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2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27화(323/675)
제 327화
산호탑주 임명식.
그저 힘의 인계라는 보상을 받고 끝날 거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정체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뜬금없이 세운의 정체를 물어보는 산호탑주.
일단 모른 체하긴 했지만, 그의 눈은 의심의 눈 따위가 아니었다. 확신에 가득 찬 눈빛.
마치, 세운이 탑에서 온 걸 알고 있기라도 한 눈치였다.
‘말을 해도 되는 건가.’
이곳은 실제가 아니다. 아니, 실제지만 실제가 아니라는 표현이 더욱 정확하리라.
세운을 이곳으로 보내준 해설자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탑과의 계약에 의해 사로잡힌 다른 차원의 시간대였으니까.
말하자면 탑의 시련과 마찬가지다.
이곳의 모든 마법사가 실제지만, 세운이 떠나는 순간 시간의 축은 초기화되고 산호탑주가 선발된 것 역시 무효로 돌아간다.
그런 곳에서 이 사실을 말해도 되는 건지 세운은 진지하게 고민되었다.
플레이어 대부분은 모르겠지만, 탑에서 ‘인과율’의 존재는 그만큼이나 중요한 사항이다.
“표정을 보아하니 말하기 싫은 것보다는 말을 할 수 없는 느낌이구나.”
과연, 산호탑주. 딱히 표정에서 뭔가 드러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세운의 생각을 곧바로 읽어냈다.
화염 의자에 앉아 경기를 관람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세상에 별 관심 없는 노인인 줄 알았는데.
그의 눈은 그 어떤 젊은 마법사보다 밝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냥 고개만 끄덕이거라 나는 혼잣말이나 할 테니.”
저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이대로 넘어가기는 글렀다.
이 상태로는 보상을 받기도 어려울 것 같아, 세운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산호탑주가 만족스러운 듯이 자신의 추론을 이어갔다.
“일단, 자네는 이 대륙…… 아니, 이 차원의 사람이 아니겠구나.”
끄덕.
“허허, 수 세기 동안 시공간을 연구한 공진탑에서도 차원은커녕 기껏해야 대륙 내부를 이동하는 게 고작이건만. 아니, 마법이 아니겠구나.”
시작부터 정답이다.
만약 그가 여기서 끝을 내었다면 서로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산호탑주의 추론은 세운의 상상 이상으로 뛰어났다.
“네놈이 차원을 거쳐왔다면 그다음 추론도 가능하지. 본래 차원은 시간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니.”
산호탑주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마치, 다음 질문에 세운이 고개를 내젓기를 바라는 듯했다.
그는 마법사가 된 이래 처음으로 자신의 추론이 틀리기를 바라고 있었다.
“혹시 나는…… 떼어진 시공간의 축에 잡혀 있는 겐가?”
틀리기를 바라는 건 당연했다.
만약 게임 캐릭터가 자신이 그저 게임 속 데이터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으면 어떤 기분일까?
지금 세운이 고개를 끄덕이면 산호탑주는 이와 비슷한 기분을 느낄 터였다.
그러나, 세운은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다.
같은 마법사이기에 알 수 있었다.
비록 세운의 대답에 좌절하더라도, 저자가 진짜 원하는 건 ‘진실’이라는 점을.
세운이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이자 산호탑주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가. 선발식이 시작될 때 느꼈던 이질감의 정체는 그것이었구나.”
이질감.
산호탑주가 선발전을 치르기 위해 내려올 당시 표정이 안 좋았던 게 그 이유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사실대로 말해 줘서 고맙네. 시간이 관여되어 있다면 이 임명식이 시간의 축 마지막이겠지.”
세운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임명식이라는 보상을 받는 순간 시련이 끝나고 세운은 이곳에서 나가게 될 거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순간 이곳의 시간은 선발식의 첫 순간으로 되돌아가게 되겠지.
“하아…… 그렇단 말이지.”
산호탑주가 화염 의자를 만들어 자리에 앉아 피곤한 듯이 하품을 푹푹 내쉬지만, 세운이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저러다 보상도 안 주고 떠나 버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가 곧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그전에……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나.”
“무슨 부탁 말입니까?”
“내 임무가 끝나면, 이 차원을 부숴주게나.”
무슨 생각인지는 이해가 간다. 이대로 시간의 축이 되돌아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의 과거로 되돌아가기 싫다는 거겠지.
하지만, 이는 세운이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시공간을 파괴하는 행위는 오직 신만이. 아니, 신 중에서도 극히 일부의 신만이 가능한 행위였으니까.
세운이 고개를 젓자 산호탑주가 굳은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아니, 할 수 있네.”
“없습니다.”
“준비는 내가 다 해 놓겠네. 실패하더라도 뭐라 할 생각은 없네. 아니, 내 모든 걸 넘겨준 후일 테니 실패하더라도…… 만약 자네가 내 부탁을 무시하더라도 나는 알 방법이 없겠지.”
“……그렇습니까.”
“물론, 자네에게 그럴 이유가 없다는 걸 알고 있네. 오히려 페널티가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러니…….”
산호탑주가 지팡이를 내밀었다.
지팡이 끝에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지만, 세운이 첫 경기에서 내기로 얻은 루비 지팡이와는 차원이 다르게 고급스러워 보였다.
아이템 등급으로 따지자면 두말할 것도 없이 최소한 S급 이상.
지팡이라는 매개체가 있고 없음의 차이를 깨달은 세운으로서 꽤나 탐나는 아이템이었다.
“이걸 주겠네.”
“……정말이십니까?”
“어차피 사라질 인생, 뭐가 중요하겠나? 원한다면 당장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걸 건네주겠네.”
망토, 목걸이, 팔찌 등. 대륙 최고의 마법사라는 위명에 걸맞게 그가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 모두 지고의 가치를 지닌 것들이었다.
조금 불안하긴 해도 시련의 내용 중에 시간의 축을 깨트리지 말라는 내용도 없었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답변이구나. 아주 잠시만 기다려주게.”
화르륵!
세운과 산호탑주의 중심으로 불시가 퍼져나갔다.
직선으로 뻗어나가더니 직각으로 꺾이고, 이내 곡선을 그리더니 최종적으로 원을 그렸다.
이는 단순히 2차원에 그치지 않고 불꽃이 이글거리며 허공에 떠올라 3차원의 마법진을 만들어 냈다.
어떤 마법이 깃든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한 마법진.
세운이 놀란 표정을 짓자 산호탑주가 자랑스러운 듯이 마법진을 소개했다.
“내 오랜 친우인 공진탑주가 만들어 낸 마법진이라네. 시공간을 깨트리는 마법진이지.”
“그런 마법진이 있었습니까?”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네. 일시적으로 제한적인 시공간을 부술 수 있을 뿐이야. 다만, 세상에 제한적인 시공간 같은 게 어디에 있겠나?”
“마치 지금을 위해서 만들어진 마법진 같군요.”
“허허, 듣고 보니 그렇군. 공진탑주, 말년에 이런 마법진이나 만들고 있기에 머리가 어떻게 된 줄 알았더니. 미래라도 본 건가 싶네.”
마법진이 다 그려졌다.
산호탑주는 마나를 유지하기 위해 중앙에 지팡이를 꽂으며 작업을 마쳤다.
임명식이 끝난 후 마법진을 발동시키고 지팡이를 가져가라는 걸 보니, 세운이 아무것도 안 하고 지팡이만 들고 도망가려는 것을 방지하려는 최소한의 수단인 모양이다.
“여기 앉게.”
“주의해야 할 거라도 있습니까?”
“주의할 건 따로 없고…… 자네, 화염의 고리는 이미 가지고 있군.”
“신경 쓰지 않으셔도…….”
“다른 고리는 나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원한다면 빛 속성의 마나를 밀어줄 수는 있네만.”
“정말이십니까?”
세운의 눈이 크게 떠졌다.
레인보우 서클에 이어 인피니티 서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속성의 서클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 때문에 다음 서클 역시 다른 속성의 서클로 만들고 싶었지만, 산호탑주가 화염 마법사라는 것을 듣고 포기하고 있었다.
일단 마나만 모아두고 서클은 나중에 기회를 따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빛 속성의 마나를 불어넣어 주겠다니.
가능하다면 곧바로 백탑의 서클로 일곱 번째 서클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비록 화염을 다루지만, 8서클에 도달하며 깨달은 것들이 있다네. 물처럼 전혀 다른 속성이라면 몰라도, 상대적으로 화염과 가까운 빛의 마나라면 변환할 수 있지.”
“부탁드립니다.”
“허허, 그렇다면 내 부탁도 잘 부탁하네.”
산호탑주의 지시에 따라 세운이 자리에 편하게 앉았다.
본격적으로 힘을 불어넣을 준비를 하고 있는지 그의 몸에 화염이 일며 뜨거운 열기가 흘러나왔지만.
스스슷-.
뜨거운 열기는 곧 따뜻한 햇볕처럼 밝아졌고, 그의 몸에서는 불길 대신 태양처럼 눈 부신 빛이 흘러나왔다.
불에 가깝기는 하지만, 이 역시 엄연히 빛의 속성.
세운 역시 이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였다.
[ 화이트 마나 서클 ]– 제국의 칠대 마탑 중 하나인 백색의 마탑에서 마왕군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 냈다고 알려진 강력한 수련법.
백탑의 수련법을 머리에 받아들였다.
그러자마자 등을 통해 흡수되는 산호탑주의 마나.
빛이라고는 하나 아직 화염의 속성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 것인지 등이 화상을 입을 것처럼 뜨거웠다.
‘참아야 한다.’
그래도 세운은 놀라거나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스며드는 마나를 받아들여 심장을 향해 둘렀다.
여섯 번째 서클에 마나를 받아들여 비어 있던 공간을 가득 채웠다.
산호탑주의 마나가 워낙 강대했던 덕분에 서클을 금방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쿵!
여섯 번째 서클이 가득 차자마자 무언가 뚫리는 듯한 기분과 함께 입에서 맑은 피가 흘러나왔다.
세운은 곧바로 일곱 번째 마나 서클을 만들었다.
빛 속성의 마나를 그대로 받아들여 기존의 서클 주위로 둘러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깨달음은 이미 얻었었나 보군.”
“마법사분들의 경기 덕분입니다.”
“허허, 우리 역시 마찬가지라네. 덕분에 굳어 있던 머리가 풀리는 기분이었어.”
산호탑주의 마나는 실로 거대했다. 하지만, 거대한 마나를 받아들인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세운은 과도하게 쏟아지는 마나를 두 줄기로 갈랐다.
한 줄기는 그대로 심장의 서클에 전달하고, 남은 하나는 단전을 향해 이동시켰다.
“배 속의 마력 핵이라니…… 드래곤이라도 되는 겐가? 믿을 수가 없구나.”
“계속 부탁드립니다.”
“본래는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 할지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마나에 한계가 있다만…… 네놈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구나.”
짐작은 하고 있었다. 임명식이라 하더라도 모든 마나를 불어넣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만약 그 방식으로 10대 산호탑주인 지금까지 도달했다면 9서클…… 아니, 10서클에 다다르는 마나량을 얻을 수 있었을 테니까.
그게 불가능한 이유는 당연히 마법사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마나를 준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으니까.
세운은 그 한계를 단전으로 극복하고 있었다.
곧이어 일곱 번째 서클이 기반을 완벽하게 갖추었고.
– 백탑의 수련법을 통해 일곱 번째 마나 서클(Mana circle)을 생성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 백탑의 수련법이 가진 묘리에 따라 마나의 융화력이 상승합니다.
–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 보상으로 500,000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축하하네. 7서클 마법사가 된 것을.”
마침내 멈춰 있었던 경지를 뚫고, 7서클 마법사에 도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