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29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03화(299/675)
제303화
– 42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물의 미궁
– 당신은 전설로 일컬어지던 ‘만로(萬路)의 미궁’에 입장하였습니다.
– 미궁을 탐색하여 다음 미궁을 향한 진입로를 찾아내십시오.
42층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느껴진 건 오싹한 한기였다.
그도 그럴 게, 물의 미궁은 물과 얼음으로 이루어진 미궁이다. 지형 전체를 구성하는 얼음 때문에 풍겨오는 냉기에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42층이랑 다를 거 없네.’
다른 출구도 아닌 ‘뚜껑’을 지나온 만큼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물의 미궁은 세운이 회귀 전 들어섰던 물의 미궁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었다.
철퍽, 철퍽.
얼음으로 된 벽 말고도 통로의 바닥 전체에 물이 10cm 정도 깔려 있었다.
전부 균등한 건 아니고 곳곳에 깊은 물웅덩이가 있거나 수심이 깊어지기도 해서 이동에 주의해야 하는 곳이었다.
촤르륵.
본격적으로 미궁을 공략하기 전, 세운은 두루마리를 펼쳐 42층과 연관된 문단을 읽어보았다.
다시 보아도 여전히 유치한 일기장이다.
이럴 거면 그림이라도 좀 그려주지.
– 시원해! 여길 연결해 두면 습도도 조절되고, 목마를 때 바로 물 마실 수 있겠지? 응, 좋아! 근데 물을 어떻게 끌어오지? 에이, 그냥 부수면 되겠지!
– ……어어, 너무 많이 부셨나?
심각하다.
단서가 될 만한 거라면 ‘너무 많이 부셨나?’ 정도.
애초에 이건 일기일 뿐이지 지도가 아니라 할 말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한다 싶었다.
‘뭐, 그래도 대충 짐작은 가네.’
물을 연결하려다 너무 많이 부셨다고 한다.
41층에서 보았던 뚜껑의 크기를 생각했을 때, 벨페고르가 ‘너무 많이’라는 말까지 사용한 걸 보면 파괴 현장의 모습은 생각 이상으로 클 것이다.
그곳에서 물이 새고 있을 테니, 물이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가면 된다.
다행히도 통로에 잔잔하게 깔린 물이 어딘가로 고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푸홧!
흐름을 따라 이동하던 중.
앞쪽의 물웅덩이에서 반쯤 투명한 촉수 같은 게 올라왔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일 초식, 혈랑조(血狼爪)가 강화됩니다.
그리고, 등장과 동시에 세운에게 닿아보지도 못한 채 잘려 나가는 촉수.
‘난이도가 다른 건 딱히 못 느끼겠는데.’
이곳에 입장하기 전, 탑은 시스템 메시지까지 떠 올리며 이곳의 난이도를 경고해 주었다.
그런데 방금 자른 촉수만 보아도 딱 세운이 기억하는 물의 미궁과 같은 수준이었다.
솨아아-
그러던 중, 통로의 앞쪽에서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물의 미궁에는 폭포 역시 존재했기에 놀랄 일은 아니지만, 세운은 소리에서 이상한 점을 알아챘다.
‘메아리?’
폭포 소리가 메아리처럼 윙윙 울려왔다.
그 뜻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다. 저 앞에 거대한 공동이 존재한다는 것.
아직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설마 목적지에 도착한 건가?
세운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이윽고 도착한 통로의 끝에는.
“미친…….”
세운의 상식을 아득히 깨부수는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솨아아아-!!
통로에서 들려온 소리의 정체는 물의 미궁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폭포의 소리가 아니었다.
바닥이 워낙 크게 무너진 탓에 물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생겨난 폭포였다.
끊긴 통로 모두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있으니 폭포 소리가 유난히 크고, 공간을 울리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게 ‘너무 많이 부셨나?’라고?”
시야 전체가 뻥 뚫려 있었다.
대충 적당한 크기의 크레이터를 예상했지만, 이건 어지간한 축구 경기장 따위를 가볍게 뛰어넘는 거대한 크기의 호수였다.
물이 이렇게 투명하고 깨끗한데도 바닥이 워낙 깊어 아래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길도 없고.’
꼼짝없이 저 차가운 물에서 헤엄을 쳐야 할 판이다.
게다가, 수면 아래에 수백의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것도 보였다.
모든 물이 이곳을 향해 흐르고 있던 만큼, 사방에 존재하던 몬스터들이 이곳까지 흘러들어 거대한 생태계가 이루어진 모양이다.
‘뭐, 가 볼까.’
그래도 다행인 점이라면 땅의 미궁 때와 달리 목적지까지의 방향이 명확하다는 거다. 호수에서도 물은 한쪽으로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세운이 물 아래로 빠져들고.
그와 함께 수면 아래의 몬스터들이 세운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 * *
45층의 시련. 아니, 일반적인 45층의 시련이라고는 할 수 없는 숨겨진 층.
그곳에는 세운이 얻은 정보대로 ‘나태의 마신, 벨페고르’가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오늘도 잠자는 모습이 아름다우시군.”
벨페고르의 수하.
주로 집사라고 불리는 악마가 오늘도 역시 벨페고르의 숙면을 위해 주변을 정리했다.
온도를 맞추고, 습도를 맞추고, 새 이불을 준비한다.
그는 벨페고르의 수면을 위해 이 자리에서 벌써 수백 년 동안이나 이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태의 권능을 이어받은 것과 반대로, 잠도 청하지 않으면서까지 말이다.
“오늘도 이대로만 같으면 좋겠군.”
하루의 점검이 끝나면 그가 늘 내뱉는 말이었다.
그렇게 집사가 제자리로 돌아가려던 중.
쿠궁-
미궁의 천장을 타고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아니, 사실 진동이라기도 애매했다. 방금의 진동은 벌레조차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극히 미약하고 미묘했으니까.
하지만, 그와 함께 집사의 발이 얼어붙은 듯이 멈춰 섰고.
“으음…….”
이불 속에 파묻혀 있던 벨페고르에게서 작은 뒤척임이 느껴졌다.
그 순간, 집사의 표정이 모두가 아는 악마의 그것처럼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감히 어떤 빌어먹을 놈이…….”
침입자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수백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침입자라고 해 봤자 고작 플레이어일 테고, 놈이 여기까지 도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은 이곳에서 벨페고르의 수발을 들어야 했으니 일부러 가만히 두고 있었는데. 그놈이 지금, 벨페고르를 뒤척이게 만들었다.
“벨페고르 님…… 금방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집사가 눈을 번뜩이며 먼지 쌓인 무기를 집어 들었다.
감히 자신의 신인 벨페고르를 잠에서 뒤척이게 한 죄, 시끄럽게 하지 못하게 입부터 잘라낸 후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겠다고 다짐한 채.
그가 세운이 존재하는 미궁의 위로 몸을 움직였다.
아니, 그전에.
“아차, 이불 너는 걸 잊었군. 아무리 그래도 이건 빼 먹을 수 없지.”
자신의 신이 뽀송한 이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이불을 널고 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 * *
– 흑탑의 묘리에 따라 ‘기가 라이트닝’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녹탑의 묘리에 따라 ‘기가 라이트닝’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 자탑의 묘리에 따라 ‘기가 라이트닝’의 시전 속도가 빨라집니다.
– 적탑의 묘리에 따라 ‘기가 라이트닝’의 범위가 확산됩니다.
얼음으로 둘러싸인 천장에 먹구름이 짙어진다.
곧이어 내려치는 자색의 벼락.
그 수십 발의 벼락이 호수의 수면을 꿰뚫자, 세운을 향해 몰려들던 몬스터들이 배를 내밀며 둥둥 떠 올랐다.
‘더럽게 많네.’
호수에 들어오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42층에 들어오기 전, 시스템이 어째서 경고를 보낸 것인지.
그도 그럴 게, 호수에는 물의 미궁 전체의 몬스터들이 흘러들어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한복판에 뛰어든 꼴이니, 자연스럽게 세운 역시 그 생존 경쟁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상황을 극도로 반기는 이가 하나 있었다.
– 폭식의 권능으로 ‘물의 미궁’에 존재하는 거대한 호수를 지정하였습니다.
– 폭식의 어금니가 몬스터를 덮쳐옵니다!
번개를 한 번 내리꽂을 때마다 수십, 수백의 몬스터가 떠 오른다.
베엘제붑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환영이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게 말로만 듣던 물회가 아니겠냐며 먹잇감을 후루룩 빨아들입니다.
세운이 물의 흐름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생태계가 크게 바뀌었다.
처음 뛰어들었던 곳에는 피라냐가 가득했다면, 안쪽일수록 강한 포식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미 길을 찾는다는 미궁의 목적은 퇴색된 거나 다름없었다.
‘여긴 그래도 꽤 일찍 끝나겠는데.’
물이 흐르는 방향대로만 이동하면 끝이다.
호수의 크기가 상상 이상으로 넓다고는 해도, 미궁을 돌아다니는 것보다도 훨씬 빠르니, 아마 오늘 안으로 물의 미궁을 공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파지직!
자색의 벼락이 다시 한번 내려쳤다.
안쪽에 다다르니 슬슬 세운의 마법을 버티고 살아남은 몬스터들도 있었지만.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사 초식, 혈랑포효(血狼咆哮)가 강화됩니다.
서거걱-
놈들 역시 세운에게 닿기 전에 절단 난 채 목숨을 잃었다.
마몬의 창고에서 꺼내어 사용한 ‘인어의 아가미’와 ‘머맨의 지느러미’가 있는 이상 수중이라 하여도 세운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얼마간 헤엄쳤을까?
해류가 점차 빨라지고, 몬스터의 수가 줄어들었다.
앞쪽에는 엄청난 크기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며 주변의 물이 아래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저기다.’
그렇게 생각한 세운이 뒤랑달 대신 아펠리온을 쥐고 소용돌이로 뛰어들었다. 아무래도 거센 해류에 대항하는 만큼 검보다는 창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나타난 몬스터를 대처하기도 편하고 말이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특식의 존재를 알아차립니다.
아니나 다를까, 소용돌이를 뚫고 들어가자마자 몬스터가 보였다.
태풍으로 따지면 태풍의 눈이라고 할 수 있는 소용돌이의 가장 중심부. 벨페고르가 만들어 낸 배수구 위에 자리 잡은 몬스터를.
‘말미잘?’
세운으로서도 처음 보는 몬스터였다.
척 보기엔 식물처럼 보였는데,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입을 쩍 벌린 채로 촉수를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녀석이 어떤 방식으로 사냥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크륵, 크르르르-”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온 상어 한 마리가 말미잘의 촉수에 휘감긴다.
상어는 저항을 해 보지만, 촉수에 독이라도 있는 건지 비명이 점차 수그러든다.
움직임이 멈추는 순간, 그 큰 상어의 몸체를 통째로 입 안에 쑤셔 넣는다.
콰직!
저게 바로 저 몬스터의 사냥 방식.
사실상 이 호수의 최대 포식자라 할 수 있는 몬스터였다.
이 난폭한 소용돌이는 녀석에게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주는 보호막이자, 먹잇감을 데려와 주는 보급망이기도 했다.
다만, 세운이 보기에는 별 위압감이 드는 몬스터는 아니었다.
– 내공을 통해 빙룡창법의 제삼 초식, 빙룡낙하(氷龍落下)가 강화됩니다.
– 빙백신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에 냉기가 더해집니다.
까드득!
차갑게 얼어가는 아펠리온의 창끝.
그와 함께 빙룡창법의 제오 초식, 빙룡현신(氷龍現身)까지 개방되어 세운의 주위로 얼음 날개가 생겨났다.
날개는 이전에 사용했던 것과 달리, 마치 지느러미처럼 매끈한 모양이었다.
“말미잘 꼬치라고, 들어보셨습니까?”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당신이 차려주는 음식이라면 뭐든 맛있을 거라며 대차게 환호합니다.
세운의 몸이 아래로 쏘아지며, 휘몰아치던 소용돌이가 차갑게 얼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