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4화(34/675)
제 34화
“이야, 바람 좋고! 엉덩이가 좀 불편한 거 말고는 이렇게 좋을 수가 없네!”
세운의 정찰 지시를 받은 직후. 박정필은 사람들에게 ‘백랑’을 자랑하는 것을 잊지 않고,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과연, 늑대랄까? 자신이 달리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였다.
게다가 백랑이라 이름 붙인 스켈레톤은 언데드의 특성 때문인지 지치지도 않고 발을 고르게 내뻗고 있었다.
“자, 더 빨리! 야호!”
이게 얼마 만의 속도감인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있는 돈 없는 돈 전부 당겨서 구매한 외제 차를 뽐내며 거리를 돌아다녔는데. 지금이 딱 그때의 기분이었다.
‘역시, 형님을 따르길 잘했다니까!’
박정필은 생각했다.
저 성좌라는 존재의 선택을 받은 것도, 캠프에서 이인자의 지위를 얻은 것도, 외제 차 못지않은 이 백랑이라는 스켈레톤을 얻은 것도.
모두 세운을 따른 덕분이라고.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앞으로 벌어질 일에 웃음을 힘껏 참으며 끽끽거립니다.
“엥? 뭔 말입니까?”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 서열 6위의 마왕, 발레포르.
그는 박정필에게 힘을 주었지만, 항상 뜬금없이 메시지를 보내며 그 행동을 비웃고는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누가 보아도 하얀 해골 늑대를 타고 초원을 질주하는, 영화 속 한 장면같이 멋있는 상황인데, 대체 뭐가 웃긴 건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피비비빅-!!
날카로운 무언가가 사방에서 날아왔다.
“우와아앗!”
-플레이어 박정필이 ‘허겁지겁’을 사용하였습니다.
허겁지겁.
박정필이 성좌인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에게서 받은 능력이었다.
능력이 사용되자, 박정필은 그 뜻 그대로 몸을 허둥거리며 안장을 들어 올려 공격을 막아 냈다.
푸부북!
푸부북!
다행히 위력은 그리 강하지 않은지, 공격은 대부분 스켈레톤의 몸체에 부딪혀 떨어지거나, 안장을 뚫지 못하고 가죽 위로 박혀 들어갔다.
“미친, 뭐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죽과 바닥에는 날카로운 가시들이 가득했다.
맞는다고 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가시의 끝에 진득한 무언가가 잔뜩 묻어 있었다.
평소 소설이나 영화를 자주 접했던 박정필이었기에, 그것들이 ‘독침’이라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어떤 놈들이!”
“키에엑!”
“케켁! 킥! 키케켁!”
박정필이 화를 내려는 순간, 독침을 날린 몬스터들이 몸을 일으켰다.
놈들은 피부 위에 풀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기에, 마치 초원의 일부분이 통째로 일어서는 듯한 광경이었다.
초록색 피부에 작은 키, 얇은 팔다리와 대조적으로 볼록 튀어나온 복부. 길게 찢어진 입에는 덧니가 조악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고, 고블린?”
박정필은 확신했다.
녀석들이 게임이나 영화 속에서 보았던 괴물, 고블린이라는 사실을.
게다가, 그 수가 엄청났다.
대충 보아도 수십 마리. 아니, 수백 마리는 될듯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박정필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플레이어 박정필이 ‘헐레벌떡’을 사용하였습니다.
“으아아아악!”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대폭소를 터트리며 배꼽을 붙잡고 바닥을 뒹굽니다.
줄행랑.
박정필은 조금의 미련도, 망설임도 없이 백랑에게 도주 지시를 내렸다.
발레포르에게 받은 능력 덕분에 모습이 추하긴 해도 순간적으로 빠른 속도를 내며 순식간에 고블린 무리의 포위망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키에엑!”
“켁, 키킥! 케에엑!”
그리고 고블린들이 그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기습이 실패한 것을 끝으로 재정비에 들어가는 게 정상이었지만, 고블린들의 눈에는 박정필이 재밌는 사냥감. 아니, 재밌는 장난감 정도로 비쳤다.
고양이가 살랑거리는 깃털을 쫓아가듯, 고블린 특유의 지성을 내던지고 다리를 움직였다.
박정필의 힘인지, 성좌의 힘인지 알 수는 없어도, 어떤 의미로 보면 분명 뛰어난 재능이었다.
물론, 정작 본인에게는 최악의 재능이겠지만 말이다.
“사람 살려어어!”
“케케켁!”
“케륵, 키륵, 킥킥!”
피리를 부는 소년이 떠오르는 한 장면.
박정필은 백랑을 부추기며 필사적으로 초원 위를 달렸다.
그런 와중에도 방향은 정확하게 한곳을 향하고 있었다. 박정필의 머릿속에,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운.
세운을 찾아간다면, 어떻게든 해 줄 것이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달리다 보니, 어느새 저 멀리 마차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형니이임!”
박정필이 세운을 애타게 찾았다.
그리고 착각일까? 아직 거리가 멀어 보이지 않을 게 분명한데, 박정필은 어쩐지 세운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예?”
세운이 입을 뻥긋거린다. 마치, 박정필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듯이.
그 뜻은 분명…….
‘숙. 여.’
“서, 설마 형님!”
화륵!
세운의 손 앞으로 거대한 불덩이가 만들어졌다.
어찌 모를쏘냐?
세운의 몰이꾼으로서 활약하며 질리도록 보아왔던 마법이었기에 박정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게 숙인다고 될 일입니까아!”
콰르르륵!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웃음을 감당하지 못하고 숨이 넘어가 자리에서 쓰러집니다.
박정필의 눈앞으로 집채만 한 불덩이가 빠르게 다가왔다.
* * *
콰아아앙!!
-성좌, ‘배고픈 왕자’가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며 간식거리의 등장에 환호합니다.
한 번의 공격에 수십 마리의 고블린이 잔혹하게 불타올랐다. 역시,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는 마법만 한 게 없었다.
“키에에엑!”
박정필의 유혹으로부터 정신을 차린 고블린들이 세운 쪽을 바라보았다.
수십 마리의 고블린을 처치하였지만, 아직도 전력 차이는 몇 배나 되었다.
수적 우세를 확인한 놈들이 날카로운 괴성을 내며 독침을 쏘아 보냈다.
“다들 마차 뒤로 숨어요!”
처음 당하는 장거리 공격에도 유서아는 당황하지 않고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다만, 세운은 그녀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 숨기는커녕, 오히려 앞으로 나서 고블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세운 씨!”
“유서아, 강한철. 따라와라.”
“알겠다.”
세운의 지시에 강한철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뒤를 따랐고, 유서아도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강한철의 뒤를 이어 빠르게 달려왔다.
그사이 하늘을 뒤덮은 수백 개의 독침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켁켁켁!”
고블린들은 승리를 예상했다.
달려오는 세 사람이 독침을 피할 사각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방패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놈들의 독침은 세운에게 닿기 직전, 거짓말처럼 힘을 잃고 튕겨 나갔다.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와이드 실드(Wide shield) ]– 무색의 마탑에서 화살 등 범위가 넓은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실드를 개량하여 만들어낸 마법.
와이드 실드.
근접전에서 검같이 강한 공격을 방어하기는 힘들지만, 지금처럼 독침을 막기에는 그야말로 최고의 효율을 지닌 마법이었다.
일반적인 실드 마법보다 범위가 훨씬 넓어, 세운은 물론 뒤따라오던 유서아와 강한철까지 독침에서부터 지켜주고 있었다.
“키에에엑!”
고블린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독침 대신 근거리 무기를 선택한 것이다.
날이 빠지고, 녹슬어 보이긴 했지만 어엿하게 쇠로 만들어진 철제 무기. 그것부터가 튜토리얼의 첫 번째 장과의 차이점을 아주 잘 설명해 주고 있었다.
고블린의 진형에 도착하는 순간, 세운은 검 대신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올렸다.
-흑탑의 묘리에 따라 ‘라이트닝 체인’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파지지직!
고블린 무리에 검은 번개가 작렬했다.
남은 마나를 모두 쏟아붓고, 흑탑의 묘리까지 적용되어 그 위력은 흡사 3 서클 마법에 가까웠다.
번개에 적중당한 고블린들은 짧은 경련을 마지막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바로 이어, 세운의 뒤를 따르고 있던 강한철과 유서아도 앞으로 출격했다.
-플레이어 강한철이 ‘개전(開戰)’을 사용합니다.
콰르르릉!
강한철이 바닥을 내려찍자, 초원이 괴로워하며 쩍쩍 갈라졌다.
고블린들은 튀어 오른 돌에 몸이 꿰뚫리고, 갈라진 대지 사이에 끼어 짓이겨졌다.
세운의 마법에 비견될 만한 범위와 위력. 놀라운 건, 이것이 마나를 일절 사용하지 않은 공격이라는 점이다.
오로지 힘.
거기에 서열 2위의 마왕, 아가데스는 큼지막한 날개를 달아 주었다.
-플레이어 유서아가 ‘타란튤라의 첫 번째 다리’를 사용합니다.
서서서걱-!!
유서아의 활약 역시 뛰어났다.
그녀는 얼마 전 세운에게 배운 쌍검술과 보법을 활용하여 고블린 사이를 빠르게 휘젓고 다녔다.
서열 1위의 마왕, 바알에게서 받은 능력 덕분인지 공격에 잔상이 남아 네 개의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꼭, 양 떼 사이로 던져진 늑대 한 마리를 보는 듯했다.
“우리도 돕자고!”
“세 명한테만 다 맡길 수는 없지!”
마차 뒤에서 독침을 피하던 사람들도 전투에 합세했다.
고블린의 강점은 교활한 지능과 독이나 도구의 활용, 집단생활 등에 있다. 일 대 일이라면, 성좌와 계약하지 않은 일반 플레이어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키, 키엑!”
고블린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분명 압도적인 수적 우세를 확인하고 무기를 집어 든 건데, 금세 전세가 완벽하게 기울어졌다.
아직 수는 고블린이 더 많았지만, 녀석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승리가 그려지지 않았다.
콰광!
그사이, 세운은 아군으로서 전장에 끼어든 특이한 존재 하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스켈레톤.
마차를 끌고 있던 스켈레톤이 고블린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세운이 한 게 아니니, 이런 활약을 할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백현.’
그의 스켈레톤은 뛰어났다.
스켈레톤 특유의 낮은 방어력도, 낮은 공격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진짜 멧돼지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거칠게 전장을 누비고 있었다.
그가 만티코어의 사체를 일으키는 데 성공한다면, 그가 얼마나 강한 힘을 발휘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고블린 무리의 기습을 훌륭하게 막아 냈습니다.
-기습을 막아 낸 모든 인원에게 1,000point를 제공합니다.
“키, 키에에엑!”
“키이이익!”
고블린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승리에 흥분한 사람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고블린들을 따라가려 하였다.
그때, 세운이 앞에 나서서 달려가는 사람들을 막아섰다.
그의 뜻을 알아챈 유서아가 세운의 옆으로 다가와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혹시 따라가다가 함정이나 기습에 당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재정비부터 하도록 하죠!”
“네, 언니!”
“그러네. 저런 놈들한테 기습당하면 진짜 위험해질 테니까.”
유서아의 훌륭한 리더십에 세운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다만, 세운이 사람들을 막아선 이유는 그런 게 아니었다.
‘저놈들, 도망친다는 건 따로 거점이 존재한다는 뜻이겠지.’
회귀 전에는 절망적인 상황의 연속에 생각지도 못했던 것. 계획에 있던 건 아니었지만, 세운은 이것을 새로운 히든 피스라 생각하였다.
“유서아, 재정비 끝나면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출발해라.”
“네? 어디 가시려고요?”
“고블린들을 따라가려고.”
“아니, 음……. 세운 씨라면 생각이 있겠지만, 어떻게 따라오시려고요?”
“걱정하지 마. 바퀴 자국만 따라가도 놓칠 리는 없으니까.”
“……알겠어요. 꼭 무사히 돌아오셔야 해요.”
“당연하지.”
회귀를 한 직후에 그녀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그때, 유서아는 무기를 찾으려 늑대 숲을 향하는 세운을 막아섰었다.
그와 비교하면, 지금은 세운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강해진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정필아, 고생했다.”
“혀, 형님……!”
세운이 창고를 열어 가장 하급 포션 하나를 꺼내 박정필에게 던져 주었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기도 했고, 일이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긴 했지만 그에게 정찰을 시킨 것은 세운이었으니까.
세운은 감동한 눈치의 박정필을 두고 자리를 떠났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고블린들의 뒤를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