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3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43화(339/675)
제 343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당연하게도, 세운이 입을 열자마자 딜러가 난색을 표했다. 세운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
하지만, 세운은 볼 수 있었다.
아주 짧은 찰나, 그가 순간적으로 몸을 흠칫하며 테이블 아래에 숨겨 두었던 손을 빼는 것을 말이다.
아마, 첫 시도부터 자신의 노림수가 걸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모양이다.
“뭐야? 무슨 일인데?”
“어머, 무서워라~”
의문을 표한 건 세운의 옆에 앉아 있던 두 가면도 마찬가지.
주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물들었다.
토끼 가면의 여성의 말투에서 기대감이 한껏 묻어나와 묘하게 거슬렸지만, 일단은 무시하고 딜러를 향해 말을 이어갔다.
“딜러가 게임을 조작한다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조, 조작이라니. 착각이십니다. 저희 다른 게임도 마찬가지지만, 룰렛은 특히나 물리적으로나 마법적으로 간섭이 금지된…….”
“그건 플레이어가 간섭을 금지하기 위한 시스템이지.”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플레이어님의 대운은 인정하지만, 게임에서 졌다고 조작을 의심하는 건 저희로서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제법 강경하게 대응하는 딜러.
그 모습에 세운의 옆에 앉은 두 플레이어 역시 상황을 알아챘다.
“조작?”
“어머, 정말인가요? 정말이라면 조금 많이 실망인데~”
“아닌 것 같은데. 게임 중에는 나도 감각을 세우고 있는 편인데, 그런 건 못 느꼈어. 딜러 말대로 게임에서 졌다고 그런 거 아냐?”
“에이, 그럴 리가요~ 당신이라면 이렇게 잘 나가고 있는데 굳이 딴지를 걸어서 게임을 멈추겠어요?”
“크흠! 그건 그렇네.”
그 말 그대로.
현재 세운의 페이스라면 이 자리에 진득하게 앉아 코인을 얼마든지 끌어모았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먼저 나서서 판을 멈춘다?
아무리 바보라도 그런 행동은 하지 않는다.
토끼 가면은 물론, 아까부터 딴지를 걸어오던 악귀 가면도 그 말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딜러는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들 왜 그러십니까! 저희 카지노에서 도박은 절대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룰렛을 검사해도 되겠지?”
“저, 저희 카지노의 장비는 관계자만이 다룰 수 있는 터라…….”
“어머, 정말요~?”
“이거 진짜 수상한데? 설마 아까부터 계속 그랬던 거 아냐? 어쩐지, 내가 걸면 그것만 죽어라 안 나오더만!”
“흐음, 그건 별개인 것 같은데요~”
처음부터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오던 악귀 가면.
특유의 크고 껄렁한 목소리가 게임 내내 거슬렸는데, 이번에는 도움이 되었다. 악귀 가면의 목소리 때문에 2층의 시선이 이쪽으로 집중됐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야?”
“교양 없게, 너무 시끄러운 거 아니에요?”
“저쪽 딜러가 조작을 했다는데.”
“조작? 에이, 설마요.”
“10년 전쯤에도 딜러가 게임 조작한 사건 있었잖아.”
“그때 한 번 난리 나서 카지노 완전히 뒤집혔던 거 몰라요? 이런 일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면서 대규모 환불까지 해 줬잖아요.”
“그러니까 문제라는 거지.”
“설마…….”
만약, 아주 만약에 딜러가 조작했다는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세운에게 해가 될 일은 없었다.
조작의 문의하는 것 정도는 플레이어가 충분히 확인을 부탁할 수 있는 권리였으니까.
딜러가 플레이어에게 조작을 했냐며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다들 오해를…….”
“오해라면 확인을 해도 되겠지?”
“하아……. 알겠습니다. 본래는 조작 가능성 때문에 플레이어가 장비를 건드릴 수 없게 되어 있지만, 이번만은 특별히 허용하겠습니다.”
딜러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물러섰다.
룰렛 앞으로 다가가는 도중에도 세운은 룰렛이 아닌 딜러의 얼굴에 시선을 집중했다.
불안, 안도, 실망, 환희, 좌절 등.
세운은 회귀 전에 탑을 오르며 그 누구보다 많은 사람의 감정을 지켜봐 왔다.
카지노의 딜러인 만큼 감정을 숨기는 데 도가 터 있겠지만, 감정이 아닌 본능적으로 드러나는 몸의 변화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이완.’
변화는 얼굴이 아닌 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딜러답게 교육을 잘 받아 얼굴에서는 감정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지만, 꽉 쥐고 있던 주먹에서 힘이 미약하게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그러면서도 왼손을 슬그머니 등 뒤로 숨긴다.
“부디 조심히 다뤄주시길 바랍니다. 잘못 건드리면 곧바로 카지노 전체에 경보가 울릴 테니까요.”
“아니.”
“네?”
탁!
“이게 무슨 짓입니까!”
룰렛을 향해 다가가던 세운이 잡은 것은 룰렛이 아닌 딜러의 왼팔이었다.
딜러답지 않게 다부진 근육이 느껴졌지만, 세운의 근력에 저항할 정도는 아니었다.
살짝 힘을 주자 고통을 호소하며 딸려오는 왼손.
세운은 망설임 없이 손목까지 덮고 있는 셔츠를 걷어 올렸다.
“네 말대로, 그냥 건드려 봤자 경고밖에 안 울릴 테니까.”
소매를 걷어 올리자 드러난 것은 카지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꽃 그림이 새겨진 손목시계.
솔직히, 수상할 게 전혀 없어 보이는 손목시계였다.
“손목시계?”
“헛짚은 거 아냐?”
“근데 딜러들이 손목시계를 하고 있었나? 처음 보는데.”
“소매에 가려 있었잖아.”
“애초에 소매에 가려둘 거면 손목시계를 왜 차고 있냐고. 수상하지 않아?”
“그러고 보니…….”
“이, 이거 놓으십쇼! 딜러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명백한 규정 위반입니다! 가드! 가드!”
딜러가 세운의 손아귀를 뿌리치려 했지만, 근력으로 상대가 될 리 없다.
가드를 부르든가 말든가, 세운은 담담하게 딜러의 손목시계를 풀었다.
“내놓으십시오! 가드, 왜 이렇게 늦어! 가드!”
“무슨 일이십…….”
“어휴, 이러면 안 되지. 한창 재밌을 땐데.”
“그럼, 그럼. 어차피 무혐의로 밝혀지면 문제없잖아? 카지노에 대한 우리 신뢰도 늘어날 거고.”
악귀 가면 덕분일까? 소란을 듣고 모여든 플레이어 중 몇몇이 나서서 가드들의 간섭을 막아섰다.
가드들 모두 신체 능력이 탁월했지만, 이곳의 플레이어들 모두 만만치 않았다.
카지노의 2층에서 게임을 할 정도면 상당량의 공적치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고, 그 말은 즉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니까.
엉겨 붙는 딜러를 내팽개친 세운이 룰렛의 앞으로 다가섰다.
손목시계를 들고 게임 시작 전에 딜러가 손을 넣었던 테이블 아래를 살펴본다.
‘눈에 보이는 건 없고.’
동공에 마나까지 집중시켜 살펴보아도 보이는 건 평평한 바닥뿐. 룰렛을 조작할 만한 장치는커녕 작은 틈 하나 보이지 않는다.
‘소리가 들렸지.’
세운은 쇠 구슬이 마지막 순간 낙착할 때 들렸던 ‘철컥’하는 소리를 떠올렸다.
이에 포기하지 않고 손목시계를 가져다 대고 룰렛 아래에 가져다 댔다.
“가, 가드! 얼른! 뭣들 하십니까! 당장 막으십시오!”
“어허, 안 되지. 안 돼.”
문제를 깨달은 가드들이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였지만, 플레이어들을 뚫을 수는 없었다.
결국 가드들이 도착하기 전에.
철컥.
세운의 귓가에 익숙한 소음이 들려왔다.
손목시계가 어딘가에 착 달라붙은 기분.
그와 함께 미약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더니, 룰렛 위로 기묘한 광경이 떠 올랐다.
‘이거였나.’
0과 00을 포함하여 1부터 36까지. 룰렛 위에 존재하는 38개의 숫자. 그중에서 0번의 숫자가 미약하게 빛나고 있었다.
슬그머니 손목시계를 돌려보자 밝아지는 숫자가 바뀌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자성을 이용한 마법을 일종인 모양.
다만, 이 현상은 세운의 눈에만 보일 테니 모두에게 증명할 순간이 남았다.
“거기.”
“뭐? 지금 날 부르는 거냐?”
“쇠 구슬 하나 던져 봐.”
“미X놈, 어디서 명령질이냐? 내가 누군지 알면 깜짝 놀랄 텐데. 만약 아무것도 못 찾아내면 가드들이 아니라 내 손에 쥐어터질 거다.”
데구르르-
악귀 가면이 쇠 구슬을 집어 던졌다.
“11.”
손목시계를 회전시켜 숫자를 맞춘다.
자성을 이용한다고 해도 쇠 구슬이 11번 위로 부자연스럽게 걸리면 누가 보아도 조작을 의심했겠지만, 이건 아니다.
단순히 11번 위로 자성을 집중시키는 게 아니라 룰렛 위 전체에 자성이 퍼져나가며 쇠 구슬의 속도가 조절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회전하던 쇠 구슬은 곧이어.
툭.
“……미친, 진짜 조작이었어?”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세운이 말한 11번 위로 안착했다.
악귀 가면이 분노를 표하며 테이블을 내려치고, 지켜보던 플레이어들 역시 인상을 찌푸린다.
모두 반신반의하며 호기심으로 다가왔지만, 막상 진짜 조작으로 밝혀지자 자신들이 해 오던 게임까지 의심이 된 탓이다.
“거, 우연일 수도 있지. 나도 한 번 해 보겠어.”
가드를 막아서고 있던 플레이어 하나가 다가와 안착하여 있던 쇠 구슬을 잡았다.
자성은 이미 사라져 쇠 구슬은 너무나도 평범하게 그의 손에 들렸다.
다만, 그는 쇠 구슬을 던지기 전에 세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2번. 조작이 가능하다면 내가 말하는 대로 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마음대로.”
“좋아.”
데구르르-
다시 한번 손목시계를 돌려 숫자를 조절한다.
90도가량의 회전 범위 내에서 38개의 번호를 조작할 수 있었기에 무척이나 섬세한 움직임을 요구했지만, 그 정도야 간단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쇠 구슬은 여지없이 2번에 안착하였고.
“조작 맞네.”
“미친, 진짜 조작이었다고?”
“아,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정말 아닙니다!”
“여기까지 와서 끝까지 발뺌하네. 이건 딜러 한 명한테 책임을 물 문제가 아니잖아? 윗사람 불러와!”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어쩐지 내가 고르는 것만 더럽게 안 붙는다 했어!”
사람들이 동조하는 건 금방이었다.
곧바로 난리가 일어난 2층.
딜러들은 물론, 가드들 역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주춤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죄,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세운의 귀에 딜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중의 수군거림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살려달라고?’
무언가 이상하다.
죄송하다는 건 이해가 가지만, 여기서 살려달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푹-
“……어?”
딜러의 가슴에 트럼프 카드 한 장이 박혀 들어갔다.
퀸(Queen).
가슴에 절반가량 박혀 들어간 그것은 이미 카드가 아니라 암기라는 표현이 더욱 어울려 보였다.
심장에까지 무난히 박혀 들어간 카드 덕분에, 딜러의 입에서 한 줄기의 피가 주룩 흘러내렸다.
“살려주…….”
푸부북.
다시 한번 날아온 카드 더미가 딜러의 목과 머리에 박혀 들어갔다.
결과는 즉사.
딜러가 쓰러지고, 플레이어들 모두 카드가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룰렛의 앞에 요염하게 다리를 꼬며 앉아 있던 토끼 가면의 여성이 가면을 벗으며 입을 열었다.
“어머, 죽어 버렸네요~”
라일락 도시에 존재하는 핵심 시설, 카지노의 주인.
아니, 실질적으로 라일락 도시를 다스리고 있다고 알려진 라일락의 최대 핵심 인물.
소문으로만 들려오던 라일락의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