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0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08화(304/675)
제308화
아우터를 향해 석궁을 쏘아낸다.
밧줄 달린 볼트가 당차게 나아갔지만, 그것도 잠시. 볼트는 아우터에게 닿기도 전에 힘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한다.
“그어-어어!”
폭식의 마수를 삼킨 아우터가 하늘을 부수며 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압도적인 크기에 압도적인 위압감.
인간으로서 감히 엄두 내지 못할 위압감 때문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본능적인 공포심이 크게 솟구친다.
철퍽!
세운의 눈앞으로 검은 액체가 떨어졌다.
고작 하늘에서 흘러내린 한 방울의 아우터일 뿐인데, 그 크기는 세운이 운석을 깨부술 때 보았던 아우터의 양에 필적했다.
“안 돼!”
당장 이 자리에서 도망치라는 본능에 저항하며, 세운이 쿠크리를 휘둘렀다.
제법 날카로운 쿠크리의 날이 뭉텅 거리며 아우터를 베었지만, 유의미한 피해는 주지 못했다.
아우터는 무슨 일이 있었냐고 되묻듯이 멀쩡하게 세운에게 기어 왔다.
– 이게 무슨…….
하늘에서 나타난 건 아우터만이 아니었다.
“막아라!”
“이 쓰레기들이 감히 우리 올림포스를 무너트리다니!”
“모두 진정하십시오! 무작정 덤벼들었다가 될 적들이 아닙니다!”
탑의 정상에 위치하며 플레이어들을 지켜본다고 알려진 초월자. 성좌라 불리는 이들이 아우터를 막아내기 위해 등장했다.
그중에는 딱 보자마자 정체를 알 법한 네임드 성좌 역시 존재했다.
전쟁의 신이라 불리는 아레스가 방패로 몸을 가리고 날카로운 창을 내세워 앞으로 돌진한다.
펄럭이는 망토가 긴 궤적을 그리자, 마치 유성이 날아가는 듯했다.
“감히 쓰레기 주제에 어머님을 더럽힌 죄! 내가 직접 묻도록 하겠다!”
푸욱!
아우터의 몸체를 거침없이 파고드는 신의 무기. 하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아레스 님!”
“이, 이 무슨!”
전쟁의 신이라 불리는 만큼 아레스의 힘은 올림포스의 12신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한다.
그런 아레스의 공격을, 아우터는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것도 모자라 창을 놓지 않은 채 꾸역꾸역 집어삼키고 있었다.
“아레스 님, 창을 놓으십시오!”
“내가 이딴 쓰레기한테 굴복할 것 같나! 창이 없으면 검으로! 검이 없다면 주먹으로 내려칠 뿐이다!”
푹, 푹, 푸욱!
아레스의 공격이 멈추지 않았다.
그야말로 단순무식한 공격이지만, 아마 저 공격에 당하고 살아남은 자는 모든 차원을 통틀어도 손에 꼽으리라.
하지만, 공격의 상대가 좋지 않았다.
아레스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아레스의 몸이 늪에 빠진 것처럼 깊게 빠져들어 갔다.
“아레스 님!”
“이런 쓰레기가! 쓰레기 따위가 감히! 감히이!”
꾸르륵-
결국, 아레스의 전신이 아우터에 먹혀 사라졌다.
이어지는 정적.
그리고 잠시 후, 아우터의 몸속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역시, 아레스 님이셔! 안으로 들어간 것도 일부러…….”
희망찬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잠시.
폭발은 일어났지만, 부풀어 오르던 아우터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다시금 크기를 줄여나갔다.
다시 한번 정적이 이어졌다.
아우터에게 먹혀 사라진 아레스의 신성이 그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 아레스 님!”
“공격해! 아레스 님을 구해야 한다!”
“너무 많아!”
성좌들의 공격에도 아우터는 밀리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어째서인지 폭식의 마수를 집어삼킨 아우터는 성좌에게 관심도 받지 않으며 묵묵하게 세운을 향해 다가온다.
하늘이 반파되더니 결국 그 거대한 몸이 온전히 드러나 세운의 앞에 쿵 하고 떨어진다.
“꾸륵, 꾸어- 그어어-”
– 올림포스 놈들이 당하다니. 아냐, 이럴 리가. 이럴 수가…….
아우터는 검은 액체를 꿀렁이며 세운을 향해 서서히 다가온다.
세운이 입술이 터져라 질끈 깨물며 쿠크리를 꽉 붙잡는다.
“으아악!”
무공을 사용할 정신도 없었다.
머릿속은 공포에 잠식당해 도망치지 않기 위해 붙잡는 것만으로 한계였다.
서걱.
쿠크리가 아우터의 몸을 베었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 아우터의 몸은 흐물거리며 다시 재생되었고, 휘둘러진 앞발에 맞은 세운의 몸이 저 멀리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구륵, 구룩-”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전신의 뼈가 부러진 듯이,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쿠크리를 앞에 박아 몸을 끌며 억지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어, 어어어-”
세운의 코앞까지 다가온 아우터가 입을 벌린다.
검은 액체가 사방에 뚝뚝 떨어져 내리며, 세운의 위로 그림자가 생겨난다.
희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서, 세운은 다시 한번 악을 내지른다.
그리고 그 순간.
– 너도, 많이 힘들었구나.
파아아앗!
전신의 공포가 형상화된 듯이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하늘을 가린 거대한 아우터의 형체가 시간이라도 멈춘 듯이 우뚝 서고, 세운의 앞으로 보랏빛 정령이 넓은 날개를 펄럭이며 나타났다.
– 나, 너도 좋아진 것 같아.
보랏빛 정령.
공포의 정령, 튜리크의 날개가 세운을 감싸 안았다.
정신을 차린 세운이 쿠크리를 놓고 텅 비어 있는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잡아 들었다.
오른발을 크게 앞으로 내지르며, 아우터를 향해 일직선으로 내지른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일 초식, 혈랑조(血狼爪)가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너무나도 자주 사용하여 이제는 숟가락질하는 것만큼 익숙해진 혈랑검법의 제일 초식, 혈랑조.
그 단조로운 찌르기가 아우터의 목젖을 꿰뚫자.
퍼어엉!
그 어떤 공격도 먹히지 않던 아우터의 몸체가 거짓말처럼 터져나갔다.
검은 액체가 사방으로 튀어 나가고,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시선에 세운에게 집중되었다.
–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떨지 않아도 돼.
“그런가…….”
이성을 되찾은 세운이 고개를 숙인 채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들었다.
역시나 세운의 품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손바닥의 감촉으로 단단한 무언가가 잡히는 게 느껴졌다.
유몽석(愉夢石).
리버에게 보상으로 받은 돌이 세운의 손에 들려 나타났다.
– 무서운 건 전부, 내가 품어줄게.
펄럭!
튜리크의 몸이 흩어지며 세운의 등 뒤로 날개가 되어 피어났다.
이카루스의 날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크고 아름다운 보랏빛 날개.
마치, 마몬이 현신했을 때 펼쳐 보였던 날개처럼 우아하면서도 위압적인 날개가 사방의 공포를 끌어안았다.
“꿈이었어.”
콰직!
유몽석에 힘을 주자, 세운을 둘러싼 배경이 통째로 어그러졌다.
플레이어와 성좌, 하늘을 장악한 아우터들이 모두 환영처럼 흩어졌다.
그렇다.
꿈.
어느 순간부터 세운의 주위는 물론, 정신까지 꿈에 물들어 있었다.
어그러진 세상이 완전히 녹아내리고, 사방이 토네이도로 둘러싸인 대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이 통로에 들어가기 직전, 저 기분 나쁜 꿈에 빠져든 모양이다.
그리고 세운이 고개를 들자, 세운에게 악몽을 꾸게 한 장본인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 * *
벨페고르의 집사, 맥퀸시.
마계 제일의 몽마(夢魔)로 군림하던 그의 능력은 간단했다.
바로, 적에게 악몽을 보여주는 것.
그것도 수준 낮은 몽마들처럼 단순히 무서운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닌, 적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진정한 공포를 끌어내어 악몽으로 재현하는 능력이었다.
‘기어코 여기까지 올라오다니. 건방지기 짝이 없군.’
분명 불의 미궁은 리버가 지키고 있었을 텐데.
형벌을 수행하고 있었기에 이기는 것은 어려워도 대악마로서 질 리가 없는 리버가 뚫렸다.
온도가 계속 유지되는 것을 보니 당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불의 미궁을 통과한 침입자는 출구를 향하는 길 자체를 무너트려 버린 바람의 미궁에서도 기어코 목적지까지 도착해 토네이도를 뚫고 들어왔다.
‘그래봤자 인간. 진정한 악몽 앞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세운이 통로를 향하는 순간, 맥퀸시는 자신을 마계 제일의 몽마로 만들어 주었던 힘을 사용하였다.
인간은 생각 이상으로 정신력이 뛰어났지만, 결국 그의 악몽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오랜만에 사용하는 힘이었고, 인간이 악몽에서 얼마나 버틸지 궁금해하며 꿈을 염탐하던 맥퀸시는 곧 경악하고 말았다.
‘이게 무슨……!’
정체 모를 검은 액체가 탑의 천장을 부수며 아래로 흘러내렸다.
콧대 높은 올림포스의 성좌들이 제대로 대항도 하지 못하고 검은 액체에게 잠식당하며 쓰러져갔다.
그야말로 세상의 종말.
이게 모두 환상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맥퀸시는 알 수 있었다.
이 악몽이 그저 꿈이나 환상이 아닌, 저 인간이 실제로 겪었던 일이라는 것을.
‘말도 안 된다!’
탑이 무너진 적은 없다. 올림포스의 성좌들 역시 멀쩡하다.
하지만, 저 인간의 악몽은 분명히 탑의 종말을 예언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능력이었기에, 믿지 않으려야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 대단한 건 이어진 인간의 반응이었다.
“그런가…….”
인간이 악몽을 자각한다.
악마들마저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신의 악몽 속에서 자신의 검을 꺼내 들어 검은 액체를 터트린다.
“꿈이었어.”
콰직!
마계 제일의 몽마인 자신이 직접 불어넣은 악몽을 깨부순다.
어디서 얻은 건지 대악마가 모아둔 꿈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유몽석을 이용했다지만, 애초에 악몽 속에서 유몽석을 꺼내 든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단순히 길을 잘못 든, 실력 좋은 애송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힘을 신뢰하는 맥퀸시였기에 인간의 정체를 금세 짐작할 수 있었다.
“네놈은…… 회귀자(回歸者)인가?”
* * *
꿈에서 막 빠져나온 참이라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지만, 세운은 적의 존재를 알아채자마자 자세를 바로잡고 뒤랑달을 꺼내 들었다.
느껴지는 위압감부터가 지금까지 상대해 온 적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불의 미궁에서 마주했던 리버와도 비교되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그래, 성좌. 아니, 성좌에 다다른 자라고 볼 수 있었다.
‘당장 이 자리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판이나 트리톤 이상이다.’
판이나 트리톤.
둘 다 성좌의 자리에 오른 이들이지만, 그들은 모두 규율을 어기고 탑에 현신한 탓에 신성이 급격하게 감소한 상태였다.
그러나, 눈앞의 악마는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성좌가 아니니 탑에서의 제한도 적었고, 이곳에서 지낸 지도 꽤 오래되었는지 본연의 힘을 거의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뒤랑달을 들고 있지만, 솔직히 이길 가능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상대였다.
‘설득해야 한다.’
상대는 분명 나태의 권속 중 하나.
괜히 싸울 필요는 없다.
어차피 벨페고르를 만나기 위해서는 그를 거쳐야만 했다.
하지만, 먼저 말을 꺼낸 건 상대방이었다.
“네놈은…… 회귀자(回歸者)인가?”
어떻게 알아낸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방금 세운이 꾸었던 악몽을 저 악마도 바라보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잠깐 생각이 많아졌지만, 이러면 오히려 그를 설득하기 편해진다.
“그렇다.”
“…….”
악마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아마, 그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으리라.
그래도 질문 세례가 들려오지는 않았다.
그 대신.
“고작 그 정도 힘으로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건, 적어도 마신님에게 적대적이라는 건 아니겠지.”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자세히 말해 주지 않아도, 세운의 악몽을 읽으며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모양이다.
곧, 생각을 마친 악마가 등을 돌리며 통로를 향해 발을 내밀었다.
“따라와라. 마신님께 안내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