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8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84화(280/675)
제284화
의회에서 레드 피쉬의 상단주를 마주했을 때랑은 달랐다.
그때는 옅은 흔적이 느껴지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당장 눈앞에 아우터가 있는 듯한 느낌.
성흔이 먹잇감을 눈앞에 둔 것처럼 빠르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정신은 멀쩡한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수레를 이끄는 다섯 명은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서로 간에 대화도 일절 없는 게 조금 수상하긴 했지만,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세운의 기억에서 아우터에게 잠식당하고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이는 없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저들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그렇다고 저들과 싸웠을 때 질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오히려 궁금했다. 대체 어떻게 아우터의 힘을 제어하고 있는 것인지 말이다.
“형님, 이대로는 놓칠 수도…….”
“가자.”
거리가 충분히 벌어졌다고 생각한 세운이 몸을 움직였다.
박정필 역시 다급하게 세운의 뒤를 쫓았다.
“아, 일부러 기다리고 계신 겁니까?”
“네가 말했잖아. 저놈들, 감시 경계가 심했다고.”
“근데 이렇게 떨어지면 놓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저놈들, 어떻게 한 건지 수레바퀴 자국도 안 남겼는데.”
확실히, 얼마나 지났다고 녀석들의 흔적이 깔끔히 사라져 있었다.
아무래도 그 다섯 명 외에도 전문적으로 흔적을 지우는 누군가가 더 있는 모양이다.
“감각 싸움으로 질 것 같지는 않거든.”
“오오!”
예전이었다면 반신반의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흑섬에서 괴인들을 포식하고 세운의 모든 감각은 한 단계 위로 발전했다.
지금만 하더라도 수레바퀴가 바닥을 구르는 희미한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고, 바퀴가 바닥에 닿는 미약한 진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거리가 꽤 벌어졌지만, 녀석들을 미행하는 건 쉬웠다.
다만.
‘역시, 더 있었네.’
녀석들의 이동 경로에는 미행을 감시하는 추가 인원이 숨어 있었다. 세운이 아니었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교묘하게.
“넌 돌아가 있어.”
“네? 정말 그래도 됩…… 아니, 제가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잔말 말고 가. 도움 안 되니까.”
“넵.”
세운 혼자라면 몰라도, 박정필까지 숨겨주기는 힘들었다.
물론 신경을 쓰면 가능은 하겠지만, 그렇게까지 박정필을 데려간다고 해도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오늘 모든 일을 끝내든, 상황을 보고 후퇴를 하든, 세운 혼자서 행동하는 게 더 편하다고 판단되었다.
– 내공을 통해 귀영보의 움직임이 더욱 은밀해집니다.
세운의 몸이 그림자에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킬케르가식 은신술이 적용된 덕분에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발을 내디뎌도 작은 진동도 울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전에 사용했던 마몬의 보물로 냄새까지 지워냈으니, 감시자들은 세운의 기척을 알아챌 수 없을 것이다.
잠시 그들을 아예 처치하고 지나갈까도 생각했지만.
‘지금은 안 되겠지.’
저들에게 어떤 보고체계가 이루어져 있을지 모르기에 괜히 건드렸다가 미행을 들킬 우려가 있었다.
그러던 중.
‘음?’
굵고 짧은 진동이 일어난 후, 수레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와 함께 주변을 감시하고 있던 자들의 기척 역시 연기처럼 사라졌다.
감각을 활성화하여 주위를 차분하게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지경.
놓쳤다.
이래서야…… 박정필이 미행에 실패한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내가 직접 찾으라는 건가.’
여기까지만 길을 알려주면, 다음부터는 충분하다.
세운에게는 레드 피쉬에 넘겨준 ‘광휘석’이 있었으니 말이다.
* * *
세운이 거래를 따라 레드 피쉬의 숨겨진 본거지에 찾아오기 얼마 전. 그러니까, 의회가 끝나고 난 직후.
“흐음, 정말 맛있군.”
스윽, 슥.
어두운 방.
어둠에 가려진 남자가 쇳소리를 내며 음식을 썰고 있었다.
언뜻 보아도 평범한 음식은 아닌 게, 짙은 어둠 속에도 보랏빛 색이 가려지지 않았다.
“적당한 암모니아 향에 딱 알맞게 올라온 충란(蟲卵)까지.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맛’이라고 할 수 있지.”
그가 만족해하며 고개를 들어 올리자, 어둠에 가려져 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무언가 피부병에 걸린 것처럼 썩어 문드러진 얼굴 사이에서 검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입에서는 타액인지 음식물인지 모를 게 뚝뚝 떨어졌다.
그러던 중, 암실의 어둠에 숨겨져 있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얼마 전 의회에 참석했던 레드 피쉬의 상단주였다.
“마스터를 뵙습니다.”
한 상단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상단주가 마스터라 외치며 고개를 깊게 숙인다.
그 인사를 남자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인다.
“보고드리겠습니다. 이번 의회는…….”
“알아서 해라.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 따위 관심 없으니.”
“네, 알겠습니다.”
상단주는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남자가 손을 휘젓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다.
상단주가 뒷걸음질을 치며 방에서 물러나려던 중, 남자가 문뜩 고개를 내려 상단주를 바라보았다.
흰자도 없이 새까만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번뜩였다.
“잠깐.”
“……네.”
“품에 그건 뭐지?”
남자의 말에 상단주가 즉시 품 안의 물건을 내놓았다.
방에는 분명 조명 하나 없음에도 그 물건은 전구처럼 찬란한 빛을 흩뿌렸다.
그에 새까맣던 방이 순식간에 오색 빛으로 물들고,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의회에서 웬 마법 상점의 점주라는 자에게서 받은 물건입니다. 마음에 드신다면…….”
“치워라.”
“알겠습니다.”
“기분 나쁜 물건이군. 얼른 가지고 꺼져라.”
“들어가 보겠습니다.”
남자는 빛을 싫어한다. 하지만, 싫어한다고 해도 원래 보통 표정을 한 번 찌푸릴 정도로 이렇게나 거부감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 때문일까?
이유는 몰라도…….
꿈틀-
다시금 어둠으로 물든 남자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화난 듯이 난폭하게 기어 다니고 있었다.
* * *
‘지하인가.’
광휘석이 가리키는 위치는 아래였다.
분명 주변에 그 어떠한 입구나 통로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대체 어떻게 땅으로 꺼졌는지 모르겠다.
다만, 광휘석이 반응할 정도라면 이미 목적지와 꽤 가까워졌다는 뜻.
여기까지 와서 그냥 되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통로가 없다면…….’
만들어 내면 될 뿐.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그라운드 터널(Ground tunnel) ]– 생활계 마법이자 생존계 마법으로써, 땅을 파거나 흙을 쌓아 올려 거대한 통로를 만들어 낸다.
그라운드 터널.
황탑의 마법으로 그저 흙을 파내는 1서클 마법 ‘디그’의 상위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세운이 손으로 땅을 짚자마자 마법은 바로 그 힘을 드러냈다.
구구구구!
미약한 진동과 함께 바닥이 뚫리기 시작했다.
통로를 만든다고 해도 보통은 꽤 거친 마법이지만, 세운이 섬세하게 마나를 제어하여 진동을 최대한 억눌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로의 크기는 점점 더 길어졌다.
5m, 10m, 20m.
통로가 세운의 생각 이상으로 커져 나가던 중.
후두둑-
‘나왔다.’
손끝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통로 안으로 몸을 던졌다.
통로 아래로 내려갈수록 무언가 불쾌한 공기가 피부를 휘감는 느낌이 들었다.
내려가면서도 혹시 몰라 벽에 손을 짚으며 입구를 막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툭.
세운이 고양이처럼 가볍게 바닥에 착지하였다.
주변을 둘러보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조사를 시작…… 하려 했지만.
“……?”
“……?”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운 한 번 지지리도 없다며 고개를 내젓습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당신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먹이를 환영합니다.
“젠장…….”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는 순간, 통로를 걷고 있던 이들과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씨 서펜트를 끌고 여기까지 이동했던 다섯 명의 놈들이었다.
놈들은 당황하는 것도 잠시, 곧바로 눈을 번뜩이며 다리를 앞으로 내밀었고.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그와 함께 세운의 검도 함께 번뜩였다.
놈의 발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붉게 물든 검이 놈의 목을 덮쳤다.
카앙!
‘……카앙?’
한 놈의 목을 베고 자연스럽게 다음 놈에게 검을 휘두를 작정이었는데, 처음부터 계획이 어긋났다.
뒤랑달이 튕겨 나가다니……? 어지간히 좋은 갑옷을 입고 있는 걸로는 불가능할 텐데.
스륵-
검격으로 인해 잘려 나간 로브가 벗겨지고 나서야 세운은 뒤랑달이 튕겨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갑옷이 아니었다.
‘갑각?’
어깨부터 시작해 목까지 기이한 갑각이 부분부분 박혀 있었던 것이다.
세운의 검을 막아낸 게 바로 저거였다.
그런데, 갑각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놈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으어어-”
쿠웅!
대충 휘두른 주먹이 세운의 검과 충돌했다.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아 검의 경로를 급히 돌려 막아낼 수 있었는데, 흐늘거리는 기합과는 달리 굉장한 위력이었다.
이미 능력치만으로는 40층의 플레이어 수준을 아득히 벗어난 세운의 몸을 뒤로 밀어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쿵, 쿠웅!
다른 네 놈 역시 공격을 시작했다.
다행히 속도가 그리 빠른 편이 아니었고, 기술 따위 없는 마구잡이식 휘두르기라 가볍게 피해 낼 수 있었다.
게다가 보아하니 소리도 제대로 못 지르는 듯하니 잘만 처리하면 들키지 않고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갑각이 단단한 것 같지만, 저렇게 듬성듬성 박혀 있으면 상관없지.’
갑각이 박혀 있는 건 오른쪽 어깨부터 시작해 목 언저리까지. 그 외에는 평범한 사람의 몸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평범하다고 하기에는 거대한 덩치와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불끈거리는 근육이 가득했지만 말이다.
– 내공을 통해 태산십팔반검의 제오 초식, 태산양분(泰山兩分)이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세운이 두 손으로 손잡이를 꽉 잡은 채로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거대한 산조차도 양분할 것 같은 묵직한 기세.
애초에 피할 생각도 없었는지 두 손을 앞으로 뻗으며 다가오던 놈의 허리가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두 동강 났다.
‘이걸로 한 놈.’
다른 놈들도 갑각의 위치만 파악하면 상대하는 건 문제 없어 보였다.
힘이 아무리 강해 봤자, 그걸 이용하지 못하는 놈들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생체 실험이라는 것을 받다가 이성이 날아간 모양이다.
일단은 갑각의 위치를 알아보기 위해 놈들의 로브를 전부 찢으려던 중.
“으어어어-!”
몸이 두 동강 난 채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놈이 낮고 음울한 괴음을 내질렀다.
그와 함께 세운의 앞에 있던 다른 놈들까지 낮은 괴음을 지르며 스스로 로브를 잡아 뜯었다.
다만, 세운의 시선은 로브를 벗고 있는 놈들이 아닌 바닥에 널브러진 놈을 향해 있었다.
깔끔하게 잘려 있는 허리의 단면. 그 사이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검은 기생충 같은 것들을 향해.
그제야 세운은 전투에 집중하느라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던 갑각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운석.’
자세히 보니 어깨 외에도 몸 곳곳에 운석의 파편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허리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저것들.
크기도 적고 양도 적었지만, 저것들은 분명…… ‘아우터’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