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42)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46화(342/675)
제 346화
방음벽으로 사방이 막혀 있는데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뜨거운 함성. 마찬가지로 그 두꺼운 벽을 뚫고 들어오는 열기. 마지막으로, 전방의 유리 벽을 통해 보이는 선홍색의 피 분수.
3층의 문을 열자마자 세운은 이곳의 정체를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지하 투기장…….”
“어머, 알고 계셨나요? 라일락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됐다고 들었는데, 엄청 잘 알고 계시네요~ 마치 이미 한 번 와본 것처럼요?”
라일락에는 암거래장, 암도박장 등이 존재하는 것처럼 암투기장 역시 존재한다.
사실 라일락의 지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설이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회귀 전의 세운 역시 이곳에 들른 적이 있었다.
‘천장은 막혀 있는 줄 알았는데.’
회귀 전에 지하 투기장의 아래에서 바라본 천장은 딱딱한 시멘트처럼 거칠거칠한 면으로 되어 있었다.
그 위에 이런 공간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특수한 재질의 소재를 사용했거나 마법을 이용하여 아래에서의 시선을 막아 둔 모양이었다.
“다들 2층에서 점잖은 척하고 있지만, 결국 다들 제일 좋아하는 건 이거거든요~”
주변을 돌아보니 이쪽 방과 마찬가지로 투기장을 내려볼 수 있는 공간이 둥그렇게 이어져 있었다.
옆방은 보이지 않았지만, 반대편에 앉아 있는 공작 가면의 인영이 보였다.
마침 눈이 마주쳤고, 세운에게 작은 웃음을 보내온다.
“그래도 격식 높은 귀빈들이 저 아래 쓰레기들 사이에 섞여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특별히 마련한 공간이에요~”
이해는 된다. 그녀의 말처럼 지금 눈앞에 보이는 지하 투기장은 그 무엇보다도 도박과 유흥이 잘 어울리는 게임이었으니까.
시설도 잘 꾸려 있어 원한다면 소리를 키워 현장에 있는 것처럼 뜨거운 함성을 들을 수도 있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싸움을 감상할 수도 있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대기하고 있는 직원이 마실 거리나 먹거리를 가져온다.
의자 역시 등급이 정해져 있을 정도의 최고급품.
“배팅 방식은?”
“우승자만 맞추면 돼요. 대진표는 하루에 두 번 나오니까, 배팅 역시 하루에 두 번만 가능하겠죠?”
“생각보다 확률이 낮은데.”
“에이, 확률이 낮다니요~ 아래의 도박과는 달리 여기서는 눈썰미로 우승자를 파악할 수가 있잖아요? 물론, 대놓고 유력한 우승 후보가 있으면 비율이 낮아지지만요~”
한 판, 한 판마다 돈을 거는 아래의 방식과는 달랐다.
지하 투기장의 참가자 수는 보통 적게는 30명에서 많게는 100명까지 이루어지니 확률 역시 천차만별.
다만, 그녀의 말대로 대진표를 둘러보며 선수를 살펴볼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었다.
“무엇보다, 여기서는 ‘행운’이 통하지 않거든요~”
“그 말은…….”
“아, 이제는 그 힘이 사라졌으니 잘 모르시려나요? 아무리 운이 좋아도 적용되는 상황에는 한계가 있거든요~ 아, 이것도 행운이 너어무 크면 조금 다르지만요.”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저 여자의 정체를 의심합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아무리 보아도 올림포스의 사도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의문을 표합니다.
그녀의 말에 세운은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저 말.
힘이 사라졌다는 그 뜻은, 세운이 가네샤의 부서진 상아를 통해 일시적으로 행운을 얻은 걸 알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아니, 정확하게 가네샤의 부서진 상아를 사용했다고 확신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저 사실을 알아챘다는 것부터가 심히 경계되는 부분이었다.
“그럼 여기서 배팅을 걸면 되는 건가?”
“에이, 그럴 리가요~ 늑대 씨의 목적은 도박 같은 게 아니잖아요?”
그녀가 세운의 앞에 다가와 얼굴을 내밀었다.
토끼 가면을 다시 쓰고 있어 표정이 완벽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길게 올라간 입꼬리가 조금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말인데, 늑대 씨에게 내걸 제안이 있어요.”
“제안?”
“실은…….”
아르카나가 세운의 어깨를 툭툭 털더니 전방의 유리창을 향해 다가섰다.
그러고는 난간에 걸터 앉아 아래를 내려보며 입을 열었다.
“저, 3층의 도박에서 이긴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그럴 리가…….”
“정말이랍니다~ 제가 선택한 쓰레기들은 전부 귀신에라도 홀린 듯이 힘도 못 쓰고 나자빠지더라니까요? 제일 높게 올라갔던 게 8강전이었나?”
8강전이라면 준결승전에도 들어가지 못했다는 뜻이다.
라일락의 지배자가 바뀌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으니 못해도 몇십 년은 이곳을 관리했을 텐데, 우승은커녕 자신이 고른 이가 준결승에도 오르지 못했다니.
아무리 눈썰미가 나쁘다고 해도 저런 강자가 우승자를 한 번도 못 가려냈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유도 다양했어요.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거나, 럭키 펀치에 기절하거나, 무기가 부서지거나. 심지어는 갑자기 깨진 조명에 눈이 찔린 적도 있다니까요?”
“……아무리 행운이 작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건 좀 너무하는군.”
“그렇죠? 우리 무능한 여신님께 따져보아도, 괜히 무능한 여신님이겠어요?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쩔쩔매기만 하더라니까요.”
행운의 여신, 니케.
그녀의 잘못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성좌가 무능하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니케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세운도 표면적으로는 베엘제붑에게 존댓말까지 사용하며 존중을 표하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제가 우승하게 만들어 줘요.”
“우승자를 골라주라는 건가?”
“에이, 그럴 리가요~”
그녀가 유리창을 가리켰다.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지하 투기장.
마침, 참가자 하나의 팔이 잘려 나가는 것으로 전투가 끝났다.
정식적인 대결과 달리 지하 투기장은 부상이나 죽음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치료 시설이 잘되어 있지만, 그조차도 엄청난 공적치를 요한다.
돈을 벌려고 참가했다가 되레 부상을 입고 쫓겨나는 참가자의 수가 부지기수.
그녀는.
“늑대 씨가 직접 참가해 주셔야죠~”
그런 투기장에 세운이 직접 참가해 주길 원하고 있었다.
* * *
“날려 버려!”
“죽여, 죽여! 죽이라고! 몸 사리지 말고 휘둘러! 죽여!”
“내 전 재산 다 걸었다! 지면 내가 직접 죽여 버릴 테니까 목숨 아끼지 말고 싸워!”
“가자, 데릴! 역배의 힘을 보여주자고!”
카지노의 3층에서 보았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열기와 함성이 피부에 닿았다.
지하 투기장엔 회귀 전에도 몇 번 들른 적이 있긴 하지만, 분위기가 영 적응되지 않았다.
그나마 모라프 대축제에서 워낙 관심을 받아온 덕분에 조금이나마 덤덤할 수 있었다.
‘아르카나…….’
세운이 고개를 들어 보이지 않는 천장 위에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을 카지노의 여왕을 떠올렸다.
보아하니 VIP라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한계는 3층까지인 모양이었다.
즉, 그 이상의 권한을 획득하려면 그녀의 마음에 들어야만 한다.
때문에 결국 그녀의 제안을 들어주러 이곳까지 내려온 것이다.
물론, 단순히 그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이것도 비율 열 배는 보장해 준다고 했었지.’
그녀가 1등을 원한다고는 했지만, 카지노의 주인인 그녀가 돈을 걸어서 이겨봤자 자신의 돈을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
때문에 그 대신 세운이 자기 스스로에게 돈을 걸었다.
금액은 당연하게도 3층에서 걸 수 있는 최고 금액인 플래티넘 코인.
즉, 이번 지하 투기장에서 승리하면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상품이나 공적치뿐만 아니라 열 개의 플래티넘 코인을 추가로 얻게 되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경기에 참여하는 건 처음인데.’
회귀 전의 세운은 전투계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여정의 지침표를 이용하여 몬스터를 피해 히든 피스를 찾아다니는 모험가.
나중에는 여정의 지침표를 각성하여 적의 빈틈을 찾아낼 수 있어 전투에도 익숙해졌지만, 라일락에서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당시 모험가였던 세운이 지하 투기장에 선수로 참가했을 리가 없었다.
그저 확실한 정보가 있을 때 돈을 걸었을 뿐이었다.
‘지원하는 곳이…….’
관객석의 뜨거운 함성에서 조금 멀어지자 감옥을 연상케 하는 철장으로 된 방들이 보였다.
이곳이 지하 투기장의 선수 대기실.
이미 오후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대기실에서 개인 수련을 하고 있는 이들이 꽤 많았다.
가장 앞에서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이빨을 쑤시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딱 보아도 경기의 참가자는 아니고, 저자가 참가자를 받는 관리인인 모양이다.
“투기장에 참가하러 왔는데.”
“으엥? 오늘 무슨 날인가. 죽으려는 놈들이 왜 이렇게 많아?”
어쩐지 대기자가 많아 보인다더라니, 평소와 비교해 참가자가 많은가보다.
그렇다고 해도 참가를 미룰 생각은 없었기에 세운은 가만히 서서 관리인을 쳐다보았다.
그는 곧 배를 긁던 손으로 종이 한 장을 꺼내 세운에게 집어 던졌다.
“불리고 싶은 이름이랑 간단한 자기소개. 대충 적어, 어차피 너처럼 비실비실한 놈은 소개를 끝내기도 전에 나자빠지니까.”
지하 투기장답게 자세한 신상정보를 적을 필요는 없었다.
세운은 지금 카지노에서 가져온 늑대 가면을 그대로 쓰고 있는 상태였기에 아르카나가 세운을 부르던 이름인 늑대를 적어넣었다.
“크헹, 늑대? 겉멋만 살아가지고. 이거 이미 있는 이름이니까 바꿔 써.”
하긴, 늑대라는 이명은 너무 흔하긴 하다. 오늘은 특히나 참가자가 많았다고도 했으니까.
이에 세운은 별생각 없이 늑대 다음에 가면이라는 글자를 적어 넣었다.
“뭔 겉멋만 한층 더 살았네. 어디 영웅담이라도 보고 왔냐?”
“그 이름도 이미 있나?”
“없어. 늑대 가면이라니, 누가 이딴 촌스러운 이름을 써? 그 가면도 그렇고, 컨셉 한번 지독한 놈이네.”
관리인이 세운의 정보가 담긴 종이에 ‘66’이라는 글자를 적고는 돌돌 말아 옆의 서랍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마찬가지로 66이라는 숫자가 적힌 번호표를 던져주었다.
“아직 오전 경기 다 끝나기도 전에 66번이니, 오늘은 100명을 채울지도 모르겠네.”
“룰은.”
“뭐야, 규칙도 모르고 왔냐? 하여튼 요즘 젊은것들은 목숨 아까운 줄 몰라요. 치료가 아무리 잘 되도 팔 하나 떨어져 나가면 후유증이 남는 법인데.”
잔말이 많긴 해도 관리인인 자신의 임무에 나름대로 충실했다.
지하 투기장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은 물론, 대기 중에 제공되는 식사나 응급처치 도구 등.
지하 투기장의 참가자가 꼭 알아야 할 것들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 팔 보여? 이게 저 위에서 네 번 잘리고 두 번 뭉개졌었거든.”
설명이 끝나자 혀를 차며 팔을 들어 올리는 관리인.
치료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반흔조직으로 인해 피부가 딱딱하게 굳고 뒤틀려 있었다.
그저 팔을 들어 올리는 것만 해도 덜덜 떨려오는 게, 후유증이 크게 남아 보였다.
“요즘 치료가 잘 되기는 해도 신경을 완벽하게 치료해 줄 수는 없어. 그러니까, 질 것 같으면 그냥 항복해. 나처럼 되지 말고.”
그저 게으른 관리인인 줄 알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참가자를 제대로 생각해 주는 사람이었다.
‘신경이라…….’
확실히, 질 낮은 치료 마법으로 신경까지 확실히 회복하기는 어렵다.
말투를 보아하니 꽤 이전에 싸구려 치료 마법이나 받고 다닌 모양이니 신경이 상한 건 당연한 일.
잠깐 고민하던 세운이 그가 내민 팔 위로 손을 얹었다.
“음? 뭐야? 막상 보니까 무섭기라도 하냐?”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리커버리(Recovery) ]– 백탑의 고위 치료 마법. 원상회복의 힘을 지니고 있어 일반적인 치료 마법에 비해 훨씬 세밀하고 효율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화앗!
세운의 손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본래 백탑의 마법은 다른 속성의 마법들과 달리 마나의 속성이 맞지 않으면 사용하기 어렵다.
그러나, 세운은 최근 산호탑주 덕분에 화이트 마나 서클을 개방한 상태. 덕분에 고위 치료 마법 중 하나인 리커버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이건……!”
관리인의 팔에 난 반흔조직이 사라지고 부드러운 살결이 돌아왔다.
내부에 뒤틀려 있던 근육이 제자리를 찾으며 꿈틀거리는 게 외관으로도 보일 지경이었다.
“이게 도대체……!”
밝은 빛이 사라지자 관리인은 본능적으로 팔이 회복된 것을 느끼고 손을 움직였다.
덜덜 떨리던 손은 어디 가고, 오히려 전성기 때의 모습처럼 두꺼운 근육이 올라온 팔목.
당장에라도 무기를 쥐어도 될 듯 튼튼해 보였다.
“설명해 준 보상이다.”
멍한 표정의 관리인을 뒤로하고, 세운이 철장으로 가려진 대기실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