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7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75화(271/675)
제275화
어인들은 세운의 생각 이상으로 강력했다.
세운이 직접 나섰던 건 처음 마법을 사용했을 때뿐. 그 이후로는 어인들이 나서서 주변의 몬스터를 모조리 정리해 줬으니 말이다.
“이제 빙 돌 필요 없이 흑해, 아니, 광휘의 바다를 거쳐서 직행하면 될 것 같은데.”
“오오, 저기 언제 저렇게 맑아졌습니까? 설마, 저것도 형님이 한 겁니까?”
“어쩌다 보니.”
“역시 형님이십니다! 크으으! 이 박정필, 형님의 오른팔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
“소란 떨지 말고 가서 키나 잡아.”
“넵!”
흑해의 심해부터 시작된 정화가 벌써 흑해의 외곽까지 퍼져 나와 있었다.
먹물을 풀어놓은 듯이 시꺼멓던 흑해에 광채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미약한 오색 빛이 감돌고, 하늘에는 옅은 무지개까지 떠오르는 듯했다.
‘뭐, 광휘의 바다가 안전한 곳은 아니지만.’
광휘의 바다.
문헌에 따르면 그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갔다가 백경에게 당해 침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백경이 아니더라도 광휘의 바다는 레비아탄의 성소가 있는 곳인 만큼 수많은 해수가 존재한다.
다만, 지금의 광휘의 바다는 아직까지 텅 비어 있는 상태.
게다가 레비아탄 역시 세운의 편이었으니, 망설이지 않고 지름길로 나아가면 되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당신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합니다.
성좌들은 보통 어딘가 하나 엇나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레비아탄의 메시지를 읽은 세운은 어쩌면 레비아탄이 성좌 중에서 가장 정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탐욕과 폭식이라는 이명을 확실히 증명하고 있는 마몬과 베엘제붑에 비하면 왜 질투의 이명을 지니고 있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세운 씨, 뭐 하세요?”
“그냥.”
시간을 허투루 쓰기 싫어하는 세운이었지만, 지금은 조금이나마 휴식을 즐기고 싶었다.
무려 바다의 신, 트리톤을 상대한 참이었으니까.
비록 마무리는 레비아탄이 지었다지만, 지닌 모든 힘을 끌어 올리며 몸을 혹사한 탓에 아직까지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멍하게 정화되고 있는 광휘의 바다를 바라보니, 심신까지 함께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흑해에 딱 붙어서 간 거, 나 기다려 준 거지? 고마워.”
“그것도 있지만, 세운 씨가 길을 알려주셨으니까요. 함선을 맡은 만큼, 실망시키기 싫었어요.”
“좋은 마음가짐이야.”
고난을 피해 가면 성장하지 못한다. 그러니, 고난을 피하지 않고 고집대로 앞으로 나아간 유서아의 선택은 정답이었다.
비록 당장은 미치도록 무섭겠지만, 그것은 후에 성장으로 이어지는 법이니까.
실제로 세운이 함선에 도착했을 때, 길드원들의 수준이 다들 한층 올라가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그들과 가까이 지내 온 세운이었기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유서아.”
“네?”
“넌 하고 싶은 게 있나?”
세운이 바다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이에 유서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고 싶은 거라뇨? 당연히 살아남아서…….”
“처음에는 생존하기 급급하지만, 중층에 돌입하고부터는 달라. 다섯 번째 쉼터만 해도, 원한다면 거기서 정착하는 것도 가능해.”
다섯 번째 쉼터인 항구 도시. 아니, 도시라기에는 항구 국가라는 표현이 걸맞은 거대한 쉼터다.
그곳에서는 자체적으로 상업 활동을 하여 돈을 버는 것도 가능하고, 식량과 거주지를 사들이는 것 역시 가능하다.
그 때문에 다섯 번째 쉼터부터는 제대로 된 정착민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물론, 탑도 이것을 가만히 두지는 않아 정기적으로 큰 페널티와 위협을 받긴 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았다.
“게다가, 여기는 탑이야. 지구에서 허황된 꿈이 있었어도, 이곳에서는 가능할 수 있을지도 몰라.”
목표란 중요하다.
비록 동의도 구하지 않고 억지로 탑에 끌려왔다지만, 탑에서는 많은 걸 이룰 수 있다.
플레이어의 능력으로 떼돈을 벌어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고, 마법으로 천재지변을 일으키며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세운 같은 경우 탑의 완전한 등반.
이런 확고한 목표가 없다면, 결국 높은 곳까지 등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탑의 랭커들만 보아도 정상적이든 비정상이든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음, 꿈이라…….”
유서아가 세운의 옆에 서더니 난간에 기대고 턱을 괴고서 생각했다.
여태까지 세운을 따라 탑을 오르기만 했던 터라 목표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꿈처럼 거창한 건 아니지만, 지금으로서는 세운 씨를 잘 보좌하는 걸로 충분해요.”
“그걸로 되겠어?”
“솔직히 그것도 과분한데요. 세운 씨가 항상 자리를 비우니까, 길드원들은 제가 이끌어야 하니까요.”
“그건…….”
“알아요. 미래를 아는 만큼, 세운 씨가 여기 머물러있을 수는 없다는 거. 그러니까, 그 앞길에 방해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현재로서는 제 목표예요.”
괜히 무거운 짐을 지게 만드는 것 같아 미안하긴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모습이 꽤 믿음직했다.
어깨가 한결 더 가벼워진 기분이랄까?
그 외에도 간만에 다양한 얘기를 하였다.
길드에 대해, 시련에 대해, 능력에 대해.
생각해 보니 바쁘게 움직이느라 유서아를 포함한 길드원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이 몇 번 없었다.
대부분 목적에 의한 대화를 나눴던 게 전부.
그 때문에 망망대해라는 이름과 같이 드넓은 40층을 통과하는 기나긴 시간 동안, 세운은 자연스럽게 길드원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너를 뛰어넘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더 크게 잡는 게 좋을 텐데. 이곳에는 나보다 더한 강자들이…….”
“너를 뛰어넘는 순간에는, 그들도 뛰어넘을 수 있겠지.”
함선의 후미에서 고창석이 만들어 준 거대한 쇳덩어리를 들어 올리며 대답하는 강한철.
최근에 느낀 건데, 길드원들의 목표에는 세운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여태까지 쭉 세운과 함께 탑을 등반하다 보니 세운의 등이 그들에게 가장 큰 목표로 남은 모양이다.
물론, 다른 목표 역시 존재했다.
“허허,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만의 명작을 만들어 보고 싶다네.”
“명작……말입니까.”
“그 있지 않은가. 다섯 자루의 명검과 세 자루의 보검을 만들었다는 중국의 구야자(歐冶子)나 일본의 도장인 마사무네(相州正宗)처럼 말일세.”
자신의 분야에서 정점을 찍길 바라는 고창석이나.
“허황된 꿈이라고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탑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의 해부도를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
분야를 넘어 탐구심의 정점을 노리는 백현.
“어찌 보면 길드장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죠. 저 역시 탑의 등반을 바라고 있으니까요. 다만, 제가 원하는 건 탑의 모든 명소(名所)를 이 두 눈으로 탐방해 보는 것입니다.”
탑의 모든 곳을 알아보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당장 현재를 살기 급급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보니 저마다의 목표를 제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 얘기를 듣고 있자니 책임감마저 생겨날 지경이다.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네.’
유유자적 바다를 떠다니며 이어지는 평온한 일상.
탑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일상이었다.
벌써 목적지의 2/3 이상 다 와 간다는 증거로 광휘의 바다가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 뒤로 몬스터의 습격도 종종 있었지만.
“전투는 저희가 해결하겠습니다!”
“그동안 푹 쉬어주십시오! 그게 저희가 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입니다!”
어인들은 몬스터가 함선에 도달하기도 전에 전투를 끝내 버렸다.
덕분에 디아블로 길드원 모두 평온한 항해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어, 어! 보입니다! 육지가 보입니다!”
“오, 드디어!”
“이야, 나름 지름길로 왔는데도 이렇게 걸리면, 돌아서 가면 대체 얼마나 더 걸린다는 거야?”
“이번 시련은 몬스터가 아니라 시간과의 전쟁이었네.”
“어인분들 덕분에 편하게 온 거지, 아니었으면 다들 피곤함에 쩔어 있었을걸?”
“하긴, 흑해 주위를 돌 때만 생각해도 끔찍하긴 하지.”
처음 입장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쭉 수평선만 보이던 40층에서 처음으로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곳이 평범한 육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름대로 크다고 자부심 있던 디아블로의 함선보다 더 커 보이는 배.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거대한 등대나, 다양한 건축물들. 해가 저물어 가는데도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는 조명까지.
“육지를 따라갈 필요도 없이 바로 도착했나 본데?”
“역시 해를 따라가는 게 정답이었네.”
“우리 길드장 덕분에 지름길로 달리지 않았으면 길을 잘 찾아도 바로 오는 건 어려웠겠지만 말이야.”
“이야, 평화로운 항해 생활도 좋지만 역시 육지가 그립단 말이야. 얼른 단단한 흙바닥 좀 밟고 싶다!”
항구 도시, 제헤튼.
다섯 번째 쉼터의 모습이 드러났다.
여태까지 보아왔던 쉼터들과는 외양부터가 달랐다.
지구로 치자면 중세시대쯤 되어 보이는 제대로 문명화된 사회.
아직 땅을 밟지 않았는데도 저곳에 제대로 된 쉴 곳과 음식들이 가득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희는 여기서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고마웠어.”
“아닙니다. 겨우 이것 가지고 보답을 갚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해 주십시오!”
함선을 호위하던 어인들이 수면 위에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들은 모두 레비아탄의 권속이나 다름없으니, 레비아탄에게 부탁하면 언젠가 도움을 바랄 수도 있을 것이다.
인사를 마친 그들이 수면 위로 활기차게 날아오르더니 물보라를 일으키며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그와 함께 떠 오르는 메시지.
– 40층의 시련 ‘망망대해’를 훌륭하게 완수하였습니다.
– 공적치 집계 중…….
– 히든 퀘스트 ‘죽음의 바다’ 완료.
– 히든 퀘스트 ‘광휘의 바다’ 완료.
– 히든 퀘스트 ‘최단 기록’ 완료.
…….
– 총 누적 공적치 400,000point
– 축하드립니다! 40층의 시련을 랭킹 1위로 통과하였습니다.
– 보상으로 100,000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길고도 길었던 40층의 시련이 그 끝을 알렸다.
결과는 당연히 1등.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다양한 히든 퀘스트들이 떠 올랐다.
세운뿐만 아니라 디아블로 길드원 대부분 꽤 높은 점수를 획득한 모양이다.
뿌우우-
시련이 끝나고 항구에 들어서자마자 거짓말처럼 수많은 배가 주변을 들락날락했다.
항구 특유의 시끌벅적한 소음이 들려오고, 항구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디아블로 길드의 함선에 집중되었다.
“이번에는 꽤 큰데?”
“해적 섬에 저런 배도 있었나? 처음 보는데.”
“잠깐만. 저거 해적왕의 배 아니야? 형태가 조금 다르긴 한데, 해적 섬에 저 정도 크기의 배는 해적왕의 배밖에 없을 건데.”
“설마. 거주민들 배 아냐?”
“배 위에 사람들 형색을 봐봐. 저게 거주민들이 차려입은 옷들인가.”
항구에는 쉼터의 거주민뿐만 아니라 플레이어도 여럿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다양하다.
거주민과 같이 일을 하기 위해 찾아온 이들도 있었고, 돈을 벌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나 신규 플레이어를 자기 세력으로 스카우트하려는 이들 역시 존재했다.
그렇게.
– 다섯 번째 쉼터, 항구 도시 ‘제헤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디아블로 길드가 제헤튼에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