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4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48화(344/675)
제 348화
‘너무 시시한데.’
아직 실력자를 못 마주친 것일까?
지하 투기장의 수준은 생각 이하로 낮았다.
뒤랑달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관리인에게 받은 그나마 상태 좋은 철검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그저 대충 고른 이 나간 철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벌써 두 명의 상대가 일격에 쓰러졌다.
검 한 번 부딪치지 못한 채로 말이다.
“이번에도 일격! 일격입니다! 세상에,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짜고 친 거 아냐?”
“검 휘두르는 것도 제대로 안 보였는데? 이거 진짜 짠 거 아냐?”
“저거 누구야? 처음이라며!”
“가면 벗겨! 얼굴부터 보여라!”
이런 세운의 존재를 환영해 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들로서는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이 자신들의 배팅을 전부 망치는 꼴이니까.
해설자도 세운을 마음에 안 들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빨리 끝내면 어쩌란 거야!’
지하 투기장은 단순히 서로의 실력을 겨루는 정정당당한 대결이 아니었다.
피와 살이 튀고 비명이 울려 퍼지는 짜릿함.
그 짜릿함을 느끼기 위해 찾아온 관객들을 만족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무기를 부딪치고, 무기가 튕겨 나가면 손으로, 손이 안 되면 이빨로!
악으로 깡으로 승부를 이어가는 그 재미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관객들이란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제대로 된 대치는커녕 단 일격에 전투가 끝난다. 룰이고 뭐고, 상대 목이라도 쳤으면 관객들의 호응이라도 유도할 텐데 그것도 아니다.
절묘하게 급소를 빗겨나간 일격.
포장하려 해도 포장할 수 없는 경기였다.
그 와중에, 환호성을 부르짖고 있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형님, 믿고 있었습니다아아! 누가 형님보고 역배래? 정배 가즈아아!”
“박정필?”
관중석 끝자락에서 박정필이 펄쩍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이번 일정은 딱히 길드챗에 올려두지 않았기에 세운이 지하 투기장에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우연의 일치인 것 같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어떻게 알아본 거야?’
지금 세운은 늑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낡은 천으로 거의 전신을 가리고 있었다.
로브처럼 걸친 옷 사이로 무기들도 잔뜩 꽂아두어 체형도 알아보기 힘든 상태.
아직 경기에 참여한 지 두 번밖에 안 됐는데 벌써 세운의 정체를 알아보다니.
심지어 세운은 경기장 위에서 한 번도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심성이 쓰레기라 그렇지, 쓸 만한 놈이란 말이야.’
분명 튜토리얼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가미긴과의 상성도 잘 맞는 것 같고, 최근에는 전투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람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가끔 제어가 안 돼서 문제긴 하지만, ‘교육’만 잘 시키면 생각 이상으로 재능이 있었다.
“아아, 슬슬 실력 없는 참가자들이 걸러지고 정예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데요!”
그러는 중에도 경기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예선전 느낌이 남아 있는 질질 끌기 싫은 듯이 휴식 시간도 없이 선수들이 올라온다.
“이번 경기는…… 아, 아…… 늑대 가면 선수입니다……. 상대 선수, 민첩하기로 유명한 선수라 조금은 탐색전을…….”
서걱-
털썩.
“……네, 끝났네요.”
지하 투기장의 호응 따위, 알 바인가?
어차피 이곳에 오래 머물 생각도 없고. 사실상 목적은 지하 투기장 자체가 아니라 아르카나의 마음에 드는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일격에 상대를 쓰러트리며, 세운이 16강으로 진출하였다.
* * *
‘저게 내 다음 상대.’
다음, 8강 경기.
오후 경기의 유력한 우승 후보라 불리고 있는 ‘화이트 워커’가 대진표에 적힌 다음 경기의 상대를 관찰하였다.
늑대 가면.
닉네임 그대로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은 물론, 어떻게 구했는지 피딱지 하나 없이 깨끗한 천으로 전신을 둘둘 감고 있었다.
그 안에 가득 끼워진 무기들.
무기 전문가처럼 다양한 무기들을 사용해 적을 혼란에 빠트리는 전투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서걱-
“아, 또 일격에 쓰러집니다……. 늑대 가면, 너무나도 간단하게 8강에 진출합니다!”
단 일격.
방어나 회피를 허락하지 않는 일격으로 상대를 쓰러트린다.
특히 이번에 쓰러진 상대는 늑대 가면의 일격을 확인하고 조심을 했음에도 반응하지 못한 채 당하고 말았다.
‘확실히, 강해.’
화이트 워커.
사람들은 그의 강점이 빠른 속도와 반사 신경이라고들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뛰어난 분석력.
갑작스러운 경기라면 몰라도 지하 투기장은 예선전을 치르며 상대의 전투 스타일을 미리 확인할 수 있었기에 분석이 용이했다.
그렇게 상대의 전투 스타일을 분석한 후, 특유의 빠른 속도로 철저하게 공략하는 게 바로 화이트 워커의 진정한 강점이었다.
방금 늑대 가면이 치렀던 짧은 경기.
그 짧은 경기를 머릿속에서 수차례 반복한 화이트 워커는 한 가지 가설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저 무기들, 전부 블러핑이다.’
블러핑.
상대를 속이기 위해서 허세나 허풍을 떠는 전략.
그게 바로 화이트 워커가 판단한 늑대 가면의 전략이었다.
‘전투 스타일은 발도술에 치중한 일격형 검사. 처음의 발도술만 피한다면 뒤는 걱정할 거 없다.’
이런 스타일은 발도에 실패하는 순간 커다란 허점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적에게 그 허점을 숨기기 위해 쓰지도 않는 여러 개의 무기를 들고 온 게 분명하다.
‘그리고, 이미 몇 번…… 아니, 머릿속으로 수십 번이나 반복한 공격에 내가 당할 리 없지.’
화이트 워커가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예감이 좋았다.
저번 경기에서는 상대가 숨겨둔 비장의 한 수를 맞고 결승을 내주게 되었지만, 이번은 아니다.
‘여기서 우승하기만 하면, 거대 길드에 입단할 수 있어.’
플레이어들에게 라일락의 지하 투기장은 단순한 도박장이 아니었다.
좋은 성적을 거두거나 뛰어난 잠재성을 보이면 여러 길드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온다.
이제 막 생겨난 신생 길드 같은 게 아니라, 이미 70층을 넘어까지 자리를 잡은 거대 길드들 말이다.
그곳에만 들어가면, 무력과 함께 탑에서의 큰 권력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경기! 늑대 가면과 화이트 워커! 등장입니다!”
마침내 그의 차례가 왔다.
지금까지 보아온 경기들과 마찬가지로 무덤덤하게 경기장 위로 올라와 오른손으로 검 손잡이를 붙잡는 늑대 가면.
이번에도 역시 발도술을 사용할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화이트 워커는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늑대 가면의 발도술을 떠올렸다.
“아아, 화이트 워커! 닉네임 그대로 지나간 자리로 하얀 섬광이 남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빠르고 민첩한 선수죠!”
“가라, 워커!”
“이번에야말로 저놈 좀 썰어 버려!”
압도적인 무력에 비해 늑대 가면의 인기는 낮았다.
강하긴 해도 경기 자체가 관중들이 원하는 피와 살이 튀는 흥분되는 경기라기에는 너무나도 짧고 간결하여 즐길 만한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뭐, 말하는 것과는 반대로 배팅은 점차 늑대 가면에게 몰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부디 이번에는 경기가 조금은 더 길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지하 경기장답게 강렬한 화염이 뿜어지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와 함께 뽑히는 늑대 가면의 철검.
역시나, 그 방식은 이전과 똑같았다. 속도는 물론 힘과 검로까지 전부.
작게 미소를 지은 화이트 워커가 머릿속에서 수십 번 반복했던 대로 오른발을 내뻗으며 상체를 숙였다.
서걱-
분명 완벽하게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검이 얼마나 빠른지 미처 주인의 움직임을 따라오지 못한 그의 머리카락 일부가 잘려 나갔다.
머리카락이 허공에서 나풀거리는 사이, 화이트 워커가 무기를 뽑아 들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공격이 피하리라 생각지도 못한 것일까? 아니면 너무나도 강한 공격을 스스로가 감당하지 못한 것일까?
늑대 가면이 손에서 검을 놓치는 게 보였다.
그러자 훤히 드러나는 빈틈.
“끝이다!”
그렇게 외치며 늑대 가면의 빈틈을 향해 검을 내지르던 화이트 워커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그 누구보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파악하는 그였기에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들어가려는 빈틈이 늑대의 쩍 벌어진 아가리나 다름없다는 것을 말이다.
* * *
‘오?’
재빠르게 공격을 피해내는 상대를 바라보며 세운이 작게 감탄하였다. 그도 그럴 게, 오후 경기를 치르며 공격을 피해 낸 사람은 이번 상대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평범한 발도술이었다면 몰라도 지금 세운이 휘두른 검은 엄연한 무공.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오룡활보(五龍闊步) ]– 다섯 용의 기운을 담아 만들어졌다는 무공으로써 다섯 가지 무기술을 자유자재로 응용하는 만능 무기술.
새롭게 익힌 오룡활보의 제일 초식, ‘백룡출두(白龍出頭)’였다.
하얀 궤적을 남기며 그어지는 특유의 발도술은 알고 있어도 피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처음으로 그 공격을 피한 상대가 나왔다.
‘드디어 다른 초식도 사용해 볼 수 있겠네.’
지금까지는 상대가 너무 약했던 터라 일 초식밖에 사용해 보지 못했다.
툭.
백룡출두.
발도술에 모든 것을 담아내는 만큼 강력한 대신 엄청나게 큰 빈틈을 만들어 내는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오룡활보의 일 초식이 백룡출두인 이유는 오룡활보가 검법이 아닌 다섯 가지 무기술이었기 때문이다.
망설임 없이 손에서 검을 놓은 세운이 곧바로 몸을 한 바퀴 회전시키며 품속의 단검을 집어 던졌다.
– 내공을 통해 오룡활보의 제이 초식, 흑룡비상(黑龍飛上)이 강화됩니다.
챙- 푸북!
검은 궤적을 그리고 날아가는 단검의 수는 하나가 아니었다.
분명 한 번의 투척일 뿐이었는데, 한 번에 다섯 개의 단검이 상대에게 날아들었다.
그래도 제법 실력자였던 건지 네 개의 단검을 쳐내는 데 성공했지만, 마지막 단검을 어깨에 허용하고 말았다.
그가 통증을 호소하기도 전에, 자세를 다잡은 세운이 허리춤에 가로로 걸어둔 단창을 꺼내 들었다.
– 내공을 통해 오룡활보의 제삼 초식, 청룡일섬(靑龍一閃)이 강화됩니다.
푹!
흑룡비상으로 투척한 단검에 몸을 가려 단숨에 창을 내지르는 오룡활보의 제삼 초식, 청룡일섬.
오룡활보의 가장 큰 장점은 이처럼 무기를 바꿔가며 공격 이후에 생겨나는 빈틈을 무마시키고 되레 그 틈을 이용하는 것에 있었다.
“젠……장. 그 무기들, 진짜 쓰는 거였나…….”
무언가 반격을 준비하려 했던 듯이 세운이 다가오는 순간까지도 검을 놓지 않고 있었지만, 창을 이용한 중거리 공격은 그 반격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몸에 박힌 창을 내려보며 고개를 숙이는 상대.
급소는 피했으니 후유증이 남지는 않을 거다.
“또…… 또 이겼습니다! 늑대 가면, 또 한 번 위로 올라갑니다!”
처음으로 발도가 아닌 다음 공격을 이어간 덕분일까?
“오오오오!”
“방금 뭐야, 어떻게 한 거냐고!”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얼른 더 강한 놈들 나와! 저놈 실력 좀 끌어내 보라고!”
극도로 짧아 볼거리가 전혀 없었던 탓에 비난만 이어가던 관중석에서 처음으로 세운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