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8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88화(284/675)
제288화
“네놈이 어떻게 메로프를 죽인 거지? 메로프는 실험체 중에서도 유일하게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적응자’였는데!”
“적응자?”
레드 피쉬의 상단주가 믿기지 않는다는 말투로 외쳤다.
역시, 이들의 실험은 어딘가 이상하다. 사용하는 단어나 실험의 완성도 등, 무엇을 보아도 이들이 연구의 시초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마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실험을 하고 있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메로프가 쓰러진 이상 그 사실을 캐물을 사람은 눈앞의 상단주뿐이었다.
“누구를 따르고 있는 거지?”
“……거기까지 알아본 건가. 그저 실력 좋은 마법 세공사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군.”
메로프가 로브를 걷었다.
마찬가지로 운석이 박혀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의 모습은 정상이었다.
조금 어두워 보이긴 해도 스스로에게는 아우터를 심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메로프가 조금 아깝긴 하지만, 지금은 그놈보다 더욱 뛰어난 실험체가 만들어졌으니.”
뚝, 뚜둑!
메로프의 지시와 함께 씨 서펜트를 포박하고 있던 줄이 풀려나갔다.
속박이 풀리자마자 씨 서펜트가 그 거대한 몸체를 일으켰다.
입에서 검은 액체를 줄줄 흘리고, 눈이 검은 광채를 띄는 게 딱 아우터에게 잠식당한 모습이었지만, 함부로 공격 성향을 드러내지 않았다.
실험에 성공했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닌 모양이다.
–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저건 확실히 써먹을 수 있겠다며 실험체의 정보를 기록합니다.
“메로프야 어차피 이놈이 만들어지면 처리할 생각이었으니, 오히려 귀찮은 일을 덜어줬군.”
씨 서펜트가 명령을 기다리듯 높게 선 상단주의 앞에서 머리를 멈추었다.
상단주는 그 머리에 박힌 운석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흉악한 미소를 머금으며 외쳤다.
“여기까지 도달하느라 고생했을 테니, 고통 없이 한입에 끝내주마.”
명령을 알아들은 씨 서펜트가 머리를 들었다.
몸 전체를 일으킨 것도 아닌데 머리가 천장에 닿았다.
쭉 내뱉은 양옆으로 길게 뻗은 송곳니에서는 맹독을 닮은 검은 액체가 흘러나와 바닥을 녹인다.
그러고는, 여차할 준비 동작도 없이.
“쉬이이잇-!”
세운을 향해 머리를 내뻗으며 입을 벌린다.
평범한 인간도 몇 방울의 아우터에 잠식당하는 순간 괴물 같은 힘을 자랑하는데, 그 대상이 씨 서펜트라면?
힘, 속도, 체력 등, 그 모든 것이 말도 안 되게 상승했을 것이다.
폭식의 권능으로 능력치를 쌓아온 세운이라 하여도 당당하게 맞붙는 건 자살 행위에 가깝다.
그 때문에 세운이 사용한 건 검이 아니었다.
검을 들어 올린 손등에 위치한 성흔. 검붉은 늑대가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냈다.
“뜯어라.”
아우우-
하울링을 내지르며 나타난 늑대가 씨 서펜트와 부딪친다.
둘의 충돌로 인한 충돌음이 풍압으로 변해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실험실의 도구들이 날아가고, 깨진다.
심지어 그 두꺼운 유리관 역시 풍압을 견디지 못하고 일부 깨져나가 내부의 실험체가 바닥에 철퍽 엎어진다.
– 크르르릉…….
“쉬이이잇-”
씨 서펜트와 늑대의 대치가 이어진다.
격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고는 하나, 바다의 신인 트리톤에게도 상처를 입혔던 늑대였다.
씨 서펜트와 팽팽하게 대립을 벌이는 것을 보아하니 놈이 얼마나 강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 버티는 거지? 폐왕의 힘을 극도로 머금은 성공적인 실험체인데?”
그래도 질 것 같지는 않았다.
한 번 더 명령을 내려주라는 늑대의 의지가 성흔을 통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부숴라.”
– 크아아앙!
콰직!
씨 서펜트의 송곳니가 뜯겨나갔다.
그로 인해 중심이 무너지자마자 늑대의 발톱이 씨 서펜트의 눈을 할퀴고, 검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이럴 수가!”
이후의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애초에 아우터의 힘이 깃들었다 하여도 파멸의 힘으로 당한 상처는 회복이 불가능했으니까.
늑대의 공격이 이어질수록 씨 서펜트의 몸에 잔혹한 상처가 무수히 새겨졌다.
“저건 대체 무슨 힘이냐! 폐왕의 힘에 대적하는 힘이라니! 이, 이건 아니다. 그분께서는 분명…….”
“흠, 확실히. 위협적인 힘이군.”
“……마스터?”
콰아아앙!!
씨 서펜트가 흘리던 피가 물 폭탄처럼 부풀더니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에 거침없이 이빨과 발톱을 휘두르던 늑대의 몸이 세운의 옆까지 밀려났다.
‘마스터?’
고개를 들어보니 레드 피쉬의 상단주 옆에 새로운 인물이 서 있었다.
로브에 그늘져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얼굴이 썩어 문드러진 것처럼 잔혹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잘 오셨습니다! 마스터!”
“실험에 실패한 모양이군.”
“아닙니다! 그저, 힘이 부족할 뿐입니다! 힘이 더 있으면 저런 놈 따위 한입에 집어삼킬 수 있을 겁니다!”
“흠. 힘이 부족하다, 라…….”
마스터라 불린 남자가 바닥에 쓰러진 씨 서펜트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늑대에 의해 생겨난 크고 작은 상처들이 아물기 시작했다.
이에 세운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우터라 하더라도 파멸의 힘에 당한 상처를 저렇게 빨리 회복하는 건 불가능했었는데?’
십 초도 되지 않아 씨 서펜트의 모든 상처가 회복됐다.
놈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자마자 남자가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르릉거렸다.
레드 피쉬의 상단주가 명령을 내릴 때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는 그저 인형을 조종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정말 주인을 따르는 듯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확인해 보면 되겠지.”
쿠구구-
남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낮은 진동이 느껴지며 실험실의 천장이 열렸다. 그 사이로 반원형의 무엇이 모습을 드러냈다.
‘운석.’
아마, 실험에 쓰고 남은 운석이리라.
반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 크기는 세운이 네 번째 쉼터에서 보았던 것보다 미묘하게 큰 것 같았다.
성흔이 반응하는 것을 보니 아직 운석 안에 아우터가 남아 있는 모양이다.
“어디 한 번, 견뎌보아라.”
남자가 마지막으로 씨 서펜트를 쓰다듬는 순간.
빠직!
콰아앙!
운석에서 거대한 균열이 일어나 산산이 조각났다.
자연스레 운석 안에 있던 아우터가 해방되어 아래로 쏟아졌다.
운석의 아래에는 정확하게 씨 서펜트가 자리 잡고 있었으니.
“쉬이익-”
씨 서펜트는 꼼짝없이 아우터를 덮어쓰고 말았다.
탈출과 동시에 숙주를 찾아낸 아우터가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찾아 씨 서펜트에게 흡수되었다.
잠식에 의한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씨 서펜트.
다만, 남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역시, 실패로군.”
촤아앗!
척추를 따라 박힌 운석 때문일까?
흡수되는 것도 잠시, 1/3가량의 아우터가 씨 서펜트에서 빠져나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어서 유리관이 깨져 바닥에 쓰러져 있던 실험체에 흡수되거나, 어떻게 찾았는지 세운도 알지 못했던 잉여 실험체를 찾아 움직였다.
“쉬에에에엑-!”
실험실이 떠나갈 듯이 울부짖던 씨 서펜트의 움직임이 멈췄고, 석상처럼 굳었다.
이성이 날아간 것은 물론, 아우터를 통제하는 힘도 완전히 사라진 모양이다.
운석이 박힌 탓에 아우터도 몸을 완전히 다루지 못해 저렇게 굳어버리고 만 것이다.
“아, 아닙니다!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십시오! 마스터,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아…… 그렇군. 너라면 할 수 있겠어.”
남자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상단주의 머리를 짚었다.
무언가 상이라도 치사하는 모양새였지만, 남자의 다음 행동은 세운으로서도 당황할 만한 행동이었다.
철퍽!
“커억! 마, 마스…….”
“부디, 정말 도움이 되길 바라네.”
남자가 상단주의 머리를 씨 서펜트에게 내다 박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씨 서펜트의 몸을 잠식하려 하는 아우터를 향해 박아 넣었다.
용량이 다 찬 듯이 흘러넘치던 아우터가 신나서 상단주를 집어삼켰다.
상단주의 몸이 씨 서펜트의 몸에 흡수되듯이 빨려 들어가고, 경직되어 있던 씨 서펜트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오, 이건 제법 흥미롭군.”
상단주의 하체가 녹아내리고, 상체가 씨 서펜트의 머리의 정중앙에 박혔다.
팔을 축 늘어트리고 있는 게 정상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 두 눈만은 선명하게 세운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못…… 끝낸다.”
죽은 자의 언어처럼 무미건조한 억양으로 말을 내뱉은 상단주.
그와 함께 씨 서펜트의 몸체가 세운을 향해 돌진한다.
운석을 제외한 몸 전체가 아우터에게 휩싸인 모습은, 마치 검은 강줄기가 눈앞으로 쏟아지는 듯했다.
“막아라!”
– 크아아앙!
늑대가 거대한 하울링을 내질렀다.
그에 실험실에 있던 모든 유리 기구가 부서지고, 실험체에게 들러붙던 아우터들이 놀라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젠장.’
아우터의 생존 본능을 잊었다.
늑대가 위협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자잘한 아우터들이 세운을 피해 실험실 밖으로 도망치고 있었으니까.
저들이 지상으로 올라가면 제헤튼은 꼼짝없이 쑥대밭이 되고 말리라.
하지만, 세운에게 위를 걱정할 여유는 없었다.
콰앙!
늑대와 씨 서펜트가 부딪쳤다.
하지만, 이전과 같은 박빙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늑대가 이를 악물며 씨 서펜트를 막기 위해 어깨를 들이밀었지만 씨 서펜트는 육중한 몸체를 앞으로 내세워 늑대를 밀어냈다.
신성을 쏟아부어도 간신히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젠장, 이게 무슨…….’
완전한 아우터가 아니다.
아까 보았던 운석 중 고작 절반에 가까운 양의 아우터가 깃든 녀석이었다.
그 정도는 파멸의 힘으로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저 실험이라는 것 때문일까?
씨 서펜트의 힘은 세운의 추측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의지가 추가되는 것만으로 저런 힘이라니. 까다롭기는 하지만, 아주 마음에 들어.”
남자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저 저 위에서 거만하게 전투를 내려보고 있을 뿐이다.
당장 성흔을 활성화해 늑대를 유지하는 것도 집중력이 상당히 사용되었지만, 이대로 질질 끌려다닐 수는 없다고 생각한 세운이 반대쪽 손을 들었다.
이어서 심장의 서클을 회전하며 마나를 끄집어냈다.
말이 쉽지, 한 손으로 늑대를 유지하며 다른 손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듀얼 캐스팅 이상으로 어려운 행동이었다.
신성과 마나.
두 가지 힘과 정신력이 뭉텅 깎여나가며 코 아래로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익스플로전(Explosion) ]– 적탑의 폭발계 상위 마법. 지정한 위치에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는 기본적이고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공격 마법.
콰아앙!!
씨 서펜트의 머리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지하의 실험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폭발 같은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무조건 강력한 마법을 사용해 어떻게든 씨 서펜트의 힘을 떨어트려야만 했다.
“크아아아악!”
씨 서펜트 대신 그 머리에 달라붙은 상단주의 상체가 비명을 내질렀다.
제법 타격이 있었던 듯, 늑대가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며 씨 서펜트를 밀어냈다.
쿵, 쿠궁!
그사이, 천장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벌써 올라간 건가?’
아마 아까 도망갔던 아우터들이 지상으로 올라가며 일으킨 소란인 모양이었다.
곤란하다.
제헤튼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이놈부터 빠르게 처리하고 가야 하는데, 아무리 보아도 빨리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때.
콰아아아앙-!!
아우터가 일으켰다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굉음이 들려왔다.
방금 세운이 펼친 익스플로젼의 소리와 맞먹는 굉음.
거리가 멀지만, 그 굉음을 듣는 순간 세운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른 이가 하나 있었다.
바로, 강한철.
[ 박정필 : 형님! 제가 사람들 불러왔습니다! ] [ 유서아 : 세운 씨, 아래쪽에서 전투 중이신 거죠? 여기는 저희한테 맡겨주세요! ] [ 한아름 : 이미 바리게이트 다 쳐놨으니 걱정 안 해도 돼, 오빠! ] [ 한다운 : 이렇게 싸우는 거 진짜 오랜만이다아! ] [ 백현 : 생각보다 많군요. 이거, 좋은 샘플을 채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지원이 들어왔다.
박정필 녀석. 생각 없이 도망친 줄 알았는데 세운도 생각 못 한 지원을 불러오다니.
정말,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으면서도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내가…… 제헤튼의, 정상이다!”
등에는 운석이 박히고, 머리에는 레드 피쉬의 상단주가 박힌 채 아우터에게 사로잡힌 씨 서펜트.
저 녀석을 처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