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5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60화(356/675)
제 360화
고유 스킬, 여정의 지침표.
회귀 전의 세운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힘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길을 알려주거나 정체 모를 히든 피스를 알려주는 정도에 그쳤지만, 힘에 익숙해질수록 그 활용도는 나날이 올라갔다.
‘익숙한 방향감각.’
회귀를 하며 잃어버린 방향감각이 되살아났다.
눈을 감고 있어도 어느 방향에 아르카나가 서 있는지, 이 수련장의 출구가 어디인지, 주택이 어느 쪽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도 정확하게 느껴지고, 심지어 태양 빛이 비쳐 오는 방향까지 느껴진다.
‘각성 후, 회귀 직전에 가지고 있던 그대로야.’
혹시나 각성이 안 된 처음 시점의 상태라면 어쩌나 했는데, 아니었다.
여정의 지침표의 상태는 그야말로 최상.
만마전을 찾아낼 때 지니고 있던 그대로였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그게 자신의 창고를 찾아낸 능력이라며 관심을 가집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힘이 돌아온 것을 축하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그걸로 자기 먹이도 좀 찾아주라며 주린 배를 붙잡습니다.
– 성좌, ‘잠자는 산양’이 하품을 내쉽니다.
쭉 감고 있던 눈을 다시 뜨게 된 것만 같았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 힘을 사용해 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세운이 얻어왔던 힘들과 달리, 이 여정의 지침표는 쓰고 싶다고 아무 곳에서 쓸 스킬이 아니었기에 아쉬울 따름이었다.
“어떤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축하해요~”
“고맙다.”
“딱 봐도 당장 힘을 쓰고 싶어서 근질근질해 보이는데, 좋은 장소 하나 추천해 줄까요?”
“됐어, 어차피 라일락에서 모르는 장소는 없으니까.”
세운은 이 여섯 번째 쉼터부터 여정의 지침표를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연습 겸하여 라일락의 거의 모든 요소를 파헤치고 돌아다녔다.
남들이 꺼리는 하수구까지 뒤져가며 여정의 지침표를 수련했으니, 할 말 다 한 셈이다.
덕분에 라일락에 존재하는 히든 피스는 전부 알고 있다.
솔직히, 이곳에는 마땅히 히든 피스라 불릴 만한 게 존재하지 않지만 말이다.
“어머? 아닐 텐데. 저를 본 적이 없었다면 출입 금지 구역에는 못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출입 금지 구역?”
“모르시나요?”
“알긴 아는데…….”
당연히 알고 있다.
하수구의 끝자락이나 가시덤불로 칭칭 감긴 버려진 대주택 등. 여섯 번째 쉼터에는 정체 모를 출입 금지 구역이 몇몇 존재했다.
다만, 이는 평범한 접근 금지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제한된 구역들이었기에 여정의 지침표를 지닌 세운도 오갈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기에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무언가 방법이 있어 보였다.
“제가 누구예요~ 라일락에 존재하는 모든 일은 제 손바닥 안이랍니다?”
“아무리 너라도 시스템이 막아 놓은 지역은 뚫지 못할 건데.”
“너라니, 너무 차갑다. ‘아나’라고 불러주시면 어때요?”
“방법이 있는 건가?”
“카지노의 지배자는 이름뿐인 게 아니랍니다~ 시스템도 그 자리를 정식으로 인정해 준다구요. 아, 관리소에 인정을 받는다고 해야 하려나?”
“그 말은…….”
“그 출입 금지 구역, 제가 뚫어드릴 수 있어요. 아직은.”
“아직은?”
“저도 이제 슬슬 자리 넘겨줄 생각이거든요~”
그녀는 이제 디아블로 길드 소속이다.
아직 기간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디아블로 길드는 라일락을 떠난다.
그녀가 세운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리를 넘겨주는 게 필수였다.
종일 세운의 옆에 붙어 있었기에 어떻게 하고 있나 싶었는데, 이제 슬슬 준비하려는 모양이다.
“어떻게 할까요? 뚫어 드릴까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다음 시련에 도전하여 여정의 지침표를 사용하고 싶지만, 세운은 길드 마스터다.
길드원을 버려두고 혼자 출발하기는 마음에 걸린다. 그렇다고 갑작스레 길드원을 모야 시련에 도전하겠다고 하는 것도 무리.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으로서는 그녀가 내민 제안이 최선이었다.
‘궁금하기도 하고.’
회귀 전의 세운조차 진입하지 못한 구역들.
애초에 세운은 모험가였기에 모르는 구역에 대한 호기심이 동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부탁을…….”
“아나.”
“……뭐?”
“아나라고 불러주면 뚫어 드릴게요~ 아! 당연하지만, 앞으로 계속 그렇게 불러주셔야 한답니다?”
잠깐 망설여 보았지만, 답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저 칭호를 바꾸는 것만으로 라일락의 제한 구역을 뚫을 수 있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손해 하나 없는 큰 이점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녀의 페이스에 완전히 먹힐 것 같아 불안하지만, 어쩔 수 있나?
당장 이 힘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사용해 보고 싶은 것을.
“……부탁해, 아나.”
“꺄~ 다시 불러주세요~”
* * *
세운이 라일락에 머무르는 기간.
디아블로 길드는 라일락에 새로운 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콰아아앙-!!
“나왔습니다! 그의 주먹! 경기장이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이 떨려옵니다!”
전보다 더욱 강해진 힘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강한철.
그는 ‘폭력(爆力)’이라는 이명을 지닌 채 지하 투기장을 휩쓸고 있었다.
그가 성장할수록 지하 투기장이 그의 힘을 견디지 못해 강한철 전용의 새로운 경기장이 만들어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대치하고 있는 쌍검의 유서아.
“아아, 바람이 휘날립니다! 피처럼 붉은 바람이 휘몰아칩니다!”
마찬가지로 광풍(狂風)이라는 이명을 지닌 채 강한철과 팽팽히 대립하고 있는 유서아.
본래라면 1등을 몇 번이고 차지한 선수를 지하 투기장에서 받아줄 리가 없지만, 지금은 달랐다.
둘의 전투가 워낙 인기가 있었기에 지하 투기장에서도 제대로 띄워주기 시작한 것이다.
전용 투기장을 만들고, 주기적으로 둘의 시합을 벌이는가 하면 라일락 각지의 강자들을 모아 둘과 붙게 하였다.
지하 투기장 특유의 제한이 사라지자 여러 강자가 모여들었고, 그들의 전투는 더욱 많은 플레이어를 몰려들게 했다.
새로운 열풍.
둘은 그야말로 지하 투기장에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물론, 이 열풍을 뒷받침해 주던 이들 중에도 디아블로 길드가 존재했다.
“이 정도면 안 부서지겠지?”
“하여튼 그 오빠, 맨날 부숴 먹는다니까?”
“내구도랑 충격 흡수력 완벽하고, 적어도 지금은 절대 안 부서질 거야!”
“응, 지금은…… 그만 좀 강해지지.”
“그보다 우리 시계탑은?”
“진짜 랜드 마크로 지정되고 있다더라구! 아나 언니 말이 진짜였어!”
“우와아!”
한아름, 한다운.
쌍둥이 자매가 유서아와 강한철이 싸울 무대를 만들어 주는 것은 물론 라일락에 새로운 건축 문화를 일으켰다.
그것들은 가히 건축 혁신이라 부를 만했다.
라일락에서 이름난 상인들은 전부 쌍둥이 자매에게 건축을 부탁하기 위해 경매를 하듯이 서로 높은 호가를 부르기 바빴을 정도.
그리고 이 흐름은 경매장에서도 이어졌다.
“모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출품된 마장(魔匠)의 스물일곱 번째 명작입니다!”
“오오, 드디어!”
“이번에는 무슨 무기지?”
“젠장,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더 올라가는 거야?”
“유명세가 퍼져서 그렇지. 여기 몰려든 사람 봐. 절반 이상이 마장의 작품을 보러 왔을걸.”
천이 걷어지고, 단상 위에 드러난 무기.
전체적으로 붉은빛이 감도는 단검이었는데 손잡이에 마장 특유의 문양이 새겨 있었다.
사나운 맹수가 이빨로 물어뜯은 듯한 자국.
보기만 해도 섬뜩한 저 자국은 그저 평범한 문양이 아니었다.
무슨 힘을 깃들게 한 것인지, 저 자체로 무기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 올려주고 있었다.
“이번 작품은 특히나 그 활용성이 뛰어납니다! 주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보조 무기로서도 빛을 발합니다!”
“미친, 저 날 좀 봐.”
“보조 무기라고? 내 주 무기보다 강력해 보이는데?”
“저것만 있으면 당장 내 활 버리고 저걸 주 무기로 써도 더 높이 올라갈 수 있겠는데.”
작품의 정보가 공개되자 입찰자들의 반응이 더욱 뜨거워졌다.
경매가 시작하자마자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하는 입찰가.
천, 이천, 삼천.
쭉쭉 뻗어 올라가던 가격은 마침내.
“일억!”
일억을 넘기며, 고창석의 작품이 가진 명성을 한층 더 높여주었다.
그 외에도 라일락이 모든 대소사에 디아블로 길드가 관여되며 그 이름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올라갔다.
처음에는 발할라 길드와 동맹을 맺은 길드 정도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디아블로 길드 그 자체의 이름만이 모두의 머릿속에 새겨졌다.
아니, 이 라일락 한정으로는 오히려 발할라 길드보다 디아블로 길드가 더욱 유명할 지경이었다.
* * *
버려진 대주택.
라일락의 북쪽 끝에 존재하는 곳이었는데, 주택보다는 성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거대한 곳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주택 주위의 벽은 물론 거대한 대문까지 전부 두꺼운 가시덤불이 칭칭 감겨 있었다.
‘회귀 전에도 어떻게든 뚫어보려 했지만, 실력으로 뚫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지.’
지금도 마찬가지다.
뒤랑달을 휘둘러 가시덤불을 끊어 내봤지만, 무언가 단단한 벽에 튕긴 것처럼 검이 튕겨 나간다.
아니, 벽에 튕긴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검이 반사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게임 속에서 구현되지 않은 맵을 마주한 것처럼 이 앞은 출입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다.
‘진짜 되려나.’
여정의 지침표도 이 앞으로는 그 어떠한 지침도 내리지 않고 있다.
회귀 전과 같은 상황.
그때보다 더 강력해졌다고는 해도 이 앞을 뚫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가능하다며 신신당부를 했던 탓에 세운은 의심을 죽이며 대저택의 정문 앞에 다가섰다.
여전히 굳게 닫힌 정문.
문이기는 해도 가시덤불이 워낙 무성하게 뒤덮인 탓에 열쇠가 있어도 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시스템의 제한이라도 이거면 열 수 있을 것 같은데.’
세운이 품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 들었다.
튜토리얼의 보상으로 획득한 만능열쇠.
혹시나 싶은 마음에 열쇠를 사용해 보려던 찰나, 눈앞에서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철컹-
가시덤불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정문이 열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와 함께 떠 오르는 메시지.
– 여섯 번째 쉼터, 라일락의 히든 던전 ‘히스 래빗의 대주택’이 플레이어 정세운의 출입을 승인합니다.
때마침 아르카나가 세운의 출입을 승인한 모양이다.
정문을 휘감고 있던 두꺼운 가시덤불이 꿈틀거리며 물러난다.
그 안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가시덤불에 묶여 있었는지 녹슬고 비틀려 있는 정문의 철장이 보인다.
끼이이-
외관이나 소리가 꼭 귀신이라도 나올 듯한 분위기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잠잠하던 여정의 지침표가 맹렬하게 대주택 내부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랜만이야.’
한평생 모험가로서 활동하던 세운의 가슴 속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저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걱정되지 않는다.
히스 래빗.
그 정체 모를 자의 대주택을 향해 세운이 첫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