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0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04화(300/675)
제304화
– 43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불의 미궁
– 당신은 전설로 일컬어지던 ‘만로(萬路)의 미궁’에 입장하였습니다.
– 미궁을 탐색하여 다음 미궁을 향한 진입로를 찾아내십시오.
베엘제붑에게 말미잘을 먹이고 난 후, 세운은 곧바로 배수구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도착한 불의 미궁.
방금까지만 해도 살을 얼릴 정도로 차가웠던 물이 온천수처럼 뜨거워져 있었다.
“후우.”
온수에서 빠져나온 세운이 지상으로 올라와 마법으로 물기를 말렸다.
주변을 바라보니 회귀 전에도 보았던 익숙한 불의 미궁의 모습이 보였다.
벽에는 접근하지 말라는 듯이 붉은 용암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공기는 숨쉬기 불편할 정도로 뜨거웠다.
화륵!
바닥에 난 구멍에서는 뜨거운 증기와 함께 무작위로 불꽃이 치솟았다.
층마다 환경이 이렇게 급감하다니.
41층부터 플레이어들의 미궁 공략이 힘들어지는 건 다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당장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만 아니라 단순히 미궁을 헤매는 것만 해도 큰 체력이 소모되고 위험이 뒤따랐으니 말이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미궁을 공략하기 전, 세운이 벨페고르의 일기장을 꺼내 들었다.
– 성좌, ‘시기# 둘러# 뱀’이 ####의 ## 때문에 ###가 생겨### ##합니다.
– 성좌, ‘고#를 숙인 ###’가 ##를 #싸는 노이#에 인상을 ###니다.
성좌들의 메시지에 노이즈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마, 이 이상은 탑이 벨페고르에게 별도로 제공한 장소이기 때문에 성좌들의 관여가 어려운 모양이다.
그들의 권능을 사용하기 어려워진다는 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나아가는 수밖에.
세운이 첫발을 옮기기 전, 먼저 품속의 두루마리를 펼쳐보았다.
– 우와, 따뜻해. 소문대로 여긴 진짜 잠들기 딱 좋은 곳인데? 그런데 내 집은 이 아래에 둘 건데…….
– 아, 그래! 뒤집어 놓으면 되겠다! 리버를 불러야겠어!
여전히 친절성이라고는 찾기 힘든 장난 같은 일기장.
내용을 짐작하자면, 벨페고르의 쉼터가 존재하는 45층까지 난방을 잇기 위해 불을 뒤집어 두겠다는 뜻 같은데…….
‘불을 뒤집다니, 이게 무슨 말이야?’
게다가 마지막에 적힌 리버라는 이름.
아무래도 이 층에는 벨페고르의 수하가 남아 있는 모양이다.
문제라면, 방금 찾아낸 힌트만으로는 길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이대로 무작정 미궁을 떠돌아야 하는지 걱정했지만.
‘뭐야, 여긴.’
다행히 그런 걱정은 필요 없었다.
미궁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곳에는 갈림길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그 흔한 몬스터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 성좌, ‘배## 왕#’가 엄###락을 ##거리며 ##픔을 ##니다.
노이즈가 잔뜩 일어났지만, 베엘제붑의 말은 이해할 수 있었다.
‘대충 배고프다고 찡찡거리는 거겠지. 그건 그렇고, 덥네.’
더위 대처법이랄까?
손에 뒤랑달 대신 불사궁을 꺼내고 있으니 활에서 올라오는 한기 덕분에 더위가 사그라들었다.
가끔 바닥의 구멍에서 치솟는 화염 역시 세운에게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진짜 갈림길이 없는 건가?’
아무리 걸어도 길은 일직선이었다.
몬스터 하나 안 나오는 일직선의 미궁이라니…….
회귀 전에 보았던 불의 미궁과는 지형만 닮았을 뿐이지, 그 외에는 같은 게 하나도 없었다.
다른 점이라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열기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점?
그때.
화르륵!
새빨간 불꽃이 세운의 시야를 뒤덮었다.
이에 세운의 눈이 절로 크게 뜨였다.
평범한 불꽃이라면 이렇게 놀랄 리가 없다.
세운이 놀란 이유는 단 하나. 지금 눈앞을 뒤덮고 있는 불꽃이 아래에서 위가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역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아, 그래! 뒤집어놓으면 되겠다!
그 불꽃을 보자마자 벨페고르의 일기장이 떠올랐다. 분명, 이곳이 벨페고르가 말한 장소일 것이다.
그와 함께 이글거리는 불꽃 사이에서 들려오는 지친 목소리.
“피곤해 죽겠는데 웬 쥐새끼마저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구나.”
화륵!
아래를 향해 이글거리던 거센 불꽃이 세운을 노리고 뿜어졌다.
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던 불꽃과는 열기 자체가 달랐다.
조금이라도 닿았다가는 세운이라 하여도 위험할 것 같았기에 곧바로 자리를 피하며 불사궁을 집어 들었다.
– 내공을 통해 복마궁술의 제일 초식, 마관시(魔貫矢)가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피융!
공격을 받았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세운은 목소리가 들려온 장소와 불꽃이 날아온 장소를 추적하여 화살을 날렸다.
얼음 화살은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녹지 않으며 당당하게 나아갔다.
다만, 그 결과로 들려온 건 누군가가 꿰뚫리는 소리가 아닌 분노한 자의 노성이었다.
“이런 얼어 죽을 놈이! 어디서 얼음 조각을 쳐 날리는 거냐? 이곳의 온도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네놈이 책임질 것이더냐?”
“먼저 공격을 해 온 건 그쪽이면서, 내가 왜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지?”
“어허, 이 새파랗게 어린놈이 말대꾸는. 이 몸이 네놈보다 몇백. 아니, 몇천 년은 더 살았을…….”
피융-
“그만! 그만하거라! 에잉, 이래서 요즘 어린 것들은…….”
말을 끊고 화살을 쏘자, 상대는 말을 멈추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정황상 지금 불 속에서 쯧쯧거리고 있는 목소리의 정체는 벨페고르의 일기장에 적혀 있는 리버라는 인물일 거다.
아직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처음부터 저자세로 나가는 건 최악의 수다.
“예전 같았으면 손가락 하나로 눌러 죽였을 놈이. 에잉, 쯧.”
화륵-
거꾸로 치솟던 화염이 걷히며 작은 길을 만들었다.
길이 차츰 길어지더니, 그 끝에 서 있는 인물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래, 꼬맹아. 무슨 일이기에 여기까지 기어들어 왔느냐. 내 특별히 상대해 주마.”
과연, 마신의 수하답게 악마는 악마라는 걸까?
처음 본 리버의 모습은 극도로 기괴했다.
뒤집힌 머리와 좌우가 뒤바뀐 채 펼쳐져 있는 손바닥 등. 신체 곳곳이 평범한 사람과는 반대로 이루어진 노인이었다.
세운은 천장에서부터 아래로 타오르는 불꽃과 리버의 겉모습을 보고 그의 능력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반대. 딱 보아도 성가신 종류의 능력이었다.
“다음 층으로 가는 입구는 어디지?”
“그래, 미궁을 헤매고 있는 자의 목표야 뻔하지. 하지만, 알고 있느냐? 이곳이 어떤 곳인지.”
“나태의 마신이 잠들어 있다는 것 정도는.”
“그걸 알면서도 찾아온 게냐? 인간이란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군. 가만히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지 못해 안달이라니. 에잉.”
리버가 혀를 차며 왼손을 쥐었다. 그러자 세운이 지나온 통로에 다시금 불길이 휘몰아쳤다.
리버가 딱 걸렸다는 듯이 낄낄거렸지만, 세운은 동요하지 않았다. 만약 이대로 불길이 세운을 노린다고 하여도 도망갈 방법은 많았으니까.
“그럼 이 몸이 그분의 종임을 알고 있지 않느냐? 그런 내가 과연 문을 열어줄까?”
“너도 무언가 바라는 게 있으니까 나를 여기까지 불러세웠겠지.”
“인간치고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구나. 인간치고는 말이지, 끌끌.”
화르륵!
리버가 다시 한번 손을 움켜쥐자 화력이 한층 더 강해졌다.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화력이 강해지자마자 어디선가 이불이 마를 때 나는 특유의 뽀송한 냄새가 올라오는 듯했다.
“내가 여기서 이 불꽃을 얼마나 오래 유지했는지 알겠느냐?”
세운이 고개를 저었다.
레비아탄이 탑에서 쫓겨난 것은 왜곡되어서나마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었지만, 벨페고르에 관한 정보는 극히 드물었으니까.
아마 모든 마신 중에서 벨페고르의 정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것이다.
“수백…… 수천? 에잉, 나도 기억 안 나네. 아무튼, 그토록 오랫동안 한 번도 쉬어보지 못했다.”
리버가 피곤한 표정으로 옆에서 일렁거리는 불꽃을 다잡으며 말을 이었다.
확실히 머리가 뒤집혀 있어 잘 몰랐지만, 그의 얼굴은 피곤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분의 권능 덕분에 쉴 필요는 없지만, 명색이 나태의 종인데 말이야. 내가 지은 벌도 있으니 속죄한다 싶지만, 나도 조금은 쉬고 싶단 말이네.”
리버의 얼굴에 울상이 졌다.
세상의 모든 피로를 다 짊어지기라도 한 듯한 표정이다.
“그래서 말인데, 아주 잠시만 내 일을 맡아줄 수 있겠느냐? 5분…… 아니, 3분이라도. 그럼 내 바로 다음 층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겠네.”
리버가 세운을 올려보며 말했다.
벌어진 손바닥은 불꽃을 부여잡고 있는 것처럼 벌벌 떨려왔고, 다리 역시 힘없는 노인처럼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처음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
그 모습을 보며,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버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피려는 순간, 세운이 말을 이었다.
“그럼, 방금 말한 대로 계약하지.”
서걱.
뒤랑달의 검날로 검지 끝에 작은 상처를 냈다.
상처 끝으로 붉은 혈액이 몰려들자, 리버의 표정이 악마에 걸맞게 흉포하게 일그러졌다.
“인간 따위가 악마의 계약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네가 널 뭘 믿고 들어주겠어? 대신해 줘봤자 약속 따위 안 지킬 게 뻔한데.”
“쳇,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구나.”
만약 세운이 계약을 내세우지 않았다면? 녀석은 아까의 불쌍한 표정은 저 멀리 집어치우고 바로 배신을 할 게 분명했다.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녀석은 결국 악마니까.
세운이 상대하던 마신들이 악마라기에는 정직한 편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거짓말은 약한 자가 더욱 약한 자를 괴롭히거나 자신보다 강한 자를 속이기 위한 방법이니까.
“계약을 할 거면, 5분 가지고는 수지타산이 안 맞아. 한 달로 하지. 대신, 실패하면 네 영혼은 내가 가지마.”
“오 분. 처음 약속 그대로.”
“오 분 가지고 허리나 펴겠느냐? 한 달은 푹 쉬어야 콧바람이라도 좀 쐬고 오지.”
“오 분.”
“에잉, 협상할 생각이 없는 게냐? 그래서 서서히 늘리는 티라도 내야 협상하는 재미가 있지. 네놈, 거래는 영 꽝이구먼.”
악마에게 협상이란 의미 없다. 어지간히 자신 있지 않은 이상 차라리 이렇게 꽉 막힌 척을 하는 게 나았다.
다만, 리버는 거만한 표정으로 세운을 바라보며 고집을 지켰다.
“어차피 여기서 급한 건 내가 아닐 텐데. 나야 어차피 지금까지 하던 걸 계속하면 되지만, 네놈은 그렇지 않지 않나.”
이어지는 거만한 표정과 말투.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탑을 올라야 하고, 그것을 알고 있기에 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패착이 있었다.
세운이 어째서 나태의 마신을 만나러 가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
그걸 알지 못하는 이상, 우위는 세운에게 있었다.
“글쎄, 나야 되돌아가면 그만이지. 이미 한 번 통과한 미궁을 다시 오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세운이 품에서 귀환 티켓을 꺼내 들었다.
기본적으로 또 플레이어에게 또 한 번의 기회라고 할 수 있는 티켓인 만큼 그 가격이 상당했지만, 세운에게는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이미 다섯 번째 쉼터에서 번 돈만 해도 일억 오천 포인트에 가까웠으니까.
“……아니지! 네놈은 그분을 뵈러 여기까지 찾아온 게 아니더냐?”
“그건 어디까지나 부가 목표였을 뿐이지. 한 달이나 여기서 시간을 썩힐 바에 새로 도전하는 게 이득이다.”
“네놈의 거짓말 따위 내가 눈치채지 못할 것 같더냐? 고작 인간 따위가 어디서 허세를…….”
찌지직-
“자, 잠깐!”
티켓이 1/3쯤 찢어졌을까?
리버가 다급하게 세운을 불러 세웠다. 그러고는 거울을 보는 것처럼 뒤집힌 손가락 하나를 세워 들었다.
“일주일은 어떻겠나?”
“오 분.”
“어험! 오 분이라니! 그건 좀 너무하지! 그래, 사흘이라도 좀 쉬세.”
“오 분.”
“귓구멍이 막혔……!”
찌직-
“하루, 하루만 좀 쉽세! 내 사정을 들었잖나?”
“오 분.”
몇 번이고 제안을 했지만, 세운은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벌써 티켓의 절반 이상이 찢어진 상태.
리버의 제안은 벌써 일일의 단위를 넘어 시간의 단위로 바뀌어 있었다.
“딱 하루! 24시간만! 잠이라도 한 번 푹 자게 해 주게나!”
“오 분.”
“에잉, 무슨 인형이랑 대화하는 기분이군! 12시간! 아니면 나도 됐네! 그냥 꺼져버려!”
티켓은 이미 더 이상 찢을 여유도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리버는 티켓에서 고개를 돌린 채 강경하게 말을 끊었다.
노심초사하고 있는 게 티가 났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이상 시간을 줄일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같은 말만 읊조렸던 세운의 표정 역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