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5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55화(351/675)
제 355화
‘도대체 정체가 뭐지.’
그녀의 전투를 보고 세운이 생각한 감상평이었다.
여섯 번째 쉼터까지 내려와 페널티를 먹은 상태에서도 저 정도의 전투력을 발휘하다니.
게다가 그녀는 꽤 오래전부터 이곳에 정착해 있는 것 같았는데, 그녀의 전투에서 정체기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힘의 활용성.
‘근거리, 장거리 모두 커버 되는 공격 능력이랑…… 무엇보다도, 생각의 유연성.’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루인의 힘을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아니, 흡수보다는 공유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그 증거로 정작 루인은 격렬한 전투를 벌이지 않았음에도 무척이나 힘들어하고 있었다.
몸의 색이 옅어진 것은 물론 숨까지 가쁘게 쉬고 있는 게,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힘을 이용당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 크릉…….
그나마 주변에 퍼진 아우터들을 집어삼키며 힘을 다시 회복하는 모습.
아우터가 수십 개의 박제품에 잠식하여 난동을 피운 것치고 창고는 비교적 깔끔했다.
망가진 그림이나 부서진 석상 하나 없을 지경.
역시, 처음부터 운석을 향해 파멸의 힘을 담은 마법을 쏘아낸 것은 정답이었다.
“루인, 많이 힘드니? 고생했단다~”
그녀가 루인을 쓰다듬으려 하였지만, 루인이 조용히 발 하나를 뺀다. 그럼에도 끝내 저항하지 못하고 머리를 내주고 만다.
조용히 눈치를 보고 있는 녀석을 위해 성흔을 들어 녀석을 안으로 흡수한다.
아르카나가 아쉬운 듯이 손을 매만졌지만, 루인을 위해서라도 무시했다.
“상상도 못 했네요~ 운석 안에 그런 게 들어 있었을 줄이야.”
“관심이 좀 풀렸을지 모르겠네.”
“풀리긴 했는데, 풀린 것 이상으로 더 큰 관심이 생겨났답니다~”
“그나저나, 정리는…….”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사용하던 것들도 아니고, 박제품들은 소재로 쓰면 되니까요~”
당장 눈에 보이는 손해만 수억 포인트에 달할 텐데도 전혀 내색하지 않는 그녀.
그나저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운석…….’
아우터를 모두 처리했으니, 이제 운석을 회수해 갈 차례다.
지금까지의 모든 쉼터를 통틀어 가장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는 운석.
비록 화염에 의해 표면이 전부 그을려 있지만, 저거야 잘 닦아내면 그만이다.
저렇게 상태 좋은 운석이라면 백현의 연구는 물론 고창석의 제련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당장 바로 옆에 운석의 주인이 눈웃음을 치며 세운을 바라보고 있다는 게 문제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아르카나였다.
“저거, 가지고 싶은 거죠?”
“팔 건가?”
“팔면 살 수 있나요? 저거, 가치로 따지면 못 해도 십억은 넘어가지 않을까 싶은데요~”
“…….”
이번에 카지노에서 번 코인들을 떠올렸다.
마지막 지하 투기장의 승리까지 포함하여 엄청난 양의 포인트를 벌었지만, 그 모두를 투자해도 운석을 구매하기는 아슬아슬했다.
게다가 세운은 당장 얼마 후에 경매장에서 사용할 공적치가 필요하다.
정확히는 몰라도, 최소 몇억 포인트는 기본으로 필요할 텐데 여기서 전 재산을 지불하기는 어려웠다.
세운의 고민이 짙어지자 그녀가 카드 밖으로 삐져나올 정도로 입꼬리를 길게 잡아당겼다.
“줄게요~”
“……뭐?”
“가지고 싶은 거잖아요? 그냥 드린다구요~”
최소 십억이 넘어가는 가치를 지닌 운석을 그냥 넘기겠다니.
이것만 들으면 환영할 만한 일이겠지만, 그녀는 대가 없이 운석을 넘겨줄 정도로 생각 없는 사람이 아니다.
분명 무언가 원하는 게 있을 거다.
“뭘 원하는 거지?”
“역시 말이 잘 통하네요~ 아, 그전에 하나 확인할 게 있어요.”
“확인?”
“계속 생각해 봤거든요~ 늑대 씨 정체가 뭔지.”
그녀가 세운의 코앞으로 얼굴을 가져다 댔다.
정체가 뭐냐니. 그건 세운이 해야 하는 질문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던 중, 아르카나가 입가를 가리고 있던 카드를 내리며 세운의 귓속에 속삭였다.
“늑대 씨, 회귀자죠?”
“……뭐?”
세운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회귀자라니.
지금까지 그녀의 앞에서 말하고 행동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지만, 힌트랄 건 없었다.
혹시 떠보는 걸까? 아니, 만일 떠보는 거라고 해도 일말의 의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회귀자라는 단어 자체가 나올 리 없다.
“맞나 보네요~ 귀여워라. 그거 알아요? 방금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이 읽힌 거.”
“…….”
“인제 와서 잡아떼려는 건 아니죠? 그럼 저, 조금 실망할 거랍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하긴, 이번만은 세운도 표정을 숨기기 힘들었으니까.
그녀의 추측은 그만큼이나 뜬금없으면서 정확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도대체 감 잡을 수 없는 인간이라며 고개를 젓습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회귀자가 말이 되냐면서 깔깔거리고 웃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잡아떼는 건 무리.
경우는 다르지만, 제헤튼에서 세운의 정체를 간파한 정체불명의 사내가 떠올랐다.
그래봤자 그녀를 포함하여 세운의 회귀를 아는 사람은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지만, 조금은 불안한 게 사실이다.
“어떻게 안 거지?”
“뭐랄까, 여자의 직감?”
“…….”
“장난이에요, 장난. 표정 좀 풀어요~”
잠시 키득거리던 그녀가 설명을 시작했다.
“예전에 저희 무능한 여신님을 갈구다가…… 아니, 놀아주다 재미난 얘기를 하나 들었거든요.”
“재미난 얘기?”
“일이 년쯤 전인가?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부터 별 하나가 사라졌다더라구요.”
별이라고 하면 성좌를 뜻하는 말일 터.
그녀의 성좌인 티케는 올림포스의 소속이다.
그런 티케가 언급한 신이라면 그 역시 올림포스 소속의 성좌일 게 분명하다.
그 말을 듣자마자 세운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제헤튼에서 마주친 정체불명의 사내가 말했던 ‘회귀자들’이라는 말.
“……크로노스인가?”
“역시 알고 계시네요~”
세운과 함께 회귀한 또 한 명의 플레이어.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회귀했는지 생각하면 가장 큰 가능성이 하나 있었다.
바로, 크로노스의 모래시계.
세운이 사용한 모래시계야 마몬의 복제품이지만, 복제품이 아닌 진짜 모래시계를 사용하고 회귀한 플레이어가 존재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마몬의 보물을 통해 마몬에게 별다른 지장 없이 회귀한 세운과는 다르게 크로노스에게는 무언가 지장이 있었던 듯하지만 말이다.
“멍청한 신들은 별로 의미를 안 두고 있는 것 같은데, 제 생각은 다르거든요. 시간의 신이 세계의 위기를 피하고자 사도의 시간을 되돌린다! 소설에 나올 법할 뻔하디뻔한 설정이잖아요?”
“그래서, 내가 그 회귀자라고 생각한 건가?”
“에이, 그럴 리가요~ 그러면 올림포스와 척을 질 리 없잖아요?”
“그럼?”
“아까 늑대 씨의 성좌님이 말을 거실 때 알았죠. 탐욕의 마신이었죠, 아마? 길게 대화를 나눈 건 아니었지만…….”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뜨끔합니다.
“대화를 나누며 대충 어떤 권능을 지녔는지 예상할 수 있겠더라구요. 거기에 그 징그러운 것들.”
“아우터.”
“네, 그거요~ 그거랑 늑대 씨가 보여준 힘. 그 외 이것저것. 거기에 ‘직감’을 약간 뿌려봤더니, 짠! 하고 늑대 씨의 정체를 알겠더라구요~”
확실한 정보가 있던 것이 아니다.
솔직히, 전부 가설이나 추측에 가까운 것들이었고 무엇보다 그것을 세운과 연결할 수 있는 고리가 적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확신했다.
솔직히, 이 정도면 ‘여자의 직감’이라는 걸 믿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니, 고리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신을 흘깃거리며 눈치를 봅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5층에 들어서며 마몬이 아르카나에게 했던 제안이 그녀에게 결정적인 힌트가 되었을 테니까.
그렇다고 여기서 마몬의 탓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여기까지 들은 이상 솔직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맞아.”
“신기해라~ 그럼 저, 지금 회귀자와 대화하고 있는 건가요? 혹시, 회귀 전에도 저랑 대화했었나요? 늑대 씨 같은 남자라면 제가 분명 관심을 가졌을 텐데.”
“미안하지만 그때는 3층은커녕 카지노의 2층에도 오르지 못했거든.”
“아쉽네요~ 봤다면 분명 지금처럼 첫눈에 사랑에 빠졌을 텐데!”
사랑은 무슨.
회귀 전에 그녀와 마주쳤다고 해도, 그녀라면 세운에게 신경도 안 썼을 게 분명하다.
그때의 세운은 지금과는 전혀 달리 이제야 막 탑에 적응하기 시작한 모험가에 불과했으니까.
“그럼, 역시 탑이 무너지는 건가요?”
“맞아.”
“그때도 절 못 보신 건가요? 하긴, 저라면 굳이 저 징그러운 것들이랑 놀 바에 이곳에서 와인이나 한 잔 더 했을 테니까요.”
“싸웠을지도 모르겠지만, 회귀 전의 나는 놈들과 정면으로 들이받는 타입이 아니었거든.”
“의외네요~ 아, 그때 얘기 좀 들려주시면 안 될까요? 너무 궁금하거든요!”
“지금은…….”
“운석, 안 가지고 싶어요?”
“…….”
가지고 싶다.
그 말을 삼키며, 세운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어차피 회귀에 대해 들켰으니 조금 더 말한다고 해서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회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고 그녀가 이 사실을 이곳저곳 퍼트리고 다닐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차피 발뺌하지 못할 거, 운석이라도 회수하는 게 이득이다.
“와, 와! 저게 그렇게나 강한 거였나요? 성좌들이 쩔쩔매는 건 저도 한번 보고 싶네요~ 하긴, 저희 여신님만 봐도 무능한 수준은 알 것 같지만요~”
회귀 전의 상황을 모두 설명해 준 건 아니다.
그랬다가는 오늘 하루를 꼬박 새워야, 아니, 며칠 동안은 잠도 안 자고 입을 놀려야 했을 테니까.
최대한 중요한 사건을 요약하여 탑의 멸망 스토리만을 알려주었다.
세운 자신에 대한 사실은 최대한 제외한 채로.
“그래서 그때 늑대 씨는 뭘 하고 있었는데요?”
물론, 그녀는 허점을 놓치지 않았다.
무언가 생략하려는 순간마다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몇 가지 사실은 털어놔야만 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천장이 무너지고, 아우터가 쏟아지며 아우터에게 잠식당한 성좌들이 빛과 어둠을 흩뿌려 탑의 종말을 굳히는 순간까지 찾아오자.
“저도 꼭 한번 보고 싶네요~ 저도 잠식당했던 거겠죠? 제가 잠식당한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는데, 그래도 꽤 매력적이지 않을까요?”
아르카나는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한껏 표출했다.
“여기까지.”
“조금 더 얘기해 주지~ 저,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정말 몇십 년 만이라니까요?”
“너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다.”
“에이, 상관없다니요~”
“이곳에서 할 일은 끝났으니까. 일만 잘 풀리면, 라일락까지 영향을 끼칠 리는…….”
“아, 제가 아직 운석을 넘겨주는 조건을 말하지 않았었죠?”
갑자기 여기서 또 운석을 넘겨주는 조건 같은 건 왜 나오는 것일까?
순간, 세운은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게 느껴졌다.
애써 고개를 저어보았지만,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하던가?
“저, 늑대 씨랑 같이 다닐래요!”
아르카나가 소녀처럼 두 눈을 반짝이며 세운에게 달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