규율을 어기면 타격이 만만치 않을 텐데?”
“흐흐, 걱정 말라고. 아마 탑의 모니터에는 이 모습이 노이즈 낀 화면처럼 보일걸? 네가 여기서 죽더라도, 난 발뺌하면 그만이야. 이래 봬도 든든한 백이 있거든.”
세운은 그제야 트리톤의 계획을 완전히 알아챘다.
성좌가 탑에 현신하려면 많은 시간과 격의 소모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 세운을 상대하기 위해 미리 흑해의 깊숙한 곳에서 현신을 완료해 둔 것이다.
관리소의 감시를 피해서.
그렇다고 해도 흔적은 드러나게 마련이지만, 세운이 죽고 나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설명은 이걸로 충분하겠지? 아아, 나란 놈은 왜 이렇게 관대한지 몰라? 이제 곧 죽을 놈한테 이리 친절히 설명까지 해 주고 말이야.”
철컥.
트리톤이 세운을 향해 무기를 꺼내 들었다.
청동처럼 은은한 푸른빛이 감도는 삼지창.
포세이돈의 삼지창보다는 못하지만, 바다를 움직이는 힘이 깃들어 있다고 알려진 보구였다.
그 삼지창은 그저 손에 살짝 힘을 주는 것만으로.
솨아아앗!
세운에게 거센 물길을 쏘아냈다.
아슬아슬하게 머리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물로 이루어진 삼지창.
처음 세운을 공격했던 공격이었다.
“으, 생각 이상으로 끈적하네. 공격이 이렇게 느려져서야.”
느리다니.
세운이 전신의 감각을 집중하여 기괴할 정도로 몸을 틀어야만 간신히 피해 낼 수 있는 공격이 느리다니…….
만약 저 공격을 흑해가 아닌 평범한 바다에서 당했다면?
피하고 뭐고, 꼼짝없이 저 창에 심장이 꿰뚫리고 말았을 거다.
‘젠장…….’
판을 상대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된다.
당시에 판은 세운으로 인해 격을 어느 정도 잃은 것은 물론, 시련 사이에 억지로 만들어 낸 공간으로 세운을 불러내느라 크나큰 힘의 소모가 있었다.
하지만, 트리톤은 달랐다.
올림포스에서 나오고 탑에 현신하느라 격이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판과는 비교도 안 되게 본래의 힘을 간직하고 있었다.
솨앗, 솨아아-!!
“흐흐하하! 그래, 피해 봐라. 어디, 이것도 피할 수 있나 보자.”
삼지창의 수가 늘어났다.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넷에서 열로.
흑해의 어두운 시야와 끈적거리는 바다, 삼지창의 빠른 속도 탓에 제대로 피하기가 어려웠다.
간신히 급소를 피하고 있지만, 세운의 몸에 자잘한 상처가 쌓여가고 있었다.
방어구?
신의 무기 앞에 방어력 따위는 의미 없었다.
그나마 ‘바다의 분노’ 목걸이 덕분에 움직임이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지고 ‘태조 무황제의 전포’가 충격을 흡수해 줬기에 이만큼 버틸 수 있었다.
“이건! 이건 어때? 흐하하하!”
이번에는 창이 아니었다.
바닷물로 이루어진 상어와 아귀 등.
각종 생물들이 입을 쩌억 벌린 채 세운을 노리고 다가왔다.
삼지창은 직선으로 날아왔기에 어떻게든 피해 낼 수 있었지만, 놈들은 정말 살아 있는 것처럼 곡선으로 집요하게 세운을 노려왔다.
일단은 상황을 바꿔보기 위해 질투의 권능을 사용하려 해 보았으나…….
– 질투의 권능을 빌려올 수 없는 구역입니다.
폭식이나 탐욕의 권능과는 달리, 질투의 권능은 세운이 레비아탄과의 계약으로 빌려 쓰고 있는 힘이다.
성좌의 힘이 닿지 않으니…… 자연스레 질투의 권능 역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폭식의 권능은 전투 시 사용하거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지금 믿을 수 있는 건 탐욕의 권능과 성흔의 능력뿐이다.
‘어쩌지?’
생각해야 한다.
흑해에 있는 이상, 관리소나 성좌의 힘을 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저 성좌를 이길 가능성은 0.001%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미약한 가능성을 떠올린다면, 그건 희망이 아닌 오만이다.
눈앞에 다가오는 수십의 공격을 피해 내며 머리를 굴리던 중, 세운의 머릿속에 레비아탄의 보주가 떠올랐다.
‘방법은 이것뿐이다!’
촤앗!
공격을 피하기만 급급하던 세운이 몸을 돌려 무덤의 중심을 향해 나아갔다.
“머리가 있다면 흑해를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이라도 칠 줄 알았는데.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다니, 생각보다 멍청한 놈이었구나! 흐하하하!”
트리톤을 피해 흑해를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를 처음 대면한 순간부터, 이 구역 전체에 거대한 결계가 생겨난 것을 감지했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바다의 신인 트리톤보다 빨리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우웅-
레비아탄의 보주가 조급한 세운의 심정을 대변하듯 낮게 진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