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1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20화(316/675)
제 320화
또각, 또각.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구두 굽 소리.
이어서 모습을 드러낸 건 하얀 정복을 입은 사내였다.
‘저건…….’
처음 보는 사내였지만, 세운은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방금 들려온 목소리. 회귀 전을 통틀어서, 모라프 대축제에서 질리도록 들어온 목소리였으니까.
비록 평소보다 톤도 낮고 분위기도 달랐지만, 분명했다.
“해설자?”
모라프 대축제의 해설자.
목소리는 하나지만, 시간이 겹치든 말든 상관없이 콜로세움의 모든 경기에서 해설을 하고 있는 사내였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그의 존재는 시스템과 동일시될 정도인데다가, 실제로 모습을 드러냈다고 알려진 선례는 전무하다.
그런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다니.
세운의 지칭에 사내가 하얀 중절모를 살짝 올리며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아, 당황하실 만하군요. 100번이나 지켜본 덕분에 전 이미 정세운 선수가 친한 친구처럼 느껴지는데 말입니다.”
딱.
해설자가 손가락을 튕기니 텅 빈 대기실에 두 개의 의자와 하나의 탁자가 나타났다.
탁자 위로는 두 개의 컵이 있었는데 따뜻한 우유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따뜻한 우유를 보니 괜히 벨페고르가 떠올랐지만, 정신을 차리고 해설자를 바라보았다.
“제가 차나 커피를 못 마셔서 평소에 먹던 걸로 준비한 건데, 마음에 안 드십니까?”
“괜찮습니다.”
“다행이군요. 좋은 꿀을 넣었으니 맛은 제가 장담합니다. 한 번 드셔보시지요.”
자신감에 가득 찬 해설자의 제안에 세운이 예의상 컵을 들었다.
살짝 마셔보니, 그의 말대로 꿀의 단맛과 우유의 고소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게, 맛이 꽤 괜찮았다.
기진맥진했던 몸이 조금 채워지는 기분이랄까?
덕분에 정신을 바짝 세울 수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경기 때도 느꼈지만, 성격이 정말 급하시군요. 뭐, 그 덕분에 이번 10일의 기적이 일어난 거지만요. 하하!”
10일의 기적.
세운이 10일 동안 100개의 경기에 도전하여 승리를 쟁취한 것을 이르는 말인 듯했다.
호탕한 웃음에도 세운이 대답이 없자, 해설자가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개인적으로 직접 만나 뵙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사인을 해 주실 것 같지는 않으니 바로 용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해설자가 우유를 마저 비우며 말을 이었다.
“먼저 첫 번째로, 감사의 인사를 전해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해설로도 들으셨겠지만, 이번 경기는 모라프 대축제가 시작된 이후 가장 큰 인기를 끌었거든요.”
[ 10,000,000point ]세운의 눈앞에 떠 오른 메시지.
백만 포인트……가 아니라, 천만 포인트. 생각 이상으로 통 큰 양의 공적치였다.
“수익적 측면만 보고드리는 보상이 아닙니다. 정세운 선수 덕분에 참가자들의 마음가짐이 크게 바뀌었거든요. 모라프 대축제의 책임자로서 드리는 답례입니다.”
세운도 해설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사실, 솔직히 말해서 대축제의 시련에서 해설자가 존재하지 않아도 플레이어에게 달라지는 건 없었으니까.
단지 시련이 조금 더 재미없어지는 정도가 전부 아닐까?
세운 역시 해설자의 역할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해설자의 모습은, 모라프 대축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 같았다.
탑의 관리자들조차 자신이 담당하는 시련에 저렇게 애정을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실제로 최근 10일 사이에 네 개의 경기를 끝내고도 마지막 50번째 시련에 도전하지 않고 다른 경기에 도전하는 플레이어가 많아졌습니다.”
“그런가요.”
“하하, 다 정세운 선수 덕분입니다. 허락만 해 주신다면 정세운 선수의 팸플릿이나 석상을 만들어서…….”
“싫습니다.”
“……흠, 그거 아쉽군요.”
다른 사항이었으면 추가 보상을 제안하기라도 하겠지만, 팸플릿과 석상이라니,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
푼돈에 얼굴을 팔아넘기는 짓은 할 생각이…….
“천만 포인트를 더 얹어드리려 했는데 말입니다.”
“……그럼 총 이천만 포인트가 되는 겁니까?”
“그렇지요.”
……없다.
이건 안 된다.
비록 기존의 일억 오천 포인트에 백 번의 경기를 수행하며 모았던 이천 포인트.
총 일억 칠천 포인트에서 저 돈까지 받으면 일억 구천 포인트가 된다고는 해도, 돈에 얼굴을 팔 수는…….
“이천만이라면 어떠시겠습니까? 대신, 조건을 석상과 팸플릿만이 아닌 제 임의대로 초상권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걸로.”
“…….”
“물론, 어디까지나 저희 대축제 안에서만 통용되는 일입니다. 더 하고 싶어도 그 이상은 제 역량 밖이니 말입니다.”
“…….”
“정세운 선수라면 탑을 오르는 속도도 빠를 텐데, 어차피 이곳에서의 일을 돌아볼 일도 없지 않습니까?”
“…….”
“이곳에서 정세운 선수의 뭔가를 보더라도, 따라잡히지 않는 이상 만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 하죠.”
있었다.
이천만 포인트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도 그럴 게, 이것까지 받아들이면 세운의 공적치는 이억 포인트를 넘어가게 된다.
그 돈이라면, 50층에서부터 열리게 되는 경매장에서 살 수 있는 물품의 폭이 대폭 넓어진다.
해설자의 말대로, 후발주자에게 따라잡히지만 않으면 어차피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하하, 좋은 생각이십니다. 아무래도 관리소에서 주시하고 계시는 인물인 만큼, 마음대로 하기가 껄끄러웠는데 다행입니다.”
만약 세운이 관리소에서 주시하는 인물이 아니었다면 초상권을 마음대로 사용했을 수도 있었지 않을까?
가끔 감시를 당하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별로일 때가 많았는데, 이럴 때 보면 오히려 관리소의 감시를 받는 게 이득인 것 같았다.
“그럼, 바로 두 번째 용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해설자가 무게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보며, 세운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그가 말하려는 게 세운이 회귀 전에 알아냈었던 히든 피스에 관한 얘기라는 것을 말이다.
“모라프 대축제에는 백 개의 종목에서 승리한 플레이어에게 진정한 ‘경기’에 도전할 기회를 제공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과연, 세운의 생각이 맞았다.
이게 바로 모라프 대축제에 숨겨진 유일한 히든 피스.
숨겨진 기회였다.
“참가 방식은 지금까지와 비슷합니다. 수많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기 중 하나를 선택하여 참가하시면 됩니다.”
세운의 앞에 다양한 경기 목록이 떠 올랐다.
해설자가 말한 대로 콜로세움에서 치렀던 것과 비슷한 것들이었지만, 목록에 있는 경기의 이름부터가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것들이었다.
– 참가를 원하시는 경기를 선택해 주십시오.
1. 악마 처단
2. 무당파의 후계자
3. 첨월산의 현자
…….
모두 하나의 차원을 대표하는 경기. 아니, 경기의 수준을 넘어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사건들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콜로세움의 것들처럼 허상의 경기가 아니라 직접 역사의 한 축에 참가한다는 것과 그 안에서 직접 승리의 보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겁니다.”
“승리의 보상?”
“보상의 종류는 시련에 따라 다릅니다. 전부 설명해 드릴 수는 없지만…… 예를 들어 이 ‘무당파의 후계자’에서 우승을 거머쥐면, 무당파의 초절정 무공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무당파의 초절정 무공.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진귀한 보물이라 할 수 있겠지만, 탐욕의 권능을 가지고 있는 세운에게 그리 탐나는 보상은 아니었다.
탐욕의 보물창고라 해도 완벽한 것은 아니라 해설자가 말한 ‘무당파의 초절정 무공’은 없지만, 보물창고에는 이를 대체할 만한 무공서가 가득했으니까.
“해당 시련은 50층의 시련으로 취급받습니다. 다만, 주의하셔야 할 게 하나 있습니다.”
“뭡니까?”
“말씀드렸다시피, 이 기회는 역사의 한 축에 직접 참가하는 기회입니다. 그런 만큼, 승리하지 못하면 탑으로 되돌아오지 못합니다.”
“그 말은…….”
“시간의 축에 갇히게 될 겁니다. 게다가 경기 중 치명상을 입거나 사망을 하게 되면 대축제의 시련들과 달리 자동으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이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기회였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선택하게 된다.
이 위험한 도박을 선택할지, 기회를 포기하고 안전하게 본래의 50번째 시련에 도전하게 될지.
당연하게도, 세운의 선택은 전자였다.
아니, 세운이 아니더라도 100개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이 기회를 쟁취한 플레이어라면 그 누구도 전자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도전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경기를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간을 좀…….”
“물론입니다. 여유롭게 둘러보시죠.”
해설자라고 해서 모든 보상을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경기의 종류가 워낙 많았기에 그중에서는 이름만 보고 보상은커녕 내용을 알아내기 힘든 것들도 많았다.
그렇게 수많은 경기를 내리던 중, 세운의 눈에 하나의 경기가 들어왔다.
“이건 어떻습니까?”
“산호탑(珊瑚塔)의 10대 마탑주라……. 마법이 크게 발전했다고 알려진 차원에서 치러진 마탑주 선발전입니다.”
“마탑주를 선발하다니?”
“산호탑은 철저한 실력주의로 탑주를 선발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탑주가 사라지면, 대륙의 이름난 마법사가 전부 참여하여 탑주의 자리에 도전하죠.”
“보상은 뭡니까?”
“저들의 표현으로는 ‘의지를 잇는다’라고 합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선대 마탑주가 지닌 힘을 이어받는다고 하죠.”
“힘을 이어받는다는 건 무슨…….”
“그것까지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
선대 탑주의 의지를 잇는다.
애매한 설명이었지만, 가장 큰 가능성은 역시 마나였다.
타인의 마나를 온전히 이어받는 게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선대 탑주나 되는 인물의 마나를 이어받는다면 최소한 서클을 하나는 더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성장이 부진했으니까.’
세운은 최근 서클이나 갑자를 늘리기보다는 제한된 양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평범한 수련을 통해 성장하기가 어렵기 때문.
물론, 다른 플레이어와 비교하자면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지만 평범한 방법으로 수련해 봤자 다음 단계에 오르기까지는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지금.
‘이거라면.’
세운은 부진했던 성장세를 확 끌어 올릴 가능성을 찾아냈다.
만약 예상이 들어맞아 저 경기에서 서클이나 갑자를 상승시킬 수 있다면.
이어지는 여섯 번째 쉼터에서 닥칠지도 모르는 흑익 길드의 공격을 훨씬 수월하게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이걸로 선택하겠습니다.”
“음, 괜찮겠습니까? 저도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이 중에서도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경기입니다. 참가자 대부분이 정세운 선수와 동등하거나 더욱 뛰어난 실력일 겁니다.”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다.
마법이 특히 발전된 차원에서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탑주의 자리에 도전하는 이들의 실력이 하찮을 리는 없으니까.
최소 세운과 같은 6서클. 어쩌면 7서클에 다다른 이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경기의 룰도 안 좋게 작용할지 모릅니다.”
맞는 말이다.
강한철과 붙었던 격투대회에서 마법을 제한했듯, 마탑주를 선별하는 만큼 저 경기에서는 육체전을 제한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리스크를 두려워하면 얻는 것도 없게 마련입니다.”
성장의 가능성을 눈앞에 두고 피할 수는 없었다.
해설자의 만류에도 세운은 기어코 ‘산호탑(珊瑚塔)의 10대 마탑주’를 선택하였다.
“알겠습니다. 부디 승리하여 원하는 바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어차피 목적을 달성한 이상, 밖에 나가도 따로 할 일은 없었다.
해설자가 휴식을 제안했지만, 세운은 고개를 저으며 곧바로 기회를 붙잡았다.
“금방 끝내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