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0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10화(306/675)
제310화
순간, 또렷해진 벨페고르의 눈동자에 세운의 몸이 흠칫했다.
아직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는데…….
맥퀸시가 따로 보고를 올린 것 같지 않았는데, 벨페고르는 이미 세운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방금 세운이 꾸었던 악몽을 보았던 것일까?
아니, 그걸로도 설명은 부족하다. 맥퀸시에 의해 꾸었던 악몽에서는 마몬의 창고니, 크로노스의 모조품이니 하는 건 등장하지 않았으니까.
실제로, 벨페고르의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맥퀸시가 사뭇 당황한 얼굴로 세운을 흘깃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꿈에서 봤지!”
“꿈에서 말입니까?”
“응! 난 나만의 꿈을 꿀 수가 없거든. 그래서 잠을 잘 때 항상 다른 이들의 꿈을 꿔.”
벨페고르가 기린 모양의 인형을 꽉 껴안은 채로 세운을 올려본다.
이제 슬슬 잠이 깨기 시작했는지, 풀려 있던 눈동자에 힘이 들어가 있다.
“전 그런 꿈을 꾼 적이 없습니다만.”
“넌 살면서 꿔왔던 모든 꿈을 기억해?”
“……아니요.”
“모든 생명은 꿈을 꿔! 자신의 과거와 희망과 공포에 대해서.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극히 일부지. 난 그 잊혀진 꿈도 볼 수 있는 거고!”
“그렇게 모든 이들의 꿈을 지켜보고 있는 겁니까?”
“에이, 설마.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한걸.”
이 세상 모든 이들의 꿈을 관찰한다라.
벨페고르의 말을 들어보았을 때, 그녀가 말하는 꿈은 단순한 꿈이 아닌 것 같았다.
한 생명체가 겪은 일생과 거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사건, 사고들. 좋은 점과 나쁜 점 모두를 관측한다.
만약 이게 플레이어가 아니라 성좌에게도 가능한 일이라면, 그녀의 능력은 그 자체로도 모든 자의 공포의 대상이 되리라.
아무리 강한 성좌라 하여도 약점은 존재할 테고, 그녀는 그 약점을 모두 알아낼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아까 맥이 꾸게 한 악몽이 신경 쓰여서 네 꿈을 둘러보고 왔어! 그래서 일어나는 게 조금 늦었어. 헤헤, 미안!”
“……아닙니다.”
벨페고르가 생글생글 웃으며 세운의 어깨를 두드렸다.
키 차이가 제법 나는 바람에 그녀는 까치발까지 세워서 힘겹게 손을 뻗어야만 했다.
‘꿈을 엿보인 건 기분 나쁘지만…….’
나태의 마신이 이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니.
무력에 관련된 능력은 아니지만, 사실상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능력보다도 무서운 능력이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결코 질 수 없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녀가 나태하지 않았다면, 신계에서 가장 위험한 별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그럼, 제가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도 알고 계시겠군요.”
“웅! 내 힘을 빌리려는 거지? 바보들의 싸움도 막고, 그 이상한 것들도 막고!”
“맞습니다.”
“어엄청 고생하네. 나라면 피곤해서라도 절대 못 했을 거야! 맥, 너도 그렇지?”
“물론이옵니다.”
신마대전과 탑의 몰락.
그 모든 것을 알고도 저렇게 활기찬 모습이라니.
어쩌면, 벨페고르는 베엘제붑 이상으로 태평한 성격이 아닐까 싶었다.
“대답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좋아!”
일말의 고민도 없는 긍정.
덕분에 당황한 건 세운 쪽이었다. 당장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해야 그녀의 힘을 빌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제대로 된 설명 하나 없이 긍정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난 여기가 좋거든! 난 잠을 자는 게 좋은 거지, 죽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야. 그런데 조금 있으면 내 잠자리가 사라진다는 거잖아?”
벨페고르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빙글거렸다.
분명, 방금까지 쌩쌩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눈이 반쯤 감긴 채 하품을 애써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나서기는 싫어. 귀찮아! 그런데 자진해서 내 잠자리를 지켜준다는 애가 나타났는데, 내가 왜 거절하겠어?”
벨페고르가 양손을 뻗어 기린 베개를 세운에게 가져다 대었다.
베개에서 감청색의 기운이 흘러내려 세운의 성흔을 향해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그녀의 신성. 나태의 권능.
순간적으로 당장 바닥에 누워 잠에 빠져들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 크르릉…….
감청색으로 물들던 성흔이 다시금 검붉게 물들며 전신을 침식하던 나태감이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성흔 안에서 루인이 무언가를 해 준 모양이다.
그와 함께 떠 오르는 메시지들.
– 나태의 마신, 벨페고르에게 인정받았습니다.
– 나태의 마신에게 인정을 받아 ‘나태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나태의 신성을 이어받아 휴식을 통한 체력과 마나의 회복력이 극대화됩니다.
– 나태의 신성을 이어받아 관여 불가 지역에 존재하는 벨페고르와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태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권능의 사용법이 간략하게나마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과연, 마신의 권능.
다른 마신들의 권능과 비교해도 결코 꿇리지 않는 강력한 권능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여긴 탑과의 계약으로 만들어 둔 관여 불가 지역이라서, 마몬처럼 무리를 해도 탑에 관여할 수 없거든.”
“충분합니다.”
“헤헤, 말을 빨리 알아들어서 좋다. 나중에 피곤하면 한 번 쉬러 와! 특히 내 옆자리에 눕혀줄 테니까!”
“마, 마신님! 그건!”
“응?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침대는 이렇게나 넓은걸? 아, 맥도 같이 쉬고 싶어서 그런 거야?”
“그럴 리가! 제가 어찌 감히 마신님과 한 침대에서 동침을 하겠습니까!”
“우웅, 난 딱히 상관없는데.”
벨페고르의 제안에 맥퀸시가 세운을 살벌하게 노려보았지만, 곧 이어진 그녀의 제안으로 맥퀸시가 고개를 숙였다.
“저는 그저 마신님의 수발을 드는 것만으로 충분히 과분하옵니다!”
“헤헤, 늘 고마워!”
“여, 영광이옵니다!”
고개를 숙인 맥퀸시의 얼굴에서 물기가 흘러내린다.
설마, 저거…… 감동의 눈물인가?
“난 이만 자러 가 볼게! 오랜만에 오래 깨어 있으니까 너무 피곤해에…….”
벨페고르가 결국 하품을 길게 내쉬며 눈을 감았다.
벌써 반쯤 잠에 빠졌는지,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이 몸을 흔들거린다.
혹여나 그녀가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그녀의 옆에 선 맥퀸시가 차마 손은 대지 못하고 식은땀을 뻘뻘 흘린다.
“아, 맞다!”
휘청거리며 침대로 돌아가던 벨페고르가 돌연 발을 돌려 다시금 세운을 바라보았다.
“사탄이야, 혼자 수련한다고 신경 쓰지 않고 있지만, 릴리스랑 루시퍼가 널 엄청 보고 싶어 하더라구!”
루시퍼야 최근에 대놓고 흑익 길드를 건드렸으니 그렇다고 치고…… 색욕의 마신인 릴리스가 보고 싶어 한다는 건 생각지 못하고 있어서 세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루시퍼야 원래 위험한 놈이고. 릴리스는 말이야. 으음, 조금 다른 의미로 위험하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지도?”
아직 세운이 만나보지 못한 마신은 총 셋이다.
분노의 마신, 사탄.
오만의 마신, 루시퍼.
색욕의 마신, 릴리스.
사탄의 성소는 아직 넘볼 수 없는 고층에 존재했으니 신경을 끄고.
루시퍼는 아군이 아니라 적으로 상대해야 할 상대였기에 넘어가고
릴리스는 레비아탄과의 관계도 있는 듯하니 조만간 찾아 나설 생각이었는데…….
꿀꺽.
벨페고르의 말을 듣자마자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이미 앞서 보았던 네 마신도 평범한 구석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어쩐지 릴리스는 그 이상으로 제정신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레비아탄이 널 아끼고 있으니까, 막 그렇게 심한 짓은 못 할 거야.”
그래도 이어지는 벨페고르의 말에 조금은 안도감이 들었다.
“……아마도. 헤헷, 나 진짜 자러 가 볼게!”
……방금 했던 말 취소다.
* * *
벨페고르와의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을 끝낸 후, 미궁을 떠나기 전, 세운은 맥퀸시와 말했던 대로 쉼터의 온도를 관리할 방법을 찾았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템플리쳐’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청탑의 묘리에 따라 ‘템플리쳐’의 안정성이 강화됩니다.
– 적탑의 묘리에 따라 ‘템플리쳐’의 범위가 확산됩니다.
템플리쳐는 세운도 자주 사용했던 기온 조절 마법이다.
그걸 불의 미궁과 물의 미궁에 연결된 통로에 설치하여, 설정된 수치에 맞게 온도를 설정하도록 한다.
불의 미궁에서 무식하게 불을 뿜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효율적인 방법.
불의 미궁의 온기와 물의 미궁의 냉기 덕분에 마력도 별로 안 들이고 온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효력이 떨어질 텐데.”
“한 달에 한 번쯤 마나만 주입하면 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해.”
“호오, 대단하군. 그럼 이제 죄수의 형벌을 끝내도 되겠어.”
“멋대로 끝내도 되는 건가?”
“애초에 정확한 기간이 정해진 형벌이 아니었다. 대체 방법이 생겼으니 굳이 죄수를 이용할 필요는 없겠지. 지금쯤이면 반성도 충분히 했을 테고.”
“죄수를 믿을 줄은 몰랐는데.”
“죄수라고 해도 예전에는 친구였다. 사건의 경위도 알고, 간간이 찾아가서 말동무도 해 줬으니 뒤통수를 때리진 않을 거다.”
친구였던 것도 모자라 말동무도 해 주고 있었다니. 그러고도 우애가 깨지지 않은 건가?
역시, 악마들의 관계는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덜컥!
“키야, 이게 얼마 만의 자유인가! 형벌이 끝났…….”
쾅!
그새 말이 전달된 것인지 리버가 쉼터의 문을 열고 나타났다.
다만, 생각 없이 목소리를 키운 탓에 등장하는 즉시 맥퀸시에 의해 바닥에 머리를 박혔다.
다행인 점이라면, 리버가 문을 여는 순간 세운이 사일런스 마법으로 소리를 차단해 두었다는 것.
맥퀸시 역시 그것을 깨닫고 세운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군.”
“아니, 얼마만의 재회인데 이렇게…….”
“쉿.”
“크흠…….”
잠깐 헤매는 모습이 보였지만, 리버가 곧 텔레파시를 이용하여 대화를 시작했다.
이렇게 뜬금없이 자신의 형벌이 끝났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모양이다.
“이야, 이게 이렇게 될 줄이야. 네놈이 복덩이일 줄 누가 알았겠느냐?”
리버가 세운의 손을 붙잡았다.
뒤집힌 얼굴이 영 부담스러웠지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있는 리버를 떨쳐낼 수는 없었다.
“혹여 내가 내기에서 이겼다가는 끝까지 형벌을 받았겠지. 정말 고마워, 인간 놈아.”
은인에게 인간 놈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
뭐, 그 독방에서 천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벌을 받고 있던 놈이니 사회성이 부족한 걸 뭐라 할 수는 없었다.
“아, 말로만 이럴 수는 없지. 보자, 보자…….”
리버가 무언가 찾듯이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애초에 형벌을 받던 죄인에게 보상으로 줄 만한 게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세운에게 내기로 빼앗긴 유몽석이 그의 마지막 자산이었다.
“흐음, 당장은 내가 줄 수 있는 게 없고…….”
“그럼.”
리버가 제대로 된 보상을 생각해 내지 못하자, 세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쪽에서 먼저 은혜를 갚고 싶다는데 이대로 가만히 넘어가는 건 손해였으니까.
“계약을 한 번 더 맺지.”
리버가 거절할 틈도 없이 세운이 리버의 검지 끝을 베었다.
몽글거리며 흘러나오는 핏방울을 바라보며, 리버가 질린 듯이 표정을 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