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3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42화(338/675)
제 342화
룰렛.
바퀴를 닮은 모양의 휠 안에 볼을 던져 넣어 포켓 안에 들어간 번호를 맞추는 게임이었다.
번호가 높냐, 낮냐, 홀수냐, 짝수냐 등.
하나의 조건만 선택하면 확률이 높아지는 대신 배당이 적고, 더욱 많고 세세한 조건을 선택할수록 확률이 낮아지는 대신 배당이 급격히 상승한다.
설명이 길었지만, 핵심은 하나.
‘조금 더 복잡해졌을 뿐이지, 1층의 주사위 게임과 다를 바 없어.’
이 게임은 심리전이나 계산 따위 필요 없이 철저하게 운으로 이루어진 게임이라는 거다.
그야말로 세운이 딱 원하고 있던 게임.
바이콘의 왼뿔은 무려 S-급이기에 보구의 힘을 꽤 오래 버티겠지만, 정확히 얼마나 버틸지 모르는 이상 버텨내는 동안 최대한 본전을 뽑아야만 했다.
“환영합니다. 고객님.”
2층에 존재하는 5개의 룰렛 중, 사람이 가장 적어 보이는 자리를 골라 앉았다.
딜러의 인사와 함께 자리에 앉아 있던 두 명의 시선이 세운에게 집중되었다.
“어머, 늑대 가면이라니. 멋져라. 잘 어울리는데요?”
“딱 보니 처음이군. 초짜 티가 풀풀 나.”
“뭐 어때요~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같은 곳에 걸어볼까나~”
악귀 가면을 쓴 거한과 토끼 가면을 쓴 여성.
특히 토끼 가면의 여성은 가면의 마법을 활성화하지 않아 가면에 가려지지 않은 하관이 전부 노출되어 있었다.
로브 역시 벗어둔 상태여서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중이었다.
혹시나 아는 사람일까 싶었지만, 그것만으로 상대가 누군지 파악하는 것은 어려웠다.
“새 플레이어가 도착했으니 바로 게임 진행하겠습니다. 어떻게 거시겠습니까?”
“난 빨강에 골드 하나. 이제 슬슬 뜰 때가 됐지.”
“우리 새로운 늑대 님은 선택이 늦으시네요~ 그럼 전 36번으로 할까요? 전 역시 끝 번호가 좋아서요~”
역시, 게임 방식은 간단하다.
대충 분위기를 파악한 세운이 골드 코인 하나를 꺼내 들었다.
1층에서의 한계가 1개의 실버 코인이었다면, 2층에서의 한계는 1개의 골드 코인.
보통은 첫 게임에서 간 보기용으로 실버 코인을 사용하는 게 대부분인데, 처음부터 골드 코인을 꺼내 들자 딜러는 물론 옆의 두 플레이어 역시 눈을 반짝였다.
‘일단은 ‘가네샤의 부러진 상아’의 한계도 파악해야 하니까.’
1층에서 확인했듯이, 행운의 신의 상아라고 해도 완벽한 건 아니었다.
단순히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행운에는 한계가 있으니.
그러니 처음은 간단하게.
“검정에 걸지.”
1/2 확률에 배팅을 건다.
그러자마자 악귀 가면의 남성이 표정을 대차게 찌푸렸다.
“너 이 새끼, 지금 도발하는 거냐?”
“왜 그래요~ 오히려 이렇게 다양하게 퍼져야 더 재밌잖아요?”
자신과 반대되는 색을 골랐다고 책상을 내려치는 악귀 가면.
당연하게도 세운은 이에 반응하지 않았다.
딜러 역시 괜한 싸움에 관여하기 싫었는지 곧바로 휠을 돌리며 볼을 던져 넣었다.
데구루루-
요란하게 굴러가는 쇠 구슬.
당장 자신의 골드 코인이 걸려 있었기에, 악귀 가면도 더는 화를 내지 못하고 쇠 구슬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집중되는 시선.
이 한 번의 도박에 100만 포인트라는 엄청난 공적치가 걸려 있으니 시선을 뗄 수 있을 리가 없다.
100만 포인트라 하면 평범한 플레이어가 5~10번 정도의 시련을 극복해야 얻을 수 있는 양이었으니까.
악귀 가면은 화를 내는 것도 잊고 침을 꿀꺽 삼키는 중이었다.
톡, 톡-
마침내 쇠 구슬의 속도가 줄어들며 36개의 숫자 사이에서 머물 곳을 정하기 시작했다.
숨 막히는 순간.
어쩐지 품 안의 바이콘의 왼뿔. 즉, 가네샤의 부러진 상아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진다 싶은 순간에 공이 완벽히 자리를 잡았다.
톡.
“33번, 검정. 축하드립니다.”
“젠자아아앙!”
“후후, 축하드려요. 늑대 가면님.”
2층에서의 만족스러운 첫 시작이었다.
* * *
‘하루 만에 슬롯머신으로 잭폿을 4번이나 터트리고 올라온 플레이어라…….’
카지노의 모든 이변은 관리자에 의해 해당 직원들에게 곧바로 전송된다.
세운의 정보 역시 마찬가지.
1층의 관리자인 클로버는 세운을 위로 올려보내자마자 그 정보를 전달했다.
그 소식을 듣고 직원 대부분이 가진 생각은 이것이었다.
‘어지간히도 운이 좋은 놈이군.’
애초에 슬롯머신은 사기나 조작 같은 게 통하는 게임이 아니었다.
4번의 잭폿이라니.
라일락 도시에 이 카지노가 생성되고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유례 없는 일이지만,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쯤 관리자가 해당 슬롯머신을 재점검했을 게 분명하고, 문제가 발견된다면 즉시 가드들이 출동했을 테니까.
톡.
“33번, 검정. 축하드립니다.”
첫 번째 게임.
이때까지만 해도 딜러는 별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토끼 가면의 여성이 말한 것처럼 초심자의 행운(beginner’s luck)이라는 말은 꽤 유명하다.
그저 ‘어지간히’에서 ‘정말 어지간히도’ 운이 좋다 정도로 인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했다.
“22번, 검정. 축하드립니다.”
“36번, 빨강. 축하드립니다.”
“5번, 빨강. ……축하드립니다.”
연이은 정답.
1/2이라는 확률을. 아니, 색이 존재하지 않는 0과 00을 합친다면 1/2도 되지 않는 확률을 연이어 맞히고 있었다.
심지어 배팅의 종류를 확인한 늑대 가면은 점점 더 확률을 좁히기 시작했다.
“컬럼벳, 젤 윗줄.”
“3번, 빨강. 축하드립니다.”
1/2에서 1/3 확률로.
“14, 17번 사이.”
“17번, 검정. 축하……드립니다.”
1/3 확률에서 1/18분의 확률로.
심지어 36개 중 하나의 숫자를 골라 1/36의 확률에 도전하기까지 했다.
“어머, 대단한데요?”
“저놈 대체 뭐야? 행운의 여신이라도 붙어 있는 건가?”
“행운과 관련된 스킬은 없지 않나요? 운이라는 요소는 인과율과도 관계되어 있어서 신들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던데요~”
“그럼 저놈은 어떻게 하고 있는 거냐고.”
물론, 모든 배팅에서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확률이 높은 배팅에서는 어지간하면 이겼지만, 당첨 확률이 낮아질수록 성공률이 감소했다.
그렇다고는 하나 당첨되는 확률이 더욱 높아 늑대 가면의 앞에는 골드 코인이 수북하게 쌓이는 중이었다.
‘속임수는 아니다.’
애초에 룰렛에서는 속임수 같은 걸 쓸 수 없다. 배팅을 모두 마친 후에 딜러가 공을 굴리는 시스템이었으니까.
방법이라면 룰렛에 직접적으로 관여를 하는 것인데, 룰렛은 기본적으로 물리적, 마법적 관여가 방지된 것은 물론 아주 미약한 변화라도 감지되면 즉시 신호를 울리게 되어 있다.
즉, 말도 안 되지만…….
‘설마 저게 진짜 그저 운이라고?’
늑대 가면이 순수하게 운으로 게임에서 이기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대로는 안 돼.’
일단 테이블 아래의 버튼을 눌러 관리자를 호출해 두었다.
그렇지만 관리자라 하더라도 속임수를 쓰지 않는 게임을 함부로 막아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이대로 가다 가는 파산이다.
자신에게 잘못이 없더라도, 자신의 테이블에서 일어난 일이니, 딜러가 책임을 지게 될 확률이 높았다.
‘어쩔 수 없지.’
딜러가 조심스럽게 룰렛의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 * *
‘역시, 제한이 있었어.’
확률을 어느 정도 조율할 수 있는 룰렛 게임.
1/2의 확률부터 시작해 당첨 확률을 점차 줄이다 보니 ‘가네샤의 부러진 상아’가 가진 한계를 점차 예측할 수 있었다.
일단 흑과 적, 홀이나 짝을 맞추는 것처럼 1/2 확률의 게임에서는 어지간하면 전부 당첨되었다.
이게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선택에 의한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운은 알 수 있었다.
행운을 올려주는 능력은 지금까지 사용해 왔던 보구들과 비교해도 절대 뒤처지지 않는…… 아니, 오히려 더욱 뛰어난 능력이라는 걸.
무엇보다, 세운이 이 행운의 제한을 알아차린 결정적인 계기는 따로 있었다.
“홀수로.”
“나도 홀수로.”
“그럼 저도 홀수로 갈게요~”
세운의 워낙 비정상적인 성공 가도를 달리자, 옆에 있던 악귀 가면과 토끼 가면 역시 세운을 따라 하기 시작한 때였다.
홀수와 짝수를 선택하는 1/2 확률의 룰렛.
평소라면 당연히 당첨되었을 이 게임에서.
툭-
“8번, 검정. 짝수입니다.”
“뭐?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왜 떨어져?”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잖아요~”
“이놈, 일부러 그런 거 아냐? 우리가 따라붙는다고?”
“에이, 늑대 님이 먼저 선택하시고 저희가 붙은 건데 그게 가능할 리 없잖아요~”
“말이 안 되니까 그러지! 저놈, 홀짝에서 진 건 이번이 처음이잖아!”
패배하고 만 것이다.
무언가 이상하다 싶어 일부러 옆에 앉은 둘의 참여를 노려보니 결과는 마찬가지.
둘이 세운의 선택을 따라올수록 당첨 확률이 급격하게 낮아졌다.
그제야 세운은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행운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거야.’
행운의 총량.
말이 안 되는 말 같지만, 실험 결과 정답일 가능성이 컸다.
세운이 원하지 않더라도, 여러 명이 선택을 따라오면 행운이 그만큼 분할되어 행운의 질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거기까지 깨달은 세운의 선택은 간단했다.
“왜 안 정해?”
“하긴, 저라도 기분 나쁠 것 같기는 하네요~ 저는 이번에도 36번으로 갈게요?”
“젠장, 홀! 이번에야말로 홀이다!”
“빨강.”
“젠장, 저놈 진짜 마음에 안 드네.”
두 플레이어가 선택을 따라오지 못하게 가장 마지막에 배팅을 결정하는 것.
악귀 가면의 남자가 불평을 터트리긴 했지만, 어차피 그 이상 관여할 수는 없다.
가네샤의 부러진 상아가 가진 행운의 원리를 파악하자 게임의 승률이 더욱 높아진 것은 당연지사.
다만, 신기한 점이 하나 있었다.
“36번, 빨강입니다.”
“어머, 드디어 걸렸네요~”
“젠장, 이거 뭐 이상 있는 거 아냐? 1/2 확률인데 난 왜 이렇게 안 걸리냐고!”
세운의 바로 옆에 앉아 있는 토끼 가면.
룰렛에 얼마나 오래 참여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운이 계속해서 승리를 가져감에도 그녀의 코인은 전혀 줄지 않았다.
확률상으로 코인을 잃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룰렛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득을 취한다.
세운이야 마몬의 보구를 쓰고 있다고 해도, 그녀는 아닐 텐데.
어쩐지 위화감이 드는 게, 계속 마음이 걸렸다.
다만, 세운은 곧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지금 신경 쓸 건 저게 아니야.’
어차피 게임의 결과는 가네샤의 부러진 상아가 보장해 준다.
그러니 세운이 신경 쓸 건 어느 곳에 배팅을 해야 할까 하는 계산이 아니라, 눈앞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딜러다.
세운이 따는 코인이 많아진다는 뜻은 곧 딜러가 잃는 돈이 많아진다는 뜻.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속으로는 똥줄이 타들어 가고 있을 거다.
그렇다면 결과는 둘 중 하나.
관리자를 부르거나.
‘승부를 조작하거나.’
툭-
“컬럼벳, 아랫줄.”
데구르르-
각종 보구로 강화된 세운의 감각이 딜러의 몸짓을 따라간다.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테이블 아래로 내려간 그의 손이 움직이며 근육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는 게 느껴진다.
결론적으로, 극도로 집중한 귓속으로 ‘철컥’하며 무언가 맞춰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결과는 당연히.
“11번, 검정이군요.”
세운의 패배.
볼은 누가 보아도 아무런 이상 없이 자연스럽게 11번 위로 낙착했지만, 세운은 알 수 있었다. 딜러가 룰렛을 조작했다는 사실을.
“지금 나를 기만하는 건가?”
서릿발처럼 차가운 세운의 목소리에 딜러는 물론 옆의 두 가면 역시 세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