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7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83화(279/675)
제283화
“저…… 정세운 플레이어님?”
의회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혼란스러운 표정을 유지하던 로렌이 무언가 결심했다는 듯이 표정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한창 위치 추적 마법에 신경 쓰는 중이었던 세운 역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위치 추적 마법이라 해도 급하게 새겨놓은 거라 일정 거리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위치 추적이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레드 피쉬 상단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혹시 계약 이전을 생각하고 계시는 거라면…….”
“아닙니다.”
“후우…… 그럼 혹시 무슨 이유로 레드 피쉬를 고른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곤란하시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긴, 다른 곳을 골랐다면 몰라도 레드 피쉬는 블루 터틀과 같은 삼대 거대 상단 중 하나이기에, 로렌 입장으로는 세운의 입장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말로는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애써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있는 게 속이 꽤 애타는 모양이다.
‘말을 해도 될까.’
잠시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아온 로렌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보아하니 레드 피쉬와 블루 터틀의 사이가 좋은 편도 아닌 것 같았고, 어쩌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한 세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제가 제헤튼에 가게를 차린 이유가 어떤 세력을 찾아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그게 레드 피쉬일지는 몰랐지만요.”
“…….”
너무 자세하게는 설명하지 않았다.
여기서 아우터나 운석에 대한 얘기를 꺼내봤자 그녀에게 더 큰 혼란을 안겨주는 꼴이었으니까.
그저 지금의 설명에 꼭 필요한 요소만 쏙쏙 골라내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녀의 표정이 더욱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이렇게 된 겁니다.”
세운의 설명이 끝나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살짝 떨리는 손을 숨기기 위해 주먹을 꽉 쥔 그녀가 숨을 크게 내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레드 피쉬에 대한 소문은 저도 들은 적 있어요. 지금 들어보니, 그 소문이 진짜인 것 같네요.”
“소문?”
“레드 피쉬가 생체 실험을 진행 중이다…… 라는 소문이에요. 그들의 가계부에 수상한 점이 꽤 많았거든요.”
“다른 상단의 가계부도 알아낼 수 있습니까?”
“물론, 완벽하게는 아니에요. 그러니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죠.”
성흔의 반응에 수상한 소문이라……. 레드 피쉬가 운석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더욱 크게 늘어났다.
‘그것보다 생체 실험이라니.’
아우터와 생체 실험.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세운의 머릿속에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부디 그 생체 실험이라는 게 아우터와 연관되어 있지 않아야 할 텐데…….
그때, 로렌의 입에서 긍정적인 대답이 들려왔다.
“저희도 돕겠어요.”
“……괜찮겠습니까?”
“저흰 이제 파트너잖아요? 물론, 맨입으로 도와 드리겠다는 건 아니에요.”
“충분합니다. 최선의 경우, 이곳을 떠날 때 가게를 통째로 넘겨드릴 생각도 있습니다.”
“저희로서는 가게의 브랜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정세운 님이 더 중요해요. 하지만…… 그렇게 말해 주신다면 저희야 감사하죠.”
블루 터틀 상단의 도움이라면 충분히 받을 만하다.
세운이 레드 피쉬를 정찰할 계획을 세우던 동안, 마차가 가게 앞에 도착했다.
* * *
“형님, 여기 진짜 장난 아닌데요? 구린내 넘쳐나요!”
“그래서, 어떤 소문들이었는데?”
“상단 중에서 유일하게 암시장에서도 이름난 곳이었습니다. 주로 취급하는 게 살아있는 몬스터인데 심지어 인간 노예도 데려간다더라구요?”
“제헤튼에서 노예 거래는 금지되어 있을 텐데?”
“그러니까 암시장이죠! 거래 목록만 보면 무슨 사악한 흑마법사 단체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레드 피쉬는 각종 식료품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상단이다.
그런 만큼 육가공 식품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각종 동물을 취급하는 건 정상이지만, 몬스터나 노예는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상적이다.
아무래도 로렌이 말한 ‘생체 실험’이라는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다.
“……크흠. 정필 씨, 흑마법사는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저 생체에 대한 호기심이 깊은…….”
–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원래 무지한 인간들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을 악으로 몰아붙이게 마련이라며 고개를 내젓습니다.
“아니, ‘사악한’ 흑마법사라고! 이 양반아!”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백현의 중얼거림을 넘기고, 박정필이 말을 계속 이어갔다.
박정필은 확실히 꽤 많은 정보를 가져왔는데, 모두 수상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딱 들어도 수상해 보이는데 왜 아직까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
“레드 피쉬잖습니까. 제헤튼의 의회 중 한자리를 꿰차고 있는데 누가 함부로 건드리겠습니까?”
평등을 추구하는 도시, 제헤튼.
영주처럼 일인이 관리하는 체제가 아니라 각 분야에서 뽑힌 열두 명의 의원이 다수결을 통해 정치를 이끌어가는 민주주의적 체계.
하지만, 이 역시 완벽한 건 아니었다.
로렌이 말한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도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권력이 찢어져 있다고 해도 결국 이렇게 강한 세력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위치는?”
“대외적인 상단 건물이야 제헤튼 중심에 있긴 한데, 아무래도 거긴 아닌 것 같습니다.”
“이유는?”
“제가 또 암시장에도 한 번 들러 봤지 않겠습니까? 정체를 숨겼지만, 제가 또 용하게 레드 피쉬를 찾아냈죠!”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설마 혼자 넘어지다가 부딪힌 사람이 레드 피쉬일 줄은 몰랐다며 계약자의 운에 혀를 내두릅니다.
“크흠! 우연이 아니라 제가 딱 알아보고 일부러 넘어지는 척을…….”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그러기엔 레드 피쉬인 걸 알아채자마자 당신이 너무 대놓고 놀라지 않았냐며 대꾸합니다.
“크흐흠, 아무튼! 그다음에 조용히 뒤따라가 봤거든요.”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끝까지 못 따라갔습니다. 어휴, 미행 감시가 어찌나 철저한지. 조금만 붙어도 바로 알아채던데요?”
저래 보여도 박정필의 미행 실력은 꽤 훌륭한 편이다. 디아블로 길드에서 유서아 다음으로 보법에 능숙한 게 바로 박정필이었으니까.
도둑의 공작이라 불리는 발레포르의 권능까지 이어받았으니 실수만 하지 않으면 들킬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끝까지 쫓아가지 못한 걸 보니 그 말대로 감시가 꽤 철저했나 보다.
“솔직히 조금 이상했습니다. 분명 알아차릴 거리가 아닌데 귀를 바짝 세우고 두리번거리는 게, 인간이 아니라 동물 추격하는 느낌이었다니까요?”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확실히 비정상적이긴 했다며 다급하게 숨다가 벽에 머리를 부딪친 계약자의 모습을 떠올리고 웃음을 터트립니다.
성좌마저 수상하라 할 감지 능력…….
어쩌면 그게 생체 개조의 성과가 아닐까?
아쉽게도 박정필이 알아낸 건 딱 여기까지였다.
그 이후로는 거리가 너무 벌어져 추적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흔적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었다고 한다.
다만…….
“분명한 건 도시 쪽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추적에 대비하려는 건지 길을 꼬긴 했는데, 중심지에서 완전히 바깥으로 향했다니까요?”
“그럼 어느 쪽이었지?”
“일단 해안 쪽인 것 같긴 한데, 저도 확신은 못 하겠습니다.”
“알겠다. 그럼 일단 위치를 찾아내는 데 집중해 줘. 나도 한 번 알아볼 테니까.”
세운은 그 즉시 로렌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나름대로 조사를 해 보겠다며 발을 움직였다.
또한 혹시 모르니 길드챗을 이용하여 길드원 모두에게 레드 피쉬에 대한 언질까지 해 두었다.
그리고 얼마 후.
“세운 님. 오늘 밤, 레드 피쉬에서 비밀리에 큰 거래가 잡힌 정황을 확인했습니다.”
“형님! 오늘입니다! 뭔진 모르겠는데, 엄청 큰 거 옮긴다던데요?”
어느덧 제헤튼을 아우를 정도로 넓어진 디아블로 길드의 정보력 덕분에, 레드 피쉬의 꼬리를 금방 잡아낼 수 있었다.
* * *
“여기가 암시장인가?”
“장난 아니지 않습니까? 좀 비싸긴 해도, 없는 거 빼고는 다 있다니까요?”
암시장의 입구는 항구에서 꽤 먼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는 선착장에 있었다.
왼편의 거대한 암석을 뚫고 들어가니 어두운 분위기의 암시장이 나왔는데, 사람이 꽤 많아 보였다.
낮에는 볼 수 없었던 사람들.
로브를 쓰고, 피부에 문신이 가득한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느낌이 드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어? 이거, 형님 가게 물건 아닙니까?”
“목소리 낮춰.”
“아, 맞다. 죄송합니다!”
심지어 박정필이 발견한 것처럼 세운이 팔던 인챈트 무기도 전시되어 있었다.
보아하니 특히 인기가 있었지만 물량이 적었던 물품에 바가지를 씌워 팔고 있는 모양이다.
그 외에도 살아 있는 몬스터를 자리에서 즉시 도축하고 있거나, 폭탄이나 독극물같이 제헤튼의 법상으로 정식적인 거래가 매우 까다로운 위험 물품들도 가득했다.
회귀 전의 세운도 암시장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플레이어가 직접 암시장을 출입할 일은 없다시피 했으니까.
“넌 여길 어떻게 찾은 거야?”
“흐흐, 제가 누굽니까. 도박장 몇 번 들렀더니 대부업 하는 놈들이 몇 명 찾아왔는데, 그중 하나가 암시장에서 활동하는 놈이더라구요.”
“도박? 내가 도박을 허락했던가?”
“……하하! 저는 정~말 도박을 하기 싫었는데, 아무래도 저런 자리가 정보가 제일 잘 나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정말 할 수 없이 들렀던 거죠!”
박정필의 말에 세운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 말대로 제대로 된 정보를 구해 왔기에 더 뭐라 하기도 애매하다.
“형님! 저기가 경매장입니다!”
“꽤 크네.”
“오늘은 경매가 없는 날이라 조용한데, 평소에는 장난 아닙니다.”
“경매가 없는데 레드 피쉬의 거래는 어떻게 알아낸 거야?”
“흐흐, 제가 형님의 오른팔! 박정필이잖습니까! 오늘 옮기는 거래 물품이 꽤 거물인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인원이 많이 필요한 모양이더라구요.”
“그래도 비밀이 꽤 엄중했을 텐데?”
“그놈이 저한테 빚이 좀 있어 가지고, 빚 좀 까준다니까 술술 불더라구요. 아, 형님. 그래서 말하는 건데 저 활동비 좀…….”
“빨리 거래 장소에 안내나 해.”
“넵!”
암시장의 끝자락.
암시장이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게 가득하던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고, 조명이 줄어들었다.
중간중간 감시를 서는 이들이 몇몇 보였지만 세운과 박정필을 잡아낼 수는 없었다.
그 경계를 뚫고 들어가자 거대한 창고와 그 앞의 공터가 나타났다.
둘은 그사이에 적당히 숨어 거래를 기다렸다.
시간을 잘 맞춰온 걸까?
십 분도 되지 않아, 창고의 문이 스르르 열리며 무언가가 끌려 나왔다.
“와, 형님 저거…….”
“씨 서펜트네. 살아 있는 채로 포획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씨 서펜트.
바다에 존재하는 몬스터 중에서도 크고 강력한 몬스터였다.
전신이 밧줄로 꽁꽁 포박되어 있어 움직이는 게 불가능한 상태로 쌔액거리며 힘들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몸 곳곳에 작살이 박힌 채였는데, 출혈이 심해질까 싶어 일부러 빼지 않은 듯했다.
“히이잉-”
도대체 얼마나 무거운 것일까?
열 마리가 넘는 망아지가 씨 서펜트가 묶인 간이 수레를 끌고 있었고, 그 뒤로도 수많은 사람이 수레를 밀고 당기는 중이었다.
저런 몬스터를 이곳까지 데려온 게 신기할 정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렸다는 듯이 레드 피쉬 상단 쪽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저건…….”
로브로 몸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가려지지 않는 큰 덩치.
직각으로 뻗은 어깨는 저 덩치가 단순히 살이 아닌 근육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 수는 고작 다섯.
그 다섯 명이서 망아지를 전부 치우고 밧줄을 어깨에 감고 쥐더니.
드르르륵!
씨 서펜트가 실린 수레가 거짓말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댓 마리의 망아지와 수십 명이 간신히 끌던 수레를 겨우 다섯 명이서 움직이다니.
과연 저게 그저 힘 좋은 사람의 수준으로 가능한 것일까?
“형님, 안 따라가십니까?”
침까지 꿀꺽 삼키고 긴장하고 있던 박정필이 옆을 돌아보았다.
그때, 세운은 고개를 살짝 내린 채로.
‘설마, 진짜 아우터로 생체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건가?’
수레를 이끄는 다섯 명을 향해 옅은 빛을 흘려대는 성흔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