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2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30화(326/675)
제 330화
“다들 준비는 끝났지?”
“네!”
“이거, 쉼터로 가는 게 아니라 쉼터에서 시련으로 향하는 기분이네요.”
“세운 씨, 준비 끝났어요. 방금 전부 확인한 참이에요.”
수련에 매진해 있던 유서아가 어느새 나타나 디아블로 길드의 출발 준비를 끝내 두었다.
수련도 수련이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겠다는 모습.
조금 위태로워 보이긴 해도 세운의 입장에서는 매우 믿음직한 모습이었다.
“다들 마음 단단히 먹길 바랍니다. 아니라고 생각되긴 하지만, 어쩌면 들어가자마자 공격을 받을 수도 있으니.”
흑익 길드는 멍청하지 않다.
스스로를 악의 흑막이라고 생각하는 놈들인 만큼, 정면에서 무언가를 드러내기보다는 뒤에서 계략을 짜는 것을 좋아하는 놈들이었으니까.
복수를 준비한다고 해도 플레이어들이 처음으로 소환되는, 이목이 가장 집중된 곳에서 일을 벌이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다들 무장 마치고, 각자 전투 준비 시작할게요.”
쉼터로 이동할 때마다 대부분 기대를 한껏 안은 채로 이동을 준비했는데, 지금은 모두 경계심을 한껏 끌어 올리는 중이었다.
세운이 벌인 일이었고, 세운이 해야 할 일이었기에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세운이 아니더라도 플레이어라면 탑을 등반하며 흑익과 부딪칠 일은 꼭 생기게 마련이니까.
탑에서의 위협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모두 준비가 끝나고, 유서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세운을 시작으로 모두의 모습이 빛에 휩싸였다.
– 두 번째 쉼터, 유혹의 도시 라일락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두 번째 쉼터, 라일락.
그 특유의 휘황찬란한 밤거리가 디아블로 길드를 반겨주었다.
* * *
라일락.
유혹의 도시라고 불리는 이곳은 탑에서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유흥가’였다.
하늘은 항상 어둡고 그 아래의 거리는 항상 대낮처럼 반짝인다.
거리에는 술집이 가득하고 곳곳에 숨겨진 도박장이 있다.
심지어 도시 중앙에는 어지간한 성보다도 규모가 거대한 카지노(Casino)까지 존재한다.
딱 탑의 중간에 위치한 만큼, 플레이어에게 스트레스를 풀고 가라는 듯한 곳이라는 거다.
그 시작점. 라일락에서 그나마 가장 안전한 곳이라 할 수 있는 플레이어 스폰 지점에서…….
“또 오는군.”
“이번에는 좀 많아 보이는데?”
“클랜이 단체로 오는 건가. 쳇, 클랜이면 영입하기 까다로운데.”
스폰 지점에서 터져 나오는 빛을 보며 스카우터들이 표정을 구겼다.
길드로서의 행동이 확실하게 자리잡히기 시작되는 곳이 바로 여섯 번째 쉼터다.
그런 만큼, 여기부터는 재능 있는 플레이어를 영입하기 위한 길드가 여럿 존재한다.
다만, 이미 어딘가 소속된 이들을 끌어오는 건 꽤나 귀찮은 일이기에 스카우터들의 표정이 구겨진 것이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고급스러운 전포를 등에 두른 남자.
철컥.
“뭐야, 왜 검을 잡고 있어?”
“쉼터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어디 부족한 거 아냐?”
“그러기엔 착용 중인 장비를 봐. 하나하나가 저층에서 얻기 힘든 고급품이잖아.”
이어서 다른 사람들도 소환되기 시작했다.
유서아와 강한철을 선두로 한 디아블로 길드의 등장.
모두 세운이 미리 말한 대로 잔뜩 긴장한 채로 무기를 들고 있었지만, 세운이 검을 내리고 있는 걸 보고 상황을 깨달았다.
“다행……인 건가요?”
“글쎄. 개인적으로 여기서 바로 공격해 줬으면 싶었는데.”
흑익 길드의 이미지가 안 좋기는 하지만, 배후의 느낌이 워낙 강해 대 놓고 적대하는 길드는 없었다.
만약 그들이 여기서 공격을 감행했다면 수많은 스카우터가 그들의 만행을 지켜보며 이미지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복수에 눈이 돌아가 생각 없이 공격해 오는 멍청이들은 아닌 모양이다.
‘하긴, 제헤튼에서도 나를 공격할 생각은 없었을 테니까.’
그들은 어디까지나 세운을 감시하려 했을 뿐이다.
은신 실력 역시, 벤인가 젠인가 하는 놈이 살기를 드러내지 않았으면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 뛰어났다.
그들의 패인은 하나. 세운을 얕보았기 때문이다.
탑에서 등반 층수에 의한 실력 차를 꺾기 힘들다는 건 상식이었고, 그들은 이 상식에 어긋나는 플레이어를 거의 보지 못했을 뿐이다.
“이야, 여기 뭐야?”
“장난 아니네. 영화로 보던…… 아니, 그 이상인데.”
전투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무기를 내린 길드원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하긴, 상업 도시로 크게 발달했다고는 해도 제헤튼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항구도시였다. 발전은 했지만 수수한 이미지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에 비해 이곳은 어떤가?
유혹의 도시, ‘라일락’.
어두운 하늘 아래 밤거리는 반짝이는 조명으로 가득해 대낮처럼 환해 보인다.
그 아래에 가지각색의 복장을 한 이들이 술잔을 흔들며 걸어 다닌다.
시원한 맥주와 맛있는 음식이 즐비하고, 곳곳에서 신나는 악기 연주와 손님을 찾는 종업원들의 달콤한 속삭임이 들려온다.
아무것도 모른 채 탑이라는 낯선 생존의 터에 도착해 이곳까지 올라온 플레이어들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어! 정세운 선수! 아니, 플레이어님! 저 팬입니다!”
거리에서 남자 하나가 세운을 알아채고 달려왔다.
아무래도 시련에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운의 존재를 알고 있는 모양이다.
“한동안 경기에 참여를 안 하시길래 먼저 올라왔는데, 이렇게 여기서 볼 줄 몰랐네요! 저, 특히 마지막 격투대회는 정말 감탄했거든요!”
사인을 해 달라며 갑옷을 걷어 하얀 속 갑옷을 드러내는 게 가관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각 길드의 스카우터들의 표정이 크게 바뀌었다.
“정세운 플레이어? 들어본 적 있는데.”
“최근 우리 길드에 들어온 신입이 말했어. 모라프 대축제에서 전설적인 기록을 남긴 플레이어가 있었다고.”
그들은 세운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곧바로 손익 계산에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함부로 이쪽에 다가오지 못하는 상황.
스카우터라 해도 길드에서 큰 힘을 지닌 이들이 아니었기에 대부분 자신의 길드에 연락해 상황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다행히도 박정필이 나서서 팬을 자처하는 남자를 대신 상대해 주었다.
“우리 형님은 바쁘니까 내가 대신해 주지! 키야, 필체 좋고!”
“으아아악! 내 속 갑옷! 누군데 이런 짓을…….”
“나 몰라? 이 몸이 바로 우리 형님의 하나뿐인 오른팔! 가장 믿음직한 첫 번째 손가락이자…….”
“엥? 오른팔은 강한철 플레이어랑 유서아 플레이어 아니었나?”
“무슨 소리! 걔들도 내 아래…….”
빠득.
“……크흠! 아무튼! 영광인 줄 알라고!”
개소리가 점점 도를 넘기 시작할 때, 강한철이 적절하게 주먹을 구기며 뼈 소리를 내주자 녀석이 정신을 차린다.
가끔 수련에 쓰라고 던져 놨더니 강한철도 박정필의 사용법을 깨달은 모양이다.
속 갑옷에 쓰인 박정필의 사인을 보며 울상을 짓는 플레이어를 보며 세운이 입을 열었다.
“혹시 이 주변에 숙소로 자리 잡을 곳이 있습니까?”
“숙소라면 널리고 널렸죠! 제,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여섯 번째 쉼터의 숙소는 세운도 잘 알고 있다. 어디가 좋은지, 어디가 어디랑 가까운지 등.
그런데도 물은 이유는 길드원에게 수상함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함이었다.
“일반적인 숙소 말고 외곽에 떨어진 버려진 주택 같은 곳은 없습니까? 조금 오래 머물 생각이라.”
“어…… 아! 그러고 보니 그런 곳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굳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길을 안내해 주겠다며 그가 앞장선다.
시간을 아낄 수 있어 좋긴 한데, 불편한 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저 진짜 팬이었거든요! 첫 경기에 다들 관심 없을 때부터 전 계속 지켜봤다니까요? 아, 비행전에서 날개를 꺼내셨을 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길을 안내해 주는 건 좋은데, 도저히 입이 멈출 생각을 안 한다.
뭐, 다행히도 이 역시.
“아, 그건 형님의 오른팔인 제가 또 잘 아는데!”
박정필이 그를 대신 마크해 주었다.
이럴 때 보면 참 쓸 만한 놈이다.
* * *
“정세운 플레이어를 포함한 디아블로 길드 전원, 라일락으로 소환되었습니다.”
“늦었군.”
“메로프 대축제에서 시간을 오래 보낸 모양입니다. 최근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대축제를 거쳐온 플레이어 중 그 이름을 모를 정도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관종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저도 그 점은 잘 모르겠습니다. 정작 본인은 관심을 피하고 있는 것 같긴 합니다만…….”
“뭐, 그거야 상관없겠지.”
흑익 길드, 라일락 지부장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광채를 흘렸다.
벤과 젠이 당한 소식은 그가 직접 59층까지 올랐던 길드원들을 불러들이면서 소문을 막은 터라 퍼지지 않았다.
남은 건 하나.
이곳에서 정세운이라는 플레이어를 조용히 제거하고, 조용히 덮기만 하면 된다.
성좌의 시선이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추락하는 날개’께서는 이곳에 별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고층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다고 했던가.’
성좌께서 주목하는 건 어디까지나 고층의 일.
평상시에는 그게 영 내키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무관심 덕분에 일을 숨길 수 있어 고마울 지경이었다.
“숙소는?”
“라일락 남쪽 외곽에 방치되어 있던 대형 주택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굳이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들어갔군.”
“벤과 젠이 흑익을 배반하고 정보를 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저희의 공격을 예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올 테면 와 보라는 건가.”
“함정이 있을 겁니다.”
“함정이라…….”
라일락에서 떨어진 부지의 버려진 주택.
안 봐도 뻔하다. 자신들의 공격을 예상하고 함정 따위를 준비하고 있으리라.
이제 막 여섯 번째 쉼터에 들어온 플레이어가 흑익의 위명을 제대로 알지는 못하더라도, 상위층 길드에 대한 위협은 알고 있을 테니까.
벤과 젠을 상대했다면 더더욱.
아마, 벤과 젠 역시 디아블로 길드라는 이들이 단체로 달려들어 처단한 것이리라.
지부장이 아는 벤과 젠이라면 결코 저층의 플레이어에게 가볍게 당해 줄 플레이어가 아니었으니까.
펄럭.
지부장의 등 뒤에서 검은 날개가 펼쳐졌다.
사용할 때마다 주인의 마음을 좀먹는 힘이라지만, 지부장에게는 아니다.
라일락 지부를 관리하기 위해 이곳에 앉아 있지만, 그의 실력은 이미 60층의 수준을 뛰어넘었으니까.
만약 이번 일이 잘 풀리고, 이 일을 윗선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이 지긋지긋한 라일락 지부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더욱 힘이 나는 기분이었다.
“그런 게, 우리에게 통할 것 같나?”
펄럭!
펄럭!
지부장의 아래에서 수십 쌍의 검은 날개가 펼쳐졌다.
여섯 번째 쉼터에서 활동하던 길드원도, 60층까지 도달하여 이제 막 다음 쉼터에 도달하려던 이들도 전부 모였다.
이들 모두 ‘추락하는 날개’님께 권능을 하사받은 추종자들.
“우매한 자들에게 검은 날개의 위명을 알려주도록 하지.”
“거짓된 탑의 역전을 위하여.”
흑익 길드, 라일락 지부의 지부장.
자일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