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9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02화(298/675)
제302화
“저, 저놈입니다!”
“네가 왔을 때는 일어났었나?”
“아뇨, 보자마자 도망쳤죠! 저런 괴물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잖습니까!”
가디언.
수호자라는 뜻을 가진 몬스터가 침입자가 왔음에도 잠을 자고 있다니. 그야말로 나태의 이름에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래, 넌 이제 돌아가.”
“네? 아니, 전 수발을…….”
“뭣하면 여기 있든지. 대신, 저놈이랑 싸우다가 눈먼 칼이나 발톱에 맞아도 내 탓은 하지 말고.”
“바, 방해가 되면 안 되겠죠!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남자가 그 말을 남기고 빠르게 사라졌다.
도망치는 꼴이 꼭 박정필 같았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웅담이 또 그렇게 맛있지 않냐며 기대감을 드러냅니다.
세운이 베엘제붑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앞으로 걸었다.
어차피 자고 있는 곰탱이보다는, 저 막다른 길이 뚜껑이 확실한지 확인하는 게 더 중요했다.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검을 휘두를 뿐.
상처가 나거나 소리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면 저 곰이 있다고 해도 이곳이 뚜껑일 확률은 적었다.
그렇게 세운의 검이 벽에 닿기 직전.
콱!
“그르르…….”
날카로운 발톱이 세운의 검을 가로막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던 곰이 세운에게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너도 일단은 가디언이라는 거냐.”
곰은 대답 대신 반대쪽 발톱을 휘둘렀다.
세운이 뒤로 물러서서 가볍게 피하자 벽은 절대 못 건드린다는 듯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래, 뭐 순서가 다를 뿐이지.”
벽을 확인하고 놈을 상대하나, 놈을 상대하고 벽을 확인하나 결과는 같았다.
폭식의 권능이 있는 이상, 녀석을 가만히 둘 생각은 없었으니까.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오 초식, 혈랑중엽(血狼衆獵)이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세운이 처음부터 강하게 나갔다.
검을 휘두르는 것을 신호로, 날카로운 수십의 송곳니가 곰에게 날아들었다.
“루인, 물어라.”
– 알겠다. 주인이시여.
레비아탄의 메시지에 따르면, 저 곰에게는 벨페고르의 신성이 깃들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기에 곧바로 루인을 소환해 공격을 지시했다.
상대가 신성을 지니고 있다면 루인의 공격만큼 잘 먹히는 공격이 또 없을 테니까.
콰직!
“구워어!”
녀석의 가죽은 두꺼웠다. 거기에 단단한 근육까지 합쳐지니 녀석은 루인에게 물리고도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화를 내며 세운에게 달려들었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익스플로젼’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녹탑의 묘리에 따라 ‘익스플로젼’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콰쾅!
폭발과 함께 묵직한 폭음이 울려 퍼졌지만, 녀석은 팔을 휘둘러 연기를 치워 낼 뿐이었다.
피해라고 해 봤자 털이 조금 그을린 정도.
가디언이라 해도 41층의 몬스터니 얕봤는데 생각 이상의 강함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콰득!
푹-
쏟아지는 세운과 루인의 공격에 녀석의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가죽은 루인의 송곳니를 버텨냈지만, 그 안쪽의 뼈가 버티지 못하고 부러진다.
세운은 뒤랑달을 들어 녀석의 복부만을 집요하게 노렸다.
“쿠워어!”
퍼억!
그래도 녀석은 포기하지 않았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발버둥 치더니, 기어코 다리를 물고 있는 루인을 쳐낸다.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루인의 몸이 반대편 벽까지 튕겨 나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이 벽이 울려댔다.
‘역시, 맞아.’
그사이, 세운은 확신할 수 있었다. 녀석이 지키고 있는 벽이 벨페고르의 일기에 나온 ‘뚜껑’이라는 사실을.
방금 루인이 벽에 부딪히며 일어난 진동이 천장과 바닥을 타고 퍼져나갔는데도 저 벽만은 떨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쿠워어어!”
피가 왈칵 흘러나오는 복부와 너덜거리는 한쪽 다리를 무시한 채, 녀석이 세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통로를 가득 채우는 크기 때문에 위압감이 엄청났다.
그리고 세운은, 망설임 없이 양손으로 검을 꽉 비틀어 잡았다.
– 내공을 통해 태극십팔반검의 제칠 초식, 태산괴결(泰山壞決)이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태산마저 무너트린다는 태극십팔반검의 제칠 초식, 태산괴결.
그 거대한 힘이 곰의 발톱과 충돌했다.
처음 아주 잠깐, 대치 상태가 이어지는 듯했지만.
콰직-
발톱이 갈라지는 섬뜩한 소리를 시작으로, 빠르게 승부가 결정되었다.
쿠궁!
뒤랑달에 의해 몸이 갈라진, 아니, 뭉개졌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리는 모습이 되어 버린 곰이 세운을 지나쳐 굴러갔다.
루인에게 반격을 먹을 정도로 강력했던 몬스터.
과연, 벨페고르의 뚜껑을 지키는 가디언이었다.
‘신성을 물려받은 건 아니었나.’
벨페고르의 가디언에 레비아탄마저 그 냄새를 맡았다고 하기에 분명 무언가 권능이라도 사용할 줄 알았는데.
제법 강하긴 했지만, 전투는 별다른 이변 없이 쉽게 끝났다.
그렇게 뒤랑달을 납검하고 벽을 향해 다가가던 중, 뒤쪽에서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 주인.
콰앙!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폭음.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질척한 무언가가 세운의 몸을 뒤덮었다.
“그르르…….”
일단은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뒤쪽에서 살벌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몸이 완전히 회복된. 아니, 그것을 넘어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욱 흉악해진 곰이 칼처럼 날카로운 발톱을 뻗고 있었다.
그 앞에 흥건히 젖어 있는 검붉은 액체.
세운은 그제야 몸을 뒤덮은 액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루인…….’
물론, 죽은 건 아니다.
루인은 세운의 신성으로 이루어진 만큼 성흔이 멀쩡한 만큼 몸이 터진다고 죽지는 않는다.
‘회복 능력? 아니, 저건…….’
세운은 분명 곰을 두 동강 내어 쓰러트렸다.
회복력이 괴랄하기로 유명한 트롤이라도 두 동강 난 상태에서 이렇게 순식간에 신체를 재생하는 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제는 세운이 느껴질 정도로 녀석에게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감청색의 기운.
분명하다.
저건 녀석의 회복력 따위가 아닌…….
‘나태의 권능인가.’
벨페고르에게 하사받은 힘이 분명했다.
“쿠오오오오!”
단순히 덩치만이 근력이나 속도 등, 신체적인 모든 힘이 증폭된 것 같았다.
길고 날카로워진 발톱에는 검기를 닮은 기운이 둘러싸여 있었다.
안 그래도 강한 몬스터였는데, 그전보다 두 배는 더 강해진 느낌.
– 내공을 통해 북해검결의 제이 초식, 북해빙랑(北海氷浪)이 강화됩니다.
– 빙백신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에 냉기가 더해집니다.
세운이 검을 휘두르자 냉기가 범람하여 녀석을 뒤덮었다.
순식간에 얼어 버리는 몸.
그러나.
쩌억!
녀석은 단순히 육체의 힘만으로 얼음을 깨부수고 탈출했다.
몸을 얼린 얼음을 무리하게 깨트린 반동 때문에 생겨난 상처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걸 보니 회복력을 증가시켜 주는 권능은 아닌 모양이다.
콰앙!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이곳의 지형은 세운에게 너무 불리했다.
저렇게 강하고 덩치 큰 녀석을 상대로는 넓은 공간에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공략법이다.
하지만, 미궁의 통로는 너무 좁았다.
녀석이 발톱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통로의 절반이 피격 범위가 되었다.
네발로 달려 들이박을 때는 도망을 포기하고 꼼짝없이 정면으로 맞서야 했다.
‘나도 방심했던 건가.’
나름 처음부터 제대로 밀어붙였다고 생각했는데, 상대에게서 벨페고르의 신성이 느껴진다는 것을 미리 들었음에도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깃들어라.”
스르륵.
바닥에 흥건히 퍼져 있던 검붉은 액체가 꿀렁거리며 세운에게 다가왔다.
세운이 바닥에 검을 내려찍자, 검붉은 액체가 흡수되듯이 검에 들러붙었다.
제헤튼에서 수련하며 깨달은 루인의 또 다른 사용법. 루인이 가진 모든 힘을 검에 담는 일종의 인챈트에 가까운 방법이었다.
철컥.
“쿠오오오오!”
힘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이 달려오는 녀석을 마주하며 검을 바로잡았다.
루인의 힘이 깃든 뒤랑달이 기습 직전의 늑대처럼 숨을 죽였다.
세운 주위의 분위기가 앞이랑은 대조되게 푹 가라앉았다.
곧이어 녀석이 미궁을 쿵쿵 울리며 세운의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 내공을 통해 파극암검의 제일 초식, 파천(破天)이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새까맣게 암전되는 배경.
시간이 멈춘 듯이 어깨를 크게 벌린 채 발톱을 휘두르려 하는 곰.
그리고 그사이, 세운의 검에서 검붉은 늑대가 발톱을 드러냈다.
서걱-
까만 배경에 늑대가 휘두른 발톱의 궤적이 그어졌다.
궤적을 중심으로 위아래의 공간이 어긋나며, 세운이 뒤랑달을 납검하는 순간.
푸홧!
곰의 몸이 다시 한번 이등분 난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이번에는 녀석의 죽음을 확실히 하기 위해 곧바로 폭식의 권능을 사용하였다.
상대의 죽음을 확인하고 확실시하는 데 이만한 힘이 또 없었다.
– ‘나태의 곰’을 포식하였습니다.
– 양분을 흡수하여 근력이 5, 체력이 5 상승합니다.
보스 몬스터도 아닌 가디언격 몬스터일 뿐인데 능력치가 총합 10이나 상승했다.
그뿐 아니라 녀석에게 깃들어 있던 벨페고르의 신성도 세운의 성흔에 흡수되었다.
극히 미약한 양이었지만, 세운은 충분히 만족했다. 신성이란 그만큼 쌓기 힘든 힘이었으니까.
‘뚜껑이라…….’
곰이 지키고 있던 벽면 위로 세운이 손을 올렸다.
전투의 여파로 인해 주변의 벽에 온갖 흠집이 난무해 있었는데, 이쪽 벽면만은 유일하게 아무런 흠집도 나지 않았다.
진동을 흡수하는 걸 보니 두께도 어마무시한 것 같았다.
아무리 세운이라 해도 이 뚜껑을 깨부수고 들어가는 건 무리가 아닐까.
위치를 찾아내도 플레이어의 힘으로는 결코 부술 수 없는 뚜껑.
회귀 전에 여정의 지침표가 이곳을 가리켰다 하더라도 결코 문을 열지 못했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세운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철컥.
튜토리얼의 랭킹 보상으로 얻은 만능열쇠.
이 뚜껑이 무언가의 입구를 상징하는 ‘문’의 개념이라면 열쇠로 열 수 있으리라.
세운은 이미 이 열쇠로 디오니소스의 동굴을 가로막고 있는 수정 벽을 연적도 있었다.
쿠구구-
열쇠를 돌리자 그 어떤 공격에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으며 굳건히 자리를 지키던 벽면이 서서히 움직였다.
열린 자리에서 사람 한 명이 딱 들어갈 크기의 계단이 나타났다.
– 41층의 시련, ‘땅의 미궁’에서 숨겨진 계단을 발견하였습니다.
– 해당 출구는 탑이 권장하는 난이도에 맞지 않습니다.
– 정말 선택하시겠습니까?
연이어 떠 오르는 경고문.
애초에 이곳은 누군가가 찾아서도, 들어와서도 안 될 마신의 쉼터였다. 그러니 어지간하면 플레이어의 모든 선택을 존중…… 아니, 무심하던 탑에서 경고를 알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세운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메시지를 뚫고 계단을 내려가니, 곧이어 42층의 시련이 모습을 드러냈다.
42층의 시련.
층 전체가 물과 얼음으로 뒤덮인 ‘물의 미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