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4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45화(341/675)
제 345화
“봤어? 플래티넘 코인을 걸었어.”
“공적치 천만을 한 번에 걸다니, 간도 어지간히 크군.”
“그래도 조건은 괜찮지 않아? 겨우 1/2 확률의 돌림판인데 열 배의 비율이라니. 나 같아도 걸겠다.”
“나는 좀 불안한데. 상대가 상대잖아.”
“크흠…….”
지켜보던 플레이어들의 수군거림과 함께, 악귀 가면이 돌림판을 힘차게 돌렸다.
크기가 크기인지라 제법 묵직해 보였는데, 악귀 가면은 덩칫값을 하려는 듯이 온 힘을 다해 손잡이를 당겼고. 돌림판은 토끼와 늑대 그림이 뒤섞일 정도로 빠르게 회전했다.
“어떨 거 같으신가요? 이번에도 이길 것 같아요? 늑대 씨.”
“아마.”
“어머, 역시 자신감이 넘치시네요? 저도 운에는 조금 자신 있는데~”
아직까지는 아무런 이변도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나 이번에도 조작을 하는 게 아닌가 하여 감각을 바짝 세우고 있었지만, 들려오는 건 돌림판이 돌아가는 소리뿐.
악귀 가면 역시 돌림판이 수상한지 앞뒷면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중이었다.
이 상황에서 무언가 조작이나 속임수를 사용하기는 어려우리라.
그때였다. 돌림판에서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파직!
“……음? 방금 뭔가…….”
파직, 파지지직!
“크헉!”
악귀 가면이 돌림판의 반대 방향으로 대차게 튕겨 나갔다.
거인에게 발로 차이기라도 한 듯한 리액션을 펼치며 바닥을 몇 바퀴나 구르고 벽에 부딪힌다.
돌림판의 주위에는 악귀 가면을 제외한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는데. 혼자서 튕겨 나간 것 치고는 상태가 제법 심각했다.
로브가 완전히 찢겨나가고 가면이 절반쯤 부서져 관리 안 된 턱수염이 드러난 것은 물론, 정신을 잃었는지 몸이 축 처져 있었다.
“뭐, 뭐야? 이봐, 정신 차려.”
“기절한 거야?”
“누구 뭐 본 사람?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데.”
“투명 인간이라도 있는 거야, 뭐야.”
이중 그 누구도 악귀 가면이 튕겨 나간 이유를 알지 못했다. 이는 세운 역시 마찬가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건 아니다.
결과를 가리키고 있는 돌림판의 고리에서 전기가 튕기는 듯이 미약한 임펙트를 느꼈다.
다만, 아직까지 그 정체를 모르겠다는 게 문제였다.
‘마법은 아니다.’
무공, 이능, 기술 등. 그 무엇도 아니다.
회귀 전에 다양한 플레이어와 몬스터를 마주치며 다양한 능력을 경험해 보았지만,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그 정체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밝혀졌다.
– 성좌, ‘고개를 숙# 까마귀’가 미#을 찌푸립니다.
– 성좌, ‘시#를 둘러싼 뱀’이 인과율이 튀고 있다며 함부로 다#가지 말라며 주의합니다.
– 성좌, ‘#자는 산양’이 깜짝 놀라 잠을 깹니다.
인과율(因果律).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경우의 법칙성.
말은 어렵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세계가 흘러가는 당연한 방향을 의미한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인과율을 신경 쓸 경우는 없다시피 하지만, 이는 성좌들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개념이다.
플레이어를 지켜보고, 보상을 내리고, 사도로 임명하는 등, 그들이 현세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행동이 인과율을 거스르는 행동이었으니까.
‘어째서 여기서 인과율이?’
잠깐의 고민.
플레이어 중에서 인과율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지만, 세운은 달랐다.
적어도 탑 내부에 알려진 인과율의 정보에 대해서는 거의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그 지식을 이용하여 추리해 본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이 나왔다.
‘저 여자…….’
세운이 ‘가네샤의 부러진 상아’를 사용하여 행운을 극대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무언가의 권능을 사용하고 있으리라.
아마도, 행운의 신이 내린 권능.
‘행운의 신이 누가 있었지?’
당장 떠오르는 신 몇몇이 있지만,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다.
그러는 중에 돌림판의 속도가 점차 느려지며 고리에서 튀는 파직거리는 임팩트 역시 더욱 강해졌다.
“어머, 신기하네요~ 저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
“무슨 짓을 한 거지?”
“그건 저도 물어보고 싶은데요? 탑에 올라온 이후로 늑대 씨만큼 호기심이 이는 사람은 처음이거든요~”
돌림판의 존재를 가려주던 커튼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플레이어들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싶어 시선을 고정하려 했지만, 버틸 수 있는 플레이어는 그야말로 극소수.
대부분은 커튼처럼 저 뒤로 튕겨 나가거나 눈을 가리고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파지지직-!
돌림판이 회전이 한계에 도달했다.
속도가 멈추고, 고리의 아래로 결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토끼의 모습을 지나 늑대를 향해 돌아가는 돌림판을 보고 있자니 절로 침이 꿀꺽하고 삼켜졌다.
‘돌아가는 힘이 부족해.’
저도 모르게 꽉 쥔 주먹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도박이 아니라 강자와의 전투에서 검을 잡고 있기라도 한 기분이었다.
‘보구의 힘으로도 행운이 부족한 건가?’
그래도 보구 자체의 힘을 극도로 끌어올려 그 소재까지 소멸시킨 탓에 일시적인 행운은 사도의 권능과 맞먹을 텐데.
세운뿐만 아니라 여왕 역시 카드 다발로 입을 가리며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파지지지지직-!!
세운의 행운과 여왕의 행운.
두 인과율이 미친 듯이 맞부딪치며 미친 듯한 임팩트를 피워내며, 드디어 결과가 정해졌다.
뚝 하고 멈춰 버린 돌림판.
그와 함께 인과율의 충돌이 멈추고,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충격파가 진정되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돌림판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여왕이 이긴 거 아냐?”
“저 늑대 양반 쪽으로 간 것 같은데.”
“누가 좀 가까이서 가 봐!”
토끼와 늑대.
두 그림을 양분하고 있는 피아노 줄처럼 얇은 실선에 돌림판의 고리가 걸려 있었다.
어느 한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정확하게 실선의 중앙을 가리키고 있는 고리.
본래 이런 경우 고리가 가리키는 끝 방향을 보고 결과를 정하기도 하지만, 완벽하게 직각으로 떨어진 고리의 끝 방향은 역시나 실선의 끝 방향을 가리켰다.
무승부를 방지하기 위해 툭 튀어나와 있던 축은 인과율을 충돌로 인해 부서진 지 오래였다.
가드 한 명이 거대한 수직자를 들고 와 계산을 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어머, 무승부인가 보네요~”
“…….”
“행운의 여신도 끝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나 봐요. 그렇죠? 무능하기도 해라~”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돌림판의 결과가 무승부라는 것을.
이는 세운도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기에 그녀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승부는?”
“당연히 무승부죠~ 어머, 재미있으셨다면 한 번 더 하실래요? 물론, 여기서는 또 문제가 생길 수는 있으니 제 방에서 조용하게요~”
“아니, 사양하지.”
한 번 더라니.
그나마 가네샤의 부러진 상아가 가진 힘을 극대화한 덕분에 무승부라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었다.
다시 한번 행운과 관련된 보구를 사용한다고 하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아, 코인이라면 여기 있어요. 축이 떨어져 나가 무승부가 허용된 건 어디까지나 저희 쪽의 실수니까요~”
그녀의 손짓에 가드 하나가 다가와 보석을 세공하여 만든 듯이 아름다운 코인 하나를 주었다.
다이아 코인.
소문으로만 들었지, 세운조차 실제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1억 포인트의 가치를 가진 코인이었다.
멀리서나마 다이아 코인의 존재를 알아챈 플레이어들의 눈이 커진 것은 당연지사.
게임에 이겨서 받은 건 아니지만, 굳이 주겠다는 코인을 내 버릴 생각은 없었다.
“그럼, 저랑 같이 올라가실까요?”
2층이 정리되고 있는 사이, 지시를 끝낸 여왕이 세운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무슨 말이냐는 듯이 쳐다보자 그녀는 처음보다 더욱 환해진 미소로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위로 올라가는 게 목표 아니었나요? 얼른요~”
라일락의 여왕.
그녀가 세운을 카지노의 3층으로 안내하였다.
* * *
“아참. 제 소개를 깜빡했네요~”
“정체라면 이미 밝혔을 텐데?”
“그건 소개가 아니죠~ 이름도 모르는 쓰레기들한테 제 이름을 밝힐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다시 한번 정식으로 인사드릴게요~”
그녀가 수줍은 듯이 카드로 입가를 가리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면 모르겠으나, 지금 보기에는 카드로 가려진 입가에 괴물이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카지노를 다스리고 있는 아르카나라고 해요~ 늑대 씨라면 ‘아나’라고 불러줘도 된답니다?”
“본명을 안 밝힐 거면 굳이 소개를 다시 할 필요가 있었나?”
“어머, 본명이라니. 탑에 들어온 지 너무 오래돼서 그런 옛 이름은 진작에 잊었답니다~ 이제 이게 제 진짜 이름인걸요?”
아르카나.
비밀이라는 뜻을 가진 용어로서 그녀에게 딱 들어맞는 단어였다.
그래, 단어. 누군가의 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일단 플레이어라는 건 확실하네.’
라일락의 거주민이었다면 탑에 들어온 지 오래됐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을 거다.
거기에 너무 오래됐다고 하니, 겉보기와는 달리 나이도 제법 많은 모양.
인간의 수명이 길어봤자 100살이 조금 넘어가는 정도지만, 이곳은 탑이다.
불사신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지가 높아지거나 영약을 마시는 등. 젊음을 유지하고 수명을 늘리는 방법이야 언제든지 존재한다.
하물며 그녀는 카지노의 여왕이라 불리는 자.
전 쉼터를 통틀어서 한 손에 꼽을 만한 많은 공적치를 거머쥐고 있을 테니, 경매장에서 젊음과 수명에 관련된 아이템을 구하는 것쯤이야 우스울 터다.
“그래서 그쪽은 정세운 씨라고 했던가요?”
“어차피 내 소개는 필요 없을 텐데.”
“에이, 너무 차갑다~ 그래도 그 이름은 어감이 너무 별로라. 계속 늑대 씨라고 불러도 되겠죠?”
“남의 이름 가지고 어감이 별로라고 하는 게 좋은 말은 아니지 않나.”
“그럼 허락받은 걸로 알게요. 늑대 씨?”
애초에 이쪽의 허락을 받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중요 인물이긴 하지만, 어차피 오래 같이 지낼 인물도 아니니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플레이어라고는 해도 라일락을 다스리고 있는 만큼 이 쉼터만 벗어나면 다시 볼 일이 없을 테니까.
“아, 그건 그렇고. 늑대 씨, 혹시 올림포스에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벌였나요?”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길을 막으며 세운을 빤히 쳐다보는 그녀. 요염한 눈동자에서 호기심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올림포스.
그 말을 통해 세운은 그녀에게 붙어 있는 성좌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역시, 티케였나.”
“어머, 눈치도 빨라라~”
“올림포스에서 행운을 다스리는 여신은 그녀뿐이니까.”
“정답이랍니다~ 실은 늑대 씨가 제 옆에 앉은 후부터는 우리 무능한 여신님이 벙어리가 되었거든요.”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악취의 정체를 깨닫습니다.
티케.
올림포스에 존재하는 행운의 여신으로서 도시의 부와 번영, 그리고 그 운명을 주관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전에 판의 사건 때문에 탑의 관리소에서 올림포스가 세운을 모니터링하는 것을 포함한 모든 관여를 막은 것 때문에 그녀의 통신이 멈춘 모양이다.
그나저나…….
‘진짜 사도가 맞는 건가?’
그녀의 말투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본래 사도라 하면 성좌와 가장 가까이에서 그 임무를 수행하는 자를 뜻할 텐데.
그런 사도가 자신의 성좌가 무능하다니, 벙어리니 한다는 것은 세운으로서도 쉽사리 이해하기 힘들었다.
물론, 세운 역시 속으로는 베엘제붑을…….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소화를 늦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지만, 그거야 더 위에서 얘기하면 되겠죠?”
화려하기만 했던 2층의 계단과 달리,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묘하게 어두운 느낌이 있었다.
게다가, 단순히 위로 올라간다기보다는 옆으로 이동한다는 느낌.
걸음 수를 통한 거리 유추를 떠올리면 이미 1층이나 2층에서는 벗어났다.
완전히 새로운 건물로 향하는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었다.
‘하긴, 화려함에 가려졌을 뿐이지 1층이나 2층은 실제 건물 크기에 비해서 좁은 편이었지.’
문에 도달할수록 환호성 같은 게 들려오는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3층의 문이 열리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저희 카지노에서 제일 재미있는 도박장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푸홧!
하늘로 높이 치솟고 있는 붉은 피 분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