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9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00화(296/675)
제300화
만로(萬路)의 미궁.
41~45층을 담당하고 있는 다섯 개의 미궁을 뜻하는 명칭이었다.
마지막 45층의 미궁은 좀 특이한 편이니 예외로 치고, 다른 네 개의 미궁은 ‘지, 수, 화, 풍’의 네 가지 속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41층의 미궁은 땅의 미궁.
미궁 전체가 흙과 바위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디그.”
파삭-
미궁에 도착하자마자 세운은 바로 옆의 벽에 마법을 사용하였다.
마법을 사용했다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소폭 파여 들어가는 벽면.
1m를 생각하고 사용한 마법인데 고작 이 정도였다.
‘설정한 깊이의 1/10. 마법 저항력은 대충 이 정도인가.’
미궁의 지형에는 마법 저항력이 존재한다.
그 때문에 지형을 마음대로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반대로 그 덕분에 마법 등의 공격을 마음껏 사용해도 미궁이 무너질 걱정은 없었다.
다음은 물리 저항력 테스트.
– 내공을 통해 진주언가권의 제삼 초식, 비천야차(飛天夜叉)가 강화됩니다.
시퍼렇게 물든 세운의 주먹이 벽면을 강타했다.
300이 넘어가는 근력 수치로 사용한 강권은 정상적으로 41층에 도달한 플레이어들이 절대 낼 수 없는 힘을 발현했다.
주먹에서 강한 반발력이 느껴졌지만, 반발력을 무시하고 주먹에 힘을 주었다.
‘물리 저항력은 마법 저항력보다 더 심하네.’
세운이 주먹을 떼자 벽면에 주먹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타격이 먹힌 것처럼 보이지만, 어지간한 벽이라면 이 주먹 한 방으로 무너지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도 벽은 얕은 주먹 자국만을 남길 뿐이었다.
차라리 벽면의 재질이 돌이나 바위라면 모를까, 얼마나 두꺼울지 모르는 흙으로 단단하게 뭉쳐 이루어진 벽면은 충격을 큰 폭으로 흡수하고 있었다.
[ 한아름 : 저 방금 엄청 크게 소리 질렀는데, 들은 사람? ] [ 한다운 : 나도 소리 지를래! ] [ 강한철 : 이 벽…… 안 부서지는군. ]혹시나 싶었지만, 당연하게도 모두 다른 위치에 떨어진 모양이다.
만약 시련에 대해 알고 있지 않았다면 이번 시련을 개인 시련으로 착각할 것 같았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확실히 그 나무늘보가 잠을 청하기 적절할 것 같은 장소라며 부리를 까딱거립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그래도 이곳에서는 잠꾸러기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며 혓바닥을 날름거립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숨 쉰 채 쓰러져 있습니다.
‘음?’
마몬과 레비아탄은 그렇다 치고, 지금까지 신경 쓰지 않고 있던 베엘제붑의 메시지가 유달리 눈에 띄었다.
하긴, 이번에는 쉼터에서 특히나 오래 머물렀으니, 몇 달 동안이나 식사를 제대로 안 챙겨준 꼴이다.
‘얼른 뭐라도 먹여줘야겠는데.’
다행인 점이라면 미궁에 몬스터가 제법 많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힘을 아끼기 위해 몬스터를 최대한 피해 다니지만, 세운은 그 반대가 되었다.
‘아니, 직접 찾아갈 필요도 없지.’
적당한 갈림길 앞에 선 세운이 서클을 회전시켰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노이즈 앰플리피케이션(Noise amplification) ]– 녹탑에서 전쟁용으로 고안해 낸 마법으로써, 바람을 갈기갈기 찢어 고막을 손상시킬 정도로 강렬한 소음을 발생시킨다.
귀찮게 찾아가는 것보다는, 상대 쪽에서 직접 찾아오게 만드는 게 훨씬 편하다.
마법을 발현시키자마자 세운이 벽에 박힌 바위를 향해 뒤랑달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과 바위가 충돌하며 일어난 소음이.
기이이이이잉-!!
고장 난 스피커의 소음처럼 확대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노이즈 앰플리피케이션.
소음 증폭이라는 뜻 그대로, 그저 소음을 발생시킬 뿐인 마법이었다.
본래 목적은 전쟁 시에 적군의 청각을 손상시키거나 혼란을 일으키는 등의 대범위 마법이지만, 세운은 그저 소음을 발생시키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다만, 그것만으로도.
“키에에-”
“그르르르-”
미궁에 퍼진 몬스터들을 불러내기에는 충분했다.
* * *
세운의 예상이 들어맞았다.
소음이 퍼져나가자마자 모든 갈림길에서 몬스터가 몰려들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일반 몬스터들이 세운에게 상대가 될 리 없었고.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코볼트 워리어의 허벅지를 물어뜯습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아이언 크랩의 껍질을 깨부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스톤 웜을 호로록 삼킵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의 뱃가죽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모든 몬스터는 출현과 동시에 베엘제붑의 먹잇감이 되었다.
– ‘스톤 웜’을 포식하였습니다.
– 양분을 흡수하여 체력이 0.1 상승합니다.
…….
당연하게도 오르는 능력치의 양은 극히 미미하다.
그렇다고 폭식의 권능은 무시할 수 없었다.
30층의 시련에서 운석을 부수려 했을 때 베엘제붑이 선사했었던 만복(滿腹)의 힘.
그건 폭식의 권능이 단순히 폭식을 통해 능력치를 올리는 데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슬슬 본격적으로 시련을 공략해야 하는데.’
미궁을 돌파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운에게’ 별로 어렵지 않다.
세운은 이미 회귀 전에 여정의 지침표를 이용하여 모든 미궁을 돌파한 경험이 있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여정의 지침표가 없었고 시간이 흐를 때마다 구조를 바꾸는 미궁의 특성상 42층을 향해 곧장 달려가는 것은 무리다.
그래도 최소한 남들처럼 헤매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다만, 문제는 이거지.’
세운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감청색의 두루마리를 꺼내 들었다.
관리소에서 보상으로 얻어냈던 벨페고르의 위치가 적혀 있는 두루마리였다.
– 와, 여긴 뚜껑으로 쓰면 되겠다. 방음 잘 되게 꾹꾹 잘 뭉쳐서 덮어둬야지. 이러면 아무도 못 열 거야.
당연하지만, 지도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며 구조가 변하는 미궁의 특성상 지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두루마리에 적힌 글귀는 수수께끼에 가까운…… 일기였다.
‘이게 관리소에서 파악한 벨페고르의 마지막 행보라고 했었지.’
대체 이런 일기장을 어떻게 입수한 건지…….
아니, 그전에 나태의 마신이라는 성좌가 어째서 일기를 작성한 건지도 의문이었다.
확실한 거라면, 여기 적힌 첫 분째 문단이 지금 세운이 있는 땅의 미궁에 관한 얘기라는 것이었다.
‘뚜껑…….’
차라리 수수께끼라면 회귀 전의 경험을 이용하여 유추라도 해 볼 텐데…… 이건 뭐, 생각대로 대충 휘갈긴 듯한 일기라 해석이 너무 어렵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그 나무늘보가 원래 생각이 없다며 직관적으로 해석하면 된다고 조언합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아쉽게도 자신 역시 냄새를 찾거나 일기를 해석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며 고개를 숙입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오랜만에 배부른 배를 만족스럽게 쓰다듬습니다.
‘직관적이라…….’
대충 해석하기로 힌트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뚜껑의 의미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한곳에 고정된 벽.
두 번째는 방음을 언급한 만큼 소리를 완벽하게 흡수하는 벽.
세 번째는 아무도 못 열 거라며 자신하는 것만큼 단단한 벽.
이 세 가지 조건이 맞는 벽을 찾아야만 했다.
그 방법은?
‘마몬의 말을 따라볼까.’
직관적으로 단순하게, 또한 과감하게.
베엘제붑이 식사를 마치고, 텅 빈 복도 위에서 세운이 뒤랑달을 꺼내 들었다.
* * *
“뒤에서 또 한 마리 나옵니다!”
“젠장, 왜 이렇게 많아!”
“저쪽 통로에서 계속 몰려오는 것 같습니다!”
땅의 미궁.
그 안에서 네 명의 플레이어가 몬스터를 막아내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아는 사이가 아니다.
같은 클랜이나 같은 길드라 하여도 이 드넓은 미궁에서 재회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그저 생존을 위해 처음 만나는 플레이어들끼리 급조한 파티일 뿐이었다.
“그래도 할 만하지 않아?”
“장비 맞추고 온 게 정말 신의 한 수였습니다”
“이거 아니었으면 이미 포기하고 도망치고 있었을 거야.”
플레이어들이 각자 자신 있는 장비를 쓰다듬으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제헤튼에서 구입한 마법 장비.
기초 마법인 샤프니스, 속성 마법인 파이어 볼이나 아이스 볼 등.
고작해야 1~2서클 마법이 깃든 장비들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전투력은 크게 향상되었다.
당장 몬스터를 상대할 때만 해도 충분히 체감되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너무 많은데?”
“일단 피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무래도 저 통로가 수상합니다.”
“좀 이상하지? 마치 도망치는 것처럼…….”
플레이어들이 통로 하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지만, 한 통로에서 수상할 정도로 많은 몬스터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공격 본능을 가지고 있지만, 저 통로에서 나온 몬스터들은 달랐다.
마치 무언가에게서 도망치는 것처럼 플레이어들을 쳐다도 보지 않고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그때.
캉! 카강! 가가가각!
쿠구구구구-
지켜보던 통로에서 정체 모를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금속음, 둔탁한 타격음에 무언가 불타고 터지는 듯한 소리까지.
– 아우우우!
심지어 맹수의 포효까지 들려왔다.
“젠장! 보스 몬스터야! 분명해!”
“어째서 이곳에…… 그리고 보스 몬스터는 보통 장소를 이동하지 않지 않습니까?”
“어디서나 의외는 있습니다! 얼른 도망치죠!”
“하긴, 잡몹이니까 상대하고 있었지. 이 좁은 곳에서 보스 몬스터를 맞닥뜨리면 전멸이야!”
탑을 등반하며 느낀 생존법.
상대와 자신의 전투력을 빠르게 예측하고, 이길 수 없다 싶으면 최대한 빨리 도망가는 것이다.
목숨을 가지고 도박할 필요는 없다.
“뒤, 뒤를 보십시오!”
“저놈들이 왜 길을 막고 있는 거야!”
파티가 도망치려 했지만, 뒤쪽에서 몬스터들이 부들거리며 길을 막고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다급하게 도망치던 놈들이 어째서 저러고 있는 것일까?
그 의문은 곧 풀리게 되었다.
반대쪽 통로의 그늘에서 몬스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무우우우-”
“미, 미노타우로스?”
미노타우로스.
미궁에 존재하는 준보스급 몬스터였다.
보스 몬스터급은 아니더라도 드넓은 미궁의 관리자로 군림하는 포악한 몬스터다.
“젠장, 이게 무슨…….”
유일한 도주로에 미노타우로스가 나타나다니.
귀환 티켓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렇게 앞뒤가 막힌 전투 상황에서 티켓을 사용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이런 불운이 닥친 것일까?
마법 장비를 구입할 때까지만 해도 무슨 시련이든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리고 그때.
콰앙!
짙은 먼지와 함께 굉음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 정체는 바로.
“……사람?”
사람이었다.
바로 옆에는 집채만 한 늑대가 따라오고 있었는데, 먼지가 가라앉자 무슨 짓을 했는지 난도질을 당한 벽면이 눈에 들어왔다.
네 플레이어가 혼란에 빠져 어버버거리고 있을 때, 통로에서 나온 사람이 늑대와 함께 미노타우로스가 있는 곳을 향했다.
“자, 잠깐! 조심하십시오!”
혼자서 미노타우로스에게 달려들다니, 미친 것일까?
이렇게 된 거 발악이라도 하기 위해 그를 따라 보조를 하려고 달려들었지만.
“무우-”
서걱.
깔끔한 절삭음과 함께 미노타우로스의 목이 아래로 떨어졌다.
곧바로 늑대가 몬스터 무리에 뛰어들더니 양 떼에 스며든 늑대처럼 몬스터를 학살했다.
고작 몇 초도 지나지 않아 통로를 가로막고 있던 몬스터가 모두 쓰러졌다.
“어……?”
네 명의 플레이어가 모두 당황한 채로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이가 감사 인사라도 전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지만.
쾅, 콰광!!
통로에서 나왔던 사람은 그저 무심하게 벽면을 공격하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렇다.
세운이 벨페고르의 힌트를 찾기 위해 선택한 것은…….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자신의 조언은 ‘직관적’으로 보라는 거였지 ‘무식하게’ 움직이라는 게 아니었다며 고개를 젓습니다.
나름대로 해석해 낸 세 번째 힌트.
‘아무도 못 열 거라며 자신하는 것만큼 단단한 벽’을 찾기 위해 닥치는 대로 보이는 벽면에 공격을 휘갈기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