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3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38화(334/675)
제 338화
‘타이밍이 너무 이른데.’
하필이면 여기서 지금 이 순간에 발할라의 길드장을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 마주친다고 하더라도 저쪽에서 세운을 알아볼 리 없다고 생각했다.
모라프 대축제를 통해 이름과 얼굴이 많이 팔리긴 했지만, 그래봤자 딱 50층 수준.
이미 70~80층에 다다른 거대 길드에서 관심을 가질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다만, 세운이 예상하지 못한 점이 하나 있었다.
– 성좌, ‘다섯 번째 날’이 당신을 반가워합니다.
성좌, 다섯 번째 날.
아스가르드의 성좌이자 풍요의 여신이라 불리는 프레이야.
튜토리얼 때부터 호감을 보내오며 세운을 좋게 봐주었던 그녀가 발할라의 길드 마스터를 통해 아는 척을 해 올 거라는 점 말이다.
“……디아블로의 길드장, 정세운이라고 합니다.”
“하하, 이거 반갑소! 발할라의 수장을 맡고 있는 브린 자르라고 하오!”
호탕하게 웃으며 손부터 내미는 그.
잠깐 고민했지만, 여기서 악수를 피할 수는 없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쪽도 마찬가지요!”
그렇게 브린 자르의 손을 맞잡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또 한 번 일어났다.
‘이 사람…….’
맞잡은 손에 압력이 느껴졌다.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두꺼운 손이 세운의 손을 압축시킬 거처럼 힘을 줘온 것이다.
발할라의 길드장, 브린 자르.
얼굴이나 소문은 자주 들었지만, 세운이라 해도 실제로 만난 적은 없었다.
그래도 선한 평가 덕분에 별일 없이 넘어갈 줄 알았는데, 시작부터 이런 도전을 걸어올 줄이야.
‘선하다고는 해도 바보는 아니라는 거겠지.’
그는 현재 플레이어가 도달한 쉼터 중 가장 높은 곳이라 알려진 아홉 번째 쉼터에 자리 잡은 길드의 수장이다.
아니, 지금 시기라면 아홉 번째 쉼터에 돌입하기 위해 한창 80층 시련에 도전 중일지도 모른다.
지금 그가 경매장에 있는 이유도 시련의 준비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아무튼, 아무리 선하다고 해도, 그런 사람이 쉬울 거라 생각했던 게 실수였다.
꽈악-.
손의 압력은 더욱 강해진다.
과연, 발할라의 길드 마스터.
동층에서 세운의 근력 능력치를 따라올 자는 강한철 정도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겠지만, 브린 자르를 따라가기엔 부족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밀릴 수는 없다.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약해 보여서는 안 된다.
누군가는 겨우 악수 따위로 무슨 말이냐고 하겠지만, 이 가벼운 심리전은 한순간에 상대의 성향이나 힘을 파악하는 지표가 돼 버린다.
물론, 당장 마몬의 보물창고에서 근력을 높여주는 장신구나 건틀릿 등을 사용해도 되겠지만…….
‘대놓고 수를 보여줄 수는 없지.’
모라프 대축제 때에도 강한철과 대결했던 마지막 순간을 제외하고는 탐욕의 권능의 사용을 자제해 왔다.
단 두 번.
강한철과의 전투 때와 방송되고 있던 줄은 몰랐지만 산호탑주 선발식 때 권능을 사용하긴 했지만…….
‘힘이 노출당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관객석에서 쉽사리 권능을 알아차릴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세운의 힘에 대해 분석하는 자들도 있었겠지만 직접 상대해 보지 않는 이상 완벽하게 분석하기는 불가능하다.
그에 비해, 눈앞의 사내는 다르다.
발할라의 길드장, 브린 자르는 세운이 탐욕의 권능을 사용하자마자 그 정체를 알아차릴 게 분명하다.
80층까지 올라간 플레이어에게는 그에 걸맞은 통찰력이 존재하게 마련이니까.
만약 사용하더라도 아이템이 아닌 무공서나 마법서처럼 겉으로 티 나지 않는 방법을 사용해야만 한다.
그러니…….
– 파극심공의 묘리에 따라 신체의 근력이 강화됩니다.
꽈악-.
“호오?”
일단은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는 방법들을 이용하여 반격을 시작한다.
먼저, 세운이 가진 내공의 세 가지 유형 중에서도 가장 파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파극심공을 이용하여 손바닥에 내공을 두른다.
그것만으로 평소보다 근력이 몰라보게 강해졌다.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던 손바닥이 버틸 만해진 게 바로 그 증거.
바로 뒤이어서 새로운 마법을 준비한다.
여기서 탐욕의 권능을 사용했지만, 브린 자르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스트렝스(Strength) ]– 백탑에 존재하는 버프 마법 중 하나로 대상의 근력을 크게 상승시킨다.
마법서를 펼쳐 스트렝스의 지식을 습득한다.
물론, 브린 자르에게는 이러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우웅-.
산호탑주 덕분에 만들 수 있었던 화이트 서클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세운의 손바닥에 힘을 불어넣어 준다.
예전이었다면 마법으로 이 정도까지 힘을 강화하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7서클이라는 수준과 함께 화이트 서클을 지니고 있다.
강화된 스트렝스는 세운의 근력을 단숨에 끌어올려 주었고.
“하하, 대단하오!”
브린 자르의 악력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었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꽈악!
손에서 더욱 큰 악력이 느껴져 왔다.
‘봐주고 있었나.’
아니, 봐줬다기보다는 배려해 줬다는 표현이 옳으리라.
오른 층만 해도 20층이 넘게 차이가 나는 플레이어를 상대로 온 힘을 다하는 건 ‘공격’ 행위나 다름없으니까.
이곳은 경매장.
그러한 공격 행위는 용서받지 못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악수라는 이름의 심리전일 뿐.
무언가 기술이라도 사용했는지 브린 자르의 근육이 꿈틀거리며 핏줄이 올라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운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두 번째 능력, ‘광란’이 깨어납니다.
내공이나 마법을 사용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강력해지는 근력.
성흔이 맹렬하게 빛나며 오른손을 향해 신성을 전달한다.
브린 자르의 표정 역시 놀람을 넘어 심각함에 이르렀다. 처음 세운을 노려보던 가벼운 표정이 아니었다.
– 성좌, ‘다섯 번째 날’이 그러지 말고 친하게 지내라며 안절부절못합니다.
– 성좌, ‘네 번째 날’이 당신의 근력에 감탄합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어디서 감히 시험 따위를 하는 것이냐며 독니를 드러냅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조금만 더 자신의 인내심을 건드린다면 가만있지 않겠다며 날개를 펼칩니다.
세운과 브린 자르.
마신들의 총애를 받는 자와 아스가르드 신들의 총애를 받는 자라고 할 수 있는 만큼 둘의 악수는 성좌들의 관심을 끌기에도 충분했다.
다만,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에 브린 자르 쪽에서 먼저 손에 힘을 풀었다.
이곳은 경매장. 더 이상의 위협은 전투 행위로 취급받을 수가 있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그는 애초에 세운을 위협할 생각이 없었다.
“과연, 아스가르드의 신들께서 지켜볼 만하오. 방금의 악수로 그대의 가치를 모두 알아볼 수는 없겠지만, 성좌님들의 뜻은 이해할 수 있었소.”
브린 자르가 호탕하게 웃으며 세운의 등을 두들긴다.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느낌.
사실, 이 이상으로 힘을 주면 나태의 권능까지 사용해 일시적으로 힘을 올릴까 걱정했었지만…….
‘그건 나로서도 끌리지 않는 상황이니까.’
지닌 모든 힘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여기까지가 딱 적정선이라 느껴졌다.
그때, 옆쪽에서 미약한 신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세운과 브린 자르뿐만 아니라, 그의 부관과 백현이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설마.’
악수를 나누며 손아귀에 힘을 주는 게 발할라 길드의 전통이라도 되는 것일까?
상황을 보아하니 저쪽에서도 악수를 통해 서로를 알아보는 중인 모양이었다.
다만, 세운과 달리 백현은 네크로맨서. 그것도 근접전을 등한시하고 철저히 후위를 잡고 있는 마법사였다.
악수 같은 것으로 대화를 나눠봤자 질 게 분명.
브린 자르의 부관 쪽도 근접계 플레이어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올라온 층이 다르다.
이에 백현을 걱정했지만…….
“크흣…….”
결과는 세운의 생각과 완전히 달랐다.
드드드득-.
백현의 하얀 가운 속에서 수십 조각의 뼈가 튀어나오더니 오른손을 뒤덮었다.
세운 역시 처음 보는 기술.
일종의 본 아머(Bone armor)로 보였는데, 단순히 뼈를 둘러 방어력을 올려주는 본 아머와는 달리 자체적인 근력을 올려주는 듯했다.
곧 하얀 뼛속에서 뿌드득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들린 앓는 소리의 주인은 당연하게도 브린 자르의 부관.
그 모습에 먼저 손을 놓은 백현이 싱긋 미소 지었다.
“이거 죄송합니다. 제게 피해가 들어오면 자동적으로 반응하게 만들어둔 것이라. 그래도 마지막에 힘을 풀었으니 크게 다치시진 않았을 겁니다.”
“……됐어요.”
“하하, 이거 실례했소! 나쁜 뜻은 아니었으니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 주길 바라오.”
백현……. 온순한 학자인 줄 알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준비와 대처가 철저했다.
저런 것까지 준비해 두고 있었을지는 세운도 생각하지 못했다.
브린 자르의 부관이 오른손을 털며 인상을 구겼지만, 자기 수장의 반응에 표정을 풀고 고개를 숙였다.
“사실, 성좌님들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쉽사리 믿지 못했었소. 무엇보다 토르 님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으니.”
– 성좌, ‘네 번째 날’이 몸으로 직접 부딪치는 것만큼 상대를 알아보기 좋은 방법은 없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나, 이제 토르 님께서도 인정하셨소. 물론, 나 역시.”
“그렇습니까.”
“그렇다마다! 사실, 감탄했소. 본인 역시 힘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라일락에 도착할 즈음에는 애송이일 따름이었으니 말이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발할라의 길드장, 브린 자르의 일화는 발할라 소속이 아니었던 세운도 들었을 정도로 유명했으니까.
그중에서도 보스 몬스터를 망치질 한 방에 날려 버린 일화는 발할라의 상징처럼 남겨 있을 정도였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 길드로 초대하고 싶지만, 라일락에는 발할라의 지부가 없소. 일단 이쪽으로 따라오시겠소?”
“알겠습니다.”
브린 자르의 뒤를 따라 걸으니 곧 널찍한 복도와 함께 여러 개의 방이 나타났다.
VIP룸. 경매장에서 일정 이상의 공적치를 사용한 플레이어에게만 제공되는 귀빈실이다.
귀빈실에 들어가자마자 푹신한 소파와 널찍한 테이블, 보석으로 이루어진 장식들이 보였다.
“사설은 싫어하니 곧바로 성좌님들께서 말씀해 주신 제안을 말하겠소.”
성좌가 말한 제안.
아마, 이전에 오딘이 세운에게 발할라 길드에 꼭 한 번 찾아오라는 것과 연관된 제안일 것이다.
라일락에는 발할라의 지부가 없으니 적어도 일곱 번째 쉼터, 아니, 여덟 번째 쉼터에는 올라야 길드장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시기가 생각 이상으로 앞당겨졌다.
‘제안이라…….’
당장 오딘이 세운을 발할라에 초대하여 내걸 수 있는 제안이 뭐가 있을까?
지혜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오딘이라면 세운에게 무작정 무언가를 퍼주려는 생각은 아니었을 거다.
세운에게도 도움이 되고, 자신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무언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뻔했다.
아스가르드는 세운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았던 거다.
세운이 마신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는 해도, 굳이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 발할라 길드와 동맹을 맺지 않겠소?”
세운이 더 커지기 전에 손을 잡아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