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8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87화(283/675)
제287화
6서클에 도달한 마법?
아우터의 힘이 깃든 마법?
세운의 손위에서 펼쳐진 마법, 보이드 앞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메로프의 마법은 활약을 하기도 전에 공허의 빈틈에 빨려 들어갔다.
“대체 무슨 마법입니까! 이건 말도 안 됩니다!”
메로프가 입술을 덜덜 떨며 외쳤다.
하긴, 그럴 수밖에.
마법이 발달하지 않은 이 제헤튼에서 그가 보고 배운 마법이라고 해 봤자 얼마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세운이 사용한 마법은 무려 흑마법. 그중에서도 익히 알려지지 않은 6서클의 고위 암흑 마법이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제가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참아내고, 버텨왔는데!”
메로프가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진득한 액체가 각종 마법의 형태로 세운을 공격해 왔다.
하지만, 그 전부 세운의 앞에 자리 잡은 공허의 빈틈에 사로잡혀 삼켜질 뿐이었다.
그 어떤 마법도 세운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이것도 만능은 아니지만.’
보이드는 분명 강력한 마법이지만, 이것으로 흡수할 수 있는 건 마법적 현상뿐이다.
그마저도 물리력에 대한 흡수력은 영에 가까우니 투사체가 아닌 물리력이 깃든 마법을 사용하면 보이드의 약점을 찌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메로프는 알지 못했다.
고작 4서클의 수준으로 제헤튼의 길드 마스터로 군림하던 그의 마법 견식은 극도로 짧았으니까.
지금도 제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목격하고 있음에도 무식하게 마법을 날리고 있었다.
그사이.
“그딴 꼼수가 언제까지 통하리라 생각하시는 겁니…… 헉!”
메로프의 눈앞에서 세운의 검이 번쩍였다.
마법을 빨아들이는 보이드로 시야를 가리고 귀영보를 이용하여 은밀하게 접근한 것이다.
곧바로 휘둘러지는 검격.
메로프가 끈적한 실드를 펼쳐 보았지만, 같은 방어는 두 번 통하지 않는다.
서걱-
“크아아아악!”
처음부터 파멸의 힘을 담은 세운의 검이 실드와 함께 메로프의 몸을 가로질렀다.
그대로 끝장낼 생각이었지만, 메로프가 짧은 순간이동 마법으로 거리를 벌렸다.
한쪽 어깨가 쩍 벌어질 정도의 중상이었지만, 그 사이로 아우터가 꿈틀거리며 상처를 회복하고 있었다.
“대, 대체 무슨 힘입니까! 폐왕의 힘이 막히다니! 이건 말도 안 됩니다!”
다만, 파멸의 힘으로 낸 상처는 아우터라 하더라도 금방 회복시키지 못했다.
메로프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마법을 이용하여 응급처치로 어깨를 붙였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째앵!
메로프가 돌연 검은 액체를 길게 뻗어 뒤로 날렸다.
세운과는 전혀 다른 위치.
덕분에 유리관 열댓 개가 부서져 물이 쏟아지고, 그 안에서 고통스러워하던 실험체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컥! 커헉! 헉!”
“이자, 기억나십니까? 고드릭 씨입니다. 따지고 보면, 어긋남의 시작은 이분이었죠.”
고드릭. 이미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누구를 말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세운의 상점에 처음으로 나타났던 서펜트 길드원.
그의 얼굴에서 생전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검게 물든 동공에는 이성이라는 게 남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여기, 제일렌 씨도. 닥스 씨도. 아, 이분은 도망치려던 걸 제가 잡았습니다. 실험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하더군요.”
유리관에서 탈출하자마자 실험체들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끝없는 고통에서 해방되고, 물로 가득 차 있던 폐에 공기가 들어와 숨을 허덕인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이성은 이미 박살 난 상태.
놈들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멍한 표정으로 메로프를 바라보았다.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명령을 내려줄 숙주를 찾은 모양이다.
“자, 어디 이것도 한 번 막아보시지요!”
“으, 어어-”
실험체들이 괴이한 소리를 내지르며 마법을 시전했다.
메로프가 시전했던 것과 같이 검고 끈적하게 변형된 마법들.
서펜트 길드의 마법 수준이 낮았던 만큼, 실험체들이 시전한 마법들 역시 수준이 낮았지만 그 수가 극도로 많았다.
저렇게 많아서야 피하기도 힘들고, 저 특유의 공격은 막아내기도 극히 까다롭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자신의 권능을 사용하라며 권유합니다.
‘질투의 권능을?’
질투의 권능.
광휘의 바다에서 권능이 강화된 이후로 제대로 된 전투 상황을 겪은 적이 없어 아직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운이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이유가 있었다.
지금의 상황은 강적 한 명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까다로운 다수의 적을 상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질투의 권능은 적의 힘을 깎아내리고 내 힘을 강화하는…… 그야말로 강적을 상대하는 1:1의 상황에서만 빛을 발하는 힘이었으니까.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자신을 믿으라며 그윽한 눈빛으로 당신을 내려봅니다.
다른 성좌라면 몰라도, 레비아탄의 말이니 충분히 믿을 만했다.
그렇게 생각한 세운이 곧바로 질투의 권능을 사용했다.
세운의 성흔으로 레비아탄의 신성이 흘러가며 푸른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 시기의 눈초리가 ‘레드 피쉬의 실험장’을 응시하기 시작합니다.
– 현재 상대하고 있는 모든 적에게 질투의 권능이 적용됩니다.
‘오?’
메로프 한 명이 아닌,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실험체들에게 질투의 권능이 적용되었다.
성흔의 기운을 느껴보니 전처럼 한 명을 대상으로 힘을 강화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다만, 적이 많은 경우 지금처럼 범위로 대상을 설정하는 게 이득인 듯했다.
‘그럼 일단 시간을 벌어야 하나?’
질투의 권능이 가진 두 번째 약점. 바로, 시간이다.
그 힘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제법 긴 시간을 끌 필요가 있었으니까.
강화된 질투의 권능이 마음에 들면서도 역시 지금의 상황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중, 곧바로 다음 메시지가 떠올랐다.
– 적들의 수준이 낮아 질투의 권능이 가속화됩니다.
– 미지의 기운을 앗아옵니다.
– 미지의 기운을 앗아옵니다.
…….
‘이건?’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아직 힘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도움이 될 거라며 꼬리를 흔듭니다.
질투의 권능이 순식간에 발현됐다.
아우터에게 질투의 권능을 사용했을 때 느껴지던 그 특유의 힘이 몸에 차오른다. 성흔 역시 마음에 든다는 듯이 웅웅거린다.
‘적의 수준에 따라 속도가 가속화된다니.’
권능이 강화된 만큼 강한 적을 상대로 사용할 때도 이전보다는 속도가 빠를 게 분명하다.
개인전은 물론 다수 전으로도 범용성이 강화되었다.
생각 이상으로 강화된 질투의 권능.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이게 다 당신이 광휘의 정수를 넘겨준 덕분이라며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합니다.
레비아탄의 말대로 그때 광휘의 정수를 투자하지 않았으면 이 정도는 아니지 않았을까.
“이건 또 무슨!”
실험체들이 준비하던 마법이 급속도로 약해졌다. 마법들이 본래의 크기를 잃고 검은 액체를 뚝뚝 흘리며 약화되었다.
그와 반대로 세운의 몸에서는 힘이 차오르니,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서걱-
순식간에 두 마리의 실험체가 목숨을 잃었다.
본래라면 목이 잘려도 아우터로 인해 목이 다시 연결될 놈들이지만, 파멸의 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래도 이성을 잃은 게 나름대로 장점이 되어 당황하지 않고 완성시킨 마법을 날리는 실험체들.
철퍽!
놈들의 공격은 세운이 펼친 실드 마법에 막혀 허무하게 흘러내렸다.
본래라면 실드로 막아내기는 힘들었겠지만, 지금은 질투의 권능 덕분에 실험체들의 힘은 약해지고 세운의 힘은 강화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아우터의 힘 자체라 할 수 있는 ‘미지의 기운’을 앗아왔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실험체들의 목숨이 빠르게 끊어졌다.
애초에 놈들에게 잠식하고 있는 아우터의 양은 몇 방울 단위라고 할 정도로 미량이었기에 한 번 베는 것 정도로 충분히 아우터를 소멸시킬 수 있었다.
“으, 어-”
마지막 실험체가 목숨을 잃었다.
유리관을 빠져나왔음에도 고통스러워 보이던 놈들의 얼굴은, 세운에 의해 목이 끊어지고 나서야 안식을 찾았다.
그 순간, 타이밍 적절하게 질투의 권능이 메로프를 향했다.
– 시기의 눈초리가 ‘메로프 머틀’의 힘을 질투합니다.
– 미지의 기운을 앗아옵니다.
– 미지의 기운을 앗아옵니다.
…….
“이럴 수는 없습니다! 복수를 위해 저 스스로 머리와 심장에 운석을 박아넣고, 그 끔찍한 고통을 견뎌냈는데!”
메로프의 주위로 마법이 파도처럼 크게 일어났다.
자세히 보니 심장 주변에 기존 4개의 서클을 제외한 새로운 2개의 서클이 회전하는 것을 넘어 메로프의 머리까지 퍼져나가 있었다.
즉, 저건 더 이상 마법이라 부를 수 없었다. 그저 아우터의 힘으로 생겨난 괴현상일 뿐.
“당신을 쓰러트릴 것입니다! 당신을 쓰러트리고, 제헤튼에서 영원한 마법의 군주로 살아갈 것입니다!”
메로프의 눈이 완전히 검게 물들었다.
입에서 검은 액체가 뚝뚝 흘러내리고, 운석이 박히지 않은 신체 부위의 모든 혈관이 검게 부풀어 올랐다.
아우터에게 잠식당하고도 지금까지 이성을 지켜온 것은 대단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메로프의 이성은 이걸로 끊어졌다.
남은 건 ‘제헤튼을 지배한다.’라는 욕망뿐.
다만, 그만큼.
꾸르르륵!
아우터의 힘이 강해졌다.
자신을 제어하려 하던 숙주가 이성을 잃자마자 신나서 발광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래도 운석 때문에 제약은 있겠지만, 녀석은 아우터 주제에 마법을 흉내 내고 있었다.
몸에 박힌 운석도 나사가 빠진 것처럼 덜컹거리는 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위험해질 듯했다.
우웅-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세 번째 능력, ‘파멸’이 깨어납니다.
얼마나 강한 아우터가 남아 있을지 몰라 신성을 최대한 아끼려 했지만, 이 이상 시간을 끄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한 세운이 성흔을 밝혔다.
광휘의 바다에서 마주친 검붉은 늑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함께 메로프가 만들어 낸 거대한 파도가 타르처럼 끈적하게 세운을 덮쳐온다.
세운이 그것을 가리키며 조용히 읊조렸다.
“뜯어라.”
– 알겠다. 나의 주인이시여.
늑대가 검은 파도와 맞부딪쳤다.
파도는 어떻게든 늑대를 붙잡아두려 하였으나, 늑대의 발톱은 너무나도 쉽게 파도를 가르고 앞으로 나아갔다.
뒤늦게 늑대를 발견한 메로프가 방어막을 펼쳤으나.
콰직!
아우터의 힘으로 만들어낸 방어막 따위, 파멸의 늑대를 막아낼 수 없었다.
늑대의 송곳니가 메로프를 꿰뚫었다.
무엇이든 막아낼 것처럼 단단하던 운석이 으스러지고, 메로프의 몸에 갇혀 있던 아우터가 비명을 지르듯이 꿈틀거리며 탈주하려 했지만.
꿀꺽.
늑대는 메로프와 운석, 아우터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세운이 직접 검을 휘둘러 파멸의 힘을 사용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강력했다.
메로프가 삼켜지는 순간, 세운의 코앞까지 다가왔던 검은 파도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임무를 마친 늑대 역시 짧게 하울링을 한 후, 검붉은 기류로 변해 세운의 성흔으로 돌아왔다.
‘강하긴 하지만…….’
고작 한 번의 명령으로 엄청난 양의 신성이 소모됐다.
역시 이 힘은 아무렇게나 난사할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강한 만큼 많은 신성이 소모되니, 그만큼 신중하게 사용해야만 한다.
쿠구구-
메로프가 사라졌으니 자연스럽게 그가 처음 실험실에 세웠던 벽이 힘을 잃고 무너져 내렸다.
그와 함께 반대편의 방이 다시금 비치며, 실험이 끝나 아우터에게 잠식된 씨 서펜트와 그것을 만족스럽게 지켜보는 레드 피쉬의 상단주가 보였다.
“메로프, 왜 이렇게 늦었지? 네놈이 시끄럽게 실험실을 울린 덕분에 하마터면 씨 서펜트가 폭주할 뻔했다.”
레드 피쉬의 상단주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입꼬리를 길게 말아 올렸다.
씨 서펜트에 대한 실험이 그만큼 만족스럽다는 뜻이겠지.
다만, 그는 고개를 돌려 벽이 있던 자리를 확인한 순간 다시금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네놈은…… 설마, 네놈이 메로프를 죽인 건가?”
그 물음에, 세운은 대답 대신 파멸의 힘이 깃든 뒤랑달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