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4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50화(346/675)
제 350화
“계약 내용을 보고하러 왔을 뿐이다.”
“어머, 계약이라니 말이 너무 딱딱하네요~”
사람을 현혹하는 듯한 요염한 미소.
평범한 남자였다면 저 미소에 넋이 나가 버렸겠지만, 세운은 저 여자의 생각을 읽을 수 없어 답답할 뿐이었다.
많은 종류의 사람을 만나며 깨달은 ‘사람 보는 눈’은 세운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였으니까.
저 여자는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읽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평소보다도 표정을 숨기고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계약이라기보다는 부탁이죠~ 좋아하는 여자애의 부탁 하나쯤은 들어줄 수 있잖아요?”
“이것도 승부 조작이 아니었을까 하는데.”
“조작이라뇨~ 이번 판은 기분도 좋고 해서 코인 하나씩 돌리니 다들 오히려 좋아하던데요?”
3층에 들어왔을 정도의 고객들이 골드 코인 정도로 만족했을까? 아니, 아마도 그녀가 돌렸다고 하는 코인은 플래티넘 코인일 것이다.
기분 좋다고 천만 공적치를 돌렸다고 말할 정도니, 그녀의 재정이 얼마나 넉넉한지 알 수 있었다.
3층의 고객 수가 적기는 해도 당장 보이는 방의 개수가 10개는 넘었으니까.
“그보다 아쉽네요~”
“아쉽다니. 원하던 대로 1등은 해 봤을 텐데?”
“그건 생각보다 별 감흥이 없더라구요~”
“그럼?”
“원래 실력이 얼마나 될지 구경하고 싶었는데, 실력의 절반도 못 끌어냈잖아요~ 그 거북이, 이렇게 쓸모없을 줄은 몰랐다니까요?”
그녀의 마지막 말에 세운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하 투기장에서의 마지막 상대였던 ‘아머’.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대사가 떠오른 것이다.
‘커흑, 커, 크허윽……. 아파, 싸우기 싫어…….’
거대한 덩치와 힘에 비해 유약한 마음가짐.
자기 스스로 지하 투기장에 싸우러 왔다고는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조금 이상하다 싶었는데, 방금 그녀가 내뱉은 말로 그 말을 듣고 난 다음 생겨난 찝찝함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놈, 네가 보낸 거였나.”
“에이, 저도 보험 하나는 들어놔야죠~ 그래도 그 거북이 아니었으면 마법 쓰시는 것도 못 봤을 거 아니에요?”
“악취미로군.”
“악취미라뇨~ 그 거북이가 얼마나 우리에서 나가고 싶어 했는지 보셨어야 할 텐데.”
우리는 또 무슨 말일까.
그녀가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들 전부 따라가기 벅찬…… 아니, 따라가기 싫은 내용의 것들이었다.
세운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본론을 내뱉었다.
“그보다, 계약을 지켰으니 그쪽도 약속을 지켜야지.”
“네? 그런 약속이 있었나요?”
“…….”
“장난이니까 표정 풀어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이제는 카드 안에서 쿡쿡 소리까지 내며 웃고 있다.
다행히 약속은 지키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얼른 따라와요~ 위에서 내려다보는 라일락의 거리는 꽤 아름답답니다?”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계단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복도로 나와 라일락 문양이 그려진 카드를 들어 올리자 가장 가까운 벽면이 열리며 원형의 마법진이 나타났다.
‘마법적 기운이나 비밀 공간 같은 건 못 느꼈는데.’
3층의 지하 투기장 관람석도 그렇고, 당장 눈앞의 시설도 그렇고. 7서클에 오른 세운의 마법 실력이나 범인의 수준을 초월한 세운의 탐지하기가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그런 세운의 생각을 읽었는지 아르카나가 빙긋 웃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원래부터 있었던 곳이에요~ 아, 열쇠는 원래 이게 아니었어요. 열쇠같이 생긴 거였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바꿨어요.”
“마음대로 바꿔도 되는 건가?”
“이제 제가 주인인데요, 뭘. 아, 다음에 저 몰래 여기로 찾아와서 벽을 부숴도 여긴 안 나오니 소용없답니다~”
“그럴 생각 없다.”
“거짓말.”
“…….”
“장난이랍니다~ 정색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자꾸 놀리게 된다니까요?”
정색하는 모습이 귀엽다니. 그럼 이제 정색하지 말아야 하는 건가?
그렇다고 그녀 앞에서 실실거리며 웃고 있을 수는 없다.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고 해도 어쩐지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는 기분이라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이건 열쇠가 있어야만 나타나는 공간이거든요. 1층이든, 2층이든. 카지노 어디서든.”
우웅-
마법진의 형식은 공간 이동.
공간과 시간을 다루는 마법이 극히 고 서클 마법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이 마법진을 설치한 자 역시 높은 수준의 마법사리란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좁네요. 그쵸?”
“딱히.”
“숨소리가 이렇게 가까이 들리는데요? 저도 손님을 데려온 건 처음이라 이것까지는 생각 못 했네요~”
정확한 시간은 알지 못하지만, 그녀의 말로 유추했을 때 그녀는 카지노에서 오랫동안 주인으로 군림했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이라니.
거짓말인가 싶었지만, 역시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제 생각이 읽힌 모양.
“어머, 절 어떻게 보고 계셨던 거예요? 라일락에서 저만큼 순수한 소녀는 찾기 힘들 거랍니다~”
순수하기는 무슨.
라일락이 아무리 환락의 도시라 불려도 그녀에게 순수라는 단어가 어울릴 리가 없다.
게다가, 겉모습은 저래 보여도 그녀의 나이는 세운이 짐작하기로 최소 50.
순수하기 이전에 소녀라는 말을 붙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자, 그럼 가 볼까요?”
대화를 나누는 사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마법진에 마나가 순환되며 밝은 빛을 토해 내고 있었다.
열렸던 벽면이 닫히고, 경매장에 들어갈 때 느낀 것과 비슷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고위 이동 마법.
흔치 않은 수식이었기에 방금 보았던 마법진의 형식을 잊지 않으려 머릿속에 새겨 두며 눈을 떴다.
“제 프라이빗 룸에 오신 걸 환영해요~”
* * *
프라이빗 룸.
눈을 뜨기도 전에 들린 그 단어가 무슨 뜻인가 했지만, 정답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여긴…….”
“말 그대로 제 프라이빗 룸이랍니다~ 어머, 혹시 여자 혼자 사는 방에 들어오신 건 처음이신가요?”
카지노 시설 같은 게 아니다.
사적인 공간이라는 말 그대로, 이곳은 아르카나의 방.
혼자 살면서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다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게 큰 소파와 저 멀리 붉은 레이스에 가려진 침대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카지노 시설은 3층까지가 끝이었나.’
4층은 카지노의 주인이 지내는 숙소. 그렇다면, 5층 이후가 세운이 노리고 있는 장소일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빤히 둘러보시면 저라도 조금 부끄럽답니다~”
부끄럽다는 말과는 반대로 여유롭게 걸으며 소파에 앉는 아르카나.
미리 준비해 둔 것인지는 몰라도, 소파 앞 테이블에는 붉은 와인과 함께 치즈 안주가 놓여 있었다.
“그러지 말고 얼른 이쪽에 앉아요~ 아, 혹시 제 옆자리가 좋으신가요?”
괜한 도발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고 그녀와 반대편 자리에 앉았다.
와인잔에 쪼르르 따라지는 선홍빛 와인이 찰랑거렸다.
“라일락에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와인이랍니다? 드셔보시면 후회는 안 할 거예요~”
“어째서 여기로 초대한 거지?”
“어머, 위층으로 올라가고 싶다고 말한 건 늑대 씨가 아니었나요?”
“내 말뜻이 그게 아니었다는 건 알고 있을 텐데.”
“너무 딱딱하시네요~ 조금 더 편하게 계셔도 되는데. 아, 독은 안 탔으니 걱정 마시구요.”
독이 들었든 들지 않았든 와인을 마실 생각은 없었다.
마나를 운용하여 취기를 날려 보낼 수는 있지만, 그녀 앞에서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건 사양이었으니까.
생각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인 만큼 최대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만 한다.
세운이 그저 바라만 보고 있자, 그녀가 이번에도 장난이라는 듯이 쿡쿡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실은, 늑대 씨가 떠나자마자 제 무능한 여신님이 말을 걸어왔거든요.”
“니케?”
“아, 니케. 그런 이름이었죠. 이번만은 절대 안 된다고, 당장 당신을 쳐내라고 하시더라구요? 여신님이 이렇게 당황하시는 모습은 오랜만이었어요.”
“이유도 말해 주던가?”
“당신이 올림포스의 성좌를 떨어트렸다면서요? 그것도 두 명이나.”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자신의 창고에 들어 있는 ‘판의 뿔’을 만지작거리며 크게 만족해합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트리톤은 마땅히 죽어도 싼 성좌였다며 당신을 두둔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두 성좌의 맛을 떠올리며 침을 흘립니다.
아무래도 세운이 지하 투기장에 들렀을 때 니케가 세운에 관한 모든 사실을 아르카나에게 말한 모양이다.
아니, 그 내용을 듣기 위해 그녀가 자신을 투기장으로 내려보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어쩔 생각이지? 그 ‘무능한 여신’ 말대로 날 쳐낼 생각인가?”
세운의 손이 자연스럽게 검으로 향했다.
실드를 전개할 수 있도록 서클을 회전하고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수 있도록 단전을 달궜다.
현 상황에서 그녀의 정확한 전투력은 알지 못하지만, 세운이 느끼기로는 최소 탑의 하이 랭커급.
이곳에서 당장 싸우기보다는 거리를 벌리는 게 더욱 중요했다.
하지만, 그녀는 세운을 바라보며 그저 귀여운 듯이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럴 리가요~ 오히려 늑대 씨한테 더 관심이 생겼달까요?”
“어째서지?”
“당연하잖아요?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정체된 세상에서 성좌에게 반기를 든 플레이어가 나왔는데.”
“반기라…….”
성좌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세운은 어디까지나 아우터에게 대적하기 위해 탑을 오르고 힘을 쌓고 있는 것이니까.
다만, 당장 그녀에게 아우터에 관해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세운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라일락에 자리를 잡은 이유도 그 때문이랍니다? 그나마 여기는 다른 쉼터에 비해 덜 지루하거든요.”
환락의 도시, 라일락.
확실히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쉼터였다.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거대 길드끼리의 대립이나 시련의 고난 같은 걸로는 그녀를 매료시키기 힘들어 보였으니까.
“궁금해졌어요. 당신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어떤 행보를 벌여나갈 것인지.”
“성좌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힘을 잃어버릴 텐데?”
“어머, 절 걱정해 주시는 건가요? 고마워라~”
“…….”
“걱정할 필요 없어요. 어차피 아쉬운 건 제가 아니거든요. 무능한 여신 따위야, 떠나려면 떠나라죠. 만약 우리 무능한 여신님이 떠난다고 해도 당신 곁이라면…….”
그녀가 세운의 위를 가리켰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천장이었지만, 어렴풋이 그녀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 성좌, ‘불의 후작’이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합니다.
– 성좌, ‘녹색 옷의 사수’가 자신을 따른다면 여태껏 경험하지 못했던 쾌락을 안겨줄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 성좌, ‘독의 추악공’이 자신과도 잘 어울릴 것 같다며 꼬리를 살랑거립니다.
– 성좌, ‘피에 젖은 발톱’이 자신의 권능과 어울리면 탑을 지배할 수도 있을 거라며 관심을 가집니다.
‘고유 스킬이 유혹이라도 되는 건가.’
당장 마신들을 따라 세운의 주위를 살펴보고 있던 72 마왕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니까.
주신급은 아니지만, 마왕들은 전부 판이나 트리톤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격을 가진 성좌들.
심지어 하위 마왕들은 그들의 기세에 밀려 끼어들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계약자가 없는 마왕 중 1/4가량이 관심을 비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플레이어의 고유 스킬이 성좌에게 영향을 줄 리 만무하지만, 그녀가 마왕들의 눈에 들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세운에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마왕들의 눈에 보인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니케와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러면 확실히 아쉬울 게 없겠지.’
행운의 여신, 니케.
격이 낮은 성좌는 아니지만 당장 그녀를 지켜보는 마왕 중에서는 니케보다 강한 격을 지닌 성좌 역시 존재했다.
아마 니케가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생각 없이 늑대 씨를 옹호한다는 건 아니에요. 그전에,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관찰하고 싶거든요.”
“그 말은…….”
“이 위층. 카지노의 정상에 오르고 싶다고 하셨죠?”
그녀가 와인잔을 집어 들었다.
선홍빛 와인이 와인잔을 타고 그녀의 입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거기서 당신의 행보를 지켜보고 싶어요. 제게 비밀을 숨기지 않는다고 약속한다면, 위층에 모셔다드리겠어요.”
다섯 장의 카드가 그녀의 표정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