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8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91화(287/675)
제291화
“으음…….”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하자 느껴진 것은 따뜻한 온기였다. 온몸을 감싸고 있는 촉촉한…… 마치, 따뜻하게 데워진 온수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숨을 쉬기 불편하지 않았다.
무언가 싶어 눈을 뜨니, 세운의 주변에 붉은 액체 같은 게 둘러싸여 넘실거리고 있었다.
“아, 정신이 드셨어요?”
세운이 눈을 뜨자 옆에서 무언가를 작업하고 있던 이하늘이 곧바로 아는 체를 했다.
주변의 붉은 액체 같은 걸 휘휘 저어 보자 이하늘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마르바스 님에게 받은 능력 중 하나예요. 외상뿐 아니라 내상이나 탈진 등에도 효과가 있어요.”
“꽤 상위 능력 같은데.”
“한 명에게 붙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어서 전투 중이나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는 사용할 수 없지만요.”
“시간은?”
“이틀 지났어요. 상태 보고 일주일은 못 일어나실 줄 알았는데, 역시 길드장이네요.”
이틀이라…….
하긴, 마나와 내공뿐 아니라 영혼 그 자체의 힘과 격을 상징하는 신성까지 바닥을 내보인 상황이었으니, 이하늘의 말처럼 일주일 동안 쓰러져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이 붉은 액체 같은 게 큰 도움이 됐나 보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무슨 체력이 그렇게 약하다며 혀를 찹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당신을 걱정했다며 앞으로는 몸을 더 아낄 필요가 있겠다며 당신의 행보를 걱정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악취 때문에 숨어 있다 나타나 당신의 행색에 깜짝 놀랍니다.
마신들의 걱정에 고개를 살짝 숙인 세운이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신성은 아직 모자랐지만, 내공과 마나는 이미 어느 정도 차올라 있었다.
“그 뒤로 어떻게 됐지?”
“최대한 수습했어요. 워낙 숨겨진 외곽이었던 터라 들키지도 않았구요. 평화로운 도시라 그런지 흔들림이 있었어도 다들 지진이라고 착각한 모양이에요.”
“그렇겠지.”
제헤튼은 전쟁과 전혀 무관한 도시다.
해양 몬스터가 존재하지만, 이런 해안까지 찾아오는 몬스터는 기껏해야 나가 같은 중형 몬스터가 전부다.
살아 있는 씨 서펜트가 희귀한 취급을 받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가게는?”
“해리 씨가 계속 운영 중이에요. 길드장이라면 분명히 이걸 원했을 거라며 마법사들과 함께 최대한 평소처럼 운영하고 있더라구요.”
“잘하고 있네.”
과연, 해리다. 세운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짚었다.
만약 세운이 쓰러졌다고 가게 운영이 멈춰 버리면 지금까지 가게를 키워온 의미가 사라져 버렸을 테니까.
“이것 좀 드셔보시겠어요? 미정 씨가 만들어 준 간식인데, 제헤튼에 좋은 식재료가 많아서 그런지 전보다 더 맛있어졌더라구요.”
“고마워.”
생각보다 짧았다고는 해도 세운은 무려 이틀간 쓰러져 있었다. 배가 텅 비어 있었기에 이하늘이 넘겨주는 과자를 바로 받아먹었다.
바삭.
부드러운 버터 향이 먼저 느껴지고, 씹다 보니 달달한 딸기잼이 느껴진다.
전에 블루 터틀 상단의 마차에서 먹었던 고급 과자보다도 더 맛있는 것 같다.
김미정의 성좌인 부에르의 힘 덕분인지 간식을 먹는 것만으로 힘이 미약하게 회복되는 느낌이다.
“나중에 미정 씨가 일하는 식당에 찾아가 보세요. 분명 만족하실 거예요.”
“고마워, 그보다…….”
깨어났다는 사실은 길드챗으로 알리면 된다.
가게도 잘 돌아가고 있다고 하니, 지금 당장은 전투 현장을 수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레드 피쉬의 실험실이 무너졌다고는 하나 가만히 두기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었으니까.
“블루 터틀에 연락해서 로렌을…….”
벌컥!
“세운 님! 일어나셨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으신가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세운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로렌이 방문을 열고 나타났다.
* * *
“몸은 정말 괜찮으세요? 방금 막 깨어나셨다고 들었는데, 조금 더 쉬셔야 하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 가게 일은…….”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세운 님이 만들어 두신 물량도 충분하고, 후임 마법사분들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요. 특히 그 해리라는 분, 운영 능력이 뛰어나시더라구요.”
아무리 세운의 몸 상태가 안 좋더라도 로렌은 배려로 저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즉, 해리가 정말 생각 이상으로 일을 잘하고 있다는 뜻.
후임 마법사들이 인챈트할 수 있는 마법이라 해 봤자 1~2서클 정도지만, 그 정도로도 가게를 운영하기에는 충분할 터다.
고서클 마법을 인챈트하는 건 그에 맞는 장비도 필요하고, 가격도 그만큼 올라가 살 수 있는 사람의 수도 줄어드니까.
“그리고 이번 일에 대해서도 들었어요.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레드 피쉬가 정말 그런 짓을 벌이고 있었을 줄은 몰랐어요.”
“누구도 발견하지 못하게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으니까요. 그보다, 제안할 게 있습니다.”
“제안이요?”
덜컥.
마차가 마침 딱 적절하게 현장에 도착했다.
마차의 문을 열고 내리니 성벽처럼 거대한 막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이게 바로 쌍둥이 자매가 쳐두었다는 벽인 모양이다.
“혈랑 오빠!”
“진짜 괜찮은 거야?”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다구!”
“이것 봐! 우리가 여기 이렇게 딱 지키고 있었어! 잘했지?”
벽 앞에 서자마자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쌍둥이 자매가 나타나 세운의 양팔에 달라붙었다.
확실히, 그녀들이 아니었다면 아우터가 제헤튼에 들어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한 마리라도 들어갔다가는 제헤튼에 크나큰 혼란이 일어났겠지…….
세운이 쌍둥이 자매의 팔을 떼고 그녀들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잘했어.”
“와, 나 칭찬받았어!”
“나 머리 안 감을 거야!”
“언니 이미 이틀 동안 안 감고 있었잖아?”
“그건 벽 지키느라 어쩔 수 없었지!”
간단하게 칭찬을 한 후, 세운은 로렌과 함께 벽 내부로 들어갔다. 그러자 처참한 전투 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생체 실험이 있었다고는 해도 이건…….”
곳곳에 파인 크레이터와 날카로운 검흔, 정체 모를 진득한 액체 등, 이틀이 지났음에도 전투 현장의 참혹함은 여전했다.
다만.
‘저거, 아우터가 낸 흔적이 아닌 것 같은데.’
회귀 전은 물론, 회귀 후에도 아우터와 몇 번이고 맞붙었던 세운이기에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참상은 모두 디아블로 길드원이 낸 흔적들이었다.
강한철의 주먹이나 유서아의 주먹, 백현의 언데드 등.
어쩐지 빨리 정리했다 싶었더니,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최대 화력을 내뿜은 모양이다.
“지금 레드 피쉬 상단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상단주가 없어져서 혼란스러운 분위기예요. 유통이 유지되고 있긴 한데 아마 조만간 뭐라도 터질 거예요.”
“그럼, 블루 터틀이 레드 피쉬를 먹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게 바로 본질이었다.
어차피 상단주가 사라지고 혼란이 찾아온 이상, 한동안 레드 피쉬가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었다.
아무리 썩었다고 해도 레드 피쉬는 제헤튼의 거대 삼 대 상단 중 하나.
레드 피쉬가 제 일을 못 하는 순간, 레드 피쉬가 담당하던 식료품 등에 문제가 생길 게 분명하다.
“……확실히, 그럴 듯하네요. 현 상황이라면 레드 피쉬도 저항하지 못할 거예요.”
“문제는 그린 쉘 역시 끼어들 거라는 거죠.”
“그쪽도 레드 피쉬의 혼란쯤은 눈치챘을 테니까요.”
“그러니 돈 되는 물품부터 선점하세요. 어차피 갑자기 모든 걸 먹을 수는 없으니까요.”
세운이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블루 터틀의 이념.
변화를 두려워하고 플레이어를 꺼리는 거주민들과 달리, 블루 터틀은 제헤튼의 성장을 위해 시야를 키우고 있었으니까.
블루 터틀의 세가 커질수록 제헤튼은 더욱 크게 발전할 것이다. 거기에 더불어 플레이어들 역시 더욱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 오전에만 가게에 머물 생각입니다.”
“네? 아, 역시 몸이 많이 안 좋아지신…….”
“그건 아니지만…….”
목표는 이뤘다.
원래는 운석과 아우터를 해결하자마자 최대한 빨리 가게를 정리하고 제헤튼을 떠날 생각이었지만, 생각이 달라졌다.
분명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부족하다.
무턱대고 시련을 올라간다고 강해지는 게 아니다. 지금 가진 힘에 익숙해져야 한다.
특히, 성흔.
파멸의 힘은 물론이고 아직 공포나 광란의 힘도 완벽하게 다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신성 역시 효율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세운이라 하더라도 이 신성은 회귀 전에 느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차원의 힘이었으니까.
“가게 운영은 문제없을 겁니다. 저서클 인챈트는 후임 마법사들이 잘하고 있고, 오전만 해도 중상품 이상은 충분히 뽑아낼 수 있으니까요.”
“저희야 그것만으로도 감사하죠.”
분명 계약으로 가게 운영에 대한 조약이 있었을 텐데, 로렌은 쿨하게 세운의 조건을 허락해 주었다.
그러다 눈앞의 망가진 실험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세운의 머릿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부지, 몇 개월만 제가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 * *
블루 터틀 상단은 세운이 말한 대로 레드 피쉬 상단이 유통하던 물품들을 빠르게 점령하기 시작했다.
레드 피쉬의 부상단주라는 사람이 분발해 보았지만, 지금까지 상단의 뒷돈을 빼돌린 상단주 덕분에 상단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덕분에 돈이 된다 싶은 물품 중 대다수가 블루 터틀의 차지가 되었다.
“그걸 왜 이렇게 늦게 알아챘냔 말이냐!”
“저희도 최대한 빨리 알아봤지만, 이미…….”
“남은 거라도 가져와, 얼른! 젠장, 로렌 양이 대체 어떻게 정보를 알아낸 거지? 확신을 갖지 않으면 이런 짓을 벌일 사람이 아닌데!”
그린 쉘 상단이 뒤늦게 쟁탈을 시도해 보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제 제헤튼의 삼 대 상단은 사라지고, 이 대 상단만이 남았다.
그린 쉘이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지만, 오히려 좋은 점이었다.
본래 고인 물은 썩는 법.
저렇게 밑에서 치고 올라와 줘야 물이 순환되며 썩지 않는 법이다.
제헤튼에서 경제의 판도가 뒤바뀌던 중.
콰아앙-!!
레드 피쉬의 실험동이 있던 부지에서는 거대한 폭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무리면 바로 말해.”
“멀쩡하다.”
“그래? 그럼…….”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포효(血狼咆哮)가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콰가가각!!
검기가 포효처럼 휘날리며 강한철을 휘갈기고 지나간다.
도망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대범위 공격.
분명 강력한 공격이지만, 상대와 거리가 벌어질수록 제대로 된 타격을 입히기 힘들다.
물론, 그렇다고 위력이 약하다는 건 아니다.
강한철의 주위의 대지가 늑대 무리가 할퀴고 지나간 것처럼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었으니까.
“이런 건…… 간지럽지도 않다!”
쿵!
강한철이 주먹을 아래로 내려찍었다.
하지만, 위력이 부족해서일까?
평소라면 지반이 무너지고 지진이 울렸을 공격인데도 주변에는 아무런 이변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운은 온 감각을 집중하여 주변을 살피고는 한순간 눈가를 찌푸리며 위로 크게 도약했다.
그 순간.
쿠구궁!!
세운이 서 있던 자리로 날카로운 바위들이 솟아났다.
정통으로 맞았다가는 바로 치명상이었을 테고, 스치기만 해도 저 바위 사이에 몸 일부가 끼고 말았을 거다.
그렇게 되면 곧바로 강한철이 주먹을 뻗어왔겠지.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포효(血狼咆哮)가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세운이 다시 한번 검기를 터트렸다. 다만, 강한철은 피하기는커녕 팔뚝으로 고개를 가로막으며 세운에게 달려들었다.
“같은 수에는 당하지 않는다!”
두꺼운 근육에서 타오는 강인한 방어력. 거기에 고창석이 만들어 준 방어구까지.
공격을 받아내며 우직하게 달려오는 강한철의 모습은 마치 불도저를 보는 듯했다.
그럼에도 세운은 꿋꿋하게 다시 혈랑포효의 준비 자세를 취했다.
다만, 지금까지의 자세와는 조금 달랐다.
혈랑포효 특유의 크게 비튼 허리를 절제하고 강한철을 똑바로 바라본다. 손목에 회전을 넣고 검을 비틀어 일직선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포효(血狼咆哮)가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콰아아앗-!!
혈랑포효의 검기가 검의 경로를 따라 모여들어 원통형으로 날아들었다.
거침없이 달려들던 강한철도 침음성을 흘리며 움직임을 멈춰야만 했다.
혈랑포효의 개량 버전.
하지만, 세운은 이걸로도 만족하지 못했다.
‘혈랑검법은 당연하고, 다른 무공들도 다음 초식들을 익혀야 한다.’
단순히 개량을 넘어, 다음 경지에 도달하는 것. 그것이 제헤튼을 떠나기 전까지 이뤄야 할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