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6화(36/675)
제 36화
“고블린 주제에 엄청나게 잘 지어뒀네.”
세운이 감시탑의 후면을 타고 올랐다.
잡을 곳도 변변치 않았지만 세운에게는 ‘발라탄 절벽의 개코원숭이’ 능력이 깃들어 있었다. 그 험한 바위산의 절벽도 올랐는데, 이 정도쯤이야 가뿐했다.
감시탑을 모두 오르는 순간.
서걱, 푹!
투둑.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움직임으로 감시탑 위에서 경계를 서던 고블린 두 마리의 숨통을 끊었다.
철저하게 목을 노린 일격이었기에, 둘 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해야만 했다.
폭식의 권능으로 사체를 처리한 후, 세운은 차분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다.’
고블린들은 발등에 불똥이라도 떨어진 듯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기야, 외곽의 고블린들이 당해서 경계를 강화하는 것에 이어 부락의 바로 앞에서 폭발이 일어났으니 바쁘게 움직이는 게 당연한 상황이었다.
그중에서도, 세운이 찾는 것은 바쁘지 않아 보이는 곳이었다.
부락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면, 이런 상황이라도 경계가 흩어지기보다는 오히려 더 강화되었을 테니까.
그런데 세운의 귓가에 고블린 부락에서 들려오면 안 될 것 같은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사, 살려줘!”
“으흑흑…….”
“젠장…….”
사람의 목소리.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보니, 부락 한편에 조잡한 나무 감옥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안으로, 열 명가량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이 주변에서 튜토리얼을 시작한 사람들이겠네.’
전에도 말했듯이 튜토리얼은 세운의 캠프만 참여하는 게 아니다.
튜토리얼의 넓은 지역 곳곳에서 수많은 존재가 이 잔혹한 경쟁에 참여한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저들 역시 세운의 캠프와 마찬가지로 억지로 참여를 당한 듯싶었지만.
‘당장 구할 수는 없다.’
지금 당장 저들을 풀어주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세운은 물론, 저 사람들도 더욱 고통스럽게 죽고 말 것이다.
지금은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다.
던전을 공략하며 저들을 구할 수 있으면 구하겠지만, 최악의 상황에는 저들을 버려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던 중.
‘찾았다.’
세운은 목표물로 보이는 장소 몇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궁궐처럼 화려해 보이는 오두막과 창고의 모습을 한 직사각형의 건물.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회귀 전에 다양한 던전을 공략해 왔던 세운이기에 그것들의 정체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앞에 건 족장이 거주하는 곳이겠고, 뒤에 건 창고겠지.’
고블린은 단순하다.
오히려 지능이 낮으면 건물이 다 비슷하게 생겨 추론이 어렵겠지만, 적당한 지능을 가진 몬스터를 상대로는 추론이 더욱 쉬워진다.
단순히 던전 공략을 위해서라면, 거대한 오두막에 숨어 들어가 보스 몬스터를 잡는 게 우선이겠지만…….
세운은 창고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애초에 숲을 불태우지 않고 여기까지 숨어들어온 것부터가 단순한 경험치나 공적치 이상의 뭔가를 얻기 위함이었다.
“키엑, 크에엑!”
저마다의 이유로 바쁘게 움직이는 고블린 사이로 세운이 스쳐 지나갔다.
적절한 은신술과 혼란스러운 상황 덕분에 그 누구도 세운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밖의 평지와는 달리, 부락은 온갖 다양한 구조물이 다양했기에 몸을 숨기기에도 최적이었다.
세운은 눈 깜짝할 사이에 창고로 보이는 건물의 바로 옆에 도착하였다.
‘뭐가 들어 있는지는 몰라도, 경계 한번 철저하네.’
밖에서 보았던 조악한 무기가 아닌, 제대로 관리된 무기를 들고 있는 고블린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은 듯이, 주위가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제 자리를 확실히 지키고 있었다.
땅 밑으로 들어가거나,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 이상, 녀석들에게 사각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세운에게 있어 빈틈이란 찾는 것이 아닌 만드는 것이었다.
‘카샤의 불씨.’
화륵!
“키엑?!”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난 불꽃에 고블린 하나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 반응이 꽤 격렬하였기에 경비의 시선이 한순간 녀석에게 모두 집중되었다.
다만, 불꽃은 짧게 한 번 타오름과 동시에 사라진 후였다. 때문에 고블린은 다른 고블린의 놀림거리가 되어야 했다.
필사적으로 불꽃에 대해 설명하는 듯했지만, 들어주는 이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쉽네.’
세운은 이미 경계를 뚫고 창고의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변변한 자물쇠도 없어서 두꺼운 나무로 입구를 막아 두었는데, 그걸 치우는 것 정도는 고블린을 해치우는 것보다도 간단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세운의 예상대로 그 안에는 온갖 물품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먹을 게 안 보인다며 크게 실망합니다.
첫발을 내딛자마자 보인 것은 창칼과 방패를 포함한 다양한 병기였다. 그것도 튜토리얼 초반부에서는 구하기가 힘들다고 알려진 냉병기(冷兵器)들.
한눈에 보아도 제법 쓸 만해 보이는 것들이었다.
게다가, 그 옆에는 어디서 주워왔는지 정체 모를 광석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마치, ‘마몬의 보물창고’의 하위 버전이랄까?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감히 이런 보잘것없고 하찮은 창고와 자신의 창고를 비교하지 말라며 미간을 찌푸립니다.
아니, 정정하겠다. 극 하위 버전 정도로.
‘일단, 전부 챙겨야겠어.’
튜토리얼의 초반부에서 쇠로 만들어진 냉병기는 귀한 편이다. 게다가 이렇게 다양한 장비들은 세운의 능력인 ‘탐욕의 권능’과 매우 잘 어울렸다.
다만, 문제라면 창고의 크기가 생각보다 크다는 점?
탑에는 게임처럼 인벤토리 같은 게 존재하지 않았기에, 혼자서 이 많은 아이템을 챙기기는 불가능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탐욕(眞)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아공간 주머니 ]– 무색의 마탑에서 만들어 낸 주머니로써 공간 마법이 새겨져 작은 창고 정도의 면적만큼 물건을 수용할 수 있다.
세운의 권능이 아닌, 현재 마몬이 가지고 있는 진짜 보물창고. 그곳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장검 하나를 주머니 입구에 밀어 넣었다.
본래라면 당연히 주머니의 밑바닥이 뚫려 찢어졌겠지만.
쑤욱!
기다란 장검이 주머니 속으로 거짓말처럼 쑥 들어갔다.
다른 장비들 역시 마찬가지.
검이든, 창이든, 방패든. 주머니는 마치 다른 세계와 연결이라도 되어 있는 것처럼 창고의 장비들을 쑥쑥 받아먹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아공간 주머니.
탑에서는 ‘무한의 주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아이템이었다.
이는 플레이어에게 매우 유용하게 쓰였기에 매우 고액에 팔렸다.
그런 아이템을 공짜로 얻은 셈이니, 뒤랑달을 빌려준 대가치고는 훨씬 이득이 남는 장사였다.
“장비는 다 챙겼고.”
세운이 고개를 돌렸다.
크기가 큰 만큼, 장비만 보관하는 게 아니라 보석이나 보존 식량 등 다양한 것들이 존재했다.
아공간 주머니의 공간은 아직 여유로웠기에, 망설임 없이 모든 아이템을 쓸어 담았다.
그러던 중, 세운의 눈에 푸른 빛의 보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마나석?”
보석을 채우고 있는 영롱한 기운. 마나가 분명했다.
그리 품질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 쓸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 수가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대충 세어 봐도 백 개 이상.
어디서 구했는지는 몰라도, 세운에게는 이 창고에 존재하는 모든 아이템을 통틀어서 가장 쓸모 있어 보이는 것이었다.
‘마나석의 활용성은 무궁무진하니까.’
이전에 백현에게 사용한 흑마석처럼 사용해 마나를 흡수할 수도 있고, 여러 마법을 새길 수도 있다. 장비에 사용해 마법적 힘을 담을 수도 있었다.
그때, 세운의 머릿속에 하나의 계획이 떠올랐다.
‘그 방법이라면…….’
본래의 계획이라면 보스 몬스터를 공략한 후, 고블린들이 혼란스러워하는 틈을 타 도망가거나 부락에 불이라도 지를까 생각했는데, 이 마나석이라면 그보다 훨씬 더 좋은 ‘계획’을 벌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운의 신조 중 하나.
고민은 짧게, 행동은 빠르게.
창고에 존재하는 모든 아이템을 털어 버린 세운이 새로운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 * *
고블린 부락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오두막.
그곳은 이 부락에 존재하는 수천 마리의 고블린을 지배하는 족장인 ‘코콩칵’의 처소였다.
그리고 오늘, 족장의 심기는 그 어느 때보다 좋지 않아 보였다.
“케륵! 아직도 못 찾은 것이냐!”
“키익…….”
“이런 쓸모없는 것들!”
빠악!
코콩칵이 휘두른 두꺼운 방망이에 고블린의 머리가 거칠게 터져 나갔다.
엄청난 괴력.
그는 홉고블린으로 태어날 때부터 왕으로 선택받은 고블린이었다. 키나 덩치는 어지간한 오크만큼 컸고, 힘도 고블린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강력했다.
“키륵…….”
“키이익…….”
그야말로 폭군.
머리가 터져 나간 동료를 지켜보며, 코콩칵의 앞에 자리 잡은 고블린들이 몸을 덜덜 떨었다.
성과나 충성심 따위는 상관없었다. 그의 심기가 좋지 않고,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모두가 저렇게 머리가 터져 나갔다.
인간의 사회였으면 금방 반기가 일어났겠지만, 고블린 부락에서는 달랐다.
오로지 힘이 전부인 사회.
공포 정치는 그 어떤 것보다 훌륭한 정치 수단이었다.
“다 꺼져라! 얼른 그 침입자 놈이나 찾아와!”
“케륵!”
“그리고 너! 가서 제일 어린 인간 한 마리만 데려와라. 배를 좀 채워야겠다.”
“켁! 케륵!”
인간은 코콩칵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 중 하나였다.
대체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 근육도 별로 없고 연한 피부에 냄새도 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운 좋게 그런 인간을 열 마리가량 포획할 수 있었다.
코콩칵은 인간을 먹을 생각에 머리끝까지 차오른 분노가 조금 가라앉아 왕좌에 앉았다.
“케륵! 저 멍청한 놈들. 도저히 수준이 맞지 않는군.”
“그러게 말이야.”
“그렇지? 역시 이 몸은…… 뭣?”
푸욱!
“컥!”
갑작스러운 공격.
코콩칵은 목에서 느껴지는 예리한 감촉에 다급하게 몸을 뒹굴었다.
가까스로 죽음은 면할 수 있었지만, 경동맥이 베인 터라 초록색 혈액이 분수처럼 뿜어졌다. 피하는 게 조금만 늦었어도 경추가 끊어질 뻔했다.
다급하게 상처를 지압하며, 코콩칵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붉은 갑옷을 입은 인간이 단검에 묻은 초록 피를 털어내고 있었다.
“역시 네임드 몬스터인가. 반사 신경이 빠르네.”
“케륵! 네놈은 뭐냐!”
코콩칵이 악을 쓰며 외쳤다.
분명, 아무런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인간은 마치 허공에서 갑작스럽게 생겨난 것만 같았다.
공격 역시 얼마나 예리한지, 조금의 저항감도 없이 자신의 목을 베어냈다.
태어날 때부터 남들 위에 군림하고, 단 한 번도 위기감을 느낀 적이 없었던 코콩칵. 그가 처음으로 생명의 위기를 느끼며 전신의 털이 바짝 섰다.
본능이 어서 도망가라고 외쳐대고, 쿵쾅대는 심장 탓에 지혈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글쎄, 네놈한테 설명해 주기는 시간이 아까운데.”
인간이 가까이 다가오자, 코콩칵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다급하게 목청을 높였다.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일대일로 이 인간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가 다스리는 부락의 한복판이 아니던가?
“경비! 이 망할 것들아, 어서 와라!”
“늦었어.”
“뭐라?”
이제 곧 있으면 수백, 수천의 고블린이 몰려올 텐데 남자의 얼굴에는 조금의 걱정도 보이지 않았다.
곧이어, 남자가 의문의 행동을 보였다.
단검을 들지 않은 왼손을 들더니, 엄지와 중지를 가볍게 튕긴다.
딱, 소리가 그의 귀에 닿을 때쯤.
콰콰콰콰쾅!!
콰르륵!
쿠르르릉!!
코콩칵의 뒤편에서 고막이 터질 듯한 거대한 굉음이 들려왔다.
후끈한 열기와 함께 들이닥친 풍압이 그의 몸을 밀어내, 꼴사납게 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지압에 실패한 상처에서 초록색 피가 울컥 솟아올랐다.
벌벌 떨리는 손을 꽉 쥐며 뒤를 돌아보자.
“내, 내 부락이!”
고블린 부락이 불지옥으로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