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7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77화(273/675)
제277화
“이것 보십시오! 그쪽 선장이 찍은 지장입니다. 하하, 이래봤자 대륙어를 읽을 수 있을 리가 없겠지요.”
‘저는 사기꾼입니다.’라고 적힌 두루마리를 들고 자랑스럽게 허리를 펴고 있는 상인.
그 당당한 모습에 자리의 모두가 당황했다.
분명 계약서에는 한 문단밖에 안 적혀 있었는데, 저리도 당당해 하니, 정말 뭐라도 있는 건가 싶어서 말이다.
대륙어를 읽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세운이 나긋나긋하게 계약서의 내용을 읽어주었다.
“저는 사기꾼입니다.”
“음?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겁니까?”
“저, 저기. 에이브 님?”
“뭐야? 왜 그러나?”
“그게 그…… 계약서 내용이…….”
“뭐?”
상인의 수하로 보이는 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귓속말을 걸었다.
다만, 이미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상인에게는 한 번에 와닿지 않았다.
“그, 사기꾼이라고…….”
“무슨 소리야? 입조심 안 해?”
“아니, 그…… 계약서 내용 좀 확인해 보십시오.”
“이놈이 아까부터 미쳤나…….”
상인은 그제야 내밀고 있던 계약서를 돌려보았다.
그 순간 커지는 그의 눈동자.
당황하여 두루마리를 코앞까지 당겨 눈을 붙여 뚫릴 정도로 살펴보았지만, 보이는 건 똑같았다.
[ 저는 사기꾼입니다. ]지장은커녕 계약서의 ‘계’ 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호, 혹시 다른 거랑 착각하신 거 아닙니까?”
“그, 그래. 잠시만 기다려!”
상인이 다급하게 주머니를 뒤져보았지만, 나오는 거라고는 동전 몇 푼과 담배 한 갑뿐. 당황하여 가방까지 가져와 뒤져보아도 결국 어제 작성했던 계약서는 보이지 않았다.
“이, 이건 사기야! 이럴 리가 없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애초에 난 계약서 같은 걸 적은 적이 없거든.”
“그런! 여기 본 사람이 몇 명인데!”
“본 사람이 누가 있지?”
“그, 그건!”
상인이 세운에게 계약서를 들고 찾아왔을 무렵, 디아블로 길드는 전부 3층으로 올라간 후였고, 상인은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여관의 으슥한 곳으로 세운을 데려갔다.
당연하게도, 목격자 따위는 없었다.
심지어 상인의 편들 중에서도.
“난 그저 네 호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호의라니, 그럴 리가! 이건 사기다! 당신은 분명 저와 계약했습니다!”
“그러니까 계약서를 보여달라니까.”
“그건……!”
상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세운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가만히 미소 지었다.
계약서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 계약서는 어젯밤, 세운이 직접 불태워 버렸으니까.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귀영보(鬼影步) ]– 무림 최고의 암살단이라 불리는 암귀대(暗鬼隊)가 사용한다는 보법. 세상에 그림자가 존재하는 이상, 그들을 찾아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고 전해진다.
귀영보.
세운이 저 상인에게서 계약서를 훔쳐냈을 때 사용하였던 보법이다.
‘킬케르가식 은신술로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아무리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해도, 상인은 계약서를 품속 깊숙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여관주인과 독대 중이라 섣불리 건드릴 수도 없었고, 술을 다 마신 후에는 하인들과 함께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런데도 세운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귀영보와 킬케르가식 은신술이 합쳐진 효과는 상상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진위를 가리고 싶으면 경비병이라도 부르지. 나는 너무 억울해서 말이야.”
“자, 잠깐! 내가 부르지! 이봐, 경비 데려와!”
“네!”
경비라는 말에 눈을 번쩍 뜬 상인이 세운을 다급하게 세운을 가로막으며 경비를 불렀다.
누가 보아도 세운이 유리한 상황에서 스스로 경비를 부르다니, 미리 뇌물을 먹여둔 경비병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던 중.
“충성! 제헤튼 소속 경비병 데이든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채 일 분도 되지 않아 두 명의 경비병이 여관 안으로 들어왔다.
어제 여관까지 이동하며 보았던 경비병 특유의 경갑옷에 기다란 창까지, 완벽한 경비병의 모습이었다.
그들이 들어오자마자 상인은 무릎을 꿇으며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저들이 저를 사기꾼으로 몰고 가려 했습니다! 저는 그저 상인으로서 돈을 약속받고 안내를 했을 뿐인데…….”
“어허! 어찌 제헤튼에서 그런 일을 벌일 수가!”
“아무래도 외부에서 찾아온 이들이라 제헤튼의 법을 모르는 듯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여 친절을 베풀었더니 뒤통수를 때릴 줄이야…….”
“제헤튼의 엄격한 법을 알려줘야겠군요! 잘 알겠습니다!”
경비병은 세운의 말을 들을 생각 따위 추호도 없다는 듯이 상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창을 앞으로 내세웠다.
주변으로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그 사이에서 세운은 꼼짝없이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그 순간.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일 초식, 혈랑조(血狼爪)가 강화됩니다.
서걱-
일순간 세운의 검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번뜩였다.
세운을 겨누고 있던 경비병의 창이 다섯 조각이 나 바닥에 흩어졌다.
“이, 이게 무슨 짓인가! 나에게 검을 휘두른 것은 곧 제헤튼을 향해 검을 휘두른 것이나 다름없다!”
“맞습니다! 얼른 항복하십시오! 제헤튼의 법은 엄격합니다! 당장 무릎 꿇지 않으면, 사형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 사형이다! 얼른 무릎을 꿇고 항복해라!”
경비병은 세운의 무력에 당황하면서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경비병에게 검을 휘두르는 것은 그 소속인 제헤튼에 검을 휘두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래, 사형에 처할 수도 있겠지.”
세운이 이에 물러서지 않고 한 걸음 다가섰다.
그러고는 또다시 휘둘러지는 뒤랑달.
옆에 서 있던 경비병이 놀라며 창을 들어서 막았지만, 그 창 역시 다섯 조각으로 나뉘어 바닥에 와장창 떨어졌다.
결국,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경비병의 갑옷이 산산이 조각나며 터지듯 흩어졌다.
“네가 진짜 제헤튼의 경비병이라면 말이야.”
“허억!”
경비병의 갑옷이 사라지자, 그 안으로 하얀 속옷 한 벌과 맨살이 드러났다.
그가 다급하게 갑옷을 주워보았지만, 갑옷의 이음새는 이미 전부 끊겨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제헤튼의 경비병은 전부 바다 물결이 그려진 창대를 사용하지. 갑옷은 구한 모양이지만, 창은 구하지 못한 모양이군.”
“아니다! 이, 이건 그러니까. 그래! 오래 사용하느라 문양이 지워졌을 뿐이다!”
“그럼 원래는 어디에 문양이 그려 있었지?”
“소, 손잡이 부근?”
“역시.”
“……이 아니라 창끝! 창날에 새겨 있다!”
“틀렸다. 문양은 손잡이 부근에 새겨 있다.”
“그럼 내가 맞았잖아!”
“그걸 찍으려는 것부터가 네가 경비병이 아니라는 증거지.”
경비병이 들어왔을 때부터, 세운은 이미 그들이 진짜 경비병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세운은 회귀 전에 이 항구 도시에서는 제법 오랜 시간을 보내왔고, 거주민들이랑도 꽤나 가깝게 지냈었으니까.
특히 경비병은 플레이어에게 까다롭기로 유명해서 특징을 명확하게 기억했다.
“당신이 이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어제 봤지.”
“하, 하루 만에 그걸?”
당연히 거짓말이다.
세운의 눈썰미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하루 만에 경비병이 가진 창의 손잡이에 새겨진 문양까지 알아보고 기억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이미 패닉 상태에 빠진 상인은 세운의 말을 믿을 상태가 아니었다.
벌컥!
“형님! 데려왔습니다!”
“잘했다.”
“겨, 경비병!”
소란을 틈타 여관을 빠져나갔던 박정필이 타이밍 맞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박정필을 뒤이어 제헤튼의 진짜 경비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운의 말대로 손잡이에 선명한 바다 물결무늬가 그려진 창을 쥐고서.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인상을 크게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게, 당장 문 앞에서 한 명은 속옷만 입고 있었고, 한 명은 경비병을 사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 두 놈의 죄질은 확실하군. 잡아라.”
“네!”
“자, 잠깐! 저희는 명령을 따른 것뿐입니다!”
“닥쳐라!”
“저 상인이 시켰습니다! 돈은 두둑하게 챙겨주겠다며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경비병을 사칭하라고 시켰습니다!”
“이것들이!”
경비병에게 잡히자마자 동기를 술술 불어대는 사칭범들.
이유는 간단하다.
저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돈.
당장 경비병에게 잡혀가는 상황에서 상인과의 의리를 지킬 필요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은 경비병에게 최대한 협조적으로 행동해 자신들의 죄질을 낮추는 게 더 이득이라 판단한 것이다.
“사칭을 시켰다라……. 대충 짐작은 가는군.”
“오해십니다! 저는 그저 선량한 상인답게 거래를…….”
“제가 처음부터 봤습니다! 저 외부인들이 오자마자 호구 하나 잡았다며…….”
상인에게는 불행히도…… 사칭범은 첫날에 그를 따라 짐꾼 일도 했었던 사람이었다.
당연히 상인의 계획도 전부 알고 있었기에 설명이 이어질수록 진짜 경비병의 표정이 한껏 찌푸려졌다.
“오, 오해…….”
펄럭.
상인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팔을 내뻗자, 손에 꽉 쥐고 있던 두루마리가 떨어지며 ‘저는 사기꾼입니다.’라는 글자가 비쳤다.
“자세한 내용은 경비대에 가서 듣지.”
“잠깐!”
경비병들이 상인을 포박하는 순간, 옆에서 조용히 이 광경을 지켜보던 여관주인이 달려와 경비병의 손목을 붙잡았다.
역시 같은 편이라는 걸까?
상인이 믿고 있었다는 눈빛으로 여관주인을 바라보자.
“이자는 저희 여관과 한 달 치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런 사기꾼인 줄은 추호도 몰랐습니다! 이렇게 되면 저희 여관의 손실은…….”
“이, 이 X이!”
“걱정하지 마라. 제헤튼의 법규에 따라 모든 손실은 이자에게 청구하겠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놈도 저랑 한 패입니다! 아악! 이거 놔! 으아아악!”
상인과 여관주인은 어디까지나 돈으로 맺어진 관계. 돈을 청구할 수 없게 된 순간부터, 둘은 남남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여관주인의 말로 보건대…….
“그럼 저희는 한 달간 여기에 계속 머물러도 되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식사도 세끼 전부 최고급 만찬으로 준비해 드릴 테니 푹 쉬시면 됩니다!”
아무래도 여관을 옮길 필요는 없어 보였다.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완벽한 연극이었다며 웃음을 크게 터트립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역시 당신은 자신들의 세력에 딱 어울리는 인재였다며 입꼬리를 올립니다.
이로써 최고급 여관에서 한 달 동안 돈 걱정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여관에 머물던 사람들 역시 재미난 구경이었다며 세운에게 손뼉을 쳐댔다. 세운의 길드원들 역시 잠시 벙쪄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사이, 세운은 뒤에서 다 자신이 경비병을 제때 데리고 온 덕분이라며 콧대를 세우고 있는 박정필을 불러냈다.
“부르셨습니까, 형님? 히히, 역시 제 뛰어난 일 처리에 칭찬을 해 주시려고…….”
“시킬 일이 있다.”
“에에? 벌써요? 조금만 쉬고 하면 안 됩니까? 쉼터 들어온 지 이제 이틀 차인데!”
“그럼 한 이 주일간 침대에서 푹 쉬게 해 줄까?”
“오오, 당연히…….”
“다리가 부러진 채로.”
“……당연히 형님 일을 도와야죠! 저, 형님의 오른팔 아닙니까! 뭐든 시켜만 주십셔!”
역시 이놈은 조금이라도 풀어주면 이 꼴이다.
앞으로도 풀릴 틈 없이 꽉꽉 쪼아주리라 다짐하고, 말을 이었다.
“오늘부터 도시를 돌면서 정보 좀 찾아내라.”
“정보요? 어떤 정보 말입니까?”
다섯 번째 쉼터, 항수 도시 ‘제헤튼’.
이곳에는 플레이어에게 도움 되는 수많은 요소가 존재하지만, 세운이 이곳에서 찾아낼 건 하나뿐이었다.
모든 층에서 십 층마다 하나씩 존재했던 그것.
“운석.”
아우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