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3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34화(330/675)
제 334화
“여긴 어디지?”
세운이 루시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마몬이나 레비아탄 등은 물론, 외관상으로는 극히 어려 보이던 벨페고르에게까지 존댓말을 사용하던 세운이다.
하지만.
“건방지군.”
대놓고 적대심을 드러내는 마신에게 굽신거릴 생각은 없었다.
성흔과 튜리크의 힘으로 공포와 위압감을 애써 떨쳐 보이며, 세운은 당당하게 어깨를 펼쳤다.
어디냐고 묻기는 했지만, 예상가는 게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심상세계(心象世界)인가.”
“내 고유 영토를 심상세계 따위로 부르다니 불쾌하군. 뭐,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그 정도가 딱 적당하겠지.”
심상세계.
이전에 드래곤 하트를 사용하여 마나를 흡수했을 때, 설룡을 마주하게 된 공간과 같은 개념이었다.
물론, 이 공간은 인간도 용도 아닌 ‘신’이 만들어 낸 공간.
루시퍼의 말처럼 심상세계라는 말로 이 공간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어차피 이곳에서 날 해할 수는 없어.’
이곳이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것.
설사 이곳에서 목이 베이고 심장이 뚫린다고 하더라도 세운이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세운의 심정을 잃은 걸까?
루시퍼가 반박하듯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정신을 죽이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
“탑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건데?”
“내가 보기엔 그걸 감수하더라도 네놈을 짓밟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말이야.”
심상결계.
몸은 아니지만, 정신은 연결되어 있다.
아니, 지금의 경우에는 정신보다 영혼 그 자체가 루시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게 더욱 정확한 표현이리라.
일반적으로 영혼을 공격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지만, 상대는 성좌. 그것도 칠대 마신이라 불리는 압도적인 격을 가지고 있는 성좌다.
조금의 손해만 감수하면 플레이어의 영혼에 흠집을 내는 것 정도는 간단하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굳이 대화를 섞지도 않았을 텐데.”
“잘 알고 있군. 시간은 소중하지. 특히나 한창 바쁠 시기에 이 몸이 널 직접 찾아와 준 것이다. 감사한 줄 알아라.”
“네가 내 시간을 뺏고 있다는 건 생각하지 않나?”
“얼빠진 마신 몇 놈한테 사랑받는다고 자신감이 과한 모양이군.”
루시퍼의 살기가 더욱 강해진다. 살기는 곧 열기로 변해 세운을 태울 듯이 조여온다.
성흔과 튜리크의 날개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살기로 인해 단순 위협이고 뭐고 영혼이 타들어 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빠직-.
우주와도 같이 새까맣던 공간에 작은 균열이 일어났다.
루시퍼의 눈썹이 잠시 꿈틀거리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며 살기를 거두었다.
“어지간히도 이쁨받는 모양이군. 저 까마귀가 사물이나 시체가 아닌 살아 있는 인간에게 이토록 관심을 가지는 건 처음 본다니까.”
아무래도 마몬이 이 공간을 깨트리기 위해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는 모양.
벌써 균열이 일어났으니 공간이 깨지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것이다.
“대체 이해가 안 가는군. 뱀 X이야 나한테 원한이 있다 그렇다 치고, 그 잠탱이마저 편을 들 줄이야.”
“바로 본론을 안 꺼내면 소득 없이 공간이 깨질 텐데.”
“그건 안 되지. 그래, 바로 본론을 말하자면…… 내 밑으로 들어오는 게 어떻겠나?”
단도직입적인 질문.
열두 장의 검은 날개가 활짝 펴지며 위압감을 한껏 드러낸다.
위협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자랑하는 듯한 모습.
“야망도 없는 놈들 밑에서 무엇을 이루겠나? 내 밑으로 들어온다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모든 것?”
“말 그대로, 모든 것. 그저 하나의 욕망만을 가지지 못한 놈들과는 다르다. 나는 모든 것을 원한다. 무력과 재력, 권력…… 원한다면 이 ‘탑’까지도.”
세운이 짧게 반응했다.
탑이라니.
세운의 기억이 맞다면…….
‘흑익의 목표.’
저게 바로 신마 대전이 일어나게 된 원초적인 이유였다.
흑익이 무엇을 어떻게 저지르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그것 하나만큼은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세운이 루시퍼를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흑익을 가장 먼저 부수려는 이유이기도 했다.
“탑이라……. 정확하게 무슨 뜻이지?”
“오호, 목적은 그쪽이었나. 네놈이 더욱 궁금해지는군. 하지만 말이야.”
루시퍼가 가까이 다가와 세운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듯해 성흔을 더욱 크게 빛내며 애써 정신을 바로잡았다.
튜리크의 날개 역시 세운을 더욱 강하게 감싸 안았다.
직접 대면이 아닌 심상결계를 통한 가상의 대면이라 하더라도 마신과의 대면은 이렇게나 위험했다.
“내 손에 들어오지도 않은 놈에게 정보를 알려줄 만큼 멍청하지 않거든.”
세운을 지키기 위해 성흔에서 신성이 급속도로 빠져나간다.
튜리크의 날개도 덜덜 떨려온다. 보랏빛 깃털이 위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다.
그 순간, 다행히도 세운을 구해 줄 이변이 나타났다.
빠직-!
마몬이 일으켰던 균열의 반대편에 균열이 일더니 감청색의 빛이 미약하게 흘러나온 것이다.
“뱀 X까지 가세한 건가. 아직 힘도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을 텐데, 어지간하군.”
마몬만이 아니라 레비아탄까지 합세하여 공간을 부수기 시작한 모양이다.
공간의 균열이 커질수록 루시퍼의 위압감이 조금씩 흩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심해에 갇혀 있다가, 조금씩 수면에 가까워지며 무거운 수압으로부터 해방되는 듯하다.
덜덜 떨려오던 튜리크의 날개도 조금씩 진정되고 있었다.
“보아하니 즉답을 듣기는 무리고,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도 어렵겠군.”
양쪽의 균열이 점점 더 커져 갔다.
공간 전체가 떨려오고 루시퍼의 뒤에서 찬란한 붉은 빛을 토해 내던 태양도 불안한 듯 용암을 꿈틀거렸다.
“일곱 번째 쉼터에 도착했을 때, 깃털 하나가 찾아갈 거다.”
무너져 가는 공간 속에서, 루시퍼가 날개를 접으며 뒤로 돌아섰다.
커져 가는 균열 속에서 마몬의 날개와 레비아탄의 비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답은 그때 듣도록 하지.”
째앵!
결국, 균열이 완전히 깨졌다.
무너져 가는 공간의 바깥에서 이전에 보았던 마몬과 레비아탄의 의인화된 모습이 보였다.
둘 다 마신이라는 자리에 걸맞게 살벌한 표정으로 루시퍼를 향해 살기를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감히 짐의 보물에게……!”
마몬이 날개를 펄럭이자 떨어져 나온 깃털이 보라색 사슬이 되어 루시퍼를 향해 쏟아졌다.
판을 공격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공격.
용이라도 붙잡을 것 같은 기세로 나아간 사슬이 공간을 장악한다.
“루시퍼-!!”
레비아탄의 옆에서 균열을 뚫고 뱀의 머리가 나타났다.
곧이어 뿜어나오는 감청색의 브레스는 그렇게 뜨겁게 느껴지던 태양의 열기 따위는 가뿐히 무시하고 공간을 차갑게 시킨다.
양쪽에서 두 마신의 공격이 닥쳐오고 있음에도, 루시퍼는 가볍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네놈들과는 다르게 난 좀 바빠서 말이야.”
펄럭-.
루시퍼의 등 뒤의 열두 장의 날개가 펼쳐졌다.
태양의 열기가 더욱 강해지며 이내 폭발을 일으킨다.
그 폭발은 마몬의 사슬이나 레비아탄의 브레스와 함께 공간 전체를 뒤덮었고.
째앵-!!
우주와도 같이 텅 비어 있던 공간이 유리장처럼 부서져 내렸다.
* * *
“세운 씨, 세운 씨!”
“좀 어떻습니까?”
“방금 전투에서 다쳤던 건 아니에요. 외적으로는 아무런 이상도 없구요. 짐작하자면, 성흔이 빛나고 있는 걸로 보아…….”
우웅-.
“초월적인 존재와 정신이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성좌 말입니까?”
“네.”
– 성좌, ‘피투성이 사자’가 인상을 구기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세운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할 때쯤, 가장 먼저 디아블로 길드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의 유서아.
외적인 이상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온갖 치료 마법과 포션을 들이붓고 있는 이하늘. 차분하게 상황을 살펴보며 정황을 파악하고 있는 백현까지.
전부 세운을 걱정하고 있었다.
“크윽…….”
루시퍼가 만들어 낸 공간에서 완전히 벗어나자마자 느껴진 것은 고통. 전신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뜨거웠다.
단순히 피부의 통증이라면 이하늘의 치료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었다.
영혼 그 자체가 달궈진 듯한 통증.
분명 루시퍼와 대면하고 난 후유증이리라.
만약 성흔과 튜리크의 보호가 아니었다면 최소 이대로 며칠은 고통에 몸부림쳤을 것이고, 정도가 심했으면 정신이 무너져내렸을지도 모른다.
“세운 씨! 정신이 좀 드세요?”
“어디가 안 좋으신가요? 탈수 증세가 있으신 거 같으니 일단 이거라도 마셔 보세요.”
루시퍼와 대면하는 동안 안간힘을 쓴 대가일까? 마나나 내공은 물론, 성흔 내의 신성까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전신에 식은땀이 흘러내려 축축했고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이하늘에게 건네받은 포션을 마시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남은 포션을 피부에 뿌리니 영혼의 회복과는 의미 없이 심리상으로 조금 안정이 되었다.
그런 세운을 보며 백현이 진지하게 물었다.
“흑익 길드의 성좌…… 루시퍼였습니까?”
역시, 통찰력이 높은 백현다운 질문.
세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잠깐 망설이던 세운이 방금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회귀에 관한 내용은 아직 말하기 어려웠지만,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이번 일은 충분히 설명이 가능했다.
“그렇군요.”
자못 심각해진 분위기.
그사이에 끊겨 있던 성좌들의 메시지가 다시금 나타났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성이 풀리지 않는다며 벽에 금화를 집어 던집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설마 페널티를 감수하면서까지 당신을 불러들일 줄은 몰랐다며 당신을 걱정합니다.
솔직히, 두 성좌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루시퍼에게 더 심한 꼴을 당했을지 모른다.
마몬의 빠른 간섭도 그렇고, 레비아탄의 합류가 없었다면 당장 대답을 강요당했을 것이다.
만약 그 대답이 루시퍼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영혼이 태워졌을 수도 있었다.
때문에 세운은 둘에게 충분히 감사를 표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저딴 놈에게 들은 건 반대편 귀로 흘리라며 배신자를 경멸합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당신을 믿는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어찌어찌 잘 넘겼다.
일곱 번째 쉼터에서 대답을 듣겠다는 루시퍼의 언질이 떠올랐지만, 당장 고민해야 하는, 급한 건 아니었다.
어차피 대답은 정해져 있었고, 루시퍼의 보복을 어떻게 대응할지만 생각하면 되니까.
우선은 그전에 라일락에서 처리할 일들이 많았다.
“일단 들어가시죠. 전투 여파로 길드원들은 물론이고 세운 씨에게도 휴식이 필요해 보입니다.”
라일락 도시에서 흑익 길드는 사라졌다.
그렇다고 해도 방심할 수는 없다. 라일락은 유흥이 발달한 도시인 만큼 어떤 짓을 당할지 모르는 곳이니까.
힘이 부족한 상태로 기웃거리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네, 일단은 전부 휴식부터 취하죠.”
고개를 끄덕인 세운이 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외곽에 방치된 주택이라고 해서 거미줄이라도 쳐져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깔끔했다.
“세운 씨, 혹시 다음 일정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요?”
유서아가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걸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길드의 실질적인 지휘를 맡은 그녀였기에 앞으로의 일을 알려주는 게 맞으리라.
잠깐 라일락 도시에서의 계획을 떠올리던 세운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일단은 경매장부터 들러야겠지.”
여섯 번째 쉼터에서 처음 열리게 되는 경매장, 아카시아.
드디어 모아뒀던 포인트를 사용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