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1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17화(313/675)
제 317화
경기에 들어가기 전, 세운은 분명 길드챗으로 디아블로 길드원에게 자신이 어떤 경기에 도전할지 공지해 두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같은 길드원이 시간을 낭비하는 건 원치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강한철이 같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니.
답은 하나다.
“일부러 들어온 거냐?”
세운의 질문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강한철.
‘그러고 보니, 마지막 경기를 준비한다면서 모습을 감췄었지.’
그때 유서아에게 전해 들었던 강한철의 ‘마지막 경기’가 자신과의 경기였던 모양이다.
얼른 경기를 끝내고 히든 피스를 확인하고 싶었는데, 이런 변수가 생겨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대련이라면 따로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는데.”
“내가 원하는 건 대련이 아니다. 목숨을 건 실전. 이곳에서는 그게 가능하다고 들었다.”
“대련 시스템상 경기 내에서 죽어도 실제로 죽는 건 아니니까.”
경기에서 패배하면 경기에서 퇴출당할 뿐이다.
아마 대축제에서 경기들을 관전하다가 그 사실을 발견하고 이 기회를 노리며 수련에 들어가 있었겠지.
강한철은 조금 전까지 수련하고 온 듯이 전신이 엉망이었다.
“그래. 하지만, 나랑 붙으려면 결승전까지 올라와야 할 텐데.”
“문제없다.”
“하긴, 너라면 걱정 없겠지.”
격투대회에 나오는 적들은 다른 경기에서 나오는 적들과 비교해도 특히나 강력하다. 어지간히 실력에 자신 있는 전투계 플레이어들도 이 경기만은 꺼릴 정도.
하지만, 강한철의 실력은 세운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실력을 갈고닦은 플레이어라도, 이 경기에서 본래 우승을 차지할 세 명의 적도 격투 실력만으로 강한철을 이길 수는 없을 거다.
– ‘격투대회’가 곧 시작됩니다.
– 참가자들은 경기장으로의 이동을 준비해 주십시오.
“꼭 올라오길 바랄게.”
“얼마 안 걸릴 거다.”
쿠궁!
대기실이 무너져 내리며, 격투대회의 경기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첫 상대는 대기실에서 세운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했던 플레이어였다.
한 수 가르쳐 달라며 당당하게 무기를 빼든 그는.
서걱-
“하하…… 한 수가 아니라, 벽을 알려주시네…….”
세운의 일검을 맞고 너무나도 허무하게 경기에서 떨어졌다.
무기를 쥐지 않은 반대편 손을 품에 넣고 있는 게 무언가 비기가 있었던 모양인데, 알 게 뭔가?
비기라고 해 봤자 어중간한 실력 차를 이기기 위한 꼼수지, 실력 차이가 이 정도나 나 버리면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된다.
“저쪽은…… 시작부터 어려운 상대로 걸렸네.”
세운이 고개를 돌려 강한철의 경기장을 살펴보았다.
격투대회는 토너먼트식으로 경기가 진행되는데, 플레이어는 정해진 틀 안에서 무작위로 상대가 정해진다.
운이 나쁘게도 강한철의 상대는 본래 격투대회에서 3위 안에 들었을 실력자.
그는 빼빼 마른 노인이었는데, 취권으로 상대를 농락하는 유술(柔術)의 달인이었다.
“헹, 새파랗게 젊은 놈이 걸렸구먼. 보아하니 강권을 배워 육체를 단련한 모양인데, 상대가 잘못 걸렸어.”
노인이 술을 마시며 강한철을 비웃었다.
확실히, 우직한 강권은 유술에 약하게 마련이다.
제아무리 힘이 강하다고 한들 물이 흐르듯이 흔들거리는 유술을 상대하기는 어려웠으니까.
“요즘 것들은 말이야, 무식하게 힘만 추구하느라 무술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지. 딸꾹!”
노인이 몸을 비틀거리며 강한철에게 다가왔다.
언뜻 보면 그저 취한 노인의 발걸음이었지만, 그 발걸음 하나하나에 오랜 세월 단련한 보법이 녹아내려 있었다.
다음 걸음을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보법.
술에 취해 있다지만, 노인의 눈빛만은 강한철을 향해 사납게 번뜩이고 있었다.
“내 특별히 네놈에게 진정한 무술을 보여주지. 삶의 희로애락이 녹아든 진정한 무술을. 흘흘흘.”
비틀거리던 노인의 몸이 당장에라도 넘어질 듯이 크게 기울더니, 순식간에 강한철을 향해 쏘아졌다.
이어지는 강한철의 반응.
자리에 선 그대로, 우직하게 주먹을 내지른다.
그 정직한 일격에 노인은 비웃음을 지어 보이며 몸을 비틀어 주먹을 피해 낸다.
과연, 유술의 달인……이라는 소리가 나오려는 순간.
“흐억!”
노인의 몸이 주먹에 맞아 반대 방향으로 튀겨나갔다.
허공을 몇 바퀴나 회전하고, 바닥에 부딪히고 나서도 몸이 바퀴처럼 회전하며 전신의 관절이 반대로 꺾였다.
제아무리 유술의 달인에다 몸이 연체동물처럼 유연하다고 해도, 저 타격에서 살아남지는 못하리라.
노인이 튕겨 나간 이유는 간단했다.
강한철의 주먹에서 흘러나온 풍압.
몸이 직접 닿은 것도 아닌데, 그 단순한 풍압만으로 유술의 달인이 일격에 튕겨 나간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강한철이 낮게 읊조렸다.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강대한 힘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이후, 세운과 강한철은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토너먼트를 올라오기 시작했다.
* * *
– 아아, 그야말로 파죽지세! 대단합니다. 정세운 선수! 강한철 선수! 둘의 경기 시간이 시작부터 십 초를 넘기지 못합니다!
– 아무래도 이번 경기에서 3위를 쟁취하는 자는 저 두 명과 걸리지 않는 자가 될 것 같습니다!
운명의 장난일까? 세운과 강한철은 결승전에 도착할 때까지 대진표에서 마주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한 것처럼 서로를 피하며, 결국 결승전에서야 마주칠 수 있었다.
“정말 내가 3등이라고? 천운이 따른 건가……?”
해설자의 말처럼, 3등은 둘과 가장 늦게 마주친 플레이어의 차지가 되었다.
아니, 그렇다고 그가 능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마지막 3위전의 경기에서 상대를 쓰러트리고 자리에 오른 만큼 충분히 합당한 실력을 지닌 자였으니까.
물론, 3위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와아아!”
“드디어 경기다운 경기를 보겠군!”
“그래도 역시 승부는 정해진 거 아니겠어?”
“무슨 소리야! 저 덩치 큰 남자, 장난 아니던데? 무패의 기록도 이제 끝이라고!”
“100번째 경기에서 드디어 기록이 깨지는 건가?”
처음으로 나타난 세운과 대적할 만한 상대.
그 존재의 등장에, 관객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흥분해 있었다.
실제로 결승전까지 올라오며 강한철이 보여준 무력은 세운의 기대 이상이었기에, 강한철의 승리에 판돈을 거는 관객의 수도 상당했다.
소란스러운 건 디아블로 길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한철이 대놓고 세운이 참가하는 경기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퍼져 있던 길드원이 전부 관람석에 모여들었다.
“한철 오빠, 괜찮을까?”
“근데 격투대회에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고 알고 있어요. 그럼 충분히 가능성 있지 않을까요?”
“오, 진짜 그렇네요. 경기장 내에서만 싸워야 하니 지리적 이점도 한철 씨에게 더 유리할 테구요.”
관객석이 사람으로 가득 찼다.
아니, 가득 찬 수준이 아니었다. 모든 자리가 매진되고, 가장 뒤에 입석으로 서서 관람하는 사람도 가득했다.
심지어는 이것으로도 모자라 콜로세움 바깥에 전광판을 띄워 경기를 중계해야 할 지경이었다.
– 엄청난 관객 수입니다! 대축제가 진행되고 이렇게 많은 관객이 한 경기에 몰려든 건 100년…… 아니, 최초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수많은 관객 사이에서, 세운과 강한철이 과묵하게 경기장 위로 올랐다.
여기까지 올라오며 쓰러트린 참가자의 수만 대략 스물.
덕분에 둘 다 몸은 충분히 풀려 있었다.
“진짜 올라왔네.”
“시시했다.”
결승전답게 경기장의 모습은 지금까지와 달랐다.
크기부터가 콜로세움을 가득 채울 정도로 넓었고, 중앙에 위협적인 용 머리 문양이 크게 새겨 있었다.
“이곳에서는 마법을 쓸 수 없다고 들었다.”
“경기 이름 그대로, 격투대회니까.”
“마음 같아서는 온전한 상태로 상대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아직 내 힘이 부족한 걸 인정한다.”
세운이 강한철의 무력을 아는 것처럼, 강한철 역시 수많은 대련을 통해 세운의 무력을 파악하고 있었다.
제헤튼에서 강한철은 세운이 무기를 꺼내게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마법까지는 끌어내지 못했었다.
그건 아마, 지금 역시 마찬가지.
그것을 아쉬워하는 것 같았지만, 솔직하게 인정하는 모습이 멋졌다.
“그러니 일단은 이것부터 시작해서, 차차 너를 뛰어넘겠다.”
결의가 엿보이는 굳은 눈빛.
가슴 앞에 맞부딪친 주먹에서 그의 신념이 느껴졌다.
세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를 눈치챈 해설자가 경기의 시작을 준비했다.
– 모라프 대축제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경기로 남을 경기. 어쩌면, 최고의 이름으로 남을 경기가 지금!
세운이 뒤랑달을 꺼내 들었고, 강한철 역시 전신의 근육을 긴장시키며 전투를 준비했다.
환호성을 외치던 관객들마저 긴장감에 전염되어 입을 다물고 침을 꿀꺽 삼키던 그때.
– 시작합니다!
타앙!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발포음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둘은 발포음이 묻힐 정도로 강하게 바닥을 박차며 정면으로 돌진했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이미 서로의 힘을 잘 알고 있었기에, 지루한 탐색전 따위는 필요 없다.
곧바로 쏟아지는 둘의 공격.
세운의 검이 내공을 머금고 붉게 번뜩였고, 강한철의 주먹 역시 아가레스의 힘을 받아 낮게 부르짖었다.
이어지는 충돌.
검과 주먹이 부딪혔다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관객석까지 퍼져나갔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관심을 가집니다.
– 성좌, ‘악어를 탄 노인’이 이번에는 만만치 않을 거라며 기분 좋게 끌끌거립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제헤튼과 비교해도 놀라울 정도의 성장 속도라며 둘의 무력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단 일 합으로 알 수 있었다.
‘강해졌다.’
45층의 미궁에서 기연을 발견한 것일까?
디아블로 길드에서 손꼽히는 강자인 강한철이 미궁을 가장 늦게 통과했다고 했으니, 기연은 몰라도 그 안에서 무언가 일이 벌어진 건 분명했다.
제헤튼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강함.
검과 주먹이 충돌했는데 오히려 검을 쥐고 있는 세운의 손이 아파져 올 지경이었다.
“미리 말하지만.”
– 플레이어 강한철이 ‘개전(開戰)’을 사용합니다.
콰과과곽!
강한철이 주먹을 내려치자 땅에서 바위가 솟아내 세운을 덮쳐왔다.
이전에는 그저 지진을 일으키거나, 더 힘을 줘봤자 땅을 조금 갈라지게 하는 정도였는데, 지진의 힘에 익숙해진 지금은 진동을 조절하여 아예 대지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것처럼 보였다.
툭.
‘이런…….’
다가오는 강한철을 보며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바위가 등 뒤를 막고 있었다.
애초에 조금 전의 공격은 세운을 공격하려는 게 아니고 퇴로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위에서 눈을 돌려 정면을 바라보니, 이미 지진의 힘을 머금은 강한철의 주먹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제헤튼 때처럼 설렁설렁했다가는 절대 이길 수 없을 거다.”
콰아아앙-!!
경기가 시작한 지 일 분도 되지 않아, 그 넓고 깔끔하던 경기장이 반파의 상황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