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9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298화(294/675)
제298화
“젠장, 젠장, 젠장! 어째서 비벼지고 있는 거야!”
벤이 욕설을 퍼부으며 톱날 검을 휘둘렀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광풍이 휘몰아치며 나무가 비명을 지르고 땅이 움푹 파인다. 그런데도 세운은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는다.
처음 보는 보법으로 바람처럼 나풀거리며 흔들리는 게, 맞을 거 같으면서 절대 맞지 않는다.
“벤, 집중해라.”
“집중할 수 있겠냐고! 이 대 일이야, 이 대 일! 그것도 우리 둘 다 타락까지 사용했는데! 대체 왜!”
흑익 길드의 막내급이라고 할 수 있는 둘이었기에 타락을 사용한다 해도 능력치 폭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날개가 생겼지만, 고공비행 역시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이미 하층으로 역행하며 생겨난 능력치 페널티는 받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즉, 지금 세운은 59층에서 내려온 두 플레이어의 본 힘을 그대로 막아내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건 말도 안 돼! 저 녀석, 권능을 사용하는 것 같지도 않다고!”
“역시, 저자를 도발한 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아, 이미 지나간 일 가지고 언제까지 땍땍거릴 거야!”
“돌아가면 곧바로 상부에 보고하겠다.”
“너 내 파트너 아냐? 고지식한 것도 정도가 있지!”
“공과 사는 명확하게 구분해야 하는 법이다.”
언뜻 보면 서로 분열이라도 일어나는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둘은 놀랍도록 훌륭한 합을 보여주며 세운을 몰아붙였다.
다만, 세운이 잘 버티고 있었을 뿐.
그나마 타락을 사용한 덕분에 이 대 일의 대치가 유지되고 있었다.
“안 되겠다.”
벤이 이를 악물었다.
처음 이 대 일로 맞닥뜨렸을 때만 해도 이런 저층의 플레이어쯤이야 금방 끝낼 줄 알았는데, 타락을 사용해 능력치 페널티를 커버하면 금방 끝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세운의 힘이 떨어지고 있는 건 보이지만,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타락은 이리 오래 사용할 만한 권능이 아니니까.
“크게 한 방 치고, 안 먹히면 그냥 튀자.”
“동의하지.”
길드의 지시였던 감시는 달성하지 못했을지라도, 이 정도면 상대의 전력을 충분히 파악했다.
말만 잘하면 징계는 피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벤과 젠이 눈빛을 교차했다.
“이것도 안 먹히면…… 저놈 진짜, 말도 안 되는 괴물이라고.”
* * *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사 초식, 혈랑포효(血狼咆哮)가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세운이 검을 휘두르자 붉은 검기가 휘몰아치며 사방에서 날아오는 검은 깃털을 떨어트린다.
무작위에 가까운 혈랑포효의 검기를 세심하게 컨트롤하여 깃털을 격추하는 묘기에 가까운 장면.
곧이어 자세를 바꾸어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품속을 파고드는 벤의 톱날 검을 쳐낸다.
“후우…….”
몸에서 활기가 샘솟는다.
역시, 대련과 실전은 다르다.
아우터를 상대할 때 이후로 수련했던 결과를 모두 분출하는 이상은 상상 이상으로 후련했다.
마치, 오랜 시간 세공한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를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듯한 기분이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고작 몇 개월 지났다고 놀랍도록 강해진 당신의 위력에 고개를 젓습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최근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았다며 당신을 걱정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배를 부여잡은 채 쓰러져 있습니다.
‘슬슬 쓸 수 있는 건 거의 다 써본 것 같은데.’
몸도 단전도 충분히 달아올랐다.
이제 끝을 낼 때가 됐다고 생각한 세운이 자세를 잡을 때쯤, 슬슬 무리가 왔는지 깃털이 듬성듬성 빠져 있는 벤과 젠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60층 깨보겠다고 준비한 기술인데, 여기서 사용할 줄은 몰랐네.”
“집중해라.”
보아하니 저쪽도 더 이상 시간을 끌 생각은 없어 보인다.
어떤 기술이 다가올지 몰랐기에, 세운 역시 그들을 유심히 지켜보며 반격을 준비했다.
먼저 공격할 수도 있지만, 상대가 어떤 공격을 해 올지 모른다.
우위를 점한 상태라고 해도 방심은 하지 않았다.
펄럭!
젠이 가볍게 뛰어올라 날개를 펄럭였다.
벤의 위에서 부유하는 젠의 날개에서 깃털이 우수수 빠져나갔다.
지금까지도 세운에게 깃털을 암기처럼 날려 대던 그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깃털은 암기가 아니라 쇳덩이처럼 그저 아래로 추락할 뿐이었다.
“만익(萬翼).”
탐스러운 검은 날개에서 깃털이 모조리 떨어졌다.
마지막 깃털 하나까지 떨어지는 순간, 젠 역시 몸에 힘이 다한 듯 휘청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 순간, 사방에 퍼트려져 있던 검은 깃털이 젠의 톱날 검에 엉겨 붙었다.
톱날 검 위로 깃털로 이루어진 톱날이 생겨나고, 그 위로 또 하나의 톱날이 생겨났다.
최후에는 톱날 검이 하나의 거대한 날개 모양이 되어 검은 날을 번들거렸다.
“쇄도(殺到).”
벤의 무게중심이 극도로 낮아졌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양발의 간격이 멀어지며 상체가 숙여졌다. 그와 함께 등 뒤의 검은 날개가 제트기의 날개처럼 길고 날카롭게 뻗어졌다.
“만익쇄도(萬翼殺到). 어디 이것도 한 번 버텨봐라!”
벤의 움직임은 지금까지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빨랐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이 움푹 파이는 게, 힘도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거기에 검은 깃털로 이루어진 톱날 검.
저 검에는 단순히 등급으로 분류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그 증거로, 아직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톱날 검이 바닥을 긁으며 대지에 거대한 흉터를 남기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필살기(必殺技).
벤과 젠의 모든 힘이 녹아든 기술이었다.
“그러지.”
이에 세운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벤과 비견될 정도로 무게중심을 낮추고 양발을 떨어트린다.
상체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깊게 내려오니, 그 자세가 마치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해 웅크린 늑대와 닮아 있었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오 초식, 혈랑중엽(血狼衆獵)이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세운의 주위로 내공이 형상화되어 만들어진 수십의 늑대가 떠오른다.
혈랑중엽.
지금까지의 고독한 늑대와는 달리, 한 무리의 늑대가 동시에 뛰어들어 적을 사냥한다.
콰과곽!
수십의 늑대가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한다.
벤의 검, 날개, 다리, 어깨, 손목. 사방을 물어뜯으며 움직임을 막아낸다.
콰앙-!
벤의 톱날 검과 부딪치며 대치 상태를 이룬다.
“젠장, 너 대체 뭐야? 인간 맞아?”
혈랑중엽은 어지간한 상승무공 이상의 위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런데도 벤의 공격을 완전히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뒤로 밀려날 지경이었다.
그때.
– 크르릉…….
늑대 무리의 수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루인.
보조하라는 세운의 명령에 능동적으로 자신이 나설 타이밍이라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젠자아아앙!”
콰직!
벤의 오른팔이 물어뜯겼다.
처참하게 찢긴 오른팔의 단면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검은 깃털로 이루어진 톱날 검은 무척이나 강했지만, 한 손으로 다룰 수 있는 무기는 아니었다.
자연스레 톱날 검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붙어 있던 깃털들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네놈은 다음에 내가 꼭 복수해 주마! 흑익 길드를 건드린 대가가 어떤 건지 똑똑히 보여주마!”
“벤!”
이미 공격에 실패할 것까지 예측해 둔 것일까?
처음에 검은 날개의 깃털을 모두 소모한 채 세운에게서 떨어져 있던 젠이 반투명한 방어막을 설치해 두고 있었다.
마법을 사용한 건 아니고, 스크롤이나 아티팩트를 사용한 모양이다.
저 정도면 꽤 비쌌을 텐데.
벤이 슬슬 무너져가는 날개를 한 차례 펄럭이며 빠르게 방어막 안으로 들어갔다.
찌이익!
그러고는 둘이 동시에 티켓을 찢는다.
아마, 여섯 번째 쉼터로 이동하는 티켓이리라.
‘방어막을 믿고 저러는 건가.’
본래 전투 중에 귀환용 티켓을 사용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티켓으로 이동 중에는 움직이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자칫 힘이라도 끌어 올렸다가는 귀환이 취소되고 만다.
때문에 귀환은 전투 상황을 완벽하게 벗어난 후에 쓰는 게 상식이다.
그 때문에 젠이 미리 방어막을 설치해 둔 모양이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지.’
저 둘이 돌아가게 되면 세운의 전투력이 알려지게 된다.
그게 아니더라도 레비아탄과의 계약을 통해 흑익 길드를 와해하리라 결심한 이상, 정규 전력은 조금이라도 더 깎아두는 게 편하다.
철컥.
세운이 검집에 뒤랑달을 돌려 넣으며 숨을 골랐다.
단전이 새까맣게 물들어 세운의 몸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손잡이를 쥔 오른손의 살갗이 찢어질 정도로 단단히 힘을 주었다.
– 내공을 통해 파극암검의 제일 초식, 파천(破天)이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파극암검의 제일 초식, 파천.
30층의 시련에서 세운이 운석을 부수기 위해 사용했던 무공이었다.
애초에 세운의 수준으로 사용하기 불가능한 궁극의 마공이었던 터라, 당시에도 온갖 도움을 받아 간신히 사용할 수 있었지만.
‘할 수 있다.’
최근 얻은 깨달음 덕분에 세운은 자신할 수 있었다. 이제는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비록 아직까지 6갑자를 뛰어넘지 못해 사용하기 위한 내공이 부족하지만, 위력을 조금 낮추더라도 그 묘리를 최대한 살릴 수 있었다.
서걱-
세운의 검이 휘둘러지자, 일순간 세상이 검게 물드는 듯했다.
그 사이로 새하얀 실금이 그어지고, 실금을 중심으로 공간이 비틀어졌다.
빠직!
젠이 설치해 둔 방어막 따위는 파천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하얀 실금을 중심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처럼 비틀어진 방어막이 유리 조각처럼 부서져 내렸다.
“이런 미친!”
이동이 끝나기 직전, 벤이 다급하게 모든 힘을 쥐어 짜내 날개를 몸에 둘렀다.
서걱-
잔혹한 절삭음과 함께 세상의 색이 돌아오고, 비틀어진 공간이 제 모습을 되찾았다.
* * *
우웅-
“다섯 번째 쉼터, 항구 도시 제헤튼에서 벤과 젠이 귀환합니다.”
“둘에게 내려진 임무는 지속적인 감시였을 텐데?”
“젠의 마지막 보고에 의하면 감시 대상에게 들켜 버린 모양입니다.”
“쓸모없는 것들.”
여섯 번째 쉼터, 유흥의 거리 ‘라일락’에 존재하는 흑익 길드의 지부. 라일락 지부를 관리하던 지부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귀환하고 있는 둘에게 내려진 명령은 자신이 내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위.
그것도 최정상이라 할 수 있는 길드 마스터에게서 직접 하사된 명령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들이 따르는 성좌 ‘추락하는 날개’께서 직접 내린 명령이라 했으니 실패에 대한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 지부에서는 제일 쓸 만한 놈들이었는데.’
벤과 젠은 59층까지의 등반에 성공했던 플레이어다.
여섯 번째 쉼터에서 활동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플레이어임은 물론이고, 성격은 안 맞아도 둘의 실력은 놀랍도록 뛰어났다.
그렇기에 믿고 내린 명령이었는데, 당사자에게 들키고 돌아오는 꼴이라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설마 죽인 건 아니겠지?”
“벤의 성격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아…….”
지부장이 이마를 짚으며 탄식했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은 ‘정세운이라는 플레이어를 주시하라.’는 것뿐이다.
어떤 목적인지 모르니 죽였다면 그에 대한 반응이 어떨지 그조차도 알지 못한다.
‘아니기를 바랄 수밖에.’
벤과 젠이 감시 대상을 죽이지 않았기를.
죽였다면, 명령의 목적이 위험 대상에 대한 감시였던 터라 죽여도 상관없는 상황이었기를.
그렇게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내 둘의 귀환이 끝났다.
“야, 이 자식들아!”
지부장이 곧바로 언성을 높였다.
뛰어난 플레이어들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오냐오냐해 줄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내린 명령도 아니고, 상부에서 직접 내린 명령에 관한 사항이었으니까.
그런데…….
툭, 툭.
돌아온 건 벤과 젠이 아니었다.
웬 동그란 구체 두 개가 귀환하여 떨어지더니 붉은 자국을 남기며 지부장의 아래로 굴러왔다.
“…….”
그 정체는 바로 벤과 젠의 머리.
아직까지 자신들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 것처럼 부릅뜬 두 눈과 그 아래의 놀랍도록 깔끔한 절단면까지.
최악이다.
벤과 젠이 당했다.
이건 자신이 먼저 생각했던 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를 위에 보고한다면?
잔혹한 흑익 길드의 이념상, 라일락 지부가 쓸모없다고 판단되어 통째로 날려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들에게 고작 여섯 번째 층의 지부보다는 길드의 이념이 더욱 중요했으니까.
“라일락 지부의 모든 길드원을 불러 모아라.”
“알겠습니다. 라일락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을…….”
“아니, 시련을 오르고 있는 놈들까지 깡그리 집합시켜라. 불만은 듣지 않겠다.”
“……알겠습니다.”
벤과 젠이 당하여 임무에 실패했다고 보고하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그럴 바에, 차라리 실수로 감시 대상을 죽였다고 보고하는 게 더 가능성이 있었다.
다행히도 그들의 성좌인 ‘추락하는 날개’는 고층의 상황에 집중하느라 아래쪽은 신경 쓰지 않고 있는 상태.
‘누군가 눈치채기 전에 끝내야 한다.’
지부장의 눈이 조바심과 초조함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