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8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92화(288/675)
제292화
– 내공을 통해 화류검법의 제삼 초식, 수구화(繡毬花)가 강화됩니다.
유서아가 서 있던 자리에 새하얀 수구화가 피어났다.
그 모습이 아름다운 건 물론, 은은한 꽃향기마저 흘러나온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넋을 놓고 감상할 법한 모습이지만, 유서아는 다급하게 수구화의 범위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 즉시.
서걱!
수구화가 피어난 자리가 날카롭게 파여 들어갔다.
잘려 나간 바위의 잔해만 해도 수백 조각이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포효(血狼咆哮)가 강화됩니다.
그다음은 늑대의 포효였다.
강한철보다 재빠른 유서아를 상대하기 위해 넓게 퍼트린 검기가 퍼져나간다.
그런데도 유서아는 곡예사처럼 몸을 비틀며 모든 검기를 피한다.
“제법인데? 하나는 스칠 줄 알았는데.”
“제법은요! 반격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데!”
– 내공을 통해 빙백신장의 제일 초식, 빙장(氷場)이 강화됩니다.
이어서 세운이 강한철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손바닥을 펼쳐 대지를 내려친다.
진동 대신 퍼져나가는 한기와 함께 주변의 대지가 차가운 얼음장으로 변해 갔다.
“역시 안 통하네.”
혹시나 하였지만, 역시나다.
유서아는 빙판 위에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빠른 속도를 유지하며 움직였다. 심지어 지그재그로 휘어 시야를 교란하며 반격까지 해 온다.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거미줄을 타는 듯한 현란한 움직임에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반격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세운이 아니다.
대지에 맞붙은 손바닥에 힘을 주자 차가운 빙판 위로 날카로운 얼음 가시가 솟아오른다.
빙백신장의 제이 초식, 빙극.
얼음 가시가 절묘하게 움직임의 경로를 파악해 노려왔음에도 유서아는 미약한 진동만으로 공격을 파악해 얼음 가시의 범위를 벗어났다.
기기긱-
그러던 중, 세운의 귀에 미약한 소음이 들려왔다.
전투에 의한 소음 때문에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칠판을 긁듯이 거슬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저건가.’
다급하게 공격을 피하고만 있는 줄 알았던 유서아의 두 검이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어느새 세운의 주위로 쌍검으로 그려낸 거대한 거미줄이 펼쳐져 있었다.
– 플레이어 유서아가 ‘타란튤라의 거미줄’을 사용합니다.
촤아앗!
빙판에 그려진 거미줄이 붉게 번들거리며 세운을 덮쳐왔다.
바알의 신성까지 불어넣은 거미줄은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절대 끊을 수 없어 보였다.
다행히 거미줄이 일어나기 직전에 그것을 미리 파악한 세운이 성흔을 빛내며 침착하게 검을 바로잡았다.
– 내공을 통해 태산혈랑이 강화됩니다.
– 자하신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에 열기가 더해집니다.
내공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늑대가 거미줄을 물어뜯었다.
아무리 태산혈랑이라도 신성이 깃든 거미줄을 뜯어내기는 힘들겠지만, 세운이 펼친 태산혈랑 역시 ‘광란’의 힘을 잔뜩 머금고 있다.
게다가 어느새 뜨거운 양기로 변한 내공이 열을 내뿜으며 거미줄을 불태웠다.
카앙!
“새로운 기술인가 보네?”
“저라고 가만히 쉬고 있었던 건 아니니까요!”
거미줄을 빠져나오자마자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유서아의 검을 막아냈다.
짧은 대치가 이어졌지만, 유서아가 세운의 근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
거리가 벌어지자마자 세운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자세를 취했다.
“잘 막아야 할 거야.”
“네? 설마…….”
거미줄을 불태우기 위해 양기로 변한 단전의 내공이 더욱 뜨겁게 달궈졌다.
단순히 뜨거운 수준을 넘어 단전 안에서 물이 끓듯이 부글거린다.
몸 안에 양기가 휘몰아치며 입으로 뜨거운 김이 흘러나온다.
– 내공을 통해 자하검결의 제이 초식, 화우선형(花雨扇形)이 강화됩니다.
– 자하신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에 열기가 더해집니다.
최근까지 제일 초식만 사용하려 해도 제법 긴 준비 동작이 필요했던 자하검결.
비록 미리 양기를 끌어 올렸다고는 하지만, 일 초식도 아닌 무려 상승무공의 이 초식이다.
유서아가 위기감을 느끼며 전방에 거미줄을 뒤덮어 검막을 만드는 순간.
화르륵-!!
자하검결의 제이 초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색의 불꽃이 부채꼴로 퍼져나가며 유서아를 덮쳤다.
불꽃은 마치 꽃잎처럼 휘청거리며 주위를 아름답게 물들였지만, 막상 공격을 당하는 유서아의 입장에서는 지옥의 유황불로 보일 뿐이었다.
– 플레이어 유서아가 ‘타란튤라의 거미줄’을 사용합니다.
넘실거리는 자색의 꽃밭 위로 기다란 실이 생겨나더니 쭈욱 당겨져 꽃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겨우 피했다고는 하나, 몸 곳곳이 타들어 가 방어구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이것도 세운이 힘 조절을 한 덕분이다. 본래 화우선형의 위력은 이것보다 더욱 강했으니까.
“헉, 허억…….”
실을 놓고 허공에 떨어진 유서아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화우선형의 범위 안에서는 타들어 가는 열기 탓에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괜찮아?”
“갑자기 그런 공격을 해 놓고 괜찮냐구요?”
유서아가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세운이 살짝 당황했지만, 곧 유서아의 입에서 들려온 피식하는 소리에 장난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헤헤, 장난이에요. 저도 나름 다음 수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강력한 공격은 예상 못 했어요.”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너를 맞힐 수 없으니까. 자, 마셔.”
“고마워요.”
세운이 유서아에게 포션을 던져주었다.
최근 이하늘이 제헤튼에서 약초 등을 사들여 만들고 있는 포션인데, 효과가 꽤 뛰어났다.
블루 터틀 상단도 그 효과를 인정하고 비싼 값으로 팔아주고 있을 정도였다.
“역시 하늘 언니가 만든 포션은 맛있네요. 다른 건 전부 쓰거나 비렸는데.”
“많이 친해졌나 보네?”
“그래도 공적으로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요. 너무 거리를 좁히면 오히려 지휘에 문제가 생기거든요. ……특히, 정필 씨 같은.”
“그놈은 가끔 쪼아줄 필요가 있지.”
“후후, 맞아요. 그래도 정색하면 분위기는 읽어주더라구요.”
“분위기는 읽을 수 있게 만들어 놨으니까.”
“그 ‘교육’이란 거 말이죠?”
“맞아.”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휴식 시간에 세운과 유서아가 부지 외곽으로 이동해 아무 바위에나 걸터앉았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몸을 감싸고, 눈앞으로 암초가 빼곡히 차 있는 연안이 보였다.
저 암초들과 험난한 지형 등 때문에 이곳은 제헤튼에서 사용되지 않는 지형이었다.
“근데 저희 너무 시끄럽지 않았나요?”
“걱정 마. 미리 결계 쳐 놨으니까.”
“소음 차단 마법…… 사일런스였던가요?”
“잘 아네?”
“세운 씨 상대하려고 마법도 나름 공부 중이거든요.”
“다음은 마법으로만 싸워봐야겠는데.”
“네! 아니, 검도 같이 사용해 주세요. 저 자신 있어요!”
“그래, 그래.”
잠깐의 휴식.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끼며 대화가 끊긴 틈에, 세운이 성흔을 밝혔다.
곧이어 성흔 옆으로 검붉은 기운이 스멀거리며 늑대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 불렀나, 주인이시여.
파멸의 힘으로 소환한 늑대는 소환되자마자 세운에게 고개를 숙이며 복종을 표하였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당장에라도 이빨을 드러낼 듯이 이글거렸다.
아직 세운을 주인으로 완벽하게 인정하지 않은 것일까?
“와! 이건 뭐예요? 신기하다.”
“나도 새롭게 얻게 된 힘이야.”
“잘 어울려요! 근데, 음…….”
유서아가 다음 말을 하기 전에 망설였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한 세운이 작게 웃으며 대신 대답해 주었다.
“아우터를 닮았지?”
“조금이요…….”
붉은 기운이 감돌긴 했지만, 그 특유의 기운이나 몸에서 흘러내리는 액체 같은 게 아우터와 무척이나 흡사했다.
세운도 처음부터 느낀 점이었다.
아우터의 힘을 먹고 자라서 그런 건지, 처음부터 저랬던 건지…….
아직 이 힘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근데 얘 이름이 뭐예요?”
“이름?”
“설마 아직 이름도 안 지어준 거예요? 일회성 소환수도 아니잖아요.”
“그렇긴 한데…….”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그야, 이 늑대는 애완동물이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세운의 성흔으로부터 파생된 힘이어서 그저 능력의 일부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긴, 별개의 자아가 있는 듯하니까.’
이름을 지어주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언제까지 늑대, 늑대 거릴 수는 없으니까.
그르릉-
늑대의 머리를 몇 차례 쓰다듬던 세운이 곧 이름을 떠올렸다.
“루인.”
– 루인?
“앞으로 네 이름이다.”
– 루인…….
늑대가 자신의 이름을 반복해서 읊조렸다.
혹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저러는 건가 싶었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그르릉거리는 소리에 그 이름이 제법 마음에 든다는 걸 깨달았다.
– 고맙다. 나의 주인이시여.
이글이글 타오르던 늑대의 시선. 아니, 루인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이름을 지어주는 아주 단순한 과정이었지만, 시스템이 보기에는 그게 아닌 듯했다.
루인이 고개를 숙이자마자 수많은 메시지가 세운의 눈 앞을 가렸으니 말이다.
– 파멸의 늑대에게 고유의 이름을 선사하였습니다.
– 파멸의 늑대의 이름이 ‘루인’으로 정해집니다.
– ‘루인’의 자아가 인정되어 독립적인 활동 범위가 넓어집니다.
– ‘루인’의 자아가 인정되어 개별적인 판단 능력이 상승합니다.
…….
‘이름을 정해 주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거였나?’
당장 눈에 보이는 메시지가 열 개는 넘어간다. 그만큼 루인이 강해졌다는 뜻이다.
하긴, 성좌들조차도 대부분 자신의 진짜 이름을 숨긴 채 활동하고 있으니…….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격이 높아질수록 이름이 지니는 무게가 무거워진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와, 어떻게 된 거예요? 갑자기 덩치가 커졌어요. 기세도 더 강해진 것 같고.”
“네 덕분이야.”
“네?”
“이름. 나 혼자였다면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을 거야.”
“헤헤, 도움이 돼서 다행이네요.”
세운은 곧바로 강해진 루인의 힘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신성은 마나나 내공과 달리 사용할수록 강해지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러니 더더욱 정확한 힘을 알아두어야만 하니까.
“뛰어라. 최대한 높이.”
– 알겠다. 주인이시여!
터엉!
바닥이 움푹 파일 정도로 큰 도약과 함께 루인이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마치 미사일처럼 쏘아진 루인의 몸은 구름에 닿을 정도가 되어서야 속도를 멈췄다.
어마무시한 도약음.
다만, 그만큼 세운의 신성 역시 뭉텅 깎여 사라졌다.
다음은.
“빙빙 돌아봐. 천천히.”
– ……크릉?
“말 그대로야. 그냥 여유롭게 어슬렁거리기만 하면 돼.”
– ……알겠다.
루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이어 세운의 지시대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강아지가 꼬리를 쫓아 도는 것처럼 뱅글거리는 게 제법 귀엽다.
게다가 지시가 간단한 만큼 신성의 소모량 역시 미약하다.
‘명령의 세분화가 필요하겠는데.’
잘만 하면 위력을 낮춰서 지속력을 올리거나, 한 번의 지시로 다양한 동작이나 작전을 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루인의 자아는 그만큼 뛰어났으니까.
세운이 루인의 활용도를 구상하던 중, 저 멀리서부터 달그락거리는 말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찾아왔다.
“세운 님! 상점에서 세운 님을 찾는 손님이 있어요!”
아무래도 오늘의 수련은 여기까지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