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82)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86화(282/675)
제286화
화염 마법은 위험하다.
지하라는 지형적 환경 때문에 세운도 타격을 입을 수 있고, 자칫하면 지형이 붕괴되며 아우터가 부서진 지반을 통해 지상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파멸의 권능은 직접 휘두를 때 가장 효과적이지, 마법에 그 힘을 제대로 담기는 어려웠으니까.
그러니.
쩌저적-
– 흑탑의 묘리에 따라 ‘문 라이트’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녹탑의 묘리에 따라 ‘문 라이트’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 적탑의 묘리에 따라 ‘문 라이트’의 범위가 확산됩니다.
눈앞의 모든 것을 얼려 버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얼음 호수에서 해 봤던 것처럼, 아우터라 하더라도 냉기를 완전히 저항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일단 얼려둔 다음에 파멸의 힘으로 아우터를 제거해 나가면 된다.
세운의 손바닥 위로 얼음이 몰려들더니 보름달의 형상을 만들어 크기를 키워간다.
이제 이걸 실험실 중심에 띄우기만 하면 끝이다.
제헤튼에서 세운의 마법을 막아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라고 생각한 순간.
“이런, 정말 나타나셨군요.”
빠직!
크기를 불려 나가던 보름달에 큼직한 균열이 일어났다.
몰려들던 냉기가 흩어지고, 갈라진 보름달이 흐물거리며 녹아내렸다.
예상치 못한 마법의 불발에 마나가 역류하여 끔찍한 통증으로 되돌아왔다.
“디스펠……?”
세운이 실패한 게 아니다. 누군가 고의로 세운의 마법을 취소시킨 것이다.
디스펠.
상대의 마법을 강제로 취소시키는 마법으로써 최소 상대와 동급의 마법 실력을 지녀야만 가능한 마법이다.
그 말은, 6서클에 다다른 누군가가 세운의 마법을 취소했다는 뜻.
곧, 느긋한 목소리와 함께 그 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만간 제가 찾아가려 했는데, 이렇게 직접 찾아와주시다니. 이거 정말 놀랍군요.”
로브를 쓰고 나타난 남자.
다만, 로브는 일반적으로 암시장에서 입고 다니는 모습을 가리기 위한 것과는 달랐다.
녹색을 중심으로 중심에 뱀 문양이 새겨 있는 화려한 로브.
제헤튼 유일의 마법 길드, 서펜트. 그중에서도 길드장만이 입을 수 있는 마스터의 로브였다.
“반갑습니다. 서펜트의 길드 마스터, 메로프 머틀입니다.”
메로프 머틀.
얼마 전, 세운의 가게에 찾아와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내걸다 블루 터틀 상단의 등장 덕분에 불명예를 안고 퇴장한 인물이다.
그 이후, 서펜트 길드의 위세는 갈수록 줄어들었고 요즘은 지부까지 팔아넘겨 모습을 감췄다고 알려졌는데…… 그런 그가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일까?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그 눈빛, 아주 좋습니다. 조금만 더 그 눈빛을 드러내셨다면 이곳에서 마주칠 일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어떻게 내 마법을 캔슬시킨 거지?”
메로프의 경지는 4서클.
마법 길드의 마스터라고 하기에는 그야말로 볼품없는 수준이었다.
그런 그가 세운의 마법을 캔슬시켰다.
4서클 마법사로는 불가능한 행위였다.
이에 메로프가 로브의 그늘에 가려진 입술을 기괴하게 비틀었다.
“아, 그거야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메로프가 로브를 걷었다.
머리의 오른쪽 부근에 운석 파편이 삐죽삐죽 솟아 있었고, 심장이 있는 부위에 말뚝처럼 운석 파편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세운은 볼 수 있었다.
메로프의 심장 주위를 회전하고 있는 여섯 개의 고리를.
‘설마 아우터로?’
기존에 있던 네 개의 서클 외에 검은 서클 두 개가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기존의 서클 역시 시꺼멓게 잠식당하고 있었다.
흑탑의 묘리가 깃든 세운의 다크 마나 서클과는 다르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우터에게 잠식당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두 개의 서클.
“제가 당신의 경지를 추월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는, 세운과 같은 6서클의 마법사였다.
* * *
블루 터틀 상단에게 배신당한 후, 서펜트 길드는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몰락의 길을 걸었다.
“블루 터틀이 등을 돌렸으면 끝 아닌가?”
“근데 진짜 다르긴 다르더라고. 외부인이라고 무시했는데, 그게 아니더라니까?”
“이제야 새 시대가 도래했네. 솔직히, 서펜트에서 갑질하는 거 보면 외부인보다도 마음에 안 들었다니까?”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펜트를 비난하고 헐뜯었다.
가격을 낮추거나 행사를 열어보았지만, 외부인은커녕 거주민들도 찾아와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이제 와서 아무리 애써 봤자 가격이나, 품질이나, 무엇 하나 새로 생긴 마법 상점의 물건을 뛰어넘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스터, 저희 계약 다 끊겼습니다. 매출도 안 나오고…… 저희 진짜 어떡합니까?”
“우리 망한 것 같은데.”
“들었어? 블루 터틀에서 마법사 모집한대. 그 마법 상점에서 수련생을 구하나 봐.”
“나도 들어가 볼까? 그 기술만 배울 수 있으면 평생 굶을 걱정 없을 텐데.”
“쉿! 저기 마스터 지나가신다.”
믿었던 길드원들 역시 빠르게 등을 돌렸다.
애초에 서펜트 길드는 제헤튼 유일의 마법 길드라고 불릴 뿐, 그 구성은 상단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돈이 안 들어오는 상황에서 의리를 지키며 남아 있는 이는 별로 없었다.
“젠장, 젠장, 젠장! 대체 왜 이렇게 된 겁니까?”
“마스터…….”
“고작 외부인 하나 때문에 블루 터틀이 등을 돌리다니! 다른 놈들도 그렇습니다! 감히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외부인에게?”
“마스터, 진정하십시오…….”
서펜트 길드는 주저앉았다.
저 마법 상점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 회복할 수 없다.
길드원의 절반 이상이 길드를 탈퇴했고, 블루 터틀에서 위약금으로 지불했던 돈도 빠르게 줄어들었다.
희망이 없다.
당장 복수라도 하고 싶지만, 메로프는 알고 있었다.
마법 상점의 점장. 세운이 6서클의 마법사라는 사실을.
4서클의 자신이 무슨 짓을 해 봤자 복수가 될 리가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제헤튼에서 늘 남부럽지 않게 부유하고 멋진 생활을 즐기며 걱정 없이 살아가던 그에게 지금의 상황은 미로에 갇힌 것만큼이나 깜깜했다.
그때였다. ‘그 남자’가 찾아온 것은.
“포기할 수 있다면, 가능하게 해 주지.”
제헤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니.
메로프라 하더라도 처음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힘을 얻게 해 준다는 달콤한 말에 벗어날 수는 없었다.
레드 피쉬 상단의 말을 들어보니, 함께 공생하며 제헤튼을 지배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스스로 자원하여 실험체가 되었다.
평생 죽지도 못하고, 영겁의 고통을 느끼고 있는 실험체와 이성이 사라져 인형이 되어 버린 실험체를 보고도 스스로 전신에 운석을 박았다.
아우터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쟁취했다. 새로운 두 개의 서클을.
그럼에도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엔 ‘그 남자’조차 놀라워할 정도였다.
“당장 복수를 행하러 가겠다.”
“참아라. 아직은 때가 아니다.”
“약속이랑 다르지 않나!”
“늦고 빠름의 차이일 뿐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아라.”
당장 나서고 싶었지만, 레드 피쉬의 상단주와 의견 대립이 생겼다.
이미 동업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입장.
그렇게 꼼짝없이 지하에 갇혀 머리를 잠식해 오는 아우터를 억누르며 버티고 있었는데.
‘마력?’
씨 서펜트의 실험에 참관하던 중, 입구 쪽에서 웬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리고 보았다. 제 발로 그물 속에 다가온 자신의 먹잇감을.
“디스펠(Dispel).”
빠직!
부서지는 보름달. 머리를 짜릿하게 울리는 복수의 쾌감.
어째서인지 평소보다 격렬하게 꿈틀거리는 아우터를 진정시키며, 메로프가 복수의 첫발을 내밀었다.
* * *
서걱-
메로프의 소개가 끝나자마자, 세운이 검을 휘둘렀다.
마법이 끊겼다고는 하지만 아직 저들 전체에 들킨 건 아니다.
최대한 빨리 놈을 처치하고 기습을 날리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성격이 급하시군요. 얘기를 들을 생각도 없이 검을 휘두르는 게…… 꼭 가게에서 뵈었을 때가 떠오릅니다.”
메로프의 앞에 검은 막이 생겨났다.
실드. 아니, 실드라고 하기에는 부적절한 검고 끈적거리는 방어막.
그 특유의 점성 때문에 세운의 검이 끈적하게 얽히며 속도가 줄어들어 메로프의 머리 위에서 멈췄다.
‘아우터인가.’
원리는 모르겠지만, 마법에 아우터의 힘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쉬웠다.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세 번째 능력, ‘파멸’이 깨어납니다.
스스슷!
“어익후, 이건 무슨 힘이죠? 꽤 위험한 힘을 다루시는군요.”
역시, 메로프가 펼친 실드는 아우터와 관계가 있는 듯이 파멸의 힘이 검에 깃들자마자 점성을 잃고 물처럼 갈라졌다.
다만, 아쉽게도 메로프를 베는 데는 실패했다.
게다가 실험실의 중심에 있던 레드 피쉬의 상단주가 세운의 존재를 알아챘다.
“웬 소란이지?”
“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거나 마저 끝내시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아니라니, 그놈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콰르르르!
레드 피쉬의 상단주와 메로프 사이에 검은 벽이 세워졌다.
이로써 기습의 의미는 사라졌다.
방이 나뉘자마자 메로프가 본격적으로 마법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순간을 기다려왔습니다. 이 순간을 위해 참았습니다. 이 순간을 위해 버텨냈습니다.”
메로프의 주위로 각종 마법이 펼쳐진다.
땅에서 촉수 같은 게 올라와 문어 다리처럼 꾸무럭거리고, 검고 둥그런 구체에서 타르와 같은 액체가 뚝뚝 흘러내린다.
‘워터 볼에 어스 니들. 전부 기초적인 마법들이지만…… 위험하다.’
강제로 6서클의 경지에 오른 만큼 마법 실력은 형편없었다. 사용하는 마법들이 모두 4서클 미만의 것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마법들은 전부 평범하지 않았다.
아우터의 힘이 녹아내려 있어 세운이라 하더라도 저 공격을 허용하면 어떤 피해를 볼지 몰랐다.
“어디 한 번 막아보시지요. 그 잘나신 마법 실력으로 말입니다!”
일반적인 마법이라 볼 수 없는 기이한 공격들이 세운을 덮쳐왔다.
어스 니들은 날카로운 가시가 아닌 촉수처럼 세운을 찔러왔고, 워터 볼은 맑은 물 대신 타르 같은 것이 그물처럼 넓게 펼쳐졌다.
그 외에도 기이하게 변형된 마법들이 연이어 생성되었다.
치이익!
실드를 펼쳐 보았지만, 메로프의 공격은 실드에 닿자마자 김을 내뿜으며 실드를 녹여냈다.
흡사 용암이라도 닿은 듯한 모습이다.
그럴수록 메로프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왜, 못 하시겠습니까? 하하하! 그럴 수밖에요! 어찌 인간 따위가 ‘폐왕(廢王)’의 힘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폐왕?”
“하긴, 모르겠지요. 저도 직접 마주하기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이 세상에서. 아니, 이 우주에서 버려진 절대적인 힘을 말입니다!”
폐왕.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아우터를 지칭하는 말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어째서 폐왕이라 부르는 거지?’
이들에게 운석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아우터는 분명 위험하고 강력한 힘이었을 거다.
당연히 처음 떠올린 이미지대로 이름을 붙였을 거다.
세운이 회귀하기 전에는 탑의 외부에서 꾸역꾸역 밀려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아우터라고 불린 거고.
그런데, 폐왕이라니? 어떻게 해야 아우터를 보고 ‘버려진 왕의 힘’ 같은 것을 떠올릴 수 있을까?
무언가 이상했다.
어째서인지…….
‘배후가…… 있는 건가?’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올랐다.
“자, 얼른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 아래에 무릎 꿇으시길 바랍니다! 머리를 처박으시길 바랍니다!”
메로프의 주위로 수십 개의 마법이 떠올랐다.
마법에서 흘러나온 끈적한 액체가 바닥을 흠뻑 적셔가기 시작했다.
‘캐낸다고 대답을 하진 않겠지.’
대충 보면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메로프는 이미 두뇌의 절반 이상이 아우터에 잠식당한 상태였다.
당당하게 들어 올린 오른손과 반대로 로브에 가려진 왼손이 덜덜 떨리는 거나, 검게 물든 왼쪽 눈 역시 별개의 생물처럼 움직였다.
그러니 괜히 어쭙잖게 상대하는 것보다는, 얼른 처리하고 레드 피쉬 상단주라는 놈에게 캐묻는 게 나아 보였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보이드(Void) ]– 고위 흑마법 중 하나로써 공허의 공간을 만들어 주변의 모마나를 집어삼키는 암흑 마법.
“미안하지만, 서클의 수가 같아졌다고 내 상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촤르르르륵!
세운의 손아귀에서 생겨난 공허의 구체가 메로프의 마법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