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6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71화(267/675)
제271화
“시간만 끌면 될 것 같나? 흐하하하, 어림도 없지! 이 흑해에서 관리소나 성좌들에게 도움을 구할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세운이 필사적으로 발을 놀려보아도 트리톤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과연, 바다의 신.
아무런 매개체도 없이 탑에 현신하여 격이 크게 떨어진 상태라고 하지만, 그의 힘은 플레이어의 수준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이대로는 무리다.’
속도전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세운이 심해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바닥에 깔린 수백, 수천의 몬스터 시체들. 그 사이로 들어갔다.
콰과과광!!
“그래, 잘 어울리는구나! 시체 사이에 몸을 숨기고 달아나는 모습이라니!”
세운을 향해 날아오던 각종 공격이 시체와 부딪쳐 사라진다. 안 그래도 불순물 가득했던 수중에 뼛조각과 살점들이 가득 퍼져나간다.
그래도 세운은 이미 그곳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걸로 트리톤의 공격이 조금이라도 늦어지길 바랄 뿐이다.
‘분명, 중심에 있을 거야.’
목표는 처음과 같다.
흑해의 에너지가 모여 있는 곳.
문제는 그게 어디인지 모른다는 거지만, 무덤의 형태 덕분에 그 위치를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푸른빛이 진해지고 있어.’
푸른빛이 진하다는 건 그만큼 에너지가 강하다는 뜻. 그뿐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갈수록 시체들의 수준 역시 덩달아 높아지고 있었다.
어느덧 주변에는 39층에 보았던 크라켄과 맞먹는 거대한 괴수들이 우글거렸다.
쾅, 콰쾅!
또다시 한바탕 공격이 휘몰아쳤다.
피할 수 있는 공격은 피해 내고, 피할 수 없는 공격은 시체의 거대한 두개골로 막아낸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아쿠아 필러’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자탑의 묘리에 따라 ‘아쿠아 필러’의 시전 속도가 빨라집니다.
그러고도 막아내지 못한 공격은 마법을 이용해 맞부딪친다.
마법의 범위를 조종해 그의 공격을 무마시킴과 동시에 트리톤을 노려보았지만, 그는 가볍게 손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세운이 만들어 낸 공격을 흩트렸다.
“물 마법? 바다의 신인 나한테 물 마법으로 공격을 한 거야? 흐하하하하! 어이가 없구나!”
경지의 차이를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지금까지 날카롭고 단조로운 공격을 보이던 트리톤이 공격법을 바꾸었다.
촤르르륵!
시커먼 바닷물이 타르처럼 걸쭉하게 뭉친다.
크기를 점차 불려 나간 그것은 거대한 상어의 형태가 되어 세운에게 입을 벌린다.
너무 거대한 탓에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
그렇다고 저 공격을 막아내기 가장 효과적인 물 마법을 사용했다가는 트리톤에 의해 곧바로 흩어질 가능성이 커 보였다.
빠르게 주변을 살펴본 세운이 오른손을 들어 다크 마나 서클을 회전시켰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레이즈 좀비(Raise zombie) ]– 흑탑의 네크로맨서를 대표하는 마법으로써 마나를 불어 넣어 시체를 일으킨다.
세운이 처음 스켈레톤을 일으키는 법으로 알려주었지만, 이제는 백현의 장기가 되어 버린 마법.
언데드 소환.
세운의 손짓에 따라 주변의 시체들이 몸을 일으켰다.
백현과 달리 가미긴의 권능이나 지휘관의 역할을 하는 언데드 개체가 없는 이상, 세운이 일으킬 수 있는 언데드의 수는 총 여섯.
다만, 여섯이라 해도 이 주변의 시체들은 일반적인 몬스터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상급의 몬스터들이다.
“그어어어-”
“그어어어어-”
콰아아아악!
검은 바닷물로 이루어진 상어와 세운이 일으킨 좀비들이 부딪혔다.
바다의 신답게 트리톤의 공격은 놀랍도록 강했지만, 좀비들은 자신의 몸이 망가지면서도 악착같이 공격을 버텨냈다.
지느러미가 뜯겨 나가면서도 상어의 아래턱을 붙잡고. 몸통이 두 동강 나면서도 위턱을 붙잡는다.
좀비만이 할 수 있는 동귀어진(同歸於盡)의 방어.
결국, 여섯 좀비의 몸이 산산이 조각나며 찢겨나갔지만, 덕분에 트리톤의 공격을 무마시킬 수 있었다.
“망자를 일으키다니. 악마들과 계약한 티가 나는구나! 잔꾀가 아주 많아!”
하지만, 트리톤의 공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흑해에 존재하는 거대한 여섯 마리의 시체를 일으켜 간신히 막아내었던 공격이 한 번에 두 개나 생겨났다.
세운이 흑해에 익숙해지는 만큼, 트리톤 역시 흑해에서 물을 다루는 방법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어어어어-”
세운의 다크 마나 서클이 쉴 새 없이 회전하며 무덤의 시체들을 일으켰다.
분명 한 번에 일으킬 수 있는 최대 수는 여섯이지만, 빠르게 파괴되고 새로이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탓에 무덤의 모든 시체가 세운을 보호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우웅!
그러는 사이에도 세운은 이를 악물고 단전의 내공을 운용하여 신체를 강화했다.
여섯 마리의 시체를 끝없이 일으키며 단전까지 운용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렵다고 안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솨아아아!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트리톤의 공격이 점차 멀어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슬슬 무덤의 시체 수준이 너무 높아져 일으키기 힘들어지자, 세운은 자연스레 목적지에 다 와 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저 멀리 무덤에서 보았던 것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시체가 보였다.
새까만 흑해 속에서도 선명한 푸른빛을 뽐내고 있는 고래의 백골. 광휘의 바다에서 폭군이라 불리는 전설의 괴수, 백경(白鯨)의 시체였다.
아직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저 녀석이 바로 목적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이제 거의 다 왔다……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콰르르르륵-!
세운의 눈앞에 해류가 날카롭게 휘어졌다.
몸을 조금이라도 늦게 뺐다면, 방금의 해류로 가슴이 벌어지고 말았으리라.
그것을 시작으로 해류가 사납게 일렁거리며 전방에 거대한 벽을 만들어 냈다.
일반적인 마법이 아닌, 신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해류 벽.
트리톤이 자신의 신성을 소모하여 만들어 낸 벽이었다.
“흐하하하! 재밌었다. 플레이어 주제에 신에게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버둥거리는 꼴이라니.”
전방에는 닿는 것만으로 피부를 찢어버리는 난폭한 해류가, 뒤쪽에는 삼지창을 든 트리톤과 흑해의 바닷물로 만들어진 거대한 상어의 형상들이 자리 잡았다.
‘애초에 가지고 놀고 있었던 건가.’
하긴, 성좌의 힘이 고작 이 정도일 리가 없다.
판의 경우에는 극도로 약해진 상태에서 세운의 앞에 나타났었던 것이니 예외라 쳐도, 트리톤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벽 앞에 가로막혀 멈춘 꼴이 크레타의 미로에 갇힌 생쥐를 보는 듯하구나!”
트리톤은 다 잡은 먹이를 감상하듯이 팔짱을 끼고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체크메이트랄까?
재미난 유흥거리를 끝냈으니, 이제 게임의 끝을 내려는 분위기다.
그러는 중에도 세운은 차분하게 해류 벽을 마주 보고 성흔을 붉혔다.
‘할 수 있다.’
신의 힘.
즉, 성좌로서 가지는 고유한 신성으로 만들어진 벽.
일반적인 마법이나 무공으로는 절대 뚫을 수 없는 벽이지만, 세운은 그 외에 다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성흔.
본래는 판을 포함한 신들에게서 얻은 극히 미약한 신성만을 지니고 있었지만, 네 번째 쉼터를 통과하며 진정한 신성(新星)으로 인정받은 힘.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세 번째 능력, ‘파멸’이 깨어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 세운과 트리톤의 격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크다.
이 정도 신성으로 트리톤의 벽을 깨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할 수 있다.’
세운이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일종의 자기 최면.
성흔의 세 번째 능력, 파멸.
본래 이 힘은 아우터에 의해 생겨났고 아우터를 처치할 때 사용하던 힘이었다.
하지만, 40층까지 올라오며 파멸의 힘을 몇 번이고 사용하며 세운은 파멸의 힘이 단순히 아우터를 죽이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무언가 좀 더 근원적인 힘.
파멸. 그 이름 그대로, 적을 파멸시키는 힘.
상대가 정체불명의 존재, 아우터든. 현세를 초월한 성좌, ‘신’이든.
– 정답이다. 나의 주인이시여.
크르릉-
성흔이 폭발하듯 빛을 발했다.
그 빛은 단순히 주위로 퍼지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한데 모여 늑대의 형상을 이루었다.
이전에도 보았던 검붉은 빛이 감도는 늑대.
세운이 가진 성흔의 자아라고 할 수 있는 존재.
그 존재가, 세운을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하며 고개를 숙였다.
“찢어발겨라.”
검붉은 늑대가 눈앞의 해류 벽을 물고 잡아당겼다.
살짝만 닿아도 칼날처럼 피부가 베이던 해류가 종이 자락처럼 가볍게 찢어졌다.
“흐하하하! 인제 와서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플레이어 따위가 신의 힘에 대항……!”
콰직!
늑대가 문 해류 벽이 점점 더 크게 뜯겨 나갔다.
단순히 문 자리만 뜯겨 나가는 게 아니라, 해류 벽이 길게 늘어지며 통째로 뜯겨 나간다.
마치 커튼을 잡아 뜯는 것처럼 포악하게.
트리톤의 말대로 ‘신의 힘’으로 만들어진 해류 벽이 늑대의 이빨에 뜯겨 나가 산산이 흩어졌다.
“……이럴 수가! 이,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다!”
자신이 만든 해류 벽이 무너진 게 충격이었는지, 트리톤이 자신의 등 뒤에 머무르던 바닷물로 이루어진 상어들을 내보냈다.
녀석들이 아가리를 벌리자 시야가 입 안으로 가득 채워질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세운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방금 막 해류 벽을 내뱉은 늑대를 향해 새로운 명령을 하달할 뿐이다.
“울부짖어라.”
– 크아아아앙!
늑대의 포효가 흑해를 채워나간다.
신성이 깃든 포효는 세운의 주변을 에워싸던 상어들에게 닿자마자 크게 일렁거리며 상어에게 깃든 신성을 흩트렸다.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트리톤의 상어들.
“마, 말도 안 돼! 플레이어 따위가 어떻게 내 힘을!”
트리톤이 당황을 넘어 현실을 부정하며 절규한다.
다만, 세운의 상황도 좋지는 않았다.
‘신성의 소모가…….’
고작 두 번의 명령.
그것만으로 성흔에 깃든 신성이 절반 넘게 깎여나갔다.
정말 위급한 순간에 사용하기 위해 광란의 권능까지 아껴가며 여기까지 도달하느라 신성은 완벽하게 차 있는 상태였는데, 그 신성이 이렇게나 빨리 소모되다니…….
이러면 앞으로 기껏해야 한두 번의 명령이 전부이리라.
“물어뜯어라.”
– 알겠다. 나의 주인이시여.
늑대는 포악한 포효와 함께 트리톤을 향해 뛰쳐나간다.
무엇이든 찢어발길 것처럼 위협적인 돌진이었지만, 세운은 알 수 있었다. 파멸의 힘은 분명 기대 이상으로 강력하지만, 아직 세운의 힘으로 트리톤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이야 자신의 힘을 무마시킨 파멸의 힘에 충격을 받아 당황하고 있어도, 정신을 차리자마자 늑대를 처리하고 세운을 뒤쫓아올 게 분명하다.
촤르륵!
세운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쭉 뻗어나갔다.
무덤에서 가장 거대한 시체. 백경의 사체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빛을 내뿜는 그것은 세운의 예상대로 흑해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가 흐르고 있는 근원지였다.
이곳이라면, 보주를 통해 레비아탄의 성소를 설치할 수 있다.
그리고 아주 잠깐이겠지만, 질투의 마신 ‘레비아탄’을 불러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