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1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22화(318/675)
제 322화
경기장에 오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이미 사방에 펼쳐진 화염 벽 내부가 전부 경기장이었으니까.
그저 다른 마법사들에게 피해를 덜 끼치기 위해 적당히 거리를 벌려 마주 서는 것만으로 경기 준비는 끝났다.
“보아하니 산호탑도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촌티도 적당히 내야지.”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일까? 상대 마법사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입을 열어 세운을 도발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주웠는지 모르겠지만, 망토 하나는 볼 만하네. 그래봤자 내 지팡이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자랑스럽게 꺼내 든 지팡이는 제법 고급스러워 보인다.
붉은 루비가 커다랗게 박혀 있는 지팡이였는데 딱 보아도 평범한 지팡이가 아니었다.
저 자체로도 주인의 마법을 크게 증폭시킬 수 있어 보였다.
저게 자신감의 근원인 걸까?
‘탐나는데.’
세운에게는 지팡이가 없다.
무공을 쓰지 못하는 이상 마법을 최대로 활용해야 하는데, 저런 지팡이가 있으면 꽤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저 정도의 품질이라면 만일의 상황에 마몬의 보구를 깃들게 하기에도 괜찮아 보였다.
이에 세운이 보란 듯이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비웃음을 선보였다.
“아까부터 내 망토가 제법 탐나는 모양인데.”
“하! 내가? 자의식 과잉이 아닌가 싶군. 그딴 망토…….”
“원한다면 주도록 하지.”
“……뭐?”
마법사가 당황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짭이니 뭐니 말했지만, 그 역시 이 망토가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망토를 주겠다니.
잠깐 눈을 굴리던 마법사가 곧 세운의 말뜻을 알아챘다.
“하! 내기를 하자는 건가? 가소롭군!”
“네 그 초라한 망토는 됐고, 지팡이를 걸면 내기에 내놓을 생각이 있는데.”
“네놈! 이 지팡이가 무슨 지팡이인지 아는 거냐? 그딴 망토 따위와 비교를 하다니!”
“글쎄. 자신 없으면 말든지. 적어도 내 망토가 그 지팡이에 꿇릴 것 같지는 않으니까.”
“네놈……!”
상대를 도발하는 것쯤은 간단하다. 특히, 상대가 저렇게 허영심 넘치는 젊은 마법사라면 더더욱.
세운의 도발에 마법사가 표정을 구기더니,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래, 그 내기. 받아주도록 하지. 너 같은 촌놈 따위는 내 비취탑의 고고한 마법에 상대가 될 리 없으니.”
너무나도 쉽게 넘어오는 상대.
단순히 도발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지켜보고 있는 마법사들에게 비치는 이미지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만약 탑주로 선발되는 데 실패하더라도, 이곳에 모인 마법사들은 전부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대마법사들.
산호탑의 마탑주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게 분명했으니까.
“아, 왜 시작을 안 하나 싶었더니 내가 출발 신호를 해야 하는구나. 귀찮게끔…….”
산호탑의 탑주가 집게손가락으로 화염 의자를 툭 치자 경기장 위로 작은 불씨가 생겨났다.
불씨가 위태롭게 흔들리며 부풀어 오르는 순간, 세운은 깨달았다.
저게 바로 이번 경기의 신호탄이라는 것을.
펑!
– 흑탑의 묘리에 따라 ‘파이어 캐논’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자탑의 묘리에 따라 ‘파이어 캐논’의 시전 속도가 빨라집니다.
세운과 다르게 상대는 저 불씨가 신호탄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세운은 자탑의 묘리를 사용하여 파이어 캐논을 빠르게 펼쳐 날렸고, 그에 굉음이 터져나갔다.
“이 더러운 촌놈이!”
선공을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첫 타로 끝내는 건 무리였다.
짙은 매연이 걷히자 마법사의 주변을 둘러싼 비취색의 방어막이 보였다.
말은 저래도, 저 마법사 역시 산호탑의 탑주 자리에 도전할 만한 실력자. 쉽게 당해 주지는 않을 모양이다.
“화 속성의 배틀 메이지인 모양이구나!”
마법사의 주위로 여섯 개의 창이 떠올랐다.
마나의 양과 마법의 수준으로 볼 때, 녀석 역시 세운과 마찬가지로 6서클의 마법사.
휘이익!
빠르게 날아오는 여섯 개의 창을 바쁘게 피해 냈다.
확실히 내공을 운용하지 않으니 평소와 같은 움직임이 나오지 않았다.
“하하, 운도 나쁘군! 하필이면 상대가 비취탑의 녹창(綠槍), 그리브 자이트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는 촌놈아!”
한껏 경계하던 녀석. 그리브 자이트가 세운의 첫 공격 이후로 눈에 띄게 표정이 밝아져 있었다.
어째서일까?
이유를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했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아이스 니들’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자탑의 묘리에 따라 ‘아이스 니들’의 시전 속도가 빨라집니다.
상대를 공격하는 것.
창을 피해 달아나는 와중에도 세운은 빠르게 마법을 완성해 얼음송곳을 쏘아냈다.
그 순간, 그리브의 표정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어떻게 이리 빠르게 얼음 마법을!”
처음과 마찬가지로 비취색의 방어막이 떠올랐지만, 얼음송곳을 완벽하게 막아내지는 못했다.
방어막이 유리처럼 부서지며, 놈의 허벅지에서 피가 튀었다.
그래도 방어막이 제 역할은 한 것인지 송곳의 경로를 꺾어 중상은 피한 듯했다.
놈이 당황한 틈을 타, 세운이 연이어 공격을 날렸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체인 라이트닝’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자탑의 묘리에 따라 ‘체인 라이트닝’의 시전 속도가 빨라집니다.
“번개 마법?!”
놈의 앞으로 비취 창이 기다랗게 솟아올랐다.
창은 피뢰침처럼 날아오는 번개를 흡수하여 지면으로 흘려보냈다.
훌륭한 반응이지만, 놈의 표정은 이미 당혹 그 자체.
살짝 고개를 돌려보니 경기를 지켜보던 마법사들 역시 크게 놀란 것 같았다.
“네놈! 어디서 마법을 배운 것이냐! 세 속성의 마법을 이렇게 빠르게 사용하다니, 이건 불가능하다!”
그제야 세운은 알 수 있었다. 이곳의 마법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다들 하나의 속성을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형식인가.’
불이면 불, 물이면 물, 땅이면 땅, 바람이면 바람.
이곳의 마법사들은 자신에게 맞는 속성을 골라 그 속성으로만 마법을 단련하는 듯했다.
예를 들어 눈앞의 마법사는 대지 마법을 근원으로 한 비취 마법.
저기 멀리서 화염 의자에 앉아 이제야 잠이 깬 듯이 눈을 크게 뜬 탑주는 화염 마법.
세운처럼 여러 속성의 마법을 동시에 운용하는 건 이 대륙의 형식이 아닌가 보다.
‘그렇다 이 말이지.’
어차피 여기까지 보여준 이상 숨기기는 글렀다고 생각한 세운의 손바닥 앞으로 날카로운 바람이 생겨나 소용돌이쳤다.
“네 개……!”
관객석의 마법사들에게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 * *
“오호, 대단하구먼.”
“보아하니 속성에 구애받지 않고 마법을 사용하는 것 같은데.”
“대륙에 저런 유파가 있었던가?”
세운과 그리브의 경기를 지켜보던 마법사들이 감탄했다.
여러 가지 마법을 저토록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형태의 마법사는 그만큼 보기가 힘들었으니까.
물론, 저런 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저 효율이 낮을 뿐.
하나의 속성에 파고들어도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데 저렇게 여러 마법을 건드리면 성장을 가로막는 벽이 훨씬 크고 두꺼워지게 된다.
“효율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다양한 속성 마법을 사용하는 만큼 마법 하나하나는 단조로운 편이구만.”
“빠른 움직임으로 그걸 극복하고 있어. 그래도 배틀 메이지와는 전투 스타일이 다른데…… 흥미롭군. 흥미로워.”
이미 모두의 머릿속에 비취탑의 마법사 따위는 지워져 있었다.
그들의 눈에 들어오는 건 오로지 세운뿐.
다들 마법사답게 처음 보는 스타일의 마법사에 대해 흥미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산호탑의 탑주 역시 마찬가지.
‘여섯 개의 서클 모두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는 건가.’
탑주답게 다른 마법사와는 더 근원적인 부분을 살피고 있었다.
심장을 감싸고 있는 흑, 녹, 청, 황, 자, 적의 서클은 현 대륙에서 절대 있을 수 없는 방식이다.
아니, 분명 방법이 있긴 하지만 저런 식으로 서클을 구성하면 아무리 천재라 하여도 수십 년이 지나도 오 서클에 다다르기도 힘들게 분명하다.
그런데 세운은 어떤가?
고작해야 20대로밖에 안 보이는데, 여섯 개의 서로 다른 속성의 서클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을 이용한 다양한 속성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건 당연한 일.
‘아름답구나…….’
세운의 서클을 감상하던 탑주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나이를 먹고, 현 수준에 다다르며 마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초월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이 대륙에서 자신의 호기심을 끌 만한 마법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세운의 마법 체계는 자신의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여섯 개의 서클이 회전하는 모습은, 마치 아름다운 하나의 건축물을 보는 듯했다.
‘분명 아름답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로구나.’
탑주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 아름다운 여섯 색의 건물은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
다양한 속성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좋지만, 책에나 나올 법한 단조로운 마법들은 여러 개의 서클을 가진 것에 비해 그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당장 상대하고 있는 마법사는 이길지 몰라도, 다른 마법사들을 이기는 것은 무리.
이게 탑주의 판단이었다.
주변에서 흥미로운 듯 수염을 쓰다듬고 있는 마법사 중에서는 7서클에 이른 자들도 제법 있었으니까.
그때.
퍼엉!
“무, 무슨!”
“방금 저건!”
“마법이 맞나? 분명 마법이 맞긴 한데, 저건 대체…….”
“배틀 메이지의 방식이 아니야. 대체 어디서 저런 마법을 배워온 거지?”
세운의 마법이 또 한 번 마법사들을 놀라게 했다.
* * *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 전투는 생각 이상으로 까다로웠다.
마법을 사용한다고는 해도 치고 빠지기 형태의 전투를 벌이고 다녔던 세운이었기에 내공은 늘 함께했으니까.
순전히 마법으로만 상대를 상대하려니 부족한 게 많았다.
게다가, 상대는 순수 마법사.
서클이 같아도 마법의 활용도가 차원이 달랐다.
“아까 그 기세는 어디 갔냐! 역시 촌놈은 촌놈답게 굴어야지!”
놈을 중심으로 5m까지의 거리가 옥색으로 물들었다.
자신의 영역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 안에서 놈의 마법은 훨씬 강해졌다.
아니, 막상 근접한다고 해도 내공이 없으니 제대로 공격할 수단이 없었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록 캐논’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자탑의 묘리에 따라 ‘록 캐논’의 시전 속도가 빨라집니다.
꽈앙!
거대한 바위가 쏘아졌지만, 놈의 영역에서 비취 벽이 솟아오르며 너무나도 쉽게 막혔다.
비취 마법. 그저 대지 마법을 약간 변형한 것뿐인 별거 없는 마법인 줄 알았는데, 활용도가 생각 이상이었다.
“슬슬 끝내주지! 망토는 내가 잘 가져가 써주겠다!”
마법만 사용하는 전투 스타일이 영 익숙지 않아 제 실력이 나오지 않았다.
그 와중에 놈의 주변에서 비취로 만들어진 대포들이 생겨난다. 그 수는 대략 스물.
아까 당해 본 결과, 위력은 세운이 방금 사용했던 록 캐논 이상이었다.
내공도 없이 저 모두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마법을 사용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던 중, 세운의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마법이라도 굳이 마법사들처럼 싸울 필요가 있나?’
내공과 마법의 차이가 무엇일까?
분명 내공이 육체를 다루는 데 더욱 효율적이고, 마법이 현상을 만드는 데 더욱 효율적이라고는 해도 근원은 같았다.
발상을 아주 조금만 비틀어도 둘의 간격을 좁힐 수 있었다.
‘헤이스트.’
세운의 몸을 바람이 휘감자 몸이 가벼워지며 발걸음이 빨라진다.
흑탑의 묘리를 사용하여 마나를 불어넣어 마법을 강화하니 내공을 사용하던 때와 비슷한 속도가 나왔다.
그 상태로 호접활공의 보법을 따라 밟으니, 조금 아쉽긴 해도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대포 탄을 피하는 것 정도는 될 것 같았다.
“그 쥐새끼 같은 움직임 하나는 칭찬해 줄 만하구나! 그래 봤자이지만 말이야!”
콰과광!
스무 개의 대포알이 연사 되자 호접활공만으로 모두 피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세운이 손바닥에 마나를 둘러 팔을 원형으로 천천히 회전시켰다.
손에 두른 건 바람 마법, ‘토네이도’. 그 상태로 태극권을 사용하여 다가오는 대포알을 비껴낸다.
“바, 방금 뭘 한 거냐!”
실제 호접활공이나 태극권에 비하면 조금 못 미치지만, 이것만으로도 놈에게 접근하기에는 충분했다.
순식간에 좁아진 거리.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놈의 얼굴에 씨익 미소가 깃들었다.
“크큭, 걸려들었구나! 멍청한 놈!”
놈의 몸에 옥색의 비취 갑옷이 둘렸다. 그와 함께 대포들이 세운을 조준했다.
확실히, 지금 당장 지근거리에서 저 비취 갑옷을 부수기는 힘들다.
재빨리 마법을 완성해 쏘아내더라도 놈보다는 세운이 먼저 쓰러질 것이다.
하지만, 방법을 바꾼다면?
화륵.
세운의 손에 화염이 깃들었다.
‘익스플로젼.’
대범위 폭발 마법.
놈 역시 이 마법을 알고 있는지 갑옷 안에서 길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옥갑이 그따위 폭발도 못 견딜 것 같냐!”
다만, 세운은 마법을 쏘아내지 않았다.
오히려 마법을 손바닥을 통해 바깥으로 밀어내듯이 놈을 향해 내뻗었다.
팔괘장의 제삼 초식, 포월장.
손바닥과 함께 밀려난 익스플로젼이 순간적으로 놈의 비취 갑옷 안으로 파고들었다.
“미, 미친……!”
퍼어어어어엉-!!!
폭발이 일어난 후에 남은 건 산산이 깨진 비취 조각 사이에 쓰러진 놈과.
“대단하군!”
“기존 배틀 메이지의 전투법과는 차원이 달라!”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말한 건 취소할 수밖에 없겠어!”
다음은 자기 차례인지도 모르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마법사들의 목소리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