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9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01화(297/675)
제301화
쾅, 쾅!
가가가각!
세운이 벽을 향한 공격을 이어나가며 길을 따라간다.
최선을 다한 공격은 아니다. 딱 벽에 작은 흔적만이 남을 정도?
그 정도면 벨페고르의 일기에 적힌 힌트를 파악하기 충분했으니까.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신의 단순무식한 돌파법에 한숨을 내쉽니다.
물론, 이 방식으로만 벨페고르의 ‘뚜껑’을 알아내려는 것은 아니었다.
미궁의 크기는 제헤튼 이상. 벽을 하나씩 긁고 다니기만 하더라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테니까.
‘대충 500m 전후로는 없나 보네.’
다른 방법은 바로, 소리를 이용한 감지였다.
벨페고르의 일기에 나온 ‘방음’을 생각하자면 뚜껑이라는 곳은 다른 벽에 비해 월등한 소음 흡수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마몬의 보물로 강화되고, 얼마 전 흑해에서의 폭식을 통해 더욱 강화된 청각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탐지법이었다.
그러다 벽에 흉터를 내고 소음을 일으킬 만한 내공과 체력이 떨어질 때쯤에는.
– 녹탑의 묘리에 따라 ‘노이즈 앰플리피케이션’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 적탑의 묘리에 따라 ‘노이즈 앰플리피케이션’의 범위가 확산됩니다.
기이잉-!
그때는 미궁에 들어서면서 배운 소음 마법을 사용하면 되었다.
소음을 너무 크게 내면 세운도 감지하기가 곤란했지만, 적당히 소리를 조절하면 충분히 탐색 마법처럼 활용할 수 있었다.
그것도 더욱 넓은 범위로.
그러다 간간이 소음을 듣고 찾아온 몬스터도 있었지만.
“구루룩.”
“구룩.”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새로운 먹잇감을 반깁니다.
그대로 베엘제붑의 배 속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겠는데.’
회귀 전에 모험가로서 탑의 온 구역을 누렸던 만큼 길 찾기는 자신 있었다. 적어도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길을 헤맬 리는 없었다.
이미 세운의 머릿속에는 미궁의 지도가 착실하게 그려지고 있었으니까.
다만, 그렇다고 해도 미궁은 넓다. 운이 나쁘면 지도를 완성할 때쯤,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찾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그보다 운이 나쁜 건 세운이 일기의 뜻을 잘못 해석하여 지도를 완성하고 나서도 뚜껑을 찾지 못하는 거겠지.
‘뭐, 그 정도 시간을 투자할 가치는 있지.’
칠대 마신 중 하나인 나태의 마신, 벨페고르의 권능을 얻을 수만 있다면 미궁에서 반년을 떠돌아도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었다.
물론, 그럴 가치가 있다는 거지 반년 동안 미궁을 헤매겠다는 건 아니다.
“키에엑!”
“하아…….”
나오라는 뚜껑은 안 나오고, 겁도 없이 나타나는 몬스터의 모습에 세운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당신이 평생 미궁에서 헤매길 기원합니다!
당분간 금식을 시켜 버릴까 심각하게 고민되었다.
* * *
하루 뒤.
소리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미묘한 감각에 세운이 발을 돌렸다.
도착한 곳에는 아래로 향하는 계단과 그곳을 지키고 있는 가디언이 존재했다.
“여긴…… 못…… 지나간다…….”
가디언의 정체는 머드 골렘.
전신이 진흙으로 이루어진 골렘이었는데, 꽤 까다로운 적으로 알려진 몬스터다.
방어력이 그리 높은 건 아니지만, 녀석의 몸이 흙과 붙어 있는 이상 몸이 아무리 부서져도 완벽하게 회복할 수 있었으니까.
회복력보다 빠르게 몸을 깎아내거나, 회복력을 무시할 만큼 강한 일격으로 처리해야만 하는 몬스터였다.
물론.
– 내공을 통해 태산혈랑이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세운이 선택한 것은 후자였다.
검의 경로를 따라 거대한 늑대의 모습이 나타나며 머드 골렘의 몸이 갈가리 찢겨 나갔다.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진 마력 핵을 깨트리는 것으로 전투가 끝이 났다.
‘생각보다 빨리 찾았네.’
미궁은 보통 빨리 공략한다고 해도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이 소모된다.
회귀 전의 세운 역시 여정의 지침표를 따라 길을 헤매지 않고 직진했음에도 3일이라는 시간이 걸렸었다.
그런 미궁의 출구를 고작 하루 만에 찾아냈다.
뭐, 회귀 전에는 길을 알아도 전투력이 따라가지 못했었으니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저건 또 얼마나 부드러울까 기대가 된다며 입을 크게 벌립니다.
폭식의 권능으로 머드 골렘을 치운 후, 세운이 등을 돌렸다.
뚜껑이 아닌 다른 출구를 통해 미궁을 통과하면 벨페고르의 흔적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
출구들은 출구마다 향하는 미궁의 시작점이 달랐으니까.
세운은 다시 한번 벨페고르의 일기를 읽어보곤 그 유치한 문장에 작은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아갔다.
* * *
[ 해리 케인 : 41층 통과했습니다. 다음은 물의 미궁이니 다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 유서아 : 엄청 빨리 통과하셨네요! ] [ 한아름 : 와, 혈랑 오빠보다 빨리 통과한 거야? 대단해! ] [ 한다운 : 으으아, 내 쪽에서 방금 엄청 무서운 굉음이 울려왔어! 막 벽에 상처가 나은 걸 보면 분명 엄청 강한 몬스터가 지나간 걸 거야! ]미궁에 들어온 지 4일째.
디아블로 길드에서 해리가 처음으로 미궁을 통과했다.
그의 성좌가 탐색과 관련이 있어 길을 헤매지 않았다고는 해도 놀라운 속도였다.
회귀 전의 세운과 비교해도 겨우 하루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뭐, 나도 이미 평범한 출구는 3개째니까.’
세운은 이번에도 출구를 지키던 가디언만 해치운 채로 등을 돌렸다.
솔직히 폭식의 권능이 아니었다면 가디언이고 뭐고 무시한 채로 뚜껑을 찾고 다녔을 거다.
“쿠룩?”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꺼지지 않는 배를 쓰다듬으며 새로운 먹이를 원합니다.
제헤튼에 머물던 동안 베엘제붑에게 생긴 미안함 따위는 이미 훨훨 날려 버린 세운이 귀찮은 듯이 검을 휘둘렀다.
* * *
“이쪽도 꽝인가.”
땅의 미궁을 돌아다닌 지 일주일째.
슬슬 디아블로 길드에서 해리 다음으로 통과자가 몇몇 나오고 있었다.
[ 유서아 : 운 좋게 출구를 찾을 수 있었네요. ] [ 박정필 : 오예, 나도 통과! ] [ 유서아 : 정필 씨는 어떤 가디언을 상대한 건가요? ] [ 박정필 : 가디언? 뭐야, 그게. 그런 거 없던데? ] [ 유서아 : ……? ] [ 박정필 : ? ]세운이 워낙 빠르게 넓은 범위를 돌아다녔던 탓일까?
길드챗을 보고 있으니 가끔 세운과 경로가 겹치는 이도 보였다. 만남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알려진 미궁의 확률을 속도와 탐지력으로 극복한 셈이다.
그렇다고 합류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이제 절반쯤 돌아다녔나.”
미궁의 지형은 끊임없이 바뀌기에 지도를 그려도 완성하기 직전까지 전체적인 모습은 알 수 없었다.
세운이 절반 정도 돌아다녔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짐작일 뿐.
베엘제붑이 먹이를 재촉하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금 탐사를 시작하려던 중.
“으아아악! 살려줘! 살려줘어!”
통로 앞에서 애타는 비명이 들려왔다.
통로로 다가가 보니 남자 하나가 뻥 뚫린 통로를 뒤로한 채 몬스터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어스 웜이라 불리는 몬스터 무리였는데,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을 보아하니, 꼼짝없이 당할 판이었다.
탑에서 약한 플레이어가 도태되는 것은 당연한 일.
보통이라면 도와줄 필요가 없겠지만.
– 성좌, ‘배고픈 왕자’가 포크로 식탁을 쾅쾅 두들깁니다.
어차피 죽여야 할 몬스터다.
굳이 남자가 죽기를 기다렸다 사냥하기는 세운이라도 찝찝했기에, 곧바로 서클을 회전시켰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익스플로젼’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적탑의 묘리에 따라 ‘익스플로젼’의 범위가 확산됩니다.
콰아앙!!
남자에게 슬금슬금 다가가던 어스 웜 무리의 중간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익스플로젼은 아우터를 상대로는 잠깐 시간을 끌 뿐이었지만, 그 상대가 저런 평범한 몬스터라면 얘기가 달랐다.
“끼이이이-”
단 한 번의 폭발에 어스 웜 전체가 폭사했다.
그나마 몇몇은 몸통 전부가 날아간 채로 구슬프게 꿈틀거렸지만, 세운의 검에 의해 머리를 꿰뚫렸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포크로 먹잇감을 휘휘 감아 꿀꺽 삼킵니다.
지금의 세운에게 미궁의 몬스터는 수준이 맞지 않았다.
솔직히, 벨페고르의 수색이 아니었다면 이미 45층까지의 미궁을 전부 공략해 냈을지도 모른다.
몬스터가 모두 사라지자, 엉덩방아를 찧은 채 떨고 있던 남자가 보였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강하시군요! 이렇게 도와주시다니, 정말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됐어.”
“아닙니다! 은혜는 갚아야지요! 제가 수발을 들겠습니다! 미궁이 끝날 때까지 밥이든 잠자리든 뭐든!”
남자가 무릎을 꿇으며 세운을 붙잡았다.
겉으로는 그저 은혜를 갚으려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남자는 강자로 보이는 세운에게 빌붙어 미궁을 편하게 공략하고자 저런 말을 내뱉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 식사나 잠자리를 맡기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기에 남자를 뿌리치려던 중.
“아아, 이것 참 다행입니다. 분명 출구가 있을 줄 알았는데, 막다른 길에 가디언이 있을 줄은 몰랐지 말입니다.”
남자가 이상한 얘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남자는 막다른 길이 아님에도 몬스터 무리를 상대로 도망치지 않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막다른 길의 가디언?’
미궁에서 가디언이란 출구를 지키고 있는 몬스터를 뜻한다.
미노타우로스와 같은 준 보스급 몬스터가 미궁을 배회하고는 있지만, 출구가 아닌 곳에 가디언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았다.
“안내해라.”
“네? 아니, 막다른 길이라니까요. 제가 이쪽으로 안 도망친 거 보면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지 말고 다른 쪽으로…….”
스릉-
세운의 검이 남자의 목젖에 닿았다.
처음 보는 플레이어에게 일일이 사정을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그보다 훨씬 빠르고 간편한 방법이 있었으니까.
“안내.”
“아, 알겠습니다!”
남자는 목젖이 잘려 나갈까 무서워 침조차 삼키지 못하며 대답했다.
이어서 칼로 등 뒤를 쿡쿡 찔러주자 군소리 안 하고 안내를 시작했다.
주변의 길은 똑같았다.
단단한 흙벽에 흙내가 풍겨오는 전형적인 땅의 미궁.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 몬스터를 피해서 들어왔는데 가디언이 있지를 않나, 몬스터들은 가디언이 무서운지 도망치지는 않고 통로 앞을 막고 있더라구요.”
쿡.
“얼마나 걸리지?”
“바, 바로 앞입니다!”
막다른 길에 다 와 간다는 것을 증명하듯, 주위의 조명이 미약하게 어두워졌다.
바람의 흐름이 끊기고, 저 멀리에서 그르릉거리는 동물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곧, 지금까지의 출구와는 달리 꽉 막혀 있는 벽면과 함께 그 앞을 지키고 있는 가디언이 보였다.
“그르릉…….”
곰.
몸을 웅크리고 있는데도 통로를 꽉 막은 것처럼 큰 덩치에 위협적인 숨소리. 가디언의 목적 따위는 잊은 듯이 잠에 빠져든 모양새.
무엇보다 중요한 건, 놈을 마주치자마자 레비아탄이 보인 반응이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저 곰에게서 극히 미약하게 잠꾸러기의 냄새가 느껴진다며 혀를 날름거립니다.
‘빙고.’
아무래도 ‘뚜껑’을 찾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