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65)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69화(365/675)
제 369화
한편, 세운이 제단에 도착했을 무렵.
저 멀리, 세운의 감각이 닿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에서 세운을 뒤쫓아오고 있는 인영들이 있었다.
“젠장, 진짜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제대로 가고 있습니다.”
“아 씨, 답답해서 진짜. 이러다 놓치면 전액 환불이야! 알겠어?”
“제대로 가고 있습니다.”
“내가 인영 상대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뭐 계속 같은 말이야! 아오, 답답해!”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채로 숨조차 죽인 채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자. 그리고 그 뒤에서 뭐가 그리 불평인지 성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남성.
대화를 들어보니 둘은 무언가 계약 관계에 놓인 듯이 보였다.
그들의 쫓고 있는 대상은 바로.
“진짜 맞아? 그 늑대 가면인가 뭐시기.”
“맞습니다.”
“근데 용케도 찾아냈네. 어찌 된 일인지 라일락에서 그놈 얘기만 나오면 다들 입 싹 닫던데.”
“찾아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솔직히, 찾기 어려운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뭐? 그럴 리가. 내가 얼마나 알아봤는데? 윗선에서 얼마나 쪼아댔으면 내가 직접 여기까지 내려와서 너희들한테 돈을 냈겠어?”
“일종의…… 함구령입니다.”
“함구령?”
함구령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순간, 로브를 덮어쓴 자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라일락에서 제일가는 정보 길드. 그중에서도 간부직을 맡고 있는 그가 떨 정도라니, 대체 무엇을 함구했다는 걸까?
고개를 갸웃하던 사내가 눈을 크게 뜨며 정답을 추측했지만.
“아, 발할라 길드를 말하는 거군! 근데 그래봤자 발할라는 여덟 번째 쉼터에 자리를 잡고 있지 않나? 그렇게 눈치를 볼 것까지야.”
“발할라가 아닙니다.”
“엥? 그럼 뭔데?”
“이 이상은 정보료 초과입니다.”
“아, 치사하게 진짜. 더 얹어줄 테니까 말하라고. 궁금하니까.”
“기존의 두 배.”
“……뭐?”
“두 배는 주셔야 합니다. 솔직히 이것도 단가가 안 맞습니다만, 청해(靑海) 길드와의 관계를 생각해 특별히 제안 드리는 가격입니다.”
청해 길드. 탑에 존재하는 수많은 길드 중에서도 이름난 길드 중 하나였다.
올림포스의 해신들을 따르는 신도가 모인 길드로서, 대표적인 성좌로는 올림포스의 삼대 주신 중 하나인 포세이돈이 있다.
길드원 대부분이 물과 관련된 힘을 지니고 있어 수상전으로는 청해 길드를 따라올 길드가 없다고 알려질 지경이었다.
실제로 그들의 길드 거주지 전체가 바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때문에 길드와 길드끼리 맞붙는 전면전에서 그들은 수성전에 한해 결코 패배한 적이 없다고 한다.
여기서 남자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청해 길드의 길드원. 아니,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최소 간부급 이상의 플레이어였다.
다만, 두 배의 정보료를 부르는 정보원의 말에 남자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뭐? 두 배? 지금 우리 길드가 여기에 공적치를 얼마나 썼는지 몰라?”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 드린 말씀입니다.”
“이놈의 정보 길드, 바가지 진짜. 됐다, 됐어. 그냥 무시하고 말지. 어차피 중요한 건 저놈이니까.”
그렇게 이동할수록 정보 길드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저쪽의 남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지만, 그에게는 흐릿하게나마 세운의 전투가 보였기 때문이다.
‘정보 이상이다.’
세 기의 데스 나이트와 싸우고 있는 모습.
이건 동층의 수준을 넘어선 게 문제가 아니었다.
최소 일곱 번째 쉼터 이상.
아니, 저 정도면 여덟 번째 쉼터에 자리 잡은 대형 길드로부터 스카웃을 받는다 하여도 전혀 문제없을 정도의 전투력이었다.
“좀 더 가까이 가면 안 되나? 나도 좀 보고 싶다고.”
“안 됩니다.”
“아 씨, 속이는 거 아냐? 진짜 있긴 한 거야? 조심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렇게 떨어져 있는데 들키기라도 한다는 거야?”
“네, 들킵니다.”
정보 길드원은 확신했다. 이 이상 나아가면 무조건 들킨다고.
때문에 옆에서 남자가 아무리 불평을 늘어놓아도 절대 앞서 나가지 않았다.
계약서에 정보원의 말을 따르는 게 우선이라 명시되어 있어 망정이지, 남자가 멋대로 튀어 나갔으면 분명히 들켰을 거다.
“이동합니다.”
조금 더 이동하니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휑하게 비어 있는 근원지가 보였다.
“아니, 아무리 언데드라고 해도 사체가 이렇게 없을 수가 있어?”
“여기, 전투 흔적입니다. 땅이 질척해진 것도, 보이십니까?”
“보이긴 하는데, 왜 사체가 없냐고. 거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늘 그렇듯이, 이번 근원지 역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그저 질퍽한 바닥과 움푹 파인 구덩이 등이 이곳에서 전투가 있었다는 것을 간신히 증명하고 있었다.
“멈췄습니다.”
“하, 이제야? 체력도 좋은 놈들이네.”
“저곳이 목적이었나 봅니다.”
정보 길드원이 주위를 둘러보며 내심 당황했다.
51층의 시련에 관해서는 이미 정보 대부분이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아까 보았던 세 마리의 데스 나이트가 존재하는 근원지는 물론이고, 저 멀리 보이는 제단 같은 무언가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단순히 길을 헤맨다고 도달할 수 없는 곳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한 번 찾아온 이상 두 번 찾아오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저 돈을 받고 세운이라는 자를 쫓으러 온 것이지만, 이곳을 찾은 건 엄청난 수확이었다.
길드에 돌아간다면 분명 A급 이상의 정보로 등록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전방을 주시하던 정보 길드원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전 이쯤에서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뭐? 무슨 소리야, 갑자기!”
“제 역할은 끝났습니다. 저들은 이곳에서 볼일을 마치고 다음 층으로 올라갈 생각입니다.”
“아니, 내가 창 날리는 것까지는 보고 가야지!”
“그 이상은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로브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정보 길드원은 겁에 질린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청해 길드의 남자가 아무리 불평해도 그의 결정은 확고했다.
“그래! 가라, 가! 이 짜릿한 클라이맥스를 안 본 걸 후회하게 될 거다.”
결국 정보 길드원이 떠나고, 자리에는 청해 길드의 남자만이 남았다.
그는 마치 포세이돈의 무기와도 같은 삼지창을 번쩍 집어 들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봤자 51층 현지인이지. 방심하는 순간, 넌 끝이다.”
* * *
제단. 주로 신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또는 공물을 바치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를 뜻하는 말이다.
신을 기리기 위해 존재하는 신전과는 비슷하면서 다른 느낌의 장소.
문제는, 아무리 보아도 이곳이 평범한 제단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제가 알고 있는 제단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시는 신의 상징도 안 보이고, 크기도 비정상적입니다.”
제단이라면 공물을 바치는 신의 상징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석상이든, 그림이든, 무엇이든.
그런데 이곳에는 상징이라 할 만한 게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오래되어서 지워진 게 아니겠습니까?”
확실히, 오래되어 보이긴 했다.
기둥이 전부 부러지고 쓰러져 멀쩡한 기둥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계단도 듬성듬성 떨어져 나가 있었다.
허리춤까지 올라온 계단 하나하나의 크기가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세운은 고개를 저었다.
“오래되더라도 상징이 지워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제단은 곧 섬기는 신을 뜻하는 장소.
지구라면 몰라도, 탑에서 신전이나 제단은 섬기는 신의 상징이 사라지는 일이 거의 없다.
만약 상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름없다.
“일단 올라가 보죠.”
“네.”
비정상적으로 높은 계단을 뛰어넘듯이 걸어 나갔다.
낡은 것과는 별개로, 계단 사이에 핏덩이를 끌고 간 것처럼 질질 끌린 듯한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계단을 걸으면서도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역시나 섬기는 신의 상징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계단의 끝.
제단의 중심이라 생각되는 곳에 도착하자, 제물을 올리는 곳으로 보이는 거대한 단상이 나타났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이곳에서는 그 어떠한 신성도 느껴지지 않는다며 제단의 정체를 궁금해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곳에는 먹을 게 없다며 실망합니다.
당연하게도, 단상 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낡고 더러운 곳에서 유일하게 단상만이 누가 청소를 해 둔 것처럼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단상을 둘러보아도 글씨는커녕 그림 하나 보이지 않았다.
세운조차 감을 잡지 못하는 상황.
‘뭐지?’
분명 무언가 있다.
이쯤 되면 여정의 지침표가 작은 정보라도 알려줄 만한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단상 위에 손을 얹어보았다.
차가운 줄 알았는데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를 만진 것처럼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 순간.
우웅-
세운의 성흔이 빛을 발했다.
마신들과 소통을 하고 있다지만, 정식으로 사도의 계약을 맺은 성좌가 없는 세운의 성흔이 제단과 반응할 일이 뭐가 있을까?
성흔을 통해 세운의 신성이 미약하게 빠져나가 단상을 채워나갔다.
그리고 이내, 단상 위에서 흐릿한 잔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죽은 자를 위한 성터에 찾아온 산 자들이여.
유령과는 다르다. 마치, 신의 암시와도 같았다.
세운이 보낸 신성의 영향인지 잔영은 미약하게 검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 이곳은 죽은 자들만이 손을 모을 수 있는 곳이다.
‘죽은 자들…….’
세운의 머릿속에 다양한 정보가 떠올랐다.
고작 두 마디의 말을 나눴을 뿐이지만, 그 말로 유추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저승의 신을 기리는 곳인가?’
저승의 신. 또는 죽음의 신.
대표적으로 올림포스의 주신 중 하나인 하데스를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어쩐지 뉘앙스가 달랐다.
보통 이런 곳은 죽은 자들을 위해 기리는 곳이지, 죽은 자들이 기도하는 곳이 아니다.
애초에 죽은 자들이 기도 같은 걸 할 리가 없지 않은가?
– 산 자가 손을 모으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한 법.
“무슨 제물을 원하지?”
손을 모은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확실하지 않고, 제물을 바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어지는 잔영의 대답은 너무나도 정석적이면서도 세운의 인상이 찌푸려지게 만들었다.
– 살아 있는 그대들의 동족이다.
동족. 즉, 인간을 제물로 바치라는 말이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흐름을 따라 이곳까지 찾아오는 방법은 알아냈으니, 온 방향으로 되돌아가 웨이브를 진행하고 있는 플레이어를 잡아 오면 그만이다.
알고 있다. 이게 극히 비윤리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당연하게도 세운 역시 그렇게까지 하여 이곳의 비밀을 밝혀낼 생각은 없었다.
‘일단은 돌아가야 하나.’
당장은 방법이 없었다.
일단은 시련을 통과한 이후에, 회생 불가의 인간쓰레기를 생포해 라일락으로 돌아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아우터도 아니고 정체 모를 제단을 위해 그렇게까지 하기는 싫었다.
어쩔 수 없이 단상을 뒤로하고 돌아가려던 무렵.
– 위험해.
펄럭!
튜리크가 보랏빛 날개를 펼쳐 세운을 뒤로 밀쳐냈다.
이어서 보인 것은 소용돌이치는 해류를 머금은 채로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날아오고 있는 삼지창.
튜리크가 아니었다면 삼지창의 존재조차 못 알아차릴 뻔했다.
하지만, 당황하는 것은 잠시.
튜리크 덕분에 뒤로 밀려난 상태 그대로 코앞을 스쳐 지나가는 삼지창을 향해 손을 뻗었다.
태극권의 묘리를 극도로 살리며 창대를 쥐자, 거친 해류의 기운이 세운을 엄습한다.
‘이 정도야.’
다른 속성도 아니고, 수 속성 저항력에는 자신이 있다.
창대를 쥐자마자 소용돌이가 세운의 팔을 휘감으며 상처를 입혔지만, 신경 쓰지 않고 몸을 회전시켰다.
그 찰나에 단전이 빠르게 움직이며 창대를 향해 내공을 불어넣었다.
– 내공을 통해 빙룡창법의 제삼 초식, 빙룡낙하(氷龍落下)가 강화됩니다.
– 빙백신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에 냉기가 더해집니다.
삼지창 주위를 휘몰던 해류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날개를 펼친 세운이 높게 뛰어오르더니 몸을 한 바퀴 회전시켜 삼지창을 날아온 방향 그대로 내던졌다.
삼지창이 해류가 아닌 빙룡의 형상에 휘감긴 채로 반대쪽 지평선을 향해 날아갔다.
이윽고.
푹-
“끄아아악!”
저 멀리에서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워낙 다급하게 움직인 터라 빗맞힐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세운의 움직임은 생각 이상으로 숙련되어 있었다.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최수창의 걱정해 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강한 공격이라도 고창석이 만들어 준 방어구가 있으니 한 번에 죽지는 않더라도,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었던 기습을 당했다.
그런데도 세운은 전혀 당황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잘 됐다는 듯이 낮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잡아 와 줄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타이밍 적절하게 제단에 바칠 ‘제물’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