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5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62화(358/675)
제 362화
“어떻게 정화해 주라는 거지? 이대로 영혼선을 전부 끊어 주면 되나?”
– 실타래의 가장 안쪽에 저의 영혼선이 있을 거예요. 그것만 남겨주시면 돼요.
“까다로운 요구로군.”
– 분명 제 말이 당신에게도 도움이 될 거예요. 부탁드려요.
영혼선을 하나하나 잘라 낼 때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런 경우는 세운도 처음이라 확신할 수 없지만, 아마도 저 보스 몬스터는 히스 래빗이라는 인간에 수많은 악령이 모여들어 만들어진 몬스터.
때문에 그녀를 잠식한 악령을 모두 끊어줘야 하는 모양이다.
‘설마,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히스 래빗은 드디어 오셨군요, 라고 마치 세운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을 했다.
물론, 악령에게서 해방되기 위해 아무렇게나 던질 수는 있겠지만 세운은 그녀의 말에 납득하고 있었다.
‘자신의 것을 제외한 영혼선을 전부 잘라 내라니. 다른 플레이어가 충족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야.’
이건 어디까지나 여정의 지침표로 영혼선을 구분할 수 있는 세운이기에 가능한 요구였다.
다른 플레이어였다면 무작정 마법을 퍼부어 영혼선이고 뭐고 저 몬스터 자체를 소멸시켰을 게 분명하다.
‘설마 미래를 볼 수 있는 건가?’
네 번째 쉼터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당시에 불러낸 고대인도 세운이 찾아오리란 것을 예지하고 있었으니까.
세운이 알기로 그런 고대인을 제외하고 탑에서 미래를 보는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지만, 전혀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그것도 임무를 완수해야만 알 수 있는 일.
서걱-
“꺄아아아아-!!”
–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세운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사실 ‘조금만 더’ 수준이 아니었다. 얽히고 얽힌 영혼선은 잘라 낼수록 더욱 복잡해졌으니까.
그녀의 영혼선이 얼마나 더 깊숙이 들어 있는지도 몰라 한 번에 잘라 낼 수도 없고, 영혼선이란 게 한 번에 잘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하나씩.
서걱-
어떻게든 빈틈을 만들어 내 영혼선을 겉에서부터 하나씩 잘라 나간다.
그냥 물리치는 거였다면 7서클 마법과 상승 무공으로 찍어 눌렀을 텐데, 그게 안 되니 슬슬 녀석을 상대하는 게 답답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내 몸이야-!”
녀석은 세운의 공격에 적응하고 있었다.
영혼선의 실타래가 절반쯤 벗겨졌을 때쯤부터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세운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사실 모르겠다. 저게 세운의 공격 의도를 알고 저러는 건지, 아니면 분노로 앞뒤 안 보고 달려드는 것인지.
다만, 어떻게든 빈틈을 만들어 영혼선을 섬세하게 벗겨내야 하는 세운으로서는 상황이 영 귀찮아졌다.
‘어쩔 수 없나.’
오늘은 여정의 지침표를 즐기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그보다는 그녀의 영혼선을 되찾는 게 더욱 중요하게 판단되었다.
그녀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운의 추측대로 그녀가 카지노의 전 주인이었다면, 꽤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혼백의 봉인검 ]– 아주 오래전, 세계를 멸망시키려 지하 깊은 곳에서 기어 올라왔다는 전설의 괴물을 봉인시킨 검.
세운의 뒤랑달이 순백색으로 물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스 몬스터는 머리카락을 더욱 산발로 휘날리며 세운에게 손톱을 뻗어온다.
주변의 귀기가 일렁거리며 시커먼 이빨 같은 것들까지 생겨난다.
녀석의 경로를 똑바로 지켜보던 세운이 앞을 향해 뒤랑달을 부드럽게 내뻗었다.
푸욱.
영혼선을 자를 때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물리 공격도 통하지 않던 녀석의 몸이 찔려 들어가는 게 선명하게 느껴진다.
– 바위를 쪼갠 검, 뒤랑달이 ‘혼백의 봉인검’에 잠든 봉인의 기운을 터트립니다.
– ‘혼백의 봉인검’을 통해 괴이봉인(怪異封印)이 재현됩니다.
푸부부부북!
곧이어 사방에서 튀어나온 새하얀 장검이 녀석의 사지를 찌르고는 바닥에 꽂힌다.
녀석은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려 하였지만, 마지막으로 나타난, 특히나 거대한 검이 녀석의 머리통에 박힌다.
“켁…….”
죽은 건 아니다. 물리적으로 찌른 것처럼 보이지만, 이 검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봉인일 뿐.
일정 시간 동안 움직임을 막는 것뿐이지, 그 어떤 데미지도 주지 못한다.
게다가 이 상태로 공격을 감행하면 그 외부 자극을 통해 봉인이 풀려 버린다.
하지만.
서걱-
영혼선을 자르는 건 경우가 다르다. 이는 신체를 공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원리의 공격이었으니까.
–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하나.
여정의 지침표에 집중하여 실타래처럼 얽힌 녀석의 영혼선을 히스 래빗의 것을 제외한 나머지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면 된다.
서걱, 서걱.
하나둘 잘려 나가는 영혼선.
그와 함께 녀석의 몸이 점점 더 투명해진다.
손톱이 부들부들 떨려대는 게 보이지만, 그래봤자 ‘혼백의 봉인검’에 저항할 수는 없었다.
괴이봉인이라는 봉인검의 고유 기술은 이런 유령이나 괴물 같은 종류의 적에게 특히나 효과적이었으니까.
‘이제 마지막.’
영원히 안 풀릴 것 같던 실타래가 드디어 끝이 보였다. 하지만, 녀석도 가만히 죽기는 싫다는 것일까?
“끼, 끼익! 꺄아아악-!!”
봉인검에 찔린 상태로 입을 쩌억 벌리며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꽤나 괴이하다.
몸이 상하건 말건 몸을 꿈틀거리며 봉인검으로부터 탈출하려 한다.
처음에는 소용없는 짓 같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움직임이 커져 간다. 그럴수록 영혼선을 조준하기 어려워진 건 당연지사.
어떻게 한 건가 싶어 보니, 봉인검으로 찍힌 부위를 과감히 뜯어내고 있었다.
‘저래도 되나.’
단순한 보스 몬스터라면 신경 쓰지 않겠지만, 저 안에는 아직 히스 래빗의 영혼이 남아 있다.
혹시라도 그녀의 정신이 돌아왔을 때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으면 어쩌나 걱정되긴 했다.
그럴 때일수록 세운이 할 수 있는 건 하나.
보스 몬스터가 봉인으로부터 완전히 빠져나오기 전에 영혼선을 완전히 분리해 내는 것뿐이다.
– 내공을 통해 화류검법의 제일 초식, 연화(蓮花)가 강화됩니다.
신비의 환검이라 불리는 환검의 초식을 응용하여 쾌검으로 변모한다.
연화라는 초식 명에 걸맞게 검이 연꽃을 연상케 하는 궤적을 그리며 녀석의 영혼선을 잘라 냈다.
여정의 지침표에 집중하며 쾌검을 구사하여 영혼선을 잘라 내니 정신력이 쑥쑥 빠지는 느낌이었지만, 어차피 전투는 이걸로 끝.
내공을 최대한 활용하여 검을 휘두르자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보스 몬스터가 팔 한쪽을 완전히 뜯어내고, 거친 비명을 세운의 코앞에 내지를 때쯤.
“꺄아아아아아-”
서걱-
실타래가 모두 풀리며,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푸른 영혼선 한 가닥이 드러났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뚝 끊기는 보스 몬스터의 비명.
반투명한 천 조각이 수백 갈래로 찢겨 나가 나풀거리더니 허공에서 녹아 사라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늑대 가면 님.”
초상화에 그려져 있던 여성과 똑같이 생긴 여성이 나타났다.
상태를 보아하니 보스 몬스터의 팔이 찢겨 나간 건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사지가 멀쩡해 보였다.
다만, 당장에라도 사라질 것처럼 몸이 반투명하게 일렁거리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나저나…….
“늑대 가면?”
그녀의 입에서 익숙한 호칭이 들려왔다.
늑대 가면.
카지노에서 아르카나가 세운을 보고 처음으로 불렀던 호칭이 아니던가?
지금은 가면을 생략하고 ‘늑대 씨’라고 부르고 있다지만, 둘의 모습이 대치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네, 네. 죄송합니다, 이름은 못 들었어요. 그저 제 후임으로 선택한 인간이 당신을 부르는 호칭을 들었을 뿐이라…….”
더더욱 확신이 섰다.
그녀가 예언가인지, 예언가를 통해 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넌 누구지?”
미래를 알고 있다.
* * *
무엇부터 얘기해야 할까?
나름대로 다사다난했던 삶이라 할 수 있는 인생이었지만……. 그래, 그때부터 얘기하는 게 좋겠다.
“엄마, 저건 뭐야?”
“저건 혜성이란다. 얼른 소원 빌어 보렴.”
“소원? 소원 빌면 이루어져?”
“우리 아기가 진심으로 바라면 이루어질지도 모른단다?”
“응! 나 소원 빌래!”
어두운 밤하늘.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별들이 가득한 그곳에 특히나 눈에 띄는 혜성이 등장했다.
다만, 신기하게도 그 혜성은 검은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검은 꼬리가 보일 리가 없지만, 그 꼬리는 분명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찬란한 라일락의 밤하늘에서도 혜성이 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기에, 많은 사람이 혜성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혜성은.
“엄마……?”
찬란하기만 했던 라일락의 상공을 뚫고 들어왔으며.
“도, 도망쳐!”
콰아앙-!!!
기어코 라일락의 한복판에 떨어지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인지, 운석이 떨어졌는데도 생각보다 큰 피해가 생겨나지는 않았다.
무언가가 쿠션 역할을 해 준 것처럼 크레이터도 크지 않고 운석도 기이할 정도로 멀쩡해 보였다.
사람들은 외계에서 떨어진 돌덩이를 경외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하나둘, 몰려들었다.
진짜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꾸륵, 꾸르르륵-”
“뭐, 뭐지?”
운석 안에서부터 기어 나온 검은 액체.
다급하게 달려온 경비대가 창을 겨누어 경고했지만, 당연하게도 그들의 경고는 통하지 않았다.
경고를 무시하고 다가오는 액체를 향해 창을 내질러 봤지만.
푹-
“꾸르륵-”
“뭐, 뭐야!”
결과는 뻔했다.
공격은 통하지 않았고, 녀석들은 되레 창을 타고 기어와 경비대를 집어삼켰다.
그렇게 검은 액체가 경비대를 잠식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왜, 왜 이래요! 가까이 오지 마세요! 그, 그만! 컥!”
“크륵-”
처음에는 피해가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경비대 몇 명이 잡아먹혔을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는 도시 전체로 퍼져나갔다.
놈들의 위험성을 알아본 자들이 갖가지 방법으로 공격을 퍼부었지만, 놈들은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기껏해야 잠시 움직임을 주춤할 뿐.
“살려줘!”
“꺄아아악!”
아름다웠던 도시, 라일락은 순식간에 불과 비명으로 뒤덮였다.
죽지를 않으니 싸울 수도 없었다.
이대로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그녀의 남편이 고개를 저으며 앞으로 나섰다.
“라일락을 잘 부탁해.”
“아, 안 돼!”
대륙 제일의 마법사. 꽃의 마법사로 불리며,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어 미약하게나마 시간을 뒤트는 힘을 가지게 된 대륙 제일의 마법사.
그가 마법을 사용하자 라일락이 연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시간이 뒤틀리고, 검은 액체가 모두 운석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대륙 제일의 마법사가 자신의 심장을 걸고 사용한 대마법.
아쉽게도, 그 힘으로도 이미 죽은 사람들을 살릴 수는 없었다. 폐허가 된 라일락을 되돌릴 수도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검은 액체를 운석 안으로 되돌리는 것과 운석에 불안정한 봉인을 내건 것뿐이다.
‘내가…… 내가 막아야 해.’
그때부터였다. 그녀가 운석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은.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돈이었다.
처음에는 헤맸지만, 폐허가 된 라일락에 들어오기 시작한 부랑자와 범죄자들을 이용할 방법을 찾아냈다.
그 찬란했던 도시인 라일락을 밤의 거리로 만들어 부랑자를 받아들이고 범죄자들을 이용했다.
술과 범죄가 판치는 것을 눈감아 주고 아니, 오히려 부추기며 어떻게든 도시를 발전시켰다. 라일락에 경매장과 카지노가 생겨난 것도 이때였다.
다행히도 도시의 규모가 커지니 최소한의 보안은 지킬 수 있었다.
카지노가 활성화되며 생각했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내가 해야만 해.’
정보를 모았다. 대륙의 각종 희귀한 것들을 모아 다녔다. 그러고도 제대로 된 정보를 모을 수 없어 좌절하던 찰나, ‘관리인’이라는 놈들이 나타났다.
자신들을 도와주겠다는 악마의 속삭임과 같은 말.
차원으로부터 고립되는 대신, 차원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허황된 얘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내가 꼭. 꼭, 내가 해야만 해.’
정보가 하나둘 몰려들었다.
라일락 말고도 다른 차원에 떨어진 운석에 대해서 미약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정보가 그들을 ‘불사’라 가리키고 있었다.
좌절하고, 또 좌절했다.
그러던 중, 꽃의 마법사라 불리던 남편이 남기고 간 꽃무늬의 브로치에 닿는 순간, 남편이 남겨둔 시간 마법을 통해 미래를 볼 수 있었다.
아주 제한적이지만,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여성이 자기 대신 카지노를 지배하고 있는 모습과 그녀가 늑대 가면이라고 부른 남성. 그리고 그가 운석 앞에 다가서 검붉은 빛이 감도는 검을 앞으로 내미는 것.
‘내가…… 죽어야 하는구나.’
그제야 그녀는 목숨을 끊을 수 있었다.
카지노에서 처음 ‘아르카나’를 보는 순간, 담담하게 목숨을 내어주었다.
그리고 지금.
“넌 누구지?”
마침내, 그 남자가 자신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