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05)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09화(305/675)
제309화
– 45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나태의 미궁
– 당신은 전설로 일컬어지던 ‘만로(萬路)의 미궁’의 숨겨진 끝자락에 도착하였습니다.
– 현재 미궁의 주인에게 인정을 받으십시오.
악마와 함께 통로를 통과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45층의 시련이 시작되었다.
나태의 미궁.
당연하게도, 세운이 회귀 전에 닿았던 미궁의 끝과는 다른 곳이었다.
‘미궁은 어떤 길을 골랐느냐에 따라 45층의 시련이 달라지니까.’
마지막 미궁은 미궁의 유형에 따라 공략 목표가 달라진다.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보물을 찾아내거나 목표를 부수는 등, 다양한 목표가 존재했다.
회귀 전 세운의 경우에는 정글이 우거진 미궁에서 늑대 무리를 상대한 끝에 쿠크리를 얻어냈었다.
공격력이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지만, 활용도가 높아 끝까지 사용했던 기억이 났다.
‘미궁의 주인이라면, 역시 벨페고르겠지.’
확실한 건, 목적지인 벨페고르의 쉼터까지 제대로 도착했다는 것이다.
그 난해한 일기장을 해석하며 찾아오느라 걱정이 많았는데, 여기까지 들어오니 조금은 안도감이 들었다.
“내 소개부터 하지. 마신님을 따르는 첫 번째 종이자 집사, 마계에서는 대몽마로 군림하던 ‘맥퀸시’라고 한다.”
“정세운.”
“말이 짧군.”
“먼저 공격해 온 주제에, 존댓말이라도 써줘야 하나?”
“나는 상관없지만…… 만약 마신님에게 그런 태도를 고수한다면, 내 직접 네놈을 영원한 악몽 속에 빠트려주마.”
세운은 대답 없이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굳이 저렇게 말하지 않아도 마신의 앞에서 말을 놓을 생각은 없었다.
평소의 세운 역시 베엘제붑이 아무리 철없고 어려 보여도 철저하게 존댓말을 지키고 있었으니까.
철컥.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맥퀸시가 문을 열었다.
소음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저 큰 문이 열리고 있는데도 마찰음이 전혀 들려오지 않는다.
“이곳부터는 발걸음에 주의해라. 소리 나지 않게, 조심히. 주변을 잘 살펴라. 잠에 방해가 되는 소음은 용서하지 못한다.”
맥퀸시가 살벌한 눈빛으로 세운을 노려보았다.
실제로, 문을 여는 순간 그의 발걸음에서 아무런 기척도 안 느껴지는 것은 물론, 심장 소리마저 줄어든 기분이었다.
발걸음 소리마저 줄이라는 곤란한 주문이었지만, 세운은 걱정 없었다. 이미 킬케르가식 은신술을 한계까지 단련한 세운의 발걸음에서는 그 어떤 소음도 발생하지 않았으니까.
“……발걸음은 마음에 드는군.”
쉼터의 크기는 생각 이상으로 넓었다.
덕분에 세운은 걸어가는 도중에 느긋하게 주위를 감상할 수 있었다.
‘진짜 그 전부가 여기로 연결되고 있었네.’
사방의 벽은 땅의 미궁의 것과 같은 흙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덕분에 온도 유지는 물론 방음까지 확실히 유지되고 있었다.
“마신님이 직접 베이스를 뚫고, 내가 세세한 디테일을 맡았지. 저기 보이는 구멍이 물의 미궁과 연결된 구멍이다.”
두 번째로 물의 미궁.
벽에 나 있는 구멍에서 물이 졸졸졸 흘러나오며 방의 습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물소리마저 잠들기 딱 적당한 평화로운 수면 음으로 들려왔다.
세 번째로 불의 미궁.
화륵-
천장에서 작은 불꽃이 일렁이며 쉼터의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해 주었다.
바닥도 아닌 천장에서 뿜어내는 열로 방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특별한 방법이 적용된 듯이 열기가 방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네놈도 보았겠지. 저건 불의 미궁의 죄수가 조절하고 있는 불꽃이다.”
“천년 가까이 형벌을 유지하다니, 제법 가혹하네.”
“가혹하긴. 다른 마신님들이었으면 즉결 처형을 내렸을 것이다. 우리 마신님이 너그러운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이지.”
하긴, 마계에서는 법보다 강함이 더욱 중요했다.
형벌을 내리기보다는 죽음을, 그에 미치지 못하는 죄를 벌였더라도 코어를 파괴해 힘을 모두 잃게 만든다.
마계에서 힘을 잃은 악마는 먹잇감이 될 뿐이니 결과는 같겠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놈의 형벌도 다 끝나가는군. 조만간 온도를 관리할 새로운 방법을 구상해야겠어.”
“그거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다.”
“네놈이?”
“이래 봬도 인챈트에 일가견이 있어서 말이지.”
불의 미궁에서 열기를 이끌어오는 것쯤이야 간단하다.
제헤튼에서 수십, 수백 번의 인챈트를 사용하며 세운의 인챈트 실력은 극에 달했으니까.
귀찮기야 하겠지만, 벨페고르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하긴, 저 바람의 미궁과 연결된 저 환풍구의 마무리 작업을 한 것도 데카라비아 님의 마법이랬으니.”
“당연히 맨입은 아니겠지?”
“기어오르지 마라, 인간아. 네놈의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마신님께 인정받지 못하면 뒤는 없을 테니.”
혹시나 하였는데, 리버와 달리 가벼운 성격은 아닌 모양이다.
벨페고르에게 이동하는 동안 네 미궁과 연결된 통로를 제외하고도 다양한 풍경이 보였다.
그 모두 최적의 수면을 돕기 위한 것들이었는데, 벨페고르가 수면에 얼마나 진심인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숨소리를 줄여라.”
급격히 낮아진 맥퀸시의 목소리. 이에 세운은 벨페고르의 대면이 코앞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진짜 제대로네.’
엄청난 크기의 침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주변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고 흰색의 쿠션과 이불, 분홍색 레이스로 장식된 침대.
특히 이불은 방금 꺼낸 것처럼 뽀송뽀송해 보이는 게, 당장 뛰어들고 싶을 지경이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라.”
벨페고르와의 첫 대면이었기에 세운은 순순히 맥퀸시의 말에 따랐다.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벨페고르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1분.
‘……?’
숨소리마저 죽이고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침대에서 그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래도 바로 옆에서 맥퀸시가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세운도 꾹 참고 자세를 유지했다.
그렇게 3분, 5분, 10분.
시간이 지나도 벨페고르는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참지 못한 세운이 조용히 고개를 돌려 맥퀸시에게 말을 걸었다.
“왜 안 깨어나시는 거지?”
“일어나고 계시는 거다. 오랜만의 기상이라 조금 시간이 걸릴 뿐.”
“얼마나 걸리는데?”
“가장 최근의 기상 시간이 대략…… 일주일 정도였다. 기지개를 켜시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우셨지.”
순간, 세운은 머리가 띵해지는 것을 느꼈다.
일주일이라니.
그 말은 즉, 이 자리에서 이 자세로 꼼짝없이 일주일을 버티고 있으라는 건가?
고문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지만, 맥퀸시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아니, 오히려 감격한 듯이 황홀한 얼굴로 침대 쪽을 흘깃거리고 있었다.
‘변태인가.’
마음 같아서는 당장 알람이라도 울려대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강제로 잠을 깨워 벨페고르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면 앞으로의 대화에 지장이 생길지도 모르니, 할 수 없이 고개를 내쉬며 세운이 작은 한숨을 내쉬는 순간.
부스럭-
침대 위에서 처음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 네놈! 내가 분명 숨소리를 줄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머릿속에 맥퀸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머리를 왱왱 울리며 두통을 유발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맥퀸시가 방금까지의 황홀한 표정을 던져두고 자신이 악마임을 증명하듯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화가 난 상황에서도 텔레파시를 사용하여 화를 표현하다니,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임무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으우움…….”
맥퀸시의 화가 이어지기도 전에, 침대 위에서 새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단순한 뒤척임이 아니라 벨페고르의 목소리였다.
이에 맥퀸시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화를 낼 겨를도 없이, 침대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고개를 숙인다.
“맥…….”
“부르셨습니까, 마신님이시여!”
“나 마실 거 좀…….”
“당장 대령하겠습니다!”
맥퀸시가 등 뒤의 날개까지 펼치며 다급하게 뒤로 날았다.
다리를 계속 굽히고 있다가 급하게 펼쳐서 그런지 뚝-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본인은 신경도 안 쓰는 듯했다.
소리를 죽이라는 말은 어디 가고, 뒤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려왔다.
연이어 불꽃이 들끓는 소리와 함께, 맥퀸시가 작은 잔을 들고 나타났다.
“늘 마시시던 따뜻한 우유입니다.”
“고마워어…….”
아직 잠을 덜 깼는지 몽롱한 대답과 함께 벨페고르가 이불을 걷고 모습을 드러냈다.
하얗고 작은 손으로 조심스럽게 우유 잔을 받아든다.
맥퀸시가 쥐었을 때는 엄지손가락보다도 작아 보이는 아담한 컵이었는데, 벨페고르의 작은 두 손으로 감싸 쥐니 컵이 크게 느껴졌다.
‘저게, 나태의 마신?’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나타나 위압감 넘치는 목소리로 순식간에 판을 제압했던 탐욕의 마신, 마몬.
흑해를 모두 아우르는 거대한 덩치로 트리톤을 장난감 가지고 놀 듯이 두들겼던 질투의 마신, 레비아탄.
마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이 이 둘이었으니 벨페고르를 영접하기 전에도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모습을 드러낸 벨페고르의 모습은 세운의 상상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우음, 따뜻해~”
“입에는 잘 맞으십니까?”
“우웅! 몸이 녹아내릴 것 같아!”
허리를 넘어 베개를 덮을 정도로 길게 내려와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에 어린아이처럼 동글동글한 얼굴. 노란 초승달 무늬가 듬성듬성 새겨진 감청색 잠옷.
아무리 보아도 영락없는 잠꾸러기 소녀의 모습이었다.
“후아, 다 마셨다! 고마워, 맥!”
“영광입니다. 마신님.”
벨페고르가 다 마신 우유 잔을 맥퀸시가 받아 갔다.
어디 치우는 것도 아니고, 우유 잔을 보물 다루듯이 하며 품에 넣는 모습을 보니 조금 소름이 돋았다.
아까 보였던 황홀한 표정도 그렇고, 정말 변태가 아닐까.
‘하긴, 저 정도가 아니면 여태껏 버티지 못했겠지.’
리버야 형벌에 의해 불의 미궁에 남았다지만, 맥퀸시는 달랐다.
자의로 벨페고르의 옆에 남아 천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벨페고르를 보좌하며 수면을 도왔다.
평범한 악마라면 절대 해 내지 못했을 일이다.
우유를 다 마신 벨페고르가 고개를 돌리자 세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태의 마신님을 뵙습니다.”
“우음, 너구나?”
벨페고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고 있던 기린 모양의 베개를 품에 안은 채로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키가 작은 탓에 그 과정이 꽤나 험난해 보인다.
결국 맥퀸시가 겨드랑이를 붙잡아 내려주었을 정도.
침대에서 내려온 벨페고르가 하품을 크게 하고서는 세운의 앞에 선다.
“마몬의 창고를 털어 크로노스의 모조품을 사용한 회귀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