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화(3/675)
제 3화
풀 한 포기 자라나 있지 않은 허허벌판.
전방으로는 울창한 수풀이 솟아나 있었고, 후방으로는 탁 트인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좌우로는 적당히 경사진 언덕과 울퉁불퉁한 바위가 무성한 바위산이 서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미리 만들어 둔 것처럼 구역이 확실하게 나누어진 영역.
무엇보다, 눈앞에 나타난 ‘튜토리얼’이라는 메시지까지.
분명하다.
‘되돌아왔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처음 탑에 던져졌던 첫날.
그때로 회귀하는 데 성공했다.
크로노스의 모래시계.
무너져 가는 탑에서 내걸었던 최후의 도박에 성공한 것이다.
“여, 여긴 대체 어디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나는 분명 직장에 있었는데?”
정신을 차린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튜토리얼에 소환되는 인원은 한 명이 아니었다.
어떤 기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성좌가 지정한 서른 명의 인간이 플레이어로서 탑의 외각에 소환된다.
물론, 튜토리얼을 진행하고 탑을 오르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오크, 엘프, 드워프, 수인족 등. 다양한 종족들이 자의적으로, 또는 우리처럼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오게 된다.
“저, 저기! 혹시 뭐 아시는 거 없습니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지…….”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이 세운의 소매를 붙잡는다.
목소리는 물론, 세운의 소매를 잡은 손에서도 덜덜거리는 떨림이 느껴진다.
‘하긴, 나도 그랬지.’
세운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처음 튜토리얼이 시작되었을 때, 그 역시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세운은 튜토리얼이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진정하시죠.”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진정이 됩니까! 호, 혹시 몰래카메라 같은 겁니까?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세운의 소매를 잡은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말을 횡설수설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세운은 그를 위해 친절하게 튜토리얼에 관해 설명해 줄 생각은 없다.
‘어차피, 지금 설명을 해 봤자 의미 없다.’
다들 혼란에 빠져 있는 지금, 손을 들고 나서 봤자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상황이 진정되면 유일하게 상황을 알고 있는 세운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게 분명하다.
‘어차피, 웨이브가 시작되면 알아서 정리될 테니까.’
[ 튜토리얼 첫 번째 장 – 적응 ]-첫 번째 몬스터 웨이브까지 남은 시간 4분 21초.
다들 당황하느라 신경 쓰지 못하고 있지만, 세운을 포함한 사람들의 머리 위로는 이런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몇 명은 메시지를 확인하고 소리를 질러댔고, 몬스터 웨이브라는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 저 사람, 기억난다.’
세운은 자신의 소매를 잡았던 남성을 바라보았다.
여기까지는 과거와 똑같다.
크로노스의 모래시계를 사용하며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정리해 두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회귀라고 해도 혹여나 다른 위치에서 튜토리얼이 시작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러면 계획에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상태창.’
[ 상태창 ]이름 : 정세운
레벨 : 1
칭호 : –
근력 : 7 민첩 : 9
체력 : 8 지력 : 12
잔여 능력치 : 0
고유 스킬 : 탐욕의 권능, 폭식의 권능
스킬 : –
일단은 몬스터 웨이브에 앞서 현재 상황을 확인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한 세운이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낮은 능력치에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그때는 몰랐는데, 어지간히도 심각한 수준이었네.’
일반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했을 때, 능력치의 평균값은 보통 10이었다. 그런데 세운은 지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한 자릿수다.
운동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는 해도,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이야. 근력이 7이라면 간신히 고블린이나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것보다, 권능?’
상태를 확인하던 세운이 처음 보는 스킬을 발견하였다.
권능이라니.
권능이 무엇인가?
신, 또는 신에 준하는 존재가 지닌 고유의 힘이다.
그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직접 신이 되거나, 그게 아니라면 신의 사도나 권속이 되어 성좌의 권능을 내려받거나.
애초에 성좌들에게 그리 사랑받지 못했던 세운이 권능을 사용해 본 적이 있었을 리가 없다.
그런 권능이, 세운의 고유 스킬란에 두 개나 자리 잡고 있었다.
‘잘못 본 게 아니었어.’
크로노스의 모래시계가 작동하며 함께 떠올랐던 시스템 메시지.
인과율을 역행하며 혼란스러운 상황에 잘못 확인한 게 아닐까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사용할 수 있을까?’
회귀를 거치며 세운이 가지고 있던 모든 스킬과 칭호, 공적치가 사라지고 능력치도 처참한 수준으로 초기화되었다.
지금으로서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활용하여야만 한다.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세운은 플레이어가 도달한 가장 높은 영역인 92층까지 올랐던 베테랑이다.
스킬을 사용하듯이 ‘탐욕의 권능’에 정신을 집중하자, 상태창 옆으로 새로운 창이 하나 떠올랐다.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이건!”
세운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권능이 개방되며, 눈앞에 떠오른 수십 개의 항목 때문이었다.
[ 화염룡의 숨결 ]– 레드 드래곤, 화이락스가 분노하며 브레스를 내뿜을 때마다 초열의 불바다가 펼쳐졌다고 한다.
[ 뇌신의 망치, 묠니르 ]– 뇌신 토르가 지닌 망치로써 토르는 이것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거인을 죽였다고 전해진다.
[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 대대로 마교의 교주에게 전해 내려오는 무공으로써 그 힘은 그저 세상에 군림하는 것만으로 적을 궤멸시키고 지형을 뒤엎는다.
…
보물창고라는 이름에 걸맞은 수많은 보물.
회귀 직전, 창고에서 보았던 주신급의 성물이나 탑의 랭커가 사용한다던 비기가 담긴 서적은 물론, 물건으로써 존재할 수 없는 몬스터의 능력도 있었다.
마몬의 보물창고.
탐욕의 마신이 지녔다던 창고가, 권능으로써 세운에게 귀속된 것이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지만, 세운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정리하였다.
‘이것도 기연이라면 기연이겠지.’
이 권능만 있다면 미리 생각해 둔 계획을 훨씬 쉽고, 빠르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정말로 스스로 아우터들에게 대적할 힘을 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이건?’
바로 이어서 폭식의 권능을 확인하려는 순간, 세운을 포함한 사람들의 머리 위에 떠 있던 메시지의 남은 시간이 0이 되었다.
[ 튜토리얼 첫 번째 장 – 적응 ]-첫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내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십시오.
“웨이브는 또 뭐야! 누가 설명 좀 해 보라고!”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 우리 다들 똑같은 상황이잖아!”
“자, 잠깐만. 저기!”
새로운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몇몇 사람들이 전방을 가리켰다.
울창한 수풀이 무성한 숲속. 허리까지 올라올 정도로 무성해 보이는 수풀이 바람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비정상적으로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크르르…….”
“느, 늑대다!”
“한 마리가 아니야! 설마 몬스터 웨이브라는 게 저것들이야?”
“도망쳐!”
수풀을 빠져나온 늑대를 마주한 사람들이 더욱 큰 혼란에 빠져든다.
몇몇 사람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반대편으로 도망치려 하였지만.
“크앙!”
“꺄아악!”
“뒤에도 있어!”
“포위됐다!”
늑대들은 아무런 계획 없이 무작정 달려드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먹잇감을 철저하게 포위하고, 아주 조금씩 목을 조여 온다.
도망칠 곳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죽기 싫으면 싸워야 할 겁니다.”
“무기도 없이 맹수를 어떻게 상대하라는 거야!”
“자, 장난이지? 아니, 꿈이지? 그래, 꿈일 거야!”
세운의 조언은 이걸로 끝이었다.
이 이상으로 설득한다고 하여도, 달라질 건 없었다.
실제로 세운의 짧은 한마디에, 몇몇 사람들은 이를 악물며 늑대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브라운 울프. 최하급 몬스터이긴 해도 무기 하나 없는 일반인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인 몬스터지.’
튜토리얼.
지도 시간이라는 그 뜻처럼, 몬스터 웨이브라고 해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적을 내주지는 않는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정도가 심해진다고는 해도, 초반에는 서로 힘을 모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적을 내어준다.
물론, 갑작스러운 맹수의 출현에 제대로 반응하는 사람의 수는 그리 많지 않겠지만 말이다.
“계획은?”
세운의 옆으로 2m는 넘어 보이는 거한의 남자가 다가왔다.
세운의 키도 절대 작은 편이 아니었는데, 그가 옆으로 다가오자 왜소해 보일 지경이었다.
“내가 정리해 볼 테니까, 최대한 방어적으로.”
“알았다.”
저 늑대들을 어떻게 혼자서 상대하려는 것이냐.
무언가 다른 방법이라도 있는 것이냐.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리 침착한 것이냐.
여러 궁금증이 떠오를 만도 한데, 거한의 남성은 아무런 추가 질문도 없이 제 자리를 찾아갔다.
이내 다른 사람과 힘을 모아 간단하게나마 진형을 갖추었다.
늑대는 신중한 동물이다. 상대가 뭉쳐 있으면, 녀석들도 쉽게 나서지 않는다.
반면에.
“크르르…….”
따로 동떨어져 있는 먹잇감은 순식간에 포착한다.
“그래, 이쪽이다.”
브라운 울프.
거친 갈색 털을 두르고 있는 녀석들은 탑의 외각에 존재하는 가장 약한 몬스터 중 한 종류이다.
몬스터라고 불리기는 해도, 일반 늑대와 별다를 건 없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녀석들은 더욱 위협적인 적이다. 인간이 고도의 과학 문명을 건설하기 전까지는 늑대들과 동등한 경쟁 관계를 유지하며 수많은 피해를 입어왔으니까.
제대로 된 무기 하나 들고 있지 않은 인간은, 늑대 한 마리도 제대로 상대하기 어렵다.
‘그러니 권능을 시험해 보기 딱 좋은 시험 상대지.’
세운이 펼쳐둔 ‘탐욕의 보물창고’에서 하나의 보물을 꺼내 들었다.
[ 십로담퇴(十路潭腿) ]– 타격기를 중시하는 소림파의 기본적인 각법. 공수의 전환이 빠르고 직선적인 움직임이 특징인 외가권의 무공.
세운의 눈앞에 낡아 보이는 무공서 하나가 떠오르더니, 바람에 흩어지듯 사르르 녹아내렸다.
곧이어 머릿속으로 소림파의 무공서, 십로담퇴의 지식이 스며들었다.
씨익.
세운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무리 기본 무공이라 하더라도, 단지 창고에서 꺼내 드는 것만으로 소림파의 무공을 익히다니. 탑을 오르는 플레이어들이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면, 말도 안 된다며 기겁을 했으리라.
“크아앙!”
그때,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이, 늑대 한 마리가 세운에게 달려들었다.
수적 우세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어찌나 조심성이 많은지 기습적으로 세운의 뒤를 덮쳐온다.
무공서와는 별개로, 숙련된 플레이어로서의 감각이 늑대의 공격을 감지한다.
그리고.
빠악!
“크헝!”
세운의 발차기가 달려들던 늑대의 옆통수를 강타한다.
십로담퇴.
소림파 특유의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발차기였다.
쿠당탕!
전혀 예상치 못한 반격에, 늑대는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하고 흙바닥을 뒹굴었다.
“좋은데?”
“크아앙!”
만족스러워하는 세운의 주위로, 다섯의 늑대가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