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3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35화(331/675)
제 335화
주택에서 머문 지 사흘이 지났다.
마나나 내공은 몰라도 영혼과 관련된 정신적인 피로도와 신성의 회복에는 시간이 꽤 걸렸기에 세운은 꼼짝없이 휴식을 취해야 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
이번 흑익과의 전투는 지금까지 거쳐왔던 그 어떤 시련보다도 위험했다.
중상자는 물론 수많은 부상자가 나왔기에 이하늘이 바삐 뛰어다녀야만 했다.
사실, 그녀의 실력이 아니었다면 사흘 만에 모든 길드원이 치료되는 것은 불가능했었다.
– 성좌, ‘피투성이 사자’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전투에서 보여준 모습도 엄청났지.’
흡혈목(吸血木)의 욕망.
45층에서 얻었다고 했던 지팡이 덕분에 그녀의 치료는 물론이고 전투력까지 놀랍도록 크게 발전했다.
직접적인 활약은 대부분 강한철과 유서아가 맡았지만, 전체적인 데미지를 놓고 보자면 그녀가 가장 압도적일 정도.
그만큼 그녀가 사용하는 대범위 기술의 위력은 강력했다.
일대일에서는 약할지 몰라도, 전장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녀의 힘은 더욱 강해지리라.
“형님, 형님! 라일락 여기 진짜 대박이라니까요? 와, 제헤튼에서의 암도박판? 그따위 비교도 안 됩니다! 술집은 또 얼마나…….”
“전부 정비 끝나기 전까지는 주택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하핫, 뭐 정보 획득 차원 아니겠습니까? 제가 또 아프신 형님을 위해 미리 싹 둘러보고 온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무슨 정보를 얻었는데?”
“라일락에서 제일가는 술집이랑 암시장, 도박 방식, 경매장…… 뭐 어지간한 건 다 알아 왔습니다!”
말하는 걸 보니 정말 라일락에서 중요한 요소는 대부분 파악하고 온 모양이다.
당연히 나가서 술이나 먹고 도박이나 하고 온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제대로 된 정보에 세운도 살짝 놀랐다.
전날 얼굴이 벌게져서 비틀거리며 돌아온 꼴을 보지만 않았어도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을 해 줬으리라.
“세운 씨, 다 모였어요.”
“그래.”
여섯 번째 쉼터부터는 제헤튼처럼 치안이 좋지 않다.
주의할 점도 많아 전달사항이 있었다.
그전에.
“박정필, 설명해라.”
“옙? 제가요?”
“이상한 거 빼고 알아낸 정보만 추려서 설명해.”
“헤헷, 그럼 일단 제가 코스모스 술집에서 벌였던 영웅담부터…….”
“쓸모없는 얘기 지껄였다가는 나가기 전에 나랑 교육 한 번 받고 갈 테니까 그렇게 알아둬.”
“……자자, 다들 집중! 형님의 오른팔인 이 박정필이 라일락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시작하겠다!”
처음에는 주의점만 알려주고 알아서 파악하게 할 생각이었는데, 박정필 덕분에 여러 정보를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었다.
세운과 마찬가지로 다른 길드원 역시 박정필의 정보를 듣고 제법 놀라는 분위기다.
녀석이 생각보다 쓸모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이상! 여기까지가 형님의 오른팔인 이 박정필이…….”
“수고했다. 나와.”
“컥.”
잘 설명해 놓고 또 헛소리를 지껄이려는 박정필을 뒤로 물려냈다.
하여튼, 꼭 한마디를 더 해서 미움을 사는 놈이다.
“들은 대로, 라일락 도시는 지금까지의 쉼터와 달리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입니다. 적대 세력이던 흑익이 없어졌어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공적치를 도둑질당하는 일은 없겠지만, 혼자 다니는 플레이어를 납치해 공적치를 강제로 납부하게 하는 이는 많았다.
공적치만 아니라 장비를 강탈하는 일도 허다했다.
따라서 라일락에서 가장 필요한 건 세력이다.
간단한 예로, 길드.
강하고 유명한 길드 마크를 달고 있는 플레이어를 건드릴 만큼 용감한 이는 없다.
“라일락 내에서는 무조건 이인 이상으로 다니시길 바랍니다.”
디아블로 길드 역시 고창석에게 의뢰하여 장비에 디아블로 길드의 상징을 박아넣은 상태다.
평소에 입고 다닐 장비는 물론 편한 옷까지 모두.
대부분 색감도 맞춘 터라 알아보기도 무척 쉬웠다.
다만,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아직 라일락에서 디아블로 길드의 위세가 퍼지지 않았다는 점.
길드 상징이 있다고 해도 길드의 힘이 증명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만약 누가 시비를 걸거나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러니.
“밟아라.”
귀찮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이곳에서부터 작업을 해 두는 게 좋다.
물론, 아무런 의미 없이 플레이어들을 공격하라는 게 아니다.
현재 디아블로 길드의 성향은 ‘파멸의 구원자’.
그런 짓을 했다가는 성향이 바뀔지도 모른다.
구원자라는 성향은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많으니 여기서 성향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전투가 벌어질 것 같으면 즉시 길드챗에 보고하고, 무엇보다…….”
세운이 주위를 쭉 둘러보았다.
전투를 피하는 게 아니라 싸우라는 말에 놀란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강한철을 포함한 몇 명은 오히려 기대하는 듯한 눈빛이다.
이렇게 말해 주면 저들은 오히려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누군가 시비를 걸어주기를 기다리며 라일락의 거리를 행보하리라.
“이겨라.”
디아블로 길드의 눈빛에 자신감이 차올랐다.
* * *
“당연히 서아 씨와 같이 가실 줄 알았는데. 저를 지목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경매장에는 백현 씨가 원하는 게 많을 겁니다. 아니, 라일락에서 백현 씨가 관심을 가질 만한 건 경매장에만 있을 겁니다.”
“오호, 기대되는군요. 안 그래도 새로운 매개체나 촉매제가 있으면 어떨까 바라던 참이었습니다.”
–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인간들의 경매장을 보는 건 처음이라며 어떤 소재가 등장할지 기대합니다.
미리 말했던 대로 디아블로 길드는 두 명씩 행동하기로 하였다. 이는 세운 역시 마찬가지.
세운의 첫 목적지는 경매장이었기에 경매장에서 살 만한 게 가장 많을 것 같은 백현을 파트너로 골랐다.
유서아가 조금 아쉬워하긴 했지만, 그녀가 당장 경매장에서 사들일 만한 건 없었으니까.
“거기 형씨들, 한잔 걸칠 거면 여기 어때? 서비스 두둑하게 넣어줄 테니까.”
“서, 성냥 팝니다……. 제발 한 갑만 사주세요…….”
“저건 무슨 길드야? 처음 보는 길드 마크인데, 장비가 아주 삐까번쩍한데?”
라일락에 들어서자마자 온갖 이들이 말을 걸어왔다.
술집 영업이나 구결, 스카우트 제의 등.
제헤튼에서 보낸 시절을 떠올리면 놀랍도록 혼잡한 곳이었다.
“라일락 도시라……. 웃기지 않습니까?”
“뭐가 말입니까?”
“라일락의 꽃말은 첫사랑이나 우정을 뜻합니다. 이런 도시에 라일락이라는 이름을 붙이다니. 너무 상반적이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꽃말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백현의 말을 들어보니 확실히 말이 안 되긴 했다.
당장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도 홍등가가 즐비하고, 친구 사이에서도 배신이 판치는 이곳에서 첫사랑과 우정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기 힘든 광경이니까.
“차라리 죽음이나 이별을 뜻하는 검은 장미인 블랙 로즈나 욕망을 뜻하는 그로키니시아가 더 어울릴 텐데 말입니다.”
혹시 라일락 도시도 처음에는 밝고 화기애애한 도시였던 건 아니었을까?
라일락의 역사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세운이었기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죽음이나 이별, 욕망.
라일락과는 비교도 안 되게 이 도시와 어울리는 이름들이었다.
“그럼 아카시아의 꽃말은 어떻습니까?”
“경매장의 이름이었죠. 아카시아라…… 분명, 우아함이나 죽음을 넘어선 사랑. 모정 같은 의미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안 어울리기는 마찬가지네요.”
“하하, 둘 중 하나겠죠. 이 도시도 원래는 라일락의 이름에 맞는 아름다운 도시였거나, 처음 도시를 세운 사람이 거짓말쟁이거나.”
이후로도 여러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다만, 둘은 술이나 도박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기에 곧장 경매장을 향해 움직였다.
‘아니, 도박은 조금 다르지.’
라일락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카지노.
경매장 구경이 끝나면 바로 그쪽으로 이동할 생각이니 도박에 관심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으리라.
거대한 카지노 건물을 향해 걷다 보니 주위가 조금 어둑해졌다. 지름길을 찾다 보니 큰길을 벗어나 골목길로 들어온 탓이다.
그 순간.
“얘들아, 손님 오셨다.”
“아이고, 얼굴 보니 딱 초짜네. 라일락은 처음인 것 같은데, 통행비는 내고 지나가셔야지?”
“저건 무슨 길드야? 아는 사람?”
“몰라, 처음 봐.”
“장비는 좋네. 장비만 벗겨가도 제값은 하겠어.”
기다렸다는 듯이 웬 놈들이 나타나 껄렁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딱 보아도 여섯 번째 쉼터에 막 들어온 플레이어를 겁박해 돈을 뜯고 다니는 깡패들이 분명하다.
뒤에서도 기척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포위 진형을 갖춘 모양이다.
수는 대략 20명.
그래도 삼류 악역치고는 제법 구색을 갖췄다.
“세운 씨,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까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제가…….”
“아, 제가 얼른 정리하겠습니다.”
세운이 손을 올렸다.
서클을 회전시키자 주변의 마나가 손바닥을 향해 몰려들었다.
세운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챈 백현이 조용히 한 걸음 물러서 방어를 준비했다.
“마법사다! 쏴라!”
피잉!
그래도 딴에 여섯 번째 쉼터까지 올라온 플레이어라고 마법의 사용은 알아챘다.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사방에서 화살이 떨어졌지만, 세운의 주변에서 솟아난 뼈의 벽이 화살을 전부 막아 냈다.
이미 와이드 실드 마법을 걸어 두었기에 화살이 통할 리 없지만, 백현도 가만히 있기는 그랬는지 예의상 도움을 준 모양이다.
“네크로맨서? 다들 뭐 해! 마법이 사용되기 전에 쳐라! 둘 다 마법사니까 일단 들이대면…….”
남자의 말은 그걸로 끝.
세운의 손바닥 앞에 모여진 마나가 공기를 극도로 압축해 냈다.
흑익 길드 라일락 지부장이었던 자일렌을 공격할 때 사용하였던 진동 마법.
다만, 그때는 자일렌에게 타격을 집중하기 위해 범위를 좁혔다면 이번에는 사방으로 넓게 퍼트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위력은 떨어지겠지만, 이 정도 상대라면 위력이 좀 약하더라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 녹탑의 묘리에 따라 ‘소닉 바이브레이션(Sonic Vibration)’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 자탑의 묘리에 따라 ‘소닉 바이브레이션(Sonic Vibration)’의 시전 속도가 빨라집니다.
– 적탑의 묘리에 따라 ‘소닉 바이브레이션(Sonic Vibration)’의 범위가 확산됩니다.
극도로 압축된 음파의 진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백현 역시 마법의 범위에 포함되었지만, 살점으로 이루어진 벽을 사방에 내세워 진동을 흡수하여 막아냈다.
당연하게도, 백현을 제외한 이들은 이 강력한 7서클 마법에 조금도 저항할 수 없었다.
“크허어어억!”
“크아아악!”
피부가 떨리고, 내장이 흔들린다. 혈액이 달아오르고 눈과 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강도를 조절했기에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아마 정상적으로 회복하려면 놈들이 플레이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최소 일주일의 시간은 필요할 것이다.
솔직히 살려 둘 생각도 없었지만, 디아블로 길드의 성향인 ‘파멸의 구원자’를 지키기 위해서 괜한 살상을 할 생각은 없었다.
“커억…….”
세운과 백현을 포위하던 모든 깡패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나마 대장으로 보이던 남자는 다른 이들보다 체력이 조금 높았는지 몸을 꿈틀거릴 여력이 남아 있는 듯했다.
세운은 그에게 다가가 머리를 살포시 밟아주었다.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첫 번째 능력, ‘공포’가 깨어납니다.
공포의 정령인 튜리크의 힘까지 합쳐진 성흔의 첫 번째 능력, 공포.
세운에게 밟혀 있던 남자가 몸이 망가진 고통을 잊을 정도로 강력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놈의 바짓가랑이가 순식간에 축축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몸은 소닉 바이브레이션 마법에 버금갈 정도로 덜덜 떨려왔다.
“죽이지는 않아.”
공포에 사로잡힌 놈의 머릿속에 세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세상에 세운과 자신밖에 존재하지 않는 기분.
그는 성좌라 불리는 절대적인 초월체와 마주하고 있는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대신, 다음에 또 눈에 거슬리게 하면…… 죽는 것보다 심한 고통을 안겨줄게.”
“커, 커허억…….”
“대답.”
“아, 알겠…… 커흑. 흑. 크흐흑. 알겠습……니다.”
디아블로 길드가 라일락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첫날.
디아블로 길드의 이름이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도시 전역에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