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62)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66화(362/675)
제 366화
근원지의 주인, 녹아내린 원한.
그 모습은 실로 기괴했다.
단순히 표면이 검붉은 진흙 같은 걸로 뒤덮인 게 아니라, 몸 자체가 그 물질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무슨 원리인지 진흙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분명한 건…….
“그웨에에엑-!!”
녀석이 세운을 적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백탑의 묘리에 따라 ‘턴 언데드’의 속성력이 상승합니다.
언데드에게 상극인 턴 언데드를 사용해 봤지만, 역시나 표면의 저 진흙은 일종의 방어막 역할을 하는 듯했다.
다음은 불꽃.
화르륵!
진흙을 두른 좀비들도 결국 화염은 견뎌내지 못했기에 타격이 있을 줄 알았지만, 녀석의 방어력은 세운의 생각 이상이었다.
화염에 닿은 부분이 도자기처럼 딱딱하게 굳더니, 화염이 꺼지자 표면이 깨어지고 떨어져 나가며 멀쩡한 본체의 모습이 드러났다.
언데드의 최대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빛과 불꽃. 두 가지 모두 통하지 않는 상대.
이 정도면 51층의 근원지에 존재하는 보스 몬스터 중에서도 무척이나 강한 편인 것 같았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세운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만병지함은 그 큼직한 관을 직접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한 장비가 아니었다.
계약과 동시에 소속자에게 종속되어 무형의 아공간이 된다.
이렇게 손을 뻗고 원하는 무기를 떠올리며 주먹을 쥐는 것만으로도.
철컥.
공간이 미약하게 일그러지며 원하는 무기가 손에 쥐어진다.
첫 번째 무기는 아킬레우스의 창, 아펠리온.
– 내공을 통해 오룡활보의 제삼 초식, 청룡일섬(靑龍一閃)이 강화됩니다.
푸욱!
녹아내린 원한의 몸속 깊숙하게 창을 내지른다.
단순한 창 찌르기였지만, 오룡활보의 묘리가 깃든 창은 청룡이 꿈틀거리듯이 거칠게 회전하며 놈의 내부를 휘저었다.
라일락에서 수련을 마친 덕에 깔끔한 자세에 손맛까지 있었지만.
“망자에게…… 두 번의 죽음은…… 없다…….”
아쉽게도 놈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서 꿈틀거리고 있는데 생명체가 아니라 무생물을 공격하고 있는 기분이다.
심지어 끈적거리는 피부는 아펠리온을 꽉 붙잡은 채로 놓아주지 않았다.
이에, 세운은 망설임 없이 창에서 손을 놓고, 창대를 밟은 채 높이 뛰어올랐다.
– 내공을 통해 복마궁술의 제이 초식, 마도시(魔導矢)가 강화됩니다.
푸부북!
다음으로 꺼내든 불사궁에서 얼음 화살 네 개가 연이어 쏘아졌다.
놈의 피부는 공격이 잘 안 통할 뿐이지 단단한 게 아니었기에 화살은 놈의 발을 가볍게 꿰뚫고 주변을 얼려 나갔다.
놈이 ‘구웨엑!’하는 소리를 내지르며 허리를 숙이려 했지만, 가슴 깊숙이 꽂힌 아펠리온 때문에 움직임이 영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다음.’
활을 회수할 시간도 아까워 그대로 허공에 내던졌다.
불사궁이 서리 가루를 흩날리며 애처롭게 떨어지다가 만병지함의 효과로 스르르 사라지며 아공간 속으로 회수되었다.
바로 뒤랑달을 꺼내 든 세운이 빠르게 추락하며 놈의 얼어붙은 두 발목을 베어 넘겼다.
단단하지는 않더라도 특유의 질척거림으로 검의 진로를 방해하던 녀석의 피부지만, 꽁꽁 얼어붙은 덕분에 발목을 한 번에 쪼갤 수 있었다.
“그웨레레렉-”
놈이 팔을 흔들며 버둥거리더니 이내 몸이 기울어져 앞으로 쓰러진다.
세운은 이조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곧바로 다음 무기를 꺼내 들었다.
– 내공을 통해 오룡활보의 제사 초식, 황룡진거(靑龍進去)가 강화됩니다.
쿵!!
만병지함을 활용하기 위해 경매장에서 사들였던 무기 중 하나인 대지 분쇄기. 그 거대한 망치가 쓰러져 가던 놈의 몸통을 올려 쳤다.
최소한 수백kg은 가뿐히 넘을 법한 놈의 몸뚱이가 비현실적으로 공중에 붕 떠 올랐다.
“쿠웩!”
그리고, 놈의 입에서 처음으로 고통에 찬 신음이 느껴졌다.
창을 가슴 깊숙한 곳까지 찔러도 표정 변화 하나 없던 놈이 다급하게 팔을 휘젓는다.
입에서는 검붉은 진흙이 마구마구 토해진다.
애초에, 세운이 지금까지 놈에게 날린 공격들 전부 계획된 것들이었다.
핵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놈에게 급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다른 사람이었다면 엄청나게 헤맸겠지만, 세운에게는 여정의 지침표가 있었다.
‘저놈, 대지로부터 힘을 공급받고 있다.’
놈의 발이 바닥에 빠져 있던 건 단순히 대지가 질퍽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 늪 같은 구역 전부가 놈에게 힘을 공급해 주는 매개체였던 것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시체를 썩히고 녹이며 이 늪에 힘을 쌓아두다가 전투를 할 때 이용하는 것 같았다.
정석적인 공략법이라면 지속적으로 힘을 소모시켜 늪의 힘을 완전히 빼는 장기전이겠지만, 세운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대지로부터 발만 떨어트리면 해결이지.’
망치로 가격당해 놈의 몸이 떠 오르자마자, 여정의 지침표가 반응했다.
애초에 급소나 핵 따위 존재하지도 않던 놈의 배꼽 부근에 검붉은 기운이 뭉치는 게 보였다.
다만, 녀석도 자신의 급소가 생겨나는 걸 느끼고는 기운의 주변으로 껍질 같은 걸 두른다.
바로 이어서 세운이 선택한 무기는, 도끼.
– 내공을 통해 오룡활보의 제오 초식, 적룡흘아(赤龍齕牙)가 강화됩니다.
콰직!
도끼를 휘두르자 놈의 몸이 쩌억 갈라지며 검붉은 기운이 한눈에 드러난다. 딱 보아도 그 강도가 어지간한 광석 이상으로 단단해 보였다.
도끼를 내려놓은 세운이 이번에는 단검을 꺼내 들었다.
광룡의 송곳니.
마찬가지로 만병지함을 활용하기 위하여 경매장에서 구입한 단검이었다.
그 이름처럼 광룡의 송곳니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칼날에 무형의 기운이 깃들었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용의 최후, 리딜 ]– 영웅 시구르드가 악룡 파프니르의 심장을 꺼낼 때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단검.
푹!
마몬의 보구 앞에서 단단함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기운을 둘러싸던 단단한 껍질이 무기력하게 뚫리고, 그 속 깊숙이 찔러 들어간 단검을 반 바퀴 돌렸다.
그러자 안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며 가까스로 형체를 유지하던 놈의 몸이 녹아내려 물처럼 쏟아졌다.
‘역시.’
광룡의 송곳니.
비싸게 구입한 S급 무기라고는 하지만 내구력이 높은 편은 아니라 원래대로라면 마몬의 보구가 가진 힘을 온전히 견뎌내기 어렵다.
하지만, 만병지함의 능력 중 하나인 ‘지왕’.
만병지함에 보관되어 있던 무기를 꺼내 사용할 시 첫 번째 공격이 강화된다는 그 능력 덕분에 단검은 리딜의 힘을 견뎌낼 수 있었다.
만족스러운 전투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와 함께.
– 망자의 근원지인 ‘녹아내린 사체의 늪’을 성공적으로 공략하였습니다.
– 시련 ‘망자의 쉼터’에 추가 점수가 부여됩니다.
– 시련 ‘망자의 쉼터’ 통과 자격을 획득하였습니다.
– 원할 시에 언제든지 다음 시련에 도전하실 수 있습니다.
시련의 끝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 올랐다.
급한 상황이라면 얼른 다음 시련으로 이동했겠지만, 어차피 이대로 쭉쭉 급하게 시련을 돌파해 봤자 길드원들을 기다릴 뿐이다.
‘공적치도 다 썼으니.’
새로운 무기를 구입하느라 현재 세운의 공적치는 텅텅 빈 상태.
공적치도 모을 겸, 경험치도 쌓을 겸, 새로운 전투 방식에 적응할 겸, 이곳에 남을 이유는 많았다.
“끼기기기기긱-!!!”
그렇게 생각하던 중, 웨이브의 시작을 알리는 망령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곧바로 그 위치를 정확하게 지목하는 여정의 지침표.
세운이 가볍게 미소 지으며 다음 근원지를 향해 움직였다.
아, 물론.
– ‘녹아내린 원한’을 포식하였습니다.
– 양분을 흡수하여 체력이 4 상승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꾸덕꾸덕한 게 식감이 아주 기가 막힌다며 입을 멈추지 않습니다.
베엘제붑에게 음식을 제공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그 이후로도 세운은 계속 망자의 근원지를 찾아다녔다.
웨이브가 시작될 때마다 들려오는 귀곡성과 그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주는 여정의 지침표 덕분에 위치는 무리 없이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찾은 두 번째 근원지의 주인은 ‘흔들리는 비명’.
유령형 몬스터였는데 영혼선이 단순히 선의 개념이 아니라 복잡한 형식을 띠고 있어 검은 물론 망치까지 대동하여 처치할 수 있었다.
세 번째 근원지의 주인은 ‘펄럭이는 오염’.
특이하게도 비행형 몬스터라 플레이어들이 상대하기 매우 까다로운 놈이었지만, 세운에게는 튜리크의 날개가 있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비행전을 즐기며 시원한 바람과 함께 전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근원지를 네 개째까지 찾아냈을 때쯤, 길드원들의 진행도를 알아보기 위해 길드챗을 확인했다.
[ 한아름 : 나 포인트에 수성 기지 건설했지롱~ ] [ 한다운 : 나도, 나도! 내 수성 기지가 훨씬 멋질걸? ] [ 한아름 : 그럴 리가. 보나 마나 또 이상한 파란색으로 색칠해 뒀겠지! ] [ 한다운 : 아, 아니거든! 파란색은 조, 조금만! 포인트라구! ] [ 한아름 : 관심 없지롱! 내 수성 기지 보러 올 사람? 아무나 환영! ]웨이브의 중심인 포인트에 수성 기지를 건설한다는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른 쌍둥이 자매.
웨이브와 웨이브 사이의 간격이 무척이나 짧은 것을 생각해 보면 둘의 건설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시련에 대해 미리 듣고 라일락에서 준비해 온 것들이겠지.’
둘은 성좌의 권능을 통해 건축물에 한하여 작은 크기로 보관하는 게 가능하다 하였다.
그 능력을 통한 게 아니었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둘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 백현 : 이곳, 정말 마음에 듭니다! ] [ 백현 : 이렇게나 다양한 형태의 언데드가 존재한다니…… 혹시 괜찮으시면 다들 어떤 종류를 상대하고 있는지 알려줄 수 있으십니까? ] [ 백현 : 부디 꼭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참고하고 싶습니다! ] [ 한다운 : 백현 오빠, 무서워……. ]백현은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 상태였다.
모든 몬스터가 언데드인 이곳은 그에게 수많은 영감을 제공해 주는 보물단지나 다름없었으니까.
사람들도 백현이 무슨 뜻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열정적으로 그의 연구를 도왔다.
특히 백현이 웨이브나 근원지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언데드를 보기 위해 필드를 돌아다닌다는 사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 강한철 : 두 번째 근원지 공략 끝났다. ] [ 유서아 : 저도예요. 세운 씨도 근원지 공략하고 계시는 거죠? ]강한철과 유서아는 서로 경쟁하듯이 세운의 뒤를 쫓아오는 중이었다.
원래는 안 그랬는데, 라일락을 거쳐온 이후부터는 둘이 라이벌이라도 된 것처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서로 으르릉거리며 싸우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었기에 세운이 보기에도 무척 보기 좋은 관계였다.
‘다들 잘하고 있네.’
역시, 생각했던 대로. 아니, 다들 기대 이상으로 잘해 주고 있는 모습이다.
51층의 필드가 넓다고는 해도 이 상태라면 누군가와 마주치지 않을까 생각하며 도착한 다섯 번째 근원지에 도착하는 순간.
세운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사방에 쓰러져 있는 언데드 몬스터들.
보스 몬스터의 특징 같은 게 아니라, 전부 플레이어에게 당해 쓰러져 있는 모습이다.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아.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맛있어 보이는 먹이를 빼앗겼다며 울상을 짓습니다.
세운은 쓰러진 보스 몬스터의 앞에서 세운을 기다리고 있는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